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1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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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69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벽에 저희를 깨워 주님의 전에 나오게 하시고,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여러 염려와 근심 속에서도 저희가 혼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무거운 마음을 붙들고 주님 앞에 나온 저희를 위로하여 주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다시 힘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 가정마다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자녀들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연약함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마음이 지치고 낙심한 영혼들에게 하늘의 평안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의 걸음을 붙들어 주시고,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맡겨진 일터와 삶의 자리 가운데 지혜와 은혜를 더하여 주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정성 다해 드리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드리는 손길마다 믿음과 감사가 더욱 넘치게 하시고, 가정과 생업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7:8–11 NKRV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자녀의 일, 가정의 일, 직장의 일, 건강의 일, 돈 문제까지. 마음 한구석이 늘 무겁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짊어진 그 무거운 마음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고, 우리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무게의 짐인데, 어떤 사람은 그 짐 때문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짐을 통해 오히려 더 굳건해집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오늘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강한 책망의 편지를 한 통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편지를 흔히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큰 슬픔과 눈물로 그 편지를 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동역자 디도의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울의 마음은 한순간도 편치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한 말을 하고 나서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한 후에도,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이 마음을 닫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바울도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디도를 기다리던 바울에게, 디도가 마침내 돌아와서 한 가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이 바울의 무너지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소식을 들은 후의 바울의 고백입니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8 NKRV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자기가 그 편지를 보낸 것을 한때는 후회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 편지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일으킨 근심이 그들을 살리는 근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같은 근심이라도 그 결과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표현 하나를 사용합니다.
고린도후서 7:9 NKRV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너희로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헬라어로는 "하나님을 따라 슬퍼함"이라는 뜻의 표현입니다. 즉 근심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근심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없이 혼자 짊어지는 근심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이 두 근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7:10 NKRV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같은 근심처럼 보여도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쪽 끝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쉬운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풀어 옮겼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슬픔은 사람을 회개로 이끌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으나, 세상이 주는 슬픔은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같은 슬픔이지만, 한 슬픔은 우리를 살리고 다른 한 슬픔은 우리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근심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성경에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1절과 62절을 보면, 닭이 울 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3절을 보면, 유다는 예수님이 정죄되시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다고 기록합니다. 가지고 갔던 은 삼십을 도로 가져와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슬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후회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한 사람은 회복되어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차이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 슬픔이 그 사람을 어디로 데려갔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유다의 슬픔이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대제사장에게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도움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혼자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다의 슬픔은 그를 사람들로부터, 공동체로부터, 그리고 결국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슬픔이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한 후에도 제자들의 무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베드로는 여전히 그 무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 호숫가에서 다시 찾아오셨을 때,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수에 뛰어들어 주님께로 갔습니다. 베드로의 슬픔은 그를 사람들에게로, 공동체로, 그리고 다시 주님께로 데려갔습니다.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데려간 자리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사망의 자리로 갔고, 한 사람은 회복의 자리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 10절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슬픔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시작점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같은 자녀 문제, 같은 직장 문제, 같은 건강 문제 앞에서 우리가 슬퍼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걱정이 우리를 점점 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지게 한다면, 그 걱정은 우리를 사망의 자리로 데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걱정이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하고, 다시 사람들 곁으로 가게 한다면, 그 걱정은 우리를 살리는 거룩한 근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은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7:11 NKRV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여기 바울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우리 안에 만들어 내는 일곱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이 일곱 가지가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의 근심이 어떤 종류의 근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간절함입니다. 빨리 바로잡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든 빨리 풀어 내려고 발걸음을 떼게 만듭니다.
둘째, 본문은 "변증"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마음입니다. 변명이 아닙니다. 회개한 사람은 자기 잘못을 덮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러내고 바로잡으려 합니다.
셋째, 분함입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거룩한 분노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 하는 자기 자신을 향한 거룩한 부끄러움입니다.
넷째, 두려움입니다.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다섯째, 사모함입니다. 깨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살아나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열심입니다. 처음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뜨거운 마음입니다. 식어 버렸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일곱째, 본문이 "벌함"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회피하지 않고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끝까지 지려는 자세입니다.
이 일곱 가지가 바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우리 안에 만들어 내는 열매들입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여러분의 후회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진짜 변화로 이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분명한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마음이 무겁고 후회는 되는데, 그 후회가 우리 안에서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근심일 수 있습니다. 마음만 무거워지고 끝나는 근심일 수 있습니다.
진짜 회개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무거움이 우리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이키는 데까지 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자리에 각자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녀의 일로, 직장의 일로, 가정의 일로, 건강의 일로, 돈 문제로 마음이 무거운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무거운 마음이 우리를 무너뜨릴지 아니면 우리를 살릴지는, 그 무거움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자녀 문제라도, 그 걱정 때문에 우리가 점점 더 사람들과 멀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있다면, 그 걱정은 우리를 사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자녀 문제라도, 그 걱정 때문에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걱정은 우리를 살리는 거룩한 근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직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건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게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저 죄에서 손을 떼는 일이 아닙니다. 회개는 마음의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일입니다. 우리 마음이 향하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일입니다.
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짐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의 일곱 가지 열매를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간절함, 정직함, 거룩한 분함,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회복을 사모하는 마음, 처음 사랑의 뜨거움, 책임지는 자세. 이 일곱 가지가 우리 안에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우리의 근심이 우리를 살리는 근심으로 바뀌었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한 가지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동안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이 다시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짐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같은 짐을 누구는 혼자 짊어지다가 무너집니다. 그러나 누구는 그 짐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더 굳건해집니다. 그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그 짐과 함께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낙심한 자를 곁에서 위로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근심이 우리를 살리는 거룩한 근심으로 바뀝니다.
오늘 새벽, 우리 마음의 모든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짐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짐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거룩한 짐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벽에 저희를 주님 앞으로 불러 주시고, 말씀으로 저희 마음을 붙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는 저마다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갑니다. 자녀의 문제와 가정의 일, 건강과 삶의 염려로 마음이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그 근심이 저희를 무너뜨리는 근심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거룩한 근심이 되게 하옵소서.
걱정 속에 혼자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더욱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며, 베드로처럼 실패 가운데서도 다시 주님께 돌아가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 안에 회개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회복시켜 주시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며, 처음 사랑을 다시 품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무거운 짐을 혼자 붙들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붙드시고 회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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