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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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
두려움과 막막함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주 예수 의지함이 가장 기쁜 일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함께 모인 우리에게,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130주년을 맞이한 우리 제일영도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앞날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더하여 주시고, 주를 통하여 받은 이 복음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이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 세워진 이유를 다시 회복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귀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한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참 사랑이 가득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있는 어려움, 주의 사랑으로 모두 이겨낼 수 있도록 주의 사랑을 가르쳐주시옵소서.
이시간 우리의 찬양과 기쁨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시고, 주신 말씀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본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서론(1-4절)
서론(1-4절)
우리는 때때로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곤 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430년이라는 긴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출애굽의 기쁨을 누리게 된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쉽지 않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백성들의 발걸음을 돌이켜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출애굽하는 중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결코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앞에는 거대한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적들이 애워싸기 좋은 광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쫓기는 입장인 이스라엘에게 있어 막다른 길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절을 보면 애굽 왕 바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긿을 읽고 방황하다가 마침내 광야에 갇히게 되었구나!” 바로는 이스라엘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간다면, 이스라엘을 다시 노예로 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와중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4절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다!” “바로가 너희 뒤를 쫓아 갈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왜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을까요? 자기 백성을 안심시키시며, “괜찮다! 내가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뒤를 이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것이다!” “애굽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막막함과 걱정을 주 앞에 내려놓는 은혜의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지 1. 이스라엘을 쫓는 바로와 그의 군사력(5-9절)
대지 1. 이스라엘을 쫓는 바로와 그의 군사력(5-9절)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대로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걸음을 옮겨 말씀하신 그 곳에 장막을 치게 됩니다. 한편 5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도망하였음이 바로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게끔 허락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열 가지 재앙, 열 가지 징계를 망각한 채, ‘또 다시 여호와의 뜻을 대적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바로는 이스라엘을 쫓기 위해 병거와 백성들을 모집니다. 그가 선별한 병력은 무려 최정예 병거 600대를 비롯한 모든 병거였습니다. 사실상 한 국가의 모든 병력이 ‘이스라엘을 추격하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이야기가 쭉 전개 될 때마다, 계속해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계속해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굳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쫓게끔 하셨을까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본문 4절에 드러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통해 영광을 얻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애굽 사람들이 그가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칭 최고의 신의 아들인 바로는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지기게 됩니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장소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담대히’로 해석된 단어의 원의미는 ‘높은 손으로’입니다. 이 표현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손을 높이들며’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곧 이스라엘은 자신에게 임했고, 또한 임할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한편 바로의 막강한 병력이 이스엘의 뒤를 바짝 추적하여, 그들이 장막을 친 곳까지 이르게 됩니다.
대지 2. 바로의 병력을 본 이스라엘의 반응(10-12절)
대지 2. 바로의 병력을 본 이스라엘의 반응(10-12절)
지금껏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던 이스라엘이었으나, 바로의 막강한 병력이 자신의 뒤에 이른 것을 보자, 그들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께 애굽의 병력이 쫓아오게 될 것을 ‘모세를 통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일의 끝이 ‘여호와의 영광’임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잊은 채,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에 집중하게 됩니다. 10절 말미를 보시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표현은 여호와께 도움을 구했다기 보다, “여호와께 자신들의 불만과 원망을 쏟아내었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아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과 탄식을 쏟아낸 이후에, 모세에게도 동일하게 호소합니다. 왜 굳이 자신들을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였던 얼마 전 일들을 망각한 채, 모세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거 봐라! 우리가 우리를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냐?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지 않았냐! 왜 우리를 이끌어 냈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휩쓸려, 자신들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망각하였습니다. 바로가 자신이 받았던 징계를 망각하였다면, 이스라엘은 자신이 경험했던 구원을 망각한 것입니다.
대지 3. 모세의 권면(13-14절)
대지 3. 모세의 권면(13-14절)
두려워 하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휩쓸려, 자신들을 위해 행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렸고, 자신들을 위해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두려워 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일을 제시해줍니다. 그것은 가만히 서서, 잠잠히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를 위하여 행하시는, 오늘 나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이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권면의 내용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었습니다.
정리
정리
오늘의 말씀은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승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못하였던 ‘바로’와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고, 우리를 위해 싸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과 싸우심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 속에 닥쳐오는 일들을 바라보며, 낙담하고 두려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닌 지는 우리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느끼고 있는 분노만, 두려움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두려움’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마음’까지도 말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모든 일과 우리를 위해 죄와 죽음과 싸우셨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 가운데 바로와 같은 분노의 제목이 있으십니까? 혹 이스라엘이 가졌던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13절과 14절 말씀과 같이, ‘가만히 서서’ ‘잠잠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길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셨고, 또한 행하실 것이며, 우리를 위해 싸우셨고, 우리와 함께 싸우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모습임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잊은 채 살아가는 자가 바로 ‘우리’임을 회개하며 나아갑시다. 바로의 완악함도, 이스라엘의 연약한 믿음도 비난할 수 없는 자가 바로 ‘우리’임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가만히 서서! 잠잠히!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제일영도교회 모든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이후 각자 가져오신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절별 주해
절별 주해
여호와의 말씀(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1절).
이스라엘 자신들이 돌이켜 장막을 치게 하라;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2절).
바로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러 가려다가 방황하게 될 것이고, 광야에 갇히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3절).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붙잡기 위해, 온 군대를 데리고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자기의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애굽 사람들이 그가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대로 명령하였고, 그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행하였다(4절).
이스라엘을 쫓는 바로와 그의 군사력(5-9절)
이스라엘의 도망이 바로에게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게끔 허락한 것에 대해 후회함. 여호와의 열 가지 징계를 망각한 채, 다시 여호와의 뜻을 대적하고자 함(5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4절) 바로는 이스라엘을 쫓기 위해 병거와 백성들을 모집함(6절).
선발된 병력은 무려 최정예 병거 600대와 이외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쫓음. 사실상 한 국가의 총 병력이 이스라엘을 추격하기 위해 사용된 것임(7절).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바로의 마음을 왜 완악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왜 굳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쫓게끔 하셨을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본문 4절에 드러난 것처럼 이 모든 일을 통해 영광을 얻으시려는 것이다. 또한 애굽 사람들이 이 분이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자칭 최고신의 아들인 바로는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계획에 이끌림바 된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장소로 담대히 나아간다. 여기서 ‘담대히’로 해석된 단어의 원의미는 ‘높은 손으로’이다. 이 표현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손을 높이 들며’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곧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임했고, 또한 임할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며 나아간 것이다(8절).
바로의 병력이 이스라엘의 뒤를 바짝 추적하여, 그들이 장막을 친 곳까지 이르게 되었다(9절).
바로의 병력을 본 이스라엘의 반응(10-12절)
지금껏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던 이스라엘은 바로의 막강한 병력이 자신의 뒤에 이른 것을 보자,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께 애굽의 병력이 쫓아오게 될 것을 들었다(4절). 또한 이 일의 끝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분명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잊은채,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에 집중한다. 10절 말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상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탄식이지 않았을까 싶다(10절).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과 탄식을 쏟아낸 이후에, 모세에게도 동일하게 호소한다. 왜 굳이 자신들을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였냐는 것이다(11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였던 얼마 전 일들을 망각한 채, 모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거 봐라! 우리가 우리를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냐?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지 않았냐! 왜 우리를 이끌어 냈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휩쓸려, 자신들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망각하였다(12절).
모세의 권면 :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13-14절)
두려워 하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휩쓸려, 자신들을 위해 행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을 잊었고, 자신들을 위해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도 잃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한다. 모세는 두려워 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일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가만히 서서(13절), 잠잠히 있으며(14절)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오늘 나를 위하여 행하시는, 오늘 나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권면하는 내용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바이다(13-14절).
정리
오늘의 말씀은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승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말씀이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았고, 우리를 위해 싸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 자들이다. 곧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입은 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삶 속에 닥쳐온 일들을 보며 낙담하고 두려워 한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닌 지는 우리의 안중에 없다. 그저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만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두려움을 버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까지도 말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오늘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모든 일과 우리를 위해 죄와 죽음과 싸우셨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위로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는가? 그렇다면 가만히 서서, 잠잠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보자.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셨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자.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잊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