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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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큰 선물

본문: 출애굽기12:37-51 (배경 12장 전체)
출애굽기 12:37–51 NKRV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들어가는 이야기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이 쓴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짧은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어요. 19세기 덴마크의 어느 외딴 바닷가 마을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에는 두 자매가 살았어요. 큰 딸(마틴루터-> 마르틴느), 둘째 딸(빌립 멜란흐톤-> 필리파),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을 목사였고, 두 자매도 평생을 신앙 안에서 절제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을은 작고 가난했고, 사람들은 마른 빵과 말린 대구를 먹으며 살았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상처와 앙금, 다툼이 있었다는 거예요. 한때는 같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서로 얼굴을 보면 외면합니다.
어느 날, 프랑스에서 도망쳐 온 한 여인이 두 자매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옵니다. 이름이 바베트예요. 가족도, 집도, 돈도 없는 난민이었어요. 자매는 이 여인을 거두어 줍니다. 바베트는 14년 동안 그 집에서 묵묵히 빵을 굽고 청소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편지가 옵니다. 파리의 친구가 매년 사 주던 복권이 — 당첨이 됐어요. 1만 프랑.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수억 원입니다. 가난한 난민에게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큰돈이었어요.
자매는 생각합니다. "이제 바베트가 떠나겠구나. 파리로 돌아가겠구나."
그런데 바베트는 자매에게 이상한 부탁을 합니다. 마침 그해가 돌아가신 목사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바베트가 말합니다. "그날 만찬을, 제가 준비하게 해 주세요. 진짜 프랑스식 만찬으로요. 비용은 제가 다 댑니다."
자매는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며칠 뒤, 항구에 배가 들어와요. 그 배에서 내리는 것들이 — 이 마을 사람들이 평생 본 적 없는 것들이었어요. 살아 있는 거대한 거북이, 메추라기 수십 마리, 프랑스산 와인과 샴페인, 이름도 모를 치즈와 향신료들. 마을 사람들이 술렁였어요. "바베트가 마녀가 아닐까? 우리에게 뭔가 이상한 음식을 먹이려는 게 아닐까?"
드디어 만찬의 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처음에 굳어 있었어요. 서로 외면하던 그 미움 그대로요. 그런데 한 입, 두 입 — 음식이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무언가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거북 수프, 메추라기 요리, 프랑스 와인. 알고 보니 바베트는 단순한 가정부가 아니었어요. 프랑스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카페 알글레) 의 수석 요리사였습니다. 그녀가 평생 갈고닦은 솜씨가, 1만 프랑 전부와 함께, 그 식탁 위에 부어졌어요.
음식이 사람을 풀어 놓기 시작합니다. 30년 동안 말도 섞지 않던 두 노인이 서로의 손을 잡습니다. 옛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화해합니다. 한 노인이 일어나서 이렇게 외쳐요. **"오늘 우리는 자비와 진리가 만나는 것을 보았다!"**
미움의 식탁이 — 화해의 식탁이 되었습니다. 죽어 있던 공동체가 — 살아났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두 자매는 바베트에게 묻습니다. "이제 그 돈으로 파리로 돌아가지요?" 바베트가 조용히 대답합니다.
"돈은 한 푼도 안 남았습니다. 1만 프랑은 — 오늘 식탁에 다 썼어요. 파리 카페 앙글레의 진짜 만찬은 정확히 1만 프랑이거든요."
바베트는 두 자매와 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준비했고 그 선물이 주는 넘치는 기쁨과 충만한 은혜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녹기 시작했고, 그 날 만찬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자기의 전부를 부어서 — 죽어 있던 공동체를 살린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2장에도 반복되는 이야기 입니다. 한 분이 자기의 전부를 부어서, 죽음의 식탁을 생명의 식탁으로 바꾸신 이야기. 그 식탁의 이름이 — 유월절입니다.
오늘 그 본문에서 두 개의 이미지를 함께 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문에 발린 피의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한 집에서 함께 먹는 식탁의 이미지입니다.

먼저, 유월절 사건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출애굽기 12:13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여러분, "넘어가다"라는 말. 히브리어로 '파사흐(פָּסַח)'라고 합니다. 우리가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그 단어의 어원이에요. '유월(逾越)'은 한자로 '넘을 유, 넘을 월'. 글자 그대로 "넘어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파사흐'에는 또 다른 뜻도 있어요. '지키고 보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31:5 에서 똑같은 단어가 그렇게 쓰여요. ".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파사흐'는 "건너뛴다"는 의미도 있지만마, 심판의 자리에 친히 서서, 어미 새가 새끼를 날개로 덮듯이 그 집을 막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의미도 있습니다.
자, 그 밤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애굽 전역에 죽음의 천사가 지나갑니다. 모든 처음 난 것들이 죽어 갑니다. 바로의 궁궐부터 가난한 종의 집까지요. 그런데 단 한 종류만 — 살아남습니다. 어떤 집입니까?
12:7을 보세요.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좌우 문설주, 그리고 위쪽 인방. 자,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 보세요. 문 위에 한 줄, 양쪽에 한 줄씩 — 피가 발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십자가 모양입니다. 1500년 전에 이미, 그들의 집 문에 십자가가 그려졌던 거예요. 어린 양의 피로요.
하나님께서 첫 번째 태어난 생명을 심판하시는 동시에 예수님은 자신의 전부인 생명을 바침으로 성부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내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을 정확히 가리키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두 번째 이미지 — 한 집에서 함께 먹는 식탁입니다.

이제 본문 후반부를 봅니다. 12:43-49에 유월절 식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 식사의 메인 요리는 어린 양인데요. 이 식사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어린 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46절). 그 양은 온전한 양이어야 합니다. 부서지면 안 돼요.
둘째,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46절).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흩어져 먹지 말고, 한 식탁에 둘러앉아 먹어야 합니다.
셋째, 할례 받은 자는 누구나 함께 먹을 수 있다(48절). 본토인이든, 잡족이든, 이방인이든 — 49절에 분명히 말씀해요.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자, 이 세 가지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보세요.
온전한 어린 양 — 뼈가 꺾이지 않은 양. 이 구절이 신약에서 어디에 인용됩니까? 요한복음 19:36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로마 군인들이 옆 강도들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어요. 요한이 그 장면을 보면서 말합니다. "이 일이 일어남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기 12:46이 1500년 전부터 예수님을 그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한 집에서 먹는다" — 이게 무엇을 가리킵니까? 교회의 식탁입니다. 성찬상입니다. 우리는 매주 주일에 한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요. 그리고 그 식탁 위에는 — 뼈가 꺾이지 않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식탁은 누구에게 열려 있어요? 이게 정말 놀라운 부분입니다. 본토인이든, 이방인이든, 잡족이든 — 회개하고 언약의 표(할례, 신약에서는 세례)를 받은 자라면 누구나 함께 앉을 수 있어요. 출신이 자격이 아니에요. 회개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됩니다.
우리가 격주 마다 하는 성찬에서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 우리는 예수님이 자기의 전부를 부어서 우리에게 차려 주신 그 큰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큰 선물은 무엇입니까? 두 이미지가 결국 한 분을 가리킵니다.
문에 발린 피 — 우리 대신 죽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한 식탁에 차려진 양 —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부르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입니다. 헬라어로 그것을 '카리스(χάρις)', 우리말로는 '은혜'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를 막아서는 것 — 값싼 은혜, 값싸게 취급된 큰 선물, 예수!

그런데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렇게 큰 선물이 주어졌는데 — 우리는 그 선물의 크기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이런 말을 했어요.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이고, 교회 훈련 없는 세례이며, 죄의 고백 없는 성찬이고, 개인의 회심이 없는 사죄 선포다. 값싼 은혜는 십자가 없는 은혜다."
여러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너무 싸게 여깁니다. (행위와 위선 증가, 형식적 신앙생활)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주일에 교회에 와요. 예배를 드려요. 성찬에 참여해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이거 매주 하는 거잖아." 혹은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 하면서요.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떨림, 그 눈물, 그 감격 — 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은혜가 너무 값싸졌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건요, 우리는 우리가 받은 선물의 크기를 모르기 때문에 — 그 선물에 반응하지도 못합니다. 받았는데도 받은 줄 모르니까, 감사가 안 나오고, 변화가 안 일어나요. 그저 받기만 하고, 받기만 하고, 그러면서 자꾸 더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차려진 성찬이 얼마나 큰 식탁인지 —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한 분이 자기의 전부를 부어서, 자기의 살과 피를 다 내어 주셔서 우리에게 차려 주신 식탁입니다.

복음. 우리가 받은 이 큰 선물 — 카리스, 은혜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영국의 신약학자 존 바클레이라는 분이 「바울과 선물」이라는 책에서 은혜(선물)에 대해 정리한 내용을 참고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선물)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선물(은혜)은 충만합니다 (초충만성)

하나님의 은혜는 — 넘쳐납니다. 양에 있어서, 중요성에 있어서, 그리고 지속성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바베트가 1만 프랑을 — 절반만 썼습니까? 아니요. 다 썼어요. 한 푼도 안 남기고요. 우리 주님도 똑같으세요. 우리를 위해 — 자기 살과 피를 다 부으셨어요. 절반만이 아니에요. 일부만이 아니에요.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적용해 봅시다. 여러분이 받은 선물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마세요. 여러분의 인생의 어떤 자리에서도 — 그 선물은 여러분을 다 덮을 만큼 충분합니다. 죄가 많아도 충분합니다. 상처가 깊어도 충분합니다. 늦었다고 느껴져도 충분합니다.

둘째, 선물(은혜)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비상응성)

바클레이가 말한 두 번째 핵심이 이거예요. 은혜는 —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예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 은혜의 본질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이스라엘이 자격 있어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니에요. 그들도 다른 민족과 똑같은 노예였어요. 가나안 사람들보다 거룩한 것도 아니었고, 애굽 사람들보다 의로운 것도 아니었어요. 그들이 한 거라곤 — 어린 양의 피를 자기 집 문에 발랐을 뿐입니다.
본문 38절의 "수많은 잡족"을 기억하시나요? 이스라엘 혈통도 아닌 사람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도 — 어린 양의 피 아래로 들어왔다면 — 똑같이 살아서 함께 나왔어요.
저와 여러분이 자격 있어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가정에 태어나서, 도덕적으로 깨끗해서 — 그래서 받은 게 아니에요. 그 선물은 — 여러분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때 주어진 거예요. 우리가 자격 없이 받았으면, 다른 사람도 자격 없이 받을 수 있어요. 끼리끼리 모이고 외부인을 거부하는 교회는 — 자기가 받은 은혜가 어떻게 왔는지를 잊어버린 교회입니다.

셋째, 선물(은혜)은 반드시 효력을 발휘합니다 (유효성)

바클레이가 말한 세 번째가 정말 중요해요. 은혜는 — 받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받은 사람을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효력을 발휘해요.
로마서 5:15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But the gift is not like the trespass⌋b, for if by the trespass of the one, the many died, by much more did the grace of God and the gift by the grace of the one man, Jesus Christ, multiply to the many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은 —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그 은혜가 그를 움직입니다.
그러면 이 큰 선물에 제대로 반응한다는 건, 어떤 모습입니까?
1880년대 후반 황해도 장연군의 한 작은 어촌, 소래마을. 그곳에 한 평신도가 있었어요. 이름은 서상륜. 인삼 장수였습니다. 만주를 오가다가 영국 선교사 존 로스 목사를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리고 그분과 함께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던 중이었습니다.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는 1883년, 자기 고향 소래마을에서 한국인이 자기 손으로 세운 첫 번째 개신교 교회 — 소래교회를 시작합니다. 외국 선교사가 세운 게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시작한 첫 교회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받은 게 무엇이었어요? 복음입니다. 큰 선물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 그들은 받은 선물을 자기들끼리만 누리지 않았어요. 흘려보냈습니다.
1896년이 됩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허득(許得).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백령도로 낙향한 개화파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또 한 사람을 만나요. 충청도 공주 출신 김성진이라는 사람이 백령도로 유배 와 있었어요. 그런데 김성진이 짐 속에 — 그의 사위가 몰래 넣어 준 신약성경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 성경을 함께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깨달아요. "이 복음을 우리만 알고 있을 수는 없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동네 청년 김달삼을 부릅니다.
"김달삼아, 황해도 장연 소래마을에 가거라. 거기에 한국인이 세운 교회가 있다고 들었다. 가서 도와줄 사람을 청하여 오너라."
김달삼이 배를 타고 백령도에서 소래까지 갑니다. 소래교회 사람들이 그 부탁을 듣고 — 어떻게 했을까요? 자기들도 막 시작한 작은 교회였어요. 가진 게 많지도 않았고, 사람도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 갑니다. 서경조 장로, 홍종옥 집사, 그리고 또 한 분. 셋이 배를 타고 백령도로 갔어요.
1896년 8월25일, 백령도 중화동 마을의 한 서당에서 — 백령도 첫 예배가 드려집니다. 서경조 장로가 예배를 인도했어요. 그리고 한 달을 그곳에 머물면서, 낮에는 전도하고 밤에는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분들이 떠난 뒤에도, 허득 공이 직접 예배를 인도하면서 그 작은 신앙 공동체를 지켜 갔습니다.
그리고 1899년 — 중화동교회가 자기 예배당을 짓기로 했어요. 그런데 외딴 섬에서 건축 자재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또 누가 도와줬을까요?
소래교회입니다. 그 작은 교회가 — 자기들 예배당을 짓고 남은 건축 자재를 배에 실어 백령도로 보냈어요.자기 것을 떼어서요.
이듬해 1900년 9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배를 타고 백령도에 와서 허득 공과 그의 아들 허간을 비롯한 일곱 명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리고 그 어린 허간이 — 자라서 목사가 되고, 23년 동안 중화동교회를 담임하면서 백령도 전체를 복음의 섬으로 만듭니다. 지금도 백령도는 주민의 80퍼센트가 그리스도인이에요. 한국 기독교의 섬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선물을 받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받지 않으면 시작이 안 돼요. 오늘 이 자리에서 어린 양의 피 아래로 들어오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받은 선물에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답이 무엇입니까? 감사예요. 입술의 감사가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감사.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받기만 하고 멈추는 은혜는 — 진짜 은혜가 아니에요. 흘려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에게요?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에게요. 가족에게, 친구에게,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요. 우리 교회 옆에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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