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십니다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낙원교회 금요기도회
낙원교회 금요기도회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속담 중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아는가? 계란을 바위에 던지면 무엇이 깨지는가? 당연히 계란은 깨지고 바위는 멀쩡하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거나 너무 강한 상대여서 맞서 싸워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최약팀과 최강팀이 만나 빅매치될 때도 최약팀이 승리하게 될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설하기도 한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결국 누가 이기는가? 다윗이 물맷돌로 정확히 골리앗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려서 쓰러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불가능에 부딪힌다. 왜 불가능한 일에 부딪히는가? 당연히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쉽게 실패하기 쉽상이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도전조차도 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역사를 보게 될 때, 지금 우리가 읽은 이사야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강대국이었겠는가? 아니면 약소국가였겠는가? 당연히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작고 약한 나라였다. 다윗과 솔로몬 때만 강대국이었던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지나오고 단 한번도 이스라엘은 강력했던 적이 없었다. 늘 주변에 강력한 국가의 공격에 긴장상태에 있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의 상태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사야는 성에 있는 백성들은 모두 의로웠다. 그리고 영원한 땅을 가질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의 규모보다 상상 이상으로 어울리지 않게 커질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옳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신다. 이사야 1장에서부터 하나님은 공의가 예루살렘의 특징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더 나아가 공의는 메시아 왕국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한다. 공의는 거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사용된다. 그러나 이사야서에서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우상숭배로 죄악 투성이였던 상태였기에 백성들은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들도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상태에 처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앞의 장들에서 그 정체를 여호와의 종/메시아라고 밝힌 하나님의 팔을 드러내셨고 하나님의 백성을 돕기 위해 그들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노력의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공의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든 사건들이 믿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노력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공의이지만, 하나님은 그 수준에만 멈추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신다. 삶으로 실천하는 의를 요구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형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벌을 받을까 두려울 때가 있다. 뭔가 하나님께 크게 혼날까봐 회개하지 않는 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형벌이 있는 것이다. 진짜 두려워 해야할 것은 형벌이 아니다. 로마서에서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너무 많이 지었음에도 아무런 형벌이나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진짜 무서운 일이다. 혹여나 말씀 속에서 찔림이 있거나 형벌이 있다고 느끼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절대 포기하지 않음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왜인가? 천국에 어울리는 진정으로 왕의 자녀다운 고귀한 모습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의를 요구하시지만 그 모든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의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말한다. 사람은 무엇가를 깨달을 때 행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게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동안 오해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해하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처럼 우리도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에 뜻과 마음에 대해서 알아갈 때 분명한 반응이 나타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은혜 받으면 사람이 온유해지고 섬기는 것을 너무나 잘한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마음이 강팍해지고 짜증이 많아지고 예민하게 된다. 은혜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바로 말씀 앞으로 나아가서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말씀을 읽는데 이해가 안되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령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따라 행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날마다 은혜를 갈급해하며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님은 빛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주님의 자녀된 우리도 무엇인가? ‘빛’이다. 아브라함 약속에서 “땅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에 대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최초로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그러면서 땅이라는 개념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로마시대 후로 완전히 나라가 망하여 뿔뿔히 전세계로 흩어진 이스라엘이 비록 지금은 하마스와 전쟁 중이나, 현대에 들어와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귀환하여 나라를 세운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물리적인 땅을 상속받았다. 그들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사야가 말한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분명한 것은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고 진정한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봐야할 것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 약속은 이스라엘 땅이 물리적으로 소유를 가지지 못한 2천 년을 가로질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속 존재해 온 사실을 실제 지금 역사 속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은 약속은 단순히 민족적인 약속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이스라엘을 보면서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 자녀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을 소망하기 원한다. 그러나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 답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을 심으셨다는 사실에 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하나님은 포도원에서 부드럽게 가지치기하듯이 자기 백성을 보살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심으셨고, 그들 주위의 잡초를 뽑으시고 그들을 조심스럽게 가지치기 할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모든 일을 떠맡으신 목적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영광을 세상에 알리시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백성된 우리의 성품이 너무나 중요하다. 하나님의 참 아름다움이 백성을 통해 드러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나타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신실한 백성들이 종말의 때까지 믿음을 이어나가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자기 백성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삼으심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 속한다는 것은 주님이 심으시고 돌보시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이사야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알 수 있다고 약속할 때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갈 때 영향력이 그들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이는 바로 22절에서 말씀하시는 “가장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가장 어린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아닌 자신의 군사력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상황이 역전되는 날을 바라본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나라가 세워지게 된다. 모든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나 여호와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약속에 따라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 자신의 약속에 따라 바벨론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고향 이스라엘로 인도하신 분이다. 모든 약속은 그것을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보여주신 진실성과 행하신 모든 능력만큼 가치가 있다.
나는 사실 신대원에 입학하기 전에 목회자가 아니라,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을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다. 원래 복음으로 꿈이 없어 방황하는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양육하여 선교사로 파송시키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고3 여름 방학 때 인도로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결단했던 적이 있다. 그 사역을 위해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남들 20살에 놀러다닐 때 나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왜냐하면 대학교 1학년을 마치면 교원자격증을 준다고 했는데, 그 조건이 높은 학점과 면접을 통해 과에서 딱 5명만 주는 그런 시험이었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감사하게도 그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러면서 교생실습도 하면서 주변 지인들이 공부랑 상관없이 연예인을 준비한다고 알고 있던 사람이 SNS를 통해 보는 소식이 교생실습을 하고 있으니 너무나 놀라웠던 것이다. 그동안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공부는 못해도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다가 과에서 5명만 주는 교원자격증에 내가 선발되니, 대학에서 순식간에 공부 잘한다는 엘리트처럼 여겨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전역을 하면서 당장에 이제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걱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코로나 시기가 끝날 무렵쯔음 되서 건강검진 전문병원에서 검진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 소지자가 필요하고 하여 그곳에 단기 알바로 취업하게 되었다. 그때 많은 학교가 코로나로 건강검진을 받기 어려워지자 병원이 학교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광주와 전라도 일대에 있는 수많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왜 내가 중고등학교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점점 이전에 내가 왜 대학을 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저들에게 복음 전해서 선교사로 파송시키는 목회자가 된다고 했는데, 당장의 현실에 눈이 멀어 점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그때서야 다시금 조금씩 깨닫게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마음은 여전히 신대원에 가서 공부하기도 싫고 안정된 직장을 얻고 싶은 마음으로 10군데의 서울과 경기 일대의 중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다들 신대원을 졸업하고 사역경험이 있는 목사님을 원한다고 하여 결국 모두 불합격했었다. 그러면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재정에 대한 모든 욕심을 전부 내려놓고, 신학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경기도 광주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 사역지의 교회 바로 옆에 내가 지원했던 학교 중 하나가 나를 떨어뜨린 학교 중 하나였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기필코 저 학교를 복음으로 정복하리라’는 그런 마음에 불타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만났던 그 학교의 고3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서 중고등부에 그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아이들을 만나면서 간식을 나눠주고 그 땅에 복음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떨어뜨렸던 그 학교의 교목 목사님이 연락이 온 것이다.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싶고, 아이들을 세례를 받으면 파송할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한 것이다. 왜 하필 저에게 연락을 주셨냐고 하니까, 이 지역에서 아이들을 기말고사 때 심방하면서 다음세대를 위해 뛰어다니는 사역자와 협력하고 싶었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그 학교에 들어가서 채플 때 설교도 하게 되었고, 많은 고등학생 아이들이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1년 동안 아이들을 제자훈련 시키면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순종의 씨앗으로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지금도 우리 꿈사땅 중고등부 아이들 당장에 믿음 없어보이고 외계인처럼 보여도 계속 믿음으로 제자훈련 시키면서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을 성장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금요기도회 때마다 계속 송파 땅을 위해, 송파 땅에 있는 수많은 다음 세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줍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활동을 통해서 이 지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달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을 성령님을 통해 깨달을 때, 물밀 듯이 우리 낙원교회에 수많은 영혼이 돌아올 줄 믿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낙원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꽉 막힌 불가능이라고 느끼는 벽 앞에서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신뢰하기 소망한다. 나는 집안에서 공부로 뭔가 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사촌 형들은 공부를 못하는 나를 은근히 무시했었다. 그러나 이번 설날에 형들이 어떤 이야기하는 줄 아는가? 신대원 졸업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집안에서 너가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 것이다. 나처럼 무식하고 아는 것 없는 나를,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하는 것도 누구의 능력이겠는가? 성령님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실 수 있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건 아닌가? 그렇다. 머리에 든 것 없다는 무식한 사람도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저를 따라해봅시다. “내 머리는 돌머리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다이아몬드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죽음을 이기신 분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불가능이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작고 영향력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다. 우리는 어떠한 능력도 대단한 권세도 영향력이라고는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12명의 사도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었는가? 그들이 로마 황제였거나 대단한 귀족이었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주 평범했고,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직업이나 대단한 능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유럽 전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능력인가? 오직 성령이 임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러니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오직 누구만 의지하고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하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가 소망이다. 예수가 생명이다. 예수가 참 능력이다. 예수가 길이다. 예수가 진리다. 오직 예수님만 붙들고 살아가는 그리하여 기도함을 포기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루어가심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