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16

26년새벽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찬양(289,292)

1.주일예배를 위하여
2. 환우들을 위하여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날 이른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주의 성회에 불러모아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찬양하게 하신 이 모든게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 주일예배를 위해 나아온 우리의 상한 심령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때가 탄 마음들 세상의 일들에 굴복했던 이들을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안에서 정결하게 하시어 다시한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를 위해 힘쓰는 모든 심령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봉사로 섬기는 손길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의 팔을 얹어주시고
섬김의 의미를 다시한번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달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오늘은 어비이 주일 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을 기억하며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랑의 가정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의 말을 따르는 명철을 부어주시고 자식들에게 그 지혜를 전할 수 있는 주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담임목사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옷을 입히시어 그 입술이 불같이 타오르게 하시고 모든 말씀을 듣는 주의 성도들의 상한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되고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 지금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저희 교회 환우들을 주님의 품에 안겨드립니다.
항암치료중에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 주님께서 한분한분 만나시고 동행하여주셔서 그들의 모든 치유과정이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시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낙심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어 이 자녀들의 질병속에서 주여 건져주시옵소서 치유의 날개를 피시어 그들에게 덮어주시고 함께해주셔서 이제 다시 나아와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치유하셨노라 간증하는 모든 자녀들과 성도들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모든 기도제목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장좋은것으로 우리에게 행하실줄 믿습니다.
사랑으로 십자가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및 설교

Nahum 3:15–19 NKRV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서론]

이른 새벽, 피곤한 육신을 깨워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 하루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잔고와 인맥과 같은 '숫자'를 끝없이 늘려가야만 삶이 안전하다고 속삭이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통장의 숫자가 조금만 줄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곁에 남은 사람의 수가 줄 때마다 인생이 흔들리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오늘 묵상할 나훔서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그토록 의지하는 그 '숫자'들의 정체를 뼈아프게 폭로합니다. 본문을 따라가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경청해 보겠습니다.

[본문 1: 나훔 3:15-17]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늣이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늣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늣이 날개를 펴서 날아감 같고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본문 주해와 삶의 조명

앗수르 그 거대한 제국에는 제국의 근간이 되었던 무수한 상인들이 셀 수 없는 부를 쌓았고, 셀 수 없는 군대를 길러냈습니다.
그 엄청난 '숫자'가 어떤 공격도 막아낼 영원한 숫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나훔선지자는 그 헛된 믿음을 향해 차가운 비유를 던집니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나훔 3:15).
추울 때 메뚜기 떼는 체온 유지를 위해 성벽이나 울타리에 새까맣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성벽이 겹겹이 덧대어진 듯 단단한 방어막처럼 보입니다.
니느웨의 권력자들은 수만 명의 상인과 군대가 빈틈없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며 한없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하죠? "해가 뜨면 날아감 같으니"(나훔 3:17).
해가 뜨고 기온이 오르면 메뚜기 떼는 미련 없이 날개를 펴고 들판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들은 성벽을 지키려 그곳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밤에 추위를 피하고 이익을 얻으려 잠시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곳에 더이상 이익이 없을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뜨거운 해가 떠오르는 순간, 니느웨의 부와 동맹은 조건이 좋을 때만 머물던 무리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젊은 성도님들은 밀려나지 않으려 통장과 성적표의 숫자에 울고 웃습니다. 어르신들은 자녀의 수와 곁에 남은 사람의 숫자에 기대어 노년의 평안을 얻고자 하십니다.
우리 모두 내 삶의 울타리에 새까맣게 붙은 메뚜기 떼를 보며 스스로 안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위기의 아침이 밝아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 우리는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숫자는 고난의 아침에 메뚜기 떼처럼 날아가 버리는 헛된 안도감일 뿐입니다.

[본문 2: 나훔 3:18-19]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향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본문 주해와 삶의 조명

메뚜기 떼가 모두 날아간 후, 텅 빈 니느웨에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나훔 3:18).
여기서 자고 쉰다는 것은 죽음의 잠을 의미합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백성을 지킬 지도자들은 모두 숨을 거두었고, 길 잃은 백성들은 흩어졌으나 그들을 다시 모아줄 이는 세상 천지에 없습니다.
선지자는 절망적 선고를 내립니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나훔 3:19).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심판앞에, 인간의 수단으로는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겁니다.
더 참담한 것은 주변의 반응입니다.
한 제국이 무너져 피눈물을 흘릴 때, 아무도 슬퍼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듣는 자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호합니다. 니느웨는 평생 남을 짓밟고 착취하며 자기 숫자만 불려온 포악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경외함 없이 오직 탐욕으로 쌓아 올린 인생의 끝은, 아무도 눈물 흘려주지 않는 뼈저린 고독뿐이라는 무서운 영적 현실을 봅니다.
이 선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오직 내 주머니의 숫자와 이름값을 높이는 일에만 인생을 허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피땀 흘려 쌓은 세상의 업적은, 영원한 죽음의 잠에 빠진 영혼의 상처를 단 1초도 싸매어 줄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훔서의 결론: 심판 속에서 피어나는 위로]

이제 우리는 나훔서 전체를 아우르는 대단원의 결론 앞에 섰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은 단순한 옛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힘과 숫자를 믿고 교만하게 살아가는 모든 세력을 향한 흔들림 없는 선고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회개를 외쳤을 때 니느웨는 통회했고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여 년 후 그들은 다시 잔인한 본성으로 돌아가 약한 나라들을 짓밟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자신들의 위대함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오랜 인내는 끝났고 공의의 심판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한번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심판의 책을 기록한 선지자의 이름, '나훔'의 뜻이 바로 '위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두려운 심판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까?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앗수르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찾아보고 찾아보고 또 찾아보았고, 계속해서 하나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니느웨가 멸망하는것 악한 세력이 망하는 것 그 멸망의 모습들이 두려울 정도로 생생하게 나타나고 실행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뜻은 위로 입니다. 왜냐하면
악한 세력을 꺾으시는 그 심판의 이면에,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켜내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에게는 두려움이지요. 모든 선지의 말씀들, 계시의 말씀들은 하나같이 그러합니다.
그곳에는 환란이 있고 박해가 있고 멸망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그 모든 고통과 파괴 속에서 우리가 찾아낼 것 붙잡을 것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흔히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의 편에 서주세요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편에 섰을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을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적들을 목격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맹렬함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보혈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두려워 합니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종말이 두려운 것이 었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기쁨은 예수그리드소의 재림이 아니었습니까?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헤어질때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가 선지의 말씀을 가질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위로를 느끼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역사하심을 온전히 느끼길 원합니다.
이 인사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이 고요한 새벽, 나훔서의 말씀을 통해 헛된 것을 붙잡고 있던 우리의 손을 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해가 뜨면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릴 세상의 메뚜기 떼를 바라보며 거짓된 평안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거대한 권세가 무너지는 두려운 심판의 말씀 속에서, 도리어 자기 백성을 끝까지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맹렬한 사랑을 마주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구하기보다, 우리가 먼저 굳건히 하나님 편에 서서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의 숫자가 흔들리는 것에 마음 졸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심판 너머의 참된 위로가 되시며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담대히 걷게 하옵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 벅찬 인사가 오늘 우리의 진솔한 고백이 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기쁨과 소망으로 하루를 채우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