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10절

새벽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하나님의 법대로

본문: 사무엘하 6장 1-10절

찬송: 322장

오늘은 사무엘하 6장 1-10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대로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한다.
다윗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기로 결단한다. 이는 왕권의 영적 정당성을 세우려는 거룩한 열심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비극이 발생한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1-5절은 '말씀의 원칙보다 세상의 효율을 앞세운 편의주의'를 말한다.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다윗은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정예군 3만 명을 동원한다. 이는 단순한 예배 행렬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연출의 성격이 짙었다. 또한 율법(민 4:15)은 레위인이 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할 것을 명했으나,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했던 방식인 '수레'를 선택한다. 소들을 이용해 수레로 운반하는 것은 빠르고 편한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존중이 빠져 있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방법은 세상의 유행이나 내 편의를 따를 때가 많다. 기도의 수고(어깨) 대신 기계적인 습관(수레)에 신앙을 싣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화려한 3만 명의 인파나 잣나무로 만든 악기 소리보다, 기록된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정직한 무릎을 먼저 보신다. 오늘 하루, 내 열심이 하나님의 원칙을 앞지르지 않도록 내 지혜를 내려놓고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6-7절은 '하나님을 도우려 하는 인간의 교만과 거룩의 심판'을 말한다.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자 언약궤가 흔들린다. 이를 본 웃사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궤를 붙잡았다. 인간적으로 보면 궤를 지키려 한 충성이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잘못함(al-haššal)'이라 부르시며 웃사를 치신다. 웃사의 죄는 하나님이 궤를 지키지 못하실까 봐 염려하여 부정한 인간의 손을 댄 '영적 무례함'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나약한 분이 아니라, 홀로 거룩하신 주권자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을 돕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이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안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내 방식대로 하나님의 일을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교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흔들리는 궤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궤가 흔들리지 않도록 처음부터 하나님의 법대로 궤를 메는 것이다. 오늘 마주할 일터와 가정에서 주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려 관리하려 하지 말고, 오직 그분의 거룩함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경외함을 회복해야 한다.
8-10절은 '내 뜻대로 안 될 때 찾아오는 분노와 거룩한 두려움'을 말한다.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웃사의 죽음 앞에 다윗은 먼저 '분하여' 한다.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행사가 망가진 것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과 분노였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부로 조종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다윗은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오는 것을 멈추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돌린다. 이 멈춤의 시간은 다윗이 '내가 왕인가, 하나님이 왕인가'를 깊이 묵상하는 회복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일이 꼬일 때 하나님께 화를 낸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는데 왜 이런 재앙을 주십니까?"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베레스웃사(터짐)의 현장은 우리 인생의 가짜 평안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용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다. 오늘 하루, 내 계획이 멈춰선 자리에서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다시 부르자. 내가 주인이 되어 끌고 가던 인생 수레를 멈추고, 다시 주님의 멍에를 메고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은 수레라는 편의를 택했다가 실패했고, 웃사는 궤를 붙들었다가 심판을 받았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신앙의 지름길을 찾으려 하지 말자. 내 어깨에 말씀의 무게를 짊어지는 정직한 수고를 기쁨으로 여기자. 그리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함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다윗이 겪은 베레스웃사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법보다 세상의 효율과 내 편의라는 '새 수레'를 더 의지했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나의 성공과 안정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했던 영적 무례함을 이 시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도초중앙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웃사처럼 내 생각과 힘으로 주님의 일을 지키려 하기보다, 오직 주님이 말씀하신 원칙대로 순종하는 정직한 어깨를 갖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소들이 뛰어 수레가 흔들리는 것 같은 위기 앞에서도, 당황하여 내 손을 뻗기보다 잠잠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엎드리는 성숙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땀 흘려 일구는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를 지켜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더 편한 길, 더 빠른 길을 찾으라 말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가라 하신 좁은 길을 묵묵히 걷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과 말 못 할 고난으로 인해 '분하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한 지체들을 찾아가사, 베레스웃사의 상처를 씻어주시고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평강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가 세상의 수레에 편승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 거룩한 세대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우리 인생의 유일한 주권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