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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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5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간밤에도 저희를 지켜주셔서, 오늘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 앞에서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염려와 복잡한 생각들을 이 새벽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길 원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삶의 무게와 고민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마음에 주님의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만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일천번제 예물을 드린 손길이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그 중심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일상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헌금을 드린 손길 위에도 함께 하셔서, 그들의 삶에 감사의 고백이 계속 이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야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사람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마음도 움츠러들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게도냐 교회는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 있었고,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향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의 형편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 큰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첫째는 박해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고, 빌립보 교회 역시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서 그들의 상황을 “환난의 많은 시련”이라고 표현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극심한 가난이었습니다. 당시 마게도냐 지역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광산 산업으로 어느 정도 번성했던 곳이었는데,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많은 자원과 이익이 로마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 무거운 세금 부담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믿음 때문에 고난도 받고 있었고, 삶의 형편도 매우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마게도냐 교회를 설명하면서 ‘은혜’를 이야기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형편이나 환경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부터 그 은혜가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2절을 다시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한다”고 바울이 선포합니다.
2절에서 일반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을 설명하면서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것은 “넘치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입니다.
보통은 어려움이 있으면 마음도 함께 무너집니다. 형편이 힘들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세상은 "곳간이 넉넉해야 인심도 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게도냐 교회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형편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극심한 가난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삶에서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가 흘러나왔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그들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세상은 “있어야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형편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의 손에는 많은 것이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풍성함이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는 그들의 헌신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이 자원하여 드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강요한 것도 아니었고,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참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기꺼이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억지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고, 부탁을 받았으니까 하고, 분위기 때문에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억지로 움직이는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지치게 되고, 부담도 쌓이게 되면서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합리적인 계산의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계산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을 계산해서 드리면 힘에 지나도록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선을 만들어 놓고 거기까지만 드립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기 형편만 계산하며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리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이 현실의 어려움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더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자기 계산 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그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게 만듭니다.
그래서 4절에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보통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물러서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의 형편이 어려우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는 달랐습니다. 바울이 부탁해서 억지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일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먼저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이 일을 단순히 돈을 내는 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은혜”라고 부르고, 또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을 돕는 일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의 기회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담스럽다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일에 참여할 수 있기를 사모했고,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억지로, 혹은 체면 때문에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의무감으로 하는 헌신은 결국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신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바로 그런 은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게도냐 교회의 헌신은 바울도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마게도냐 교회들이 어느 정도 헌금에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헌신의 깊이는 바울의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러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이 오늘 본문 5절에 있습니다.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이 그토록 풍성했던 이유는 단순히 원래 헌금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이 가진 것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순서입니다. 먼저 자신을 드리고, 그 다음에 가진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헌신은 점점 힘들어 집니다. 자기 자신은 드리지 않은 채 가진 것만 떼어 드리려 하면, 마음은 점점 인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린 사람은 다릅니다. 마음의 중심이 이미 하나님께 향해 있기 때문에, 가진 것을 드리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마치 샘이 열리면 물이 흘러나오듯, 하나님께 드려진 삶에서는 헌신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먼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삭개오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삭개오의 마음을 만지자, 먼저 삭개오 자신이 주님께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가 가진 것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는 헌금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이고, 시간을 드리는 것도, 마음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께 드려져 있는가,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그러기에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당신은 얼마를 드리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누구에게 드려져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자신의 의지나 열심만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살아갔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면 헌신은 점점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헌신은 다시 기쁨이 됩니다.
아마 성도님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러 예배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무 좋고 감사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격이 조금씩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이 기쁨이라기보다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배도 해야 하니까 드리고, 기도도 해야 하니까 하고, 봉사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기쁨은 사라지고, 신앙은 점점 지치고 메말라 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라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언제나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몸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에 앉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찬양이 잘 나오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입술을 열어야 할 때가 있고, 힘이 없어도 순종으로 봉사의 자리에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도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힘겹게 무릎 꿇었던 기도의 자리에서 다시 은혜를 회복하게 하시고, 겨우 드렸던 예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다시 만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친 마음에도 다시 은혜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다만 우리의 신앙이 계속 의무감과 억지 속에만 머물러 있게 되면, 결국 마음은 점점 지쳐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해야 하니까 움직이는 자리에서, 은혜 때문에 자원하여 움직이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닙니다. 다시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살아 숨 쉬는 것, 이 새벽에 일어나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다시 우리 마음에 차오를 때, 헌신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교회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효율과 편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내게 부담이 적고 편해야 움직이기 쉽습니다. 이익이 되면 가까이하고, 손해처럼 느껴지면 쉽게 물러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방식이 어느새 우리의 신앙에도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예배도, 봉사도, 섬김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는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물론 삶의 균형과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때로 계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리까지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힘들어도 기도했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드렸고,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내어 섬겼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여유로운 사람들이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평범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에 붙들렸을 때, 가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새로운 결심이나 더 강한 의지가 아닙니다. 바로 이 은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것을 먼저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우리의 시간도 물질도 삶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때로는 지치고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순간에도 우리를 붙드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십니다. 인심은 단지 곳간이 넉넉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눈을 뜬 이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리는 것, 그리고 오늘 내게 주어진 작은 시간과 마음을 이웃에게 기쁨으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 새벽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은혜로 채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회처럼 형편보다 은혜를 바라보며,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환난과 가난 가운데서도 은혜로 살아갔던 마게도냐 교회의 모습을 통해,우리의 삶도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신앙이 익숙함이 되고,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섬김이 기쁨보다 부담으로 남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먼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삶을 주님께 맡겨 드리오니 하루의 걸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옵소서.
형편과 환경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바라보게 하시고,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마게도냐 교회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