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주기도문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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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주기도문_06_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2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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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I. 들어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우리가 앞장에서 살펴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도입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된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가이 세상에서 온전히 완성될 때까지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은 임하지 않은 나라 사이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그래서이시기 동안에는 여전히 세상 나라와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나라를 도입하실 때까지이 세상에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세계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00:5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입하시고 도입된 그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나라가 임하 임하시오며라는 기도의 의미를 제대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야 합니다.
II. 복음과 하나님 나라
II. 복음과 하나님 나라
복음은 깊은 소식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얼마나 밀첩한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도입되는 하나님의 나라는이 세상 왕국과 같지 않습니다.
(01:54)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는 다른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신 것과 그분의 대속 죽음을 통해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는 깊은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이제껏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온 죄에 대한 회개와 구속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오심과 함께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대적자 마귀는 이미 패배의 기세게 영역하였고 그 무엇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이 세상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02:47)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으니 임하였음이니라. 그렇다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없었던 것일까요?
A. 복음과 하나님의 경륜
A. 복음과 하나님의 경륜
인류의 첫 조상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비록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였으나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폐기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을 사용하셔서 창조의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당신을 아는 지식과 은혜를이 세상에 가득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03:46) 이처럼 복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류는 구약과 신약 시대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위에
1. 구약의 경륜: 율법에서 복음으로
1. 구약의 경륜: 율법에서 복음으로
첫째로 구약의 경륜은 율법에서 복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복음이 있었고 율법조차도 복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 히브리서 10장 1절. 그러나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경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다음 율법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이 율법의 계명들을 충분히 지킬 것이라 기대하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04:47) 구원받은들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표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스라 들서 그것들을 구원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실제로 죄인인 그들이 율법의 명대로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계명대로 살아가고자 했으면 했을수록 자신들이 결코 그 요구를 따라 살 수 없는 존재들임을 깨달아 정죄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2장 12절. 그러나 율법을 올바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갈망하는 자들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율법을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께서이 세상을 창조하신 뜻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구속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05:47) 그리고 그것은 메시아에 대한 대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경류는 율법을 통하여 복음을 알게 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2. 신약의 경륜: 복음에서 율법으로
2. 신약의 경륜: 복음에서 율법으로
둘째로 신약의 경륜은 복음에서 율법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7절. 신약의 경륜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복음으로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신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누구나 볼 수 없었 없습니다.
(06:3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맺으신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을들이 드러났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했지만 그것은 불안전한 인간과 사물들을 통한 간접적인 어 나타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영체를 가져 사람의 목으로 나타나서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써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이 그분의 성품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불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정의를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를 비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를 애로운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편 우리 인간에게는 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또 한편으로는 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07:3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쌍한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신지를 보여 주셨고 십자가에서 인류를 대신에 죽으심으로써 주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율법을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사랑에 완성됩니다. 로마서 13장 8절 요한일서 4장 21절.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삶의 좌표입니다. 신약에서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인간의 의무를 읽깨워 줍니다.
(08:20)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갑없이 거져 주시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서 일체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인지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서 안에 남기신 그리스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교훈은 복음의 빛 아래에서 구하게 율법을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분은 율법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세상은 구약의 율법과 본질적으로 가르침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가르침입니다.
(09:11)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당신과 함께 임하셨으니이 아직 그 나라가 임하지 않는 구약의 시대의 윤리를 새롭게 해석하여 구원받은 우리에게 삶의 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해 복음을 보이시고 신약에서는 복음을 통해 율법을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이 세상 나라의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B.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B.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과 그들의 대적인 이방 나라들의 대조가 나타난다면 신약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상 나라 사이의 대립이 나타납니다.
(10:13) 그렇다면 우리가 신약 성경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대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다른 사람.
1. 다른 사람.
첫째로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상 나라의 사람은 세상 사람이고 하나님 나라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통영되는 일반적인 국가의 개념과 다릅니다. 세상 나라의 국경서는 물리적인 경계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국경서는 영적인 구별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 수많은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56) 눈에 보이는 가시적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도 전혀 하나님 나라에 백성답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물리적으로만 교회에 속해 있을뿐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함에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을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물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을 갈리라.
(11:47) 마태복음 13장 47절에서 50절. 어부들이 넓게 그물을 쳐서 낚 수많은 물고기들 물고기들 중에는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먹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부는 일단 그물을 건져 모든 고기를 배갑판 위에 쏟아 놓습니다. 그러고는 쓸모없는 물고기들을 골라내어 버립니다.이 비유에서 넓게친 그물이 가시적 교회라면 거기에 낚힌 고기는 외관적으로 교회에 출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참 신자인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추수한 곡식들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시듯이 심판을 통하여 그 그들을 가르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0절.
(12:38) 교회에 출석 출석한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아니며 세상과 담을 싼다고 세상과 담을 산 산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도 나라에도 속하고 세상 나라에도 속한 사람은 결코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 영혼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변화된 이들입니다. 예전에는 자기만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는 영혼과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마치 여름철에 악취가 나도록 썩은 생선이 물속을 헤엄칠 수 있도록 살아난 것과 같은 변화가 영혼과 마음 안에서 일어난 사람입니다.
(13:28) 구원을 받기 전까지 우리는 영혼과 마음에 불구였습니다. 선한 것을 선하게 여길 수 없었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없었으며 참으로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는 대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망가진 우리에게 진리를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받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2. 다른 질서
2. 다른 질서
둘째로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서로 다른 질서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고 영적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높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반드시 높지 않습니다.
(14:14) 왜냐하면 그 나라에서는 다른 질서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존재의 질서, 가치의 질서를 따라서 다른 사랑의 질서가 있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 나라에서는 모두가 왕이 되고자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주인입니다. 한 나라를 왕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소위 아산체 전제 국가는 그나라 최고의 권력자의 의지가 국가의 질서를 자는 중심이었습니다. 그것은 법과 도덕으로 구체화되어 백성들이 따라야 할 질서로 확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자기가 수립한 질서에 거스리는 자를 처벌하였고 자기의 나라의 질서를 더 넓은 세상으로 걱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15:06) 물론 이제는 왕이나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이 군주의 왕이라고 해도 형식성으로 최고 지도자이자 실제적으로 국권재민주의가 부편화되었습니다. 형식성의 국가 정체를 불분하고 실제적으로 국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 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한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국시로 보박 표방하고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서수 권력자들이 독재 정치와 부정 부패를 일삼는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파괴된 것입니다. 부패 부정 부패를 일삼는다면 민주주의 이상은 파괴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정치의 모수는 세상 나라가 모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는 다른 질서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6:03) 세상 나라는 본질적으로 각 사람의 자신을 온 우주와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나라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치열하게 서로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은 바로 돈이나 지식, 권력 등과 같은이 세상의 자원들을 더 많이 획득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질서를이 세상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나라에서 노예 제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돈과 권력으로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여 노예보다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의식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으로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은 공중의 권사를 잡은 마귀입니다.
(16:51)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신 나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세우신 질서에 순종합니다. 물론 마음이 부패하여 은혜에서 미끄러진 자들이 간혹 자기 사랑의 질서를 세워 하나님 사랑의 질서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에 한구적으로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는 사실상 변화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면 곧바로 깨뜨려져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사랑의 질서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질서가 중심이 됩니다.
(17:43)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여기저기에서 그릇을 자기 사랑의 질서로 말미암은 반역들이 나타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수단인 말씀과 은혜는 저들을 회개시키고 돌이키게 해줍니다. 시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그릇된 질서들을 굴복시키고 복종시켜 궁극적으로 그 나라의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합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담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인간의 다양한 자기 사랑이 끊임없이 확정되어 가면 서로 충돌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장된 나라로서 그 나라에 속한 이들은 모두 그 사랑에 부합하게 되려고 하는 나라입니다. 예.
(18:36)
3. 다른 동기.
3. 다른 동기.
셋째로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다른 동기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의 것을 찾는 자들이 아니라 위의 것을 사모하는 자들에 의하여 추구되는 나라입니다.로마서 3장 1절.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동기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는 반드시 선행이 뒤따르는데이 선행은 세상 나라에 속한 인도주의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선행이 아닙니다.
a 선행의 다른 동기
a 선행의 다른 동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아들이고 그들 모두가 그 성품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데서 비롯됩니다.
(19:27) 고린도서 7장 1절. 세상 나라 사람들의 최고의 삶의 가치는 개인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최고의 삶의 가치는 거룩함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함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5장 1절. 세상 나라의 선행은 선을 행한 사람을 빛나게 만들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선행은 그렇게 살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 나라 성들의 선행은이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선행과 다음지에서 원리적으로 구분니다. 신 순종 목적이 그것들 그것들입니다.
(20:23)
1) 하나님을 사랑함
1) 하나님을 사랑함
첫째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선행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 24절. 세상 나라의 백성들의 선행의 동기는 다양합니다. 본성적으로 양심의 판단을 따르기도 하고 현재와 미래의 자기 이익 때문에 선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착한 행실은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합치를 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에게 자녀의 행복이 자신의복인 것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하나님 나라의 성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실을 하려고 합니다.
(21:20)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선행입니다.
2) 하나님을 믿음.
2) 하나님을 믿음.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선행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 히브리서 11장 5절.이 이 신앙은 곧 하나님께 대한 의정과 신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되신 나를 믿고 말씀되신 세상에 신뢰한 적이 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결말은 고통과 비참함 멸망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모든 분행의 궁극제는 온인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자신의 판단을 믿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22:15) 때로는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어도 그분의 인격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신자의 선행은 바로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실제적인 삶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 명령들을 준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온 선행은 바로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착한 행실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의 결과이며 긍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베드로전서 2장 12절
3) 하나님께 순종함
3) 하나님께 순종함
셋째로 하나님의 자녀의 선행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6절 베드로전서 1장 22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선행은 항상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향한 동정심이나 정의감 것들이 선행의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한 동기에서 행한 외적인 선행들이 때론는 하나님의 율법에 부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순종에서 비롯되는 선행이 아닙니다.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나라에서 그분의 신적 통치를 받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백성들을 말씀과 은혜로 통치하십니다.
(23:55)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인생관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보다는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선을 행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게 여기십니다. 여깁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선한 행실을 힘씁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기에 그것이 선행의 동기가 됩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넷째로 하나님께 자녀들의 선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베드로전서 2장 12절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선을 행하는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 나라의 백성들은 선은 자기의 영광과 넓은 의미에서 자기 만족의 원리에서 비롯됩니다.
(24:48)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이 세상에서 자신의 선한 행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종교하게 여김을 받기를 바라는 갈망에서 선을 행합니다.이 선액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어 사랑의 경향성에서 비롯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경관은 별도의 인생 어 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떠난 인생관은 그 자체가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가치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 자녀들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을 의지 의지를 깨닫고 그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실천해드리려는 사람들입니다.
(25:45) 그들의 착한 행실은 바로 거기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그 신뢰를 어 여러 곳에서 방견할 수 있습니다.
b 사랑으로 율법을 이룸
b 사랑으로 율법을 이룸
종교 개혁은 로마 카톨릭 오류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참된 기독교 신앙을 찾고자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은 인간의 구원이 사람의 공로로 획득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분명 성경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오직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를 발견하고 우리의 구원은 어떠한 선행이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은혜를 주심으로써 받는 것이라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26:40) 이러한 교리는 선행을 줄어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더욱 감사함으로 선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구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종이 어떻게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인의 집에 충성스러운 종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주인을 위해 6년을 일한 종은 7년째 되는 해에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이 자유인이 되기를 스스로 거절하고 주인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주인은 그를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에 종의 귀를 대고 손곳으로 뚫습니다.
(27:24) 출애굽기 21장 5절에서 6절. 그러고는 종으로서 종신토록 주인의 집에 충성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종은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집안 식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고 자자원하여 영원히 그 집 안에서 종으로 함께 살아가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주인이 어찌 종으로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비록 그는 신분에 있어서는 노예임에 틀림 없으나 실제로는 그 주인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자원하여 그 집에 영원한 종이 된 사람과 몸값에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그 집의 종이 된 사람 중 누가 더 헌신적으로 주인을 위해 봉사할까요? 두말할 필요 없이 전자의 사람일 것입니다.
(28:16)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얻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인간의 선행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헌신적으로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의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제 이러한 진리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차례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교회는 이러한 종교 개혁의 정신을 매우 세속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강단에서 윤리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면 저 설교자는 율법 주의자야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모두 율법 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율법 주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너무나 감격하기 때문에 스스로 율법대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9:13)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모든 사람들은 율법에 계시된 생활의 교을 충실히 따르던 사람이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상 8장 58절 시편 18편 22절 도욱이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지 못한 현실로 인하여 고통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편 119편 136절 이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에는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했던 가장 높은 이상의 새로운 율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평안 서로 사랑하라.
(30:06)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복음과 성령을 통하여 바로이 새로운 율법에 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성 반대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거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이유의 삶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구원을 방종한 삶의 면허증처럼 여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반면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입니다. 신학교의 체플 시간 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매일드리는 예배 시간에는 투박하지만 복음이 선포되었고 설교가 끝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예배당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수업 시작 전까지 열렬하게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31:04) 어느 날 저는 직장 업무와 관련하여 한 대학에서 강의할 일정이 있어서 학교에 사진길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제 얼급이 10만 원 정도였는데 그 카메라의 가격이 30만 30만 원이었으니 그의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그날도 체플 시간에 은혜를 많이 받고 강의실로 돌아왔는데 생각해 보니 사진길을 체플실에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확히 7분 만에 다시 체플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전기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학생들 중에 체풀이 끝나고 기다가 그것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외부에서 도둑이 들어와서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말입니다.
(31:51) 저는 그때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는 것과 윤리적인 생활이 별로 상관이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이 부끄러운 것은 이것이 저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 신학교를 방문했을 때들은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여러 나라 학생들이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국 학생들이 기도도 제일 많이 하고 공부도 가장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정직한 행동도 한국 학생들이 제일 많이 합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한국 학생들이 실제로는 두시간 정도 일하고 상부에는 네시간이라고 적고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32:39) 이것은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말씀과 은혜의 통치를 받는 삶이 아닙니다.
c 미덕의 삶을 살아감
c 미덕의 삶을 살아감
덕이란 타자와 관계를 맺는 영혼의 힘입니다. 덕을 가르치는 라틴어, 미리투스는 힘, 남자 등의 단어와 통합에 통하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오 단어가 아레테인데이는 탁월함, 좋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덕의 일차적 의미는 힘입니다. 아 비지성적 사물의 덕은 단지 탁월함이나 좋은 효능이지만 인간과 같은 지성적 피조물의 덕은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영혼의 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것을 선악의 판단과 관련 지을 때 미덕 혹은 악덕이라고 부릅니다.
(33:35)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탐구하고 은혜를 받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뿐 아니라 그 은혜로서 말씀을 따라 덕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이를 위하여 때로는 눈앞에 이익을 포기하고 피할 수 있는 고통도 결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세상에 있어도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치가 하늘에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34:25)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믿고 있고 어떤 은혜를 받고 있는지는 사람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은 사람들 앞에 볼 수 있도록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삶을 위해 공을 드여야 합니다. 그것이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것 자체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통치를 충분히 받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혹시 기도를 열심히 하고 뜨거운 은혜를 뜨겁게 은혜를 받으면 선행을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선을 선한 일을 향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35:13)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선한 의지의 지적 행사입니다. 네덜란드의 개혁 신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다시 책에서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은 영혼 구원의 좁은 영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 모두를 위해 각자의 재능과 소명에 따라 인생의 전 활동 영역에서 동등한 열심과 능력을 다해 표현되어야 한다. 혹시 열심히 기도를 해도 마치 허공을 치는 것 같고 오랫톡 예배를 드려도 나무의 집 잔치에 온 것 같습니까? 성경을 공부해도 역사 책 읽는 것과 같은 느낌 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까? 어쩌면 지금 여러분에게는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진지한 성과 개혁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36:12)
C 구속과 하나님의 통치
C 구속과 하나님의 통치
이어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심에 있어서 죄인에 대한 구속과 하나님의 통치의 관계입니다. 앞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착한 행실은 변화된 영혼의 작용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속은 죄와 죄의 결과인 비참과 율법의 저주로부터 인간이 구출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기초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 인간의 이성의 논리를 초월하는 복음적 사실들을 믿게 하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마음의 얽매인 속들을 주십니다.
(37:06) 이로 인하여 우리는 신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상태에 있어서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0절, 에베소서 2장 3절, 로마서 8장 2절.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착한 행실은 단지 인간 본성의 도덕지로 길어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을 한 사람의 영혼과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중생 곧 거듭남입니다. 중생이 영혼의 거듭남이라면 회심은 중생이 인간의 의식 속에서 작용하는 첫 번째 움직임입니다. 곧 죄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1절.
(38:08) 중생은 하나님의 동력적 사역이지만 회심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에 인간이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협력적 사역입니다. 바로 이러한 중생과 회심을 통하여 한 사람 안에 수립되어 있던 자기를 임금삼은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노인이 젊은이로 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니고데모가 반문하였던 것처럼 모태로 들어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4절.이는 이는 오히려 중생한 신자의 영혼과 번성이 새롭게 되어서 예전에는 살지 않았던 방식의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39:02) 고린도후서 5장 17절.뿐만 뿐만 아니라 중생과 회심은 죽어 있던 영혼의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하여서 영혼으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 역할을 잘할 수 있게 합니다. 그것은 죽어 있던 영혼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에 대하여 죽었다는 표현이 쓰인 것을 볼 때 육체에 대하여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생명의 기능 곧 자기 반응과 신진 대사의 종식을 의미하지만 영혼의 죽음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39:57) 그래서 성경은 죽은 영혼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죽은 행실이 있다고 확증합니다. 곧 죽은 영혼으로 저지르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실들입니다. 히브리서 6장 1절, 9장 14절. 흔히들 사람에게는 평소 없는 큰 힘이 솟아날 때가 두 번 있다고 합니다. 바로 누군가를 미워할 때와 사랑할 때입니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원한 맺친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면 어이가 앙당물어지고 힘이 솟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다짐까지 합니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어. 그 인간에게 폭수하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어. 이것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힘입니다.
(40:49) 반면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은혜로 감화를 주시면 놀랍게도 용서하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이제까지 나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복음 진리에 눈을 뜨게 되자 이웃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의지가 솟아오릅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중생한 우리의 영혼에 공급되고 있는 결과입니다. 고린도서 4장 12절.이 이 모든 은혜로운 역사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해 주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처럼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III.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III.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통치하는 수단은 계시와 상벌입니다.
(41:46) 전자는 하나님의 지성을 보여주고 후자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통하여이 세계를 향한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이것들을 판단을 기준론을 삼아 그 뜻에 복종하고 불복정하는 사람들을 상극과 형벌로서 다스리십니다. 이사야 62장 11절.이는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보여 주신 그 뜻을 친히 실행하실 능력과 의지가 있으시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살게 하시려고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율법과 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을 율법으로 통치하시고 어 신자들은 은혜로서 통치하십니다.
(42:38) 이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다음 상황을 숙고할 때 분명해집니다.
A 하나님의 통치: 율법과 은혜
A 하나님의 통치: 율법과 은혜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두 곳에 새기셨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돌판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 하나님의 계시를 아는 자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계시를 모른 자들은 마음의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 판단을 받게 하십니다. 로마서 2장 12절에서 15절이 세상 불시로 많아도 세상 어이 아주 법 없는 세상이 되지 아니함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새기신 율법을 통해 통치하시기 때문이며이여 신자들이 많아도 법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은 그들이 율법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43:33) 얼마 전 시문사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여대생 두 명이 지하철에서 가방을 하나 주었습니다. 가방을 열어보니 현금 2,450만 원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잠시 황홀한 꿈을 구었습니다. 그중 하는 학생이 말했습니다. 이돈이면 우리 둘이서 온없이 세계 여행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어 정답게 그 돈가방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서 유심으로 신고로 신고하였습니다. 두 여생이 한 일은 훈훈한 믿음으로 여러 일간지 실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굶꾸는 세상 하나님의 통치에 실현된 나라는 이런 이야기가 어 신문에 나오지 않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재미있는가 하나 있는데 알렉산더 대어왕이 파죽 시세로 아프리카를 정복해 나갈 때 일입니다.
(44:27) 그날도 어김없이 한 나라를 향해진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작은 나라인지라 그 나라의 왕은 감히 싸울 엄두를 못내고 직접 나와서 알렉산더 대왕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렇게 대왕이 극진한 대적을 받으며 잠시 그 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신하가 그 나라의 왕에 이렇게 구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서로 다투고 있는 백성 둘이 급히 하소한 일이 있다며 백기를 청하 어 청하옵니다. 왕은 알렉산더 대왕에 있는 자리에서 두 사람의 자취준을 들었습니다. 사연지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땅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땅을 산 사람이 농사를 지키해서 땅을 받아가 금덩어리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45:18) 그래서 그는 그 금덩어리의 자식이 아니라며 예전 땅 주인에게 돌려 주려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땅을 판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자네에게 이미 땅을 팔았고 금덩리로 내가 알지 못하니 돌아가게. 그렇게 이쪽도 저쪽도 자기 주장에 굽히지 않자 결국 왕의 판계를 구하러 온 것입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알렉산더 태원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군대를 이끌고 땅끝까지 정복하려고 결심한 것은 위대한 헬라 말을 미개한 이방의 백성들에게 전파하여 그들을 인간답게 살도록 해몽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들의 도둑 수준을 보니 오리려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놀라서 그 나라의 왕에게 물었습니다.
(46:10) 정말 놀라운 일이네.이 나라의 백성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다투는가? 그러자 왕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왕은 이런 분쟁이 너무나 자주 있어서 판결하는데 제가 피곤합니다니다. 대왕이시여 폐아의 나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씁쓸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왕구에서 이런 경우 그 금덩어리를 서로 자기가 갖겠다고 싸우네. 이에 그 나라의 왕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와 폐하 그 나라에도 비가 내립니까? 알렉산더은 곧장 그 나라에서 군대를 철수시켜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무엇이 두 사람의 두 명의 여대성로 하였건 평소 손하던 세계 여행의 기회를 포기하고 경찰서로 가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47:06) 라틴나로 양심에 의미하는 것이 콘시엔치아는 함께라는 의미에서 코과 지식을 듣다는 시엔치아가 결합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이란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마음 안에 새겨져 있어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의식에 부착되어 있는 선악의 판단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유리학에서 양심 어 신성설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심은 인간의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뜻입니다. 인류 사회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망가졌음에도 완전히 암흑 천지와 같이 어 되지 않는 것은 사회의 법질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율법과 양심이 장용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9절. 율법과 양심은 각각 인간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범법 회견을 정죄하고 송사하는 기정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8:10) 인간들의 이렇게 율법과 양심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율법과 양심으로만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리러 인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은혜로서 통치하십니다. 신자들에게도 율법과 본성적인 양심이 영향력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로 하여금 사랑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바꾸는게 만드는 것은 율법과 양심의 송사가 아닙니다. 거룩한 은혜의 작용입니다.이를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당신의 통치에 복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이렇게 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B. 성령과 은혜의 통치.
B. 성령과 은혜의 통치.
(49:04)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 거룩한 성령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짐으로써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백성들이 되어 갑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물론 아무리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감히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았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세상에 누가 스스로를 그렇게 온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도 여전히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매일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자기 안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자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49:53) 기쁜 소식은 우리가 예전에는 사단의 권세에 억눌려 있었더라도 이제는 하나님의 큰 은혜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4절. 이것은 모두이 세상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하여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감화하여 붙들어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이 세상의 바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주에 매어 속박받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종이 종이된 자유인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호세아 11장 4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경고하던 세상 나라를 무너뜨린 승리의 사건입니다.
(50:4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큰 용처럼 의기 양하던 사단의 등뼈를 불어뜨린 사건입니다.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길이 뛰어다니며 인간들 위에 무시무시하게 굴림하던 사단이 이제는 허리가 부러져 엎드어져서 벌벌 기어다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진리와 성령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사단은 아무 분깃도 없으며 누구도 회칠 권세를 갖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단이 항복을 선언한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라고 부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를 선언하셨음을 승리하셨음을 선언하고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을 사단의 권세에서 끌어내어 빛의 나라로 들어오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51:43) 베드로전서 2장 9절 간단한 비유로 말하자면 교회는 이미 패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태각하지 않고 무지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사단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파송받은 진학꾼입니다.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되었습니다. 우리가 온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하지 않는다면 패망한 사단의 무리들은 여전히 무지하고 힘 힘없는 인간들을 지배하려고 들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는 신자인 우리 안에 있는 불순종과 죄들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힘찬 친군을 가로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소송을 하고 교회 안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52:36) 그러나 부끄러운 모습들은 하나님의 군사들의 마음 속에서조차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교회는이 어두운 세상에 빛의 열매를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모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도록 부름받은 그분의 백성들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 요한일서 4장 12절. 그러므로 교회와 교회의 지체된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를이 세상이 지상 나라에 보여주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순종하며 사는 것의 자랑스러움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크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53:31)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재산이 많거나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많이 영광을 돌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인 토머스를 파송한 교회는 당시 몇십 명의 교인이 모이는 작은 시골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섬김은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땅에 복음의 문을 여는 것도 굳게 다친 인간의 마음을 여는 것도 지상 나라의 자원이나 사랑의 말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사람들의 헌신을 사용하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그 나라를 확장해 나가시는 온동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사람 수에 달린 나라가 아닙니다.
(54:18) 각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온전히 이루어지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이 두 번째 기도 두 번째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는 정말 제대로 된 신자이자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갈망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IV 결론
IV 결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이 두 번째 간구가 진실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삶도 그 기도와 함께 초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호소합니다. 그데 여러분은이 세상에서 무의도식하는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를 포함하여 생명의 젊음 심지어 물질과 재능 그리고 권력까지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55:16)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의 영광과 그 나라의 장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는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건강, 젊음, 돈, 시간, 재능, 권력도 있는데 그것을 가진 그것을 자기 사의 질서를 확장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계획을 전적으로 거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는 한 구원 살아가는 한 구원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살아서는 결코 참된 행복이 행복에 이럴 수 없습니다.
(56:10) 만약 여러분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그 남다른 재능은 재능으로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헌신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을 아까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을 아까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이 땅에 실현하는데 온전히 사용하십시오. 땅과 하늘에서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단지 목숨만 가신이 붙어 있다면 그 목숨 그대로 그 목숨 그대로 기도는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돈이나 재능이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57:01)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는 지금 자신이 발디고서 있는 땅에 북한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다른 곳을 어떻게 다른 곳은 어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만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통치가 온 땅에 온전히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끝날까지 땅 끝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뿐 아니라 나의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온 땅과 나라 위에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통치는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보람이어야 합니다.
(57:51) 왜냐면 그러한 세상 안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우리나라 어느 한 곳에 묶여 있지만 저 멀리 캄보디아, 중국, 태국, 필리핀, 카자이스탄, 레바론, 이란, 잠비아, 스라리온, 잔바 잠바 등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는 우리의 가슴은 벅자르고 우리의 심장은 기쁨으로 고동질 것입니다. 우리 같은 미천한 사람, 우리 같은 미천한 인간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언제나 삶의 보람을 하나님의 나라에 시현해 두십시오.
(58:43) 날마다 몇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백성들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시어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 아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2 한 눈에 보는 6장
I 들어가는 말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당신의 나라를 도입하시고 확장하시는 방법이다.
II.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복음을 믿어야 한다.
A 복음과 하나님의 경륜.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약속하셨다. 이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주어졌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있었으나 복음에 관한 하나님의 경는 구약과 신약시대 사이에 차이가 있다.
1.구약의 경륜: 율법에서 복음으로
율법에서 구약의 은법을 통해 복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었다. 법을 바용는 이들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갈망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대망으로 이어졌다.
2.신약의 경륜 : 복음에서 율법으로
신약의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복음으로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랑으로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었다.이 두 가지 경류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백성들 사이에 구별을 보여준다.
B.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가 대조된다면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상 나라가 대립한다.
1 다른 사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영혼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변화된 이들이다.
2 다른 질서
세상라는 사람이 자신을 온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순종한다.
3 다른 동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기는 하나님 사랑이다. 그들의 삶에는 반드시 선행이 뒤르는데 이는 세상 나라에 속한 인도주의자들의 도덕적 선행이 아니다.
a 선행의 다른 동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들의 선행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어울리는 삶을 살려서 비롯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선행은네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1) 하나님을 사랑함.
2) 하나님을 믿음.
3) 하나님께 순종함
4) 하나님께 영광 돌림.
b 사랑으로 율법을 이룸
이신칭의 교리를 발견한 이들은 인간의 선행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헌신적으로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다.
신약 시대에는 구약이 율법을 통해 성취하려던 가장 높은 이상이 새로운 율법으로 제시되었다. 사랑으로 율법을 이루는 것이다.
c 미덕의 삶을 살아감
덕이란 타자 관계를 맺는 영혼의 힘이다. 선악의 판단과 관련해 미덕 혹은 악덕이라고 부르며 그 판기은 세상과 인간을 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하며 살기를 하신다.
C 구속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이어가신다죽어 있던 영혼이 중생과 회심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아 본래 자기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간다.
3.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는 시와 상벌로서이 세상을 통치하신다. 또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살려고 법과 은혜를 사용하신다.
A. 하나님의 통치: 율법과 은혜
하나님께서는 세의 돌과 인간의 마음에 율법을 하나님의 시를 아는 자들은 세율법을 따라서 모르는 자들은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판을 받게 하신다.
사랑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바꾸게 하는 것은 율법과 양심의 송사가 아니라 거룩한 은혜의 작용이다.
B. 성령과 은혜의 통치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과 성의 은혜로는 점 하나님의 상을 복하며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다.
교회는 사단이 항복을 선언한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라고 부름을 받은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들의 헌신을 사용하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그 나라를 확장해 가는 원동력이다.
IV. 결론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언제나 삶의 보람을 하나님 나라의 시련에 두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