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나는 비참한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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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러분 ‘지킬 앤 하이드’라는 소설을 아십니까? 19세기 고전 소설인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연극으로 공연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는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에 대한 고민을 고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날카롭게 파헤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설교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인 ‘지킬 박사’는 사회에서 존경받고 평판이 좋은 의사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인간의 선악’을 분리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로 인해 지킬 박사 내면의 악으로 이루어진 ‘하이드’가 이중 인격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낮에는 훌륭한 의사로 살아가지만, 밤에는 어린 아이를 짓밟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하이드’라는 악마로 변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인간 모두의 내면에 지킬과 하이드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꿰뚫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선한 의사인 ‘지킬’로 살아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그 내면에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인 ‘하이드’와 같은 악함을 품고 고뇌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지킬박사처럼 선함과 악함에 대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바울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바울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며,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을까요? 이 부분을 함께 묵상해보며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율법이 죄냐?

오늘 읽은 본문에 대한 내용에 앞서, 본문 이전에서 바울이 전하고 있는 내용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를 통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었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길 소망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영광스러운 구원을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복음을, 그리고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알고 경험하길 원하는 복음의 진수를 로마서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6장부터 7장까지에서 4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식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4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가장 마지막 답변에 대해서 자신의 자전적 견해를 바탕으로 부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그 4번째 질문은 바로 ‘선한 율법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살인자인가?’ 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이 되는 4번째 질문이 담겨있는 13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롬7:13)
바울은 율법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선한 율법이 우리에게 사망이 된 것이 아니라 죄가 나를 죽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선한 율법은 우리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의 법으로 정죄하고 평가함으로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분명한 악으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지점에서 바울은 선한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는 자신의 행동과 그리고 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거입니다.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 (14-20절)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4-17)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처럼 자신이 미워하는 악을 행하도록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재된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어기는 주체를 ‘죄’로 돌리면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지속적으로 행하게 영향을 미치는 실체가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도리어 그것을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바울이 ‘율법’을 말할 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반복해서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 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18-20절에서까지도 반복여 언급하면서 자신은 율법을 지켜 행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8-20)
그렇습니다. 선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지는 순간, 그 율법대로 살고자 하는 원함이 그 사람에게 부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고 선한 행동을 하고 싶은 소망과 동시에, 죄와 악을 행하길 원치 않는 마음이 존재하게 됩니다. 바울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법대로 살고 싶은 원함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으며, 그는 극단적으로 자신 안에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이러한 인간의 죄성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증명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그들은 그 법도들 지키고 행하기로 서원하였지만(출 19:8, 출 24:3,7), 구약을 통틀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실패했다고 하나님께 평가 받았습니다. 바울은 7장에서 자신이 개인적이나 의식적으로 체험한 것 처럼 글을 썼지만, 여러 신학자들이 여기에서 말하는 ‘나’는 이스라엘과 결속한 바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이 말씀을 본다면 이스라엘 민족이나 바울이 실패한 것 처럼 하나님의 법 앞에 선 모든 인간은 마땅히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실패와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반복적으로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게 되는것을 보게됩니다. 이처럼 죄의 영향력으로 악을 범하는 문제와 실제는 중생을 경험하기 전에 사람들 뿐 아니라 중생한 사람들, 우리와 같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거듭난 성도라도 마음에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도 죄가 남아서 역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었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 성도들이지만, 실제 모습은 여전히 연약하고 육신적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은 원함이 우리 안에는 항상 존재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넘어짐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신실하여서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열심히 강한 성도일수록 이 실패는 도드라지며, 이것이 반복되면 지치기도 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 끝에 바울은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결론 내렸을까요?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21-24절)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1-24)
여기에서 바울은 원하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죄로 인해 지속적으로 악을 범하는 자신에게 ‘곤고한 사람’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여기에서 ‘곤고한’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와닿지가 않는데요, 원어로 탈라이포로스(ταλαίπωρος)로 표기된 이 단어는 ‘비참하다, 멸망하다, 초라하다’ 등의 의미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죄의 영향으로 인해 원치 않는 일들을 행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다고 표현하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563년도에 쓰여져서 지금까지 개혁교회가 보편적으로 배우는 신앙고백이 되어 왔습니다. 이 교리문답은 총 129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앞에 1~2문은 나머지 문항을 다루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공통적으로 전제해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내가 내것이 아니요, 몸과 영혼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위해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3~11문)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 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12-85문)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86~129문)
2문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3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한다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과 영생의 삶의 출발점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영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비참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비참한 자로 정의를 내린 자만이 내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을 멈추고 철저하게 외부에서 오는 도움과 구원을 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겸손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살펴주시고 참된 위로를 우리에게 주실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선과 악의 이중성 앞에서 무능력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비참함’의 고백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은 스스로 비참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지만, 그러한 바울은 참된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는 진정한 복된 인생을 사는 자가 아니었을까요?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 때문에 고뇌하던 바울은 결국 자신은 비참한 존재라고 결론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마지막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자라는 고백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위로의 문을 여는 고백이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가르치듯,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깊이 깨닫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유일한 위로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열심을 다해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다가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한 성도님들 계십니까? 스스로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는 비참한 자임을 고백하며, 우리의 유일한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는 믿음이 그 안에 새로워지길 기도합시다. 우리가 자신의 비참함을 정직하게 대면하며 주님앞에 겸손히 도움을 구할 때, 비로소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구원은 우리 삶에 실제적인 능력이 될 것입니다.
비참한 자이지만, 비참한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위로를 체험하는 복된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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