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바로의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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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앞이 막혀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가려고 해도 길이 없고, 뒤를 돌아보면 두려움이 따라오는,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 어떤 사람은 건강의 문제 앞에서, 인간관계와 가정의 문제 앞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분명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 보려고 했고, 순종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완전히 끝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지금 이 상황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눈앞의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던 길에서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 장소들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의 이동 경로가 바로의 눈에는 광야에서 길 잃고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을 뒤쫓아 군대를 이끌고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속박의 땅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물을 건너야 했습니다. 하나는 지금 눈 앞에 있는 홍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이후에 마주하게 될 요단 강이었습니다. 이 물들은 이스라엘의 삶을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에는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요단 강을 건넌 후에는 가나안에서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첫 번째 물이 홍해 앞에 와 있다는 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경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바로는 열 번째 재앙을 겪고 두려운 나머지 애원하듯 이스라엘을 내보냈는데, 이제 보니 그 결정이 아쉬워졌습니다. 5절에서 말하듯이, 히브리 노예들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이전에는 노예들이 해 주던 일을 이제는 자신들이 직접 해야 하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의 동태를 살펴보니 아직 제대로 길을 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방황은 바로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그렇게 강하게 애굽을 친 그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버린 것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던 여호와의 힘과 능력이 지금 저 홍해 앞에서는 약해진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종교인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병거 600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노예를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와 군사들은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일이 자신들의 결정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뒤따랐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놓인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과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것이 달랐고, 또 이스라엘이 보는 것도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상황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시야가 열려 있어야 하고, 민감하게 그 상황에 반응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상황에 대한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모세를 향해 원망의 말을 쏟아냅니다. 11절, 1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야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에게 영적 분별력, 예민함 이런 것이 없었어도 이렇게 원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4절 말씀에서 바로가 그들을 쫓아 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만 했어도 지금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군대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승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기대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면 오히려 애굽 군대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걱정할 때와 찬양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하며 내뱉는 말은 그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배은망덕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하심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은혜와 남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 오래 기억하지만, 남에게 받은 은혜와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수많은 기적과 은혜를 경험하고도, 그리고 그 은혜로 지금 그곳까지 와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스라엘이 자신을 원망하면 모세는 하나님께 가서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인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13절에서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제 다시는 이 애굽 사람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오래 전 호렙 산에서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독하게도 거절하던 모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실패와 패배에 사로잡혀 있던 그가 드디어 올바른 지도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이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모세가 말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대로 하나님은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를 위하여 싸우심을 신뢰하고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너무나도 쉽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혀를 찹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직접 겪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원망할 수 있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매주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선포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곳곳에서 순간순간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우리도 너무 쉽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기만 하면 일단 원망부터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가 원망하는 그 상황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듦 속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서 있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위하여 일하시고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래서 늘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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