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죽음과 부활

부활절(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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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세례

얼마 전에 저희 아버지가 제 딸인 하린이에게 영아 세례를 언제 줄까~ 하시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우리 딸은 영아 세례 안 줄건데?”라고 하니까 저희 아버지가 아주 세상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왜? 왜 안주는데?”라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보니까 손주에게 세례 줄 마음으로 세례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겨서 여기 신안리까지 오실 계획을 나름 품고 계셨더라구요. 그랬는데 제가 그걸 막으니까 얼굴에 삐지신 티를 팍팍 내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저희 아버지가 영아 세례를 주고싶어하신 이유가 아버지 세대는 영아 세례가 흔하지 않았고, 영아 세례야말로 부모님이 믿는 사람이라는 표시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라고 하시는데요. 저희 세대는 반대로 영아 세례 받은 사람은 주변에 너무 많은데, 정작 저는 세례 받은 것을 기억도 못하고 있고, 또 세례만 받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보니까, 아이가 충분히 기억할 수 있을 만큼은 크고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버지나 저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아무튼 세례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건인 것은 확실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더 빨리 받게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고, 저는 이 세례 받는 것을 어느정도 큰 이후에 받아서, 오래 기억하는 세례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죠.

죽음과 부활에 합하여 세례 받음(3-5절)

그럼 대체 세례는 왜 중요한 것일까요? 저희가 알고 있는 세례는 보통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만찬과 더불어서 예수님꼐서도 받으신 것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본문말씀은 바로 세례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시작합니다. 먼저 3절 말씀을 보시면요, 세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합니까? 세례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고, 세례를 받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먼저 세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합하게 되는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죽음에만 연합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4절과 5절 말씀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장사되었으니,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과 같이 부활에도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개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 또한 예수님과 같이 죽고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죠.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연합한 것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오늘날에 저희들에게 이러한 세례의 개념은 사실 익숙한 것입니다. 하도 교회에서 들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요, 그러나 바울이 이 로마서라고 하는 편지를 쓰던 당시에는 세례가 원래부터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세례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들, 즉 유대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행했던 개종의식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기 위해선 먼저 할례라고 하는 남자의 포피를 제거하는 의식을 치룬 이후에 상처가 다 나으면 이 사람을 흐르는 물에 데리고 가서 율법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에 담궜다가 올라오면 이 사람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죠.
혹은 부정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레위기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Leviticus 15:13 NKRV
유출병이 있는 자는 그의 유출이 깨끗해지거든 그가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이레를 센 후에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그의 몸을 씻을 것이라 그러면 그가 정하리니
유출병이 있는 사람은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물에 몸을 씻으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저희가 손을 잘 씻어서 세균을 없애는 것과 같은 위생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정결 예식인 것이죠.
이것을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과 연합한 것으로 새로운 해석을 빚어낸 것입니다. 단순히 개종 의식이 아니고, 정결 예식도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합한 것이라는 거죠. 이전에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이방인이었던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이방 문화 속에서 죄를 짓고 살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Romans 6:5 NKRV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례를 받은 저희가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옛 사람의 죽음(6-7절)

본문말씀 6절을 보시면요, 바울이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한 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죄를 짓던 옛날 모습이 죽어서 다시는 죄에 종 노릇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죄에 종노릇하다 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에서 익숙한 개념이었습니다. 몸의 정욕, 이를 테면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욕망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노예 상태다”라고 평가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보기에 이방인들, 특히 이방의 문화와 종교에 익숙한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서 종 노릇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또한 노예라고 하는 것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법으로 신분이 규정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특수한 경우가 생겨서 해방이 되지 않는 이상, 노예는 주인에게 소유물로 취급되는 존재였습니다. 법 아래에서 그것이 허용된 존재였다는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말씀의 다음 장인 7장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Romans 7:1 NKRV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아무리 사람이 법에 매여있다고 한들, 그 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적용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한 사람,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죄에 종 노릇하던 우리의 옛 사람은 죄의 지배권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 죄의 법 아래에서 벗어난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Romans 6:7 NKRV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은 이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얻다 라고 하는 단어는 디카이오(δῐκαιόω)라고 해서 법적인 용어입니다. 법적으로 “이 사람은 죄가 없다” “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죄의 법 아래에 있던 사람이 이 죄에 대해서는 죽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너는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여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또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전에 믿지 않았을 때의 모습, 옛 사람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고, 예수님을 믿는 의로운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도 결혼 전에는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살만하고, 밥도 대충 라면 끓여먹으면 되고, 집밖에 일주일을 단 한 번도 안나가고도 잘 살 수 있었는데요, 결혼하고 나니까 삶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구요. 밥을 먹을 때도 항상 같이 먹는 사람이 있고, 밖에 나가서 산책하는 사람이 있고, 또 아이를 가지니까 다시 이전에 하고 싶은대로 했던 삶과는 다른 삶이 있더라구요. 부부가 연합하게 되면, 싱글이었던 과거의 나는 죽고, 연합한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함께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제가 이전의 죄악된 삶은 죽고, 예수님과 합하여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8-11절)

다시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8절 말씀을 보시면요, 예수님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만 하신게 아니라 부활하셔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예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만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도 연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9절 말씀에는 예수님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셨다, 라고 했는데요. 지난 번에 말씀드렸죠?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즉 소생한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이들은 다시 수명이 다하면 육신은 죽게되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서 한번만 죽으신 것이고, 살아 계신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육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꼐서 썩지 않을 몸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에 저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시에 연합되어있는 상태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해서는, 즉 옛날 모습에 대해서는 죽은 것이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갈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자,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지금 인생도 살기 바쁜데 무슨 영원한 생명이라느니 천국이라느니 죽음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잘 와닿지 않고 저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생을 믿는 삶, 부활을 믿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삶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여러분과 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에 유명한 말씀이 있죠.
Galatians 2:20 NKRV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삶, 즉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은요 “지금 당장”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님과 연합된 삶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바로 그런 삶에 대해서 묘사한 바가 있습니다.
Acts 2:44–46 NKRV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물건을 나눠쓰고 필요에 따라 나누고 함께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아무도 못쓰게 꽁꽁 숨기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삶이고,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된 자들에게 다가가셔서 함께 음식을 드셨던 것 같이 서로 떡을 떼며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삶을 살았던 겁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은 예수님을 닮기로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본문말씀 11절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Romans 6:11 NKRV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된 삶,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애쓰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세례는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의식도 아니고 그냥 도장찍듯이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전의 삶을 내려놓고 이제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에 대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한 사람입니다. 죄에게 종 노릇하던 죄의 법 아래에 놓여있던 옛 사람은 죽고, 이제는 예수님의 법과 말씀 아래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은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한 사람입니다. 다만 이것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혹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고, 죄인된 옛 사람이 죽고 이제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새 사람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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