우상을 가리시고 자신을 보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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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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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갑자기 정전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본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산속에서 빛이 완전히 차단된 밤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빛이 전혀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본능적인 두려움과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기에, 결국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10장 본문에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흑암이 애굽(이집트) 온 땅을 덮치는 끔찍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완악한 애굽의 왕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아홉 번째 심판이었습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에게 태양은 그저 세상을 비추는 자연 만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태양신 '라(Ra)'를 애굽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고, 애굽의 통치자인 바로 왕 자신을 그 태양신의 아들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든 손을 뻗게 하시자, 그들이 믿었던 태양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고 애굽 전역에 사흘 동안 무서운 흑암이 임했습니다. 이 흑암의 재앙은 곧, 애굽이 자랑하던 최고의 신이 온 우주의 참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무력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바로와 모세의 치열한 줄다리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히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고 교묘하게 타협을 유도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유혹 속에서 어떻게 '참된 예배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흑암의 심판과 구별된 빛: 하나님의 절대 주권 (21-23절)
1. 흑암의 심판과 구별된 빛: 하나님의 절대 주권 (21-23절)
가장 먼저, 우리는 애굽 온 땅을 덮은 흑암과 고센 땅에 비친 빛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어둠을 가리켜 "더듬을 만한 흑암"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더듬다'라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눈이 먼 이삭이 아들 야곱의 손을 만지며 더듬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와 같습니다. 이 어둠은 단순히 날이 흐리거나 밤이 깊어진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마치 시각장애인처럼 앞을 전혀 보지 못해 손으로 벽과 바닥을 더듬어야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22절과 23절 상반절은 그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서로를 알아볼 수도 없고, 두려움에 갇혀 자리에서 일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애굽은 당대 최고의 권력과 막대한 부, 찬란한 문명과 지식을 자랑하던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순간에 빛을 거두시자, 그 모든 세상의 자랑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맞이하게 될 결말은 이와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찬란해 보이고 대단해 보여도, 참 빛이신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릴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절망으로 가득한 이 본문에 놀라운 반전이 등장합니다. 23절 하반절입니다.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온 애굽이 흑암에 갇혀 절망의 비명을 지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던 고센 땅에는 평온한 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 중에도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구별하시고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고센 땅에 비추었던 이 빛은, 오늘날 영적인 흑암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허락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빛을 떠오르게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다면, 우리가 거주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구별된 빛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흑암에 동화되어 더듬거리는 자들이 아니라, 구별된 '빛의 자녀들'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 교묘한 타협의 유혹: 예배를 향한 세상의 공격 (24-27절)
2. 교묘한 타협의 유혹: 예배를 향한 세상의 공격 (24-27절)
그러나 영적 전쟁은 빛의 자녀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사흘간의 끔찍한 어둠 속에서 견디다 못한 바로는 모세를 다시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세상의 아주 교묘한 공격을 마주하게 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이전 재앙 때까지만 해도 자녀들은 안 된다며 윽박지르던 바로가, 이제는 백성들과 어린 자녀들까지 다 가라고 크게 양보하는 척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하나의 조건을 덧붙입니다. "다 가되, 너희의 재산인 양과 소는 애굽에 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가 모세에게 끈질기게 제시해 온 네 단계의 타협안을 유기적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을 상징하는 바로는 처음에 "애굽 땅 안에서 예배하라"(출 8:25)고 유혹했습니다. 굳이 세상과 구별되려 유난 떨지 말고, 적당히 세상 속에 섞여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모세가 이를 거절하자, 이어진 재앙에서 그는 "광야로 가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출 8:28)고 물러섭니다. 언제든지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깊이 헌신하지는 말라는 유혹입니다.
그마저도 통하지 않자, 바로는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출 10:11)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부모와 자녀를 갈라놓아, 다음 세대로 온전한 신앙이 전수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는 악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흑암의 공포 속에서 그는 네 번째 타협안을 꺼내 듭니다. "몸도 가고 자녀도 가라, 하지만 너희의 양과 소는 애굽에 두고 가라"(출 10:24)는 것입니다.
바로는 왜 이렇게까지 끊임없이 조건들을 내걸며 집착하는 것일까요? 바로는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듯이, 이스라엘의 전 재산인 가축이 애굽에 남아있다면 그들의 마음과 시선은 다시 애굽으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과 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필수적인 '예배의 제물'이었습니다. 가축이 없다면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즉, 이 모든 타협안 속에 숨겨진 바로의 진짜 본심은 단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몸은 성소에 가더라도, 온전한 헌신과 참된 예배만큼은 절대 드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사탄의 본질적인 공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한 전략으로 다가옵니다. 사탄은 "예수 믿지 마! 교회 절대 가지 마!"라고 대놓고 핍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내면에 아주 교묘하게 타협을 속삭입니다. "교회에 가는 건 좋아. 하지만 너무 깊이 빠져서 유난스럽게 헌신하지는 마." "가족 전부가 다 교회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 너 혼자만 조용히 믿어." "예배는 드려. 하지만 너의 소중한 시간과 물질, 너의 삶의 주인 자리는 세상에 두고 몸만 가."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이 교묘한 타협에 속아 넘어가 '절반의 헌신'에 머무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예배가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3. 타협을 거부하는 담대한 믿음: 온전한 헌신 (25-26, 28-29절)
3. 타협을 거부하는 담대한 믿음: 온전한 헌신 (25-26, 28-29절)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의 집요한 타협의 유혹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모세는 이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며 참된 예배자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25절과 26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바로의 그럴듯한 제안을 일언지하에 잘라냅니다.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단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습니다!"
"단 한 마리의 발굽도 남길 수 없다"는 모세의 선포는 매우 강렬하고 단호합니다. 모세는 왜 이토록 타협 없이 강경하게 나섰을까요? 26절 하반절에 그 분명한 이유가 나옵니다.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주도권은 애굽 왕 바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배의 방법도, 제물의 크기와 종류도 세상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무엇을 원하실지 모르기에, 나의 모든 삶, 나의 온 가족, 나의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남김없이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배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타협안마저 단호히 거절당하자, 본색을 드러낸 바로는 권력의 칼을 빼들고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28절입니다.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애굽 왕의 섬뜩한 살해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29절에서 모세는 조금도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고 더욱 담대하게 맞섭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모세의 이 놀라운 담대함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입니까? 그는 지난 아홉 번의 끔찍한 재앙을 거쳐오면서, 세상의 그 어떤 거대한 권력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자는, 세상의 어떠한 위협과 달콤한 타협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론 및 적용]
[결론 및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캄캄한 어둠이 짙게 깔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와 속삭입니다. "적당히 타협하자. 애굽 땅 안에서, 세상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굳이 자녀들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혼자서, 그리고 너의 가장 소중한 물질은 세상에 남겨두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유혹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혹시 나의 신앙생활 한가운데에, 사탄이 제시하는 이 교묘한 타협안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지만, 나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나의 물질은 여전히 애굽이라는 세상에 단단히 묶어둔 채, '절반의 헌신'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참된 예배는 내 삶에서 남는 자투리 시간이나 잉여 물질을 하나님께 적당히 떼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온전히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됩바라건대, 오늘 선포된 모세의 외침처럼 "단 한 마리의 가축도 세상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영적 결단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끊임없는 타협안과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가 됩시다. 그리하여 참된 빛이시며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의지하며, 우리 삶 전체를 기꺼이 내어드려, 온전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탄이 들이미는 교묘한 속삭임, 즉 '세상을 향해 적당히 타협하라', '가족을 버려두고 나 홀로 믿어라', '마음과 물질은 세상에 남겨두라'는 달콤한 유혹에 속지 않도록 우리의 영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모세처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깨달아, 세상의 권력과 위협 앞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남는 것을 드리는 적당한 신앙이 아니라, '단 한 마리의 가축도 남김없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기꺼이 올려드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온 가족과 삶 전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하시는 온전한 예배가 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