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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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279장/280장)
찬양(279장/280장)
1.결신자들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2. 전교인한마음축제를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거룩하고 복된 시간,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기 전 온 성도가 한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모아 올려드리는 세 가지 기도의 제목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첫째, 새롭게 주님을 영접한 결신자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합니다.이제 막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의 첫걸음을 뗀 귀한 영혼들을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세상의 거센 바람과 유혹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들의 심령에 말씀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려 날마다 믿음이 굳건하게 자라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든든한 영적 가족이 되게 하옵소서.
둘째, 전교인 한마음 축제를 위해 기도합니다.주님, 다가오는 축제가 단순한 교제나 행사를 넘어, 우리 교회가 성령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는 기쁨의 천국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성도들 사이에 막혀 있던 보이지 않는 담이 모두 무너지게 하시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사랑과 웃음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준비하는 모든 손길 위에 하늘의 지혜와 기쁨을 더하여 주시고, 단 한 사람도 소외됨 없이 온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연합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셋째,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을 위해 기도합니다.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 누워 긴 밤을 지새우며 눈물짓는 사랑하는 환우들을 찾아가 주시옵소서. 주님의 피 묻은 치유의 손으로 그들의 아픈 환부를 어루만져 주시고, 뼈를 깎는 통증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늘의 위로와 평안으로 그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모든 병든 세포가 깨끗하게 낫는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속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의 성전에서 기쁨으로 함께 예배하게 하옵소서.
이제 닫혀 있던 우리의 영적 귀를 열어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삶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고 기억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본문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난 시간 우리는 스가랴 1장 1절을 통해 절망의 폐허 속에 주저앉아 있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묵상했습니다.
주전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지 약 18년, 그러나 성전 건축은 16년째 중단된 채 잡초만 무성하던 주전 520년의 캄캄한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사건이 되어 뚫고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은 그 침묵을 깨고 들려온 말씀의 핵심이자 스가랴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와 그 속에 감춰진 맹렬한 사랑의 초대를 깊이 파고들고자 합니다.
1. 조상들에게 임한 정당한 진노 (2절)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스가랴 1:2).
스가랴서의 서론이자 전체 예언의 서막을 여는 하나님의 첫 음성은 뜻밖에도 '진노'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심히 진노하였느니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으로 볼 때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사 '카차프(קָצַף)'와 그 명사형인 '케체프(קֶצֶף)'가 나란히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말을 두번 연속으로 쓰는 그 강조는 우리가 앞서 말씀을 나눈바가 있습니다.
이 진노를 두번 반복해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극렬하고 맹렬했는지를 문법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무거운 단어로 백성들을 대면하셨을까요?
이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켜 백성들을 주눅 들게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진노는 감정적인 짜증이나 즉흥적인 화가 아니라,
언약을 파괴한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법적이고 정당한 반응입니다.
고대 근동의 언약 문서들에 따르면, 종속국이 종주국을 배반할 때 임하는 필연적 결과가 바로 '언약의 저주'이며, 이스라엘에게 그것은 바벨론 포로라는 처참한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지자가 이 무거운 과거를 먼저 꺼낸 이유는 현재 귀환 세대가 처한 위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해 자신들이 징벌을 받고 있다는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이 조상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16년 동안이나 성전 건축을 방치한 채 자기 집을 꾸미는 일에만 몰두했던 그들의 영적 냉담함은 조상들의 불순종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2절의 선포를 통해 "너희는 지금 조상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현재적 경고를 날리고 계신 것입니다. 진노의 실재를 직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회개의 시급성도 결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만군의 여호와의 삼중적 권위 (3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1:3).
하나님은 진노의 선언에 이어 곧바로 선지자에게 백성들을 향한 위임 연설을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3절 한 구절 안에서 유독 반복되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야훼 체바오트, יְהוָה צְבָאוֹת)'라는 칭호입니다. 단 한 절 안에 이 호칭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체바오트(צְבָאוֹת)'는 천상의 군대, 즉 하늘의 모든 군세를 이끄시는 총사령관이자 우주의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귀환 공동체는 눈앞에 보이는 페르시아 제국과 다리오 왕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습니다.
제국의 주권 아래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가는 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는 단순한 예배용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어떤 제국보다 위에 계신 진짜 왕이 지금 너희를 부르고 있다"는 신학적 대항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는 이 초청의 배후에 우주의 주인이신 당신의 권위가 서 있음을 삼중적으로 확증하십니다.
3절의 첫머리에서 권위의 근거를 밝히고, 중간에서 약속의 인을 치며, 마지막에서 그 선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못 박으십니다.
이것은 패배주의에 젖은 백성들에게 "내가 돌아가리라 약속할 때, 나의 임재는 단순한 감정적 화해가 아니라 천상 군대를 거느린 우주적 통치자의 실효적 다스림의 회복이다"라는 소망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우리는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얼굴을 비추시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세상의 권세에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권세들을 인정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 입니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권세를 인정하여 세상을 통치하게 하신분도 하나님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슈브(שׁוּ브), 언약적 상호성의 신비 (3절)
3절의 가장 핵심은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언약적 상호성'에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슈브(שׁוּב)'는 구약 전체에서 1,000번 이상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회개의 언어입니다.
이 '슈브'는 단순한 감정적 뉘우침이나 슬픔을 뜻하는 '나함(נָחַ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슈브는 의지적이고 전인격적인 '방향 전환'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제국 질서와 타협하며 달려가던 그 길에서 완전히 멈추어 서서, 내 삶의 나침반을 180도 하나님께로 고쳐 잡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3절의 구절을 잘못 읽으면 마치 인간이 먼저 공로를 쌓아야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율법주의적 조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깊이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신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선행적인 은혜입니다.
이미 하나님 쪽에서 관계의 문을 열어두고 계셨기에 그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슈브'와 인간의 '슈브'가 마주치는 이 지점은 신명기 30장에서 모세가 포로 상황을 내다보며 예고했던 그 언약의 성취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면(슈브)" 복을 주시겠다던 그 약속이 지금 귀환 세대 앞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돌이킴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이미 우리를 향해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던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의 일상 한복판으로 임재하시어 그분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4. 일상의 성소 재건과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도 16년 동안 멈춰버린 예루살렘의 성전 터와 다른가요?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질병과 재정의 무거운 장벽 앞에서 기도는 멈추고 영적인 냉담함만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진정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내 삶은 여전히 이 모양인가"라며 조상들처럼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그 굳어진 마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조상들이 실패했던 그 길을 따르지 마라. 세상 제국의 질서에 굴복하며 자기 안위만 챙기던 그 걸음을 멈추어라."
회복은 눈에 보이는 성전 건물을 다시 올리는 기술적 작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다시 고정하는 '관계의 재건'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진 뒤에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그분께로 시선을 돌리는 그 순간,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로 돌아오십니다.
2절의 맹렬한 진노 선언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이유를 깨닫게 하시려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영적 방향을 점검합시다.
세상을 향해, 탐욕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의 안위만을 향해 휘어져 있던 내 마음의 화살표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로 180도 돌이킵시다.
그때 비로소 16년의 침묵이 깨지고, 하늘 군대를 거느리신 통치자의 실효적인 다스림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 위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시고 먼저 손 내미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정직한 '슈브'로 응답하여, 관계의 회복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하늘의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만군의 여호와,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성전은 멈춰 서고 소망은 끊어진 것 같던 그 폐허 위로, 다시금 생명의 말씀을 뚫고 들어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16년이라는 기나긴 침묵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고 탄식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는 곧 우리를 살리시려는 맹렬한 사랑의 초청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진짜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시선을 고정하기를 원합니다. 단순한 후회를 넘어 삶의 방향을 180도 하나님께로 고쳐 잡는 '슈브'의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돌이킬 때, 이미 우리를 향해 팔 벌려 달려오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을 마주하는 회복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정성껏 구별하여 예물을 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오니, 이 예물이 쓰이는 곳마다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드린 손길과 그 가정 위에 복을 더하셔서, 정하신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평생토록 간증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기억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당히 승리하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