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요한계시록 7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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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 시리즈 9번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7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교회인데, 안타깝게도 이 교회에는 칭찬은 없고 책망과 권면만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이 교회를 미워하시고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어도, 예수님은 이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연약함을 일깨워주시고, 다시 돌이켜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셔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진단과 처방, 그리고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오늘 우리들의 모습도 진단하고 주님의 처방을 받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새로워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오늘 귀를 기울이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진단은 그들이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물이 부족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두 도시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습니다. 하나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온천물, 뜨거운 물을 수로를 통해 공급받았고, 다른 하나는 골로새에서 차가운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물이 라오디게아에 이르면 온천물의 뜨거움은 식어서 미지근해지고, 골로새의 찬물도 차갑지 않고 미지근하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요함과 번영을 자랑했지만, 물 만큼은 자랑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라오디게아의 자랑할 것 없는 미지근한 물과 같이 교회가 그 지경에 처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전통적으로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 즉 뜨거움을 상실했다는 것과 하나님에 대한 냉담함, 즉 차가움도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주를 섬기든지,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냉담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열정적으로 주를 섬기라는 권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물도 그 용도가 있고, 차가운 물도 그 용도가 있습니다. 뜨거운 물은 몸을 풀어주고 마음에 안정을 줍니다. 반면에 차가운 물은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갈증을 해소해줍니다. 뜨거운 물이든 차가운 물이든 그 쓸모가 있는데 반해, 미지근한 물은 그와 같은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적용해 볼 때에 그들이 물이긴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대하여,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아무런 유익도 나누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져서 자기들만의 게토, 자기들만의 성을 만들라고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비추고 증거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세상과 아무런 상관 없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교회가 있으되 아무도 그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교회를 통해서 아무런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면, 또 교회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런 교회는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예수도 믿고 예배도 드리면서 교회를 이루고 있었지만 세상 속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복음 전파와 사랑의 섬김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이어서 나옵니다.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역 특산물을 가지고 장사를 하여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지난 주 빌라델비아 교회를 설교하면서 말씀드렸던 대지진이 라오디게아 지역도 강타하였습니다. 다른 도시들은 로마 황제의 지원을 받아 도시를 재건했지만, 부유했던 라오디게아는 로마 황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기들의 재산으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였습니다.
그 부요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죽음도 염려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도 잘 살고 죽어서도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인생을 즐기고 평안히 사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정말 교회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눈이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 멀었고 벌거벗었다.”
예수님 앞에서 그들의 삶은 그와 같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도 잘하지만, 신앙생활이 자기만족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영향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 없이도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있었고 예배도 드렸고 신앙생활도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가난이 아닙니다. 핍박도 아닙니다. 예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기는 상태가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단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처방을 내리십니다.

먼저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주님으로부터 금, 흰옷, 안약을 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재물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검은색 양모와 안약을 특산물로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영적인 부요함에는 많이 뒤처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참된 부요함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으라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께 오라는 초청입니다.
또한 주님이 주시는 흰옷, 곧 그리스도의 의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안약으로 영의 눈을 떠서, 물질과 세속에 가려졌던 눈을 다시 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주님이 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돈을 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참된 영적 부요함은 인간의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는 영의 눈이 밝아집니다. 물질에 메이거나 세속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회복된 자들은 자신의 죄악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곤고함을 알게 되므로 그 심령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게 됩니다. 이제는 자기 혼자,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던 삶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그와 동행하면서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외면해도, 주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다시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삶은 14절에서 밝혀놓으셨습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는 표현은 진리의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또한 그 진리의 증인이셨습니다. 증인은 자신이 가진 진리를 혼자 묵상하고 혼자 간직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그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 다가가서 그 진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만족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그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의 근본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한 바대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따르는 교회는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족함 없는 부유한 삶 속에서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 속에서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문 밖에 서서 다시 두드리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주님과 교제하며 살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개인의 만족만을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진리의 증인이 되고 사랑의 통로가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을 굳게 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세상 속에 진리의 증인이요 사랑의 도구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가난이 아니라, 예수님 없이도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주님을 붙든 이야기 이전에, 문 밖에서 끝까지 우리를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문을 여십시오. 주님과 함께 먹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교회만이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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