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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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장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오늘 본문은 기근으로 인하여 요셉의 형제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 요셉을 만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절부터 보시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 기근이 오자, 야곱은 아들들에게 왜 서로 바라만 보고 있느냐 하면서 책망하는 듯한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어 2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야곱이 듣기에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사실을 알고도 아들들이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들들에게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애굽에 내려가 식량을 사 오라고 합니다. 그만큼 당시 기근이 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 사실을 몰랐기에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는지 본문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야곱이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고 한다면, 분명 그들도 알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3절에 야곱의 아들들이라 하지 않고 갑자기 요셉의 형 열 사람이 곡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
요셉의 형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가, 예전에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팔아넘겼던 기억과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 야곱은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베냐민에게 재난이 미칠까봐 하는 두려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냐민을 요셉의 아우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라헬에게서 난 친형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베냐민을 보내지 않는 것은 요셉을 향한 편애가 베냐민에게 옮겨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베냐민에게 재난이 미칠까봐 하는 두려움은, 자신이 사랑했던 요셉을 잃은 일이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그 슬픔이 야곱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앞서 37장에서 보여졌던 야곱의 가정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편애와 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5절에서 다시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음을 기록하는데,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는 또 다른 호칭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개인적인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앞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 안에서 주신 이름이자, 한 민족을 대표하는 공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한 가정이 기근으로 인하여 생존 위기에 놓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와 뜻에 따라 허락되어진 것이며, 배후에서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주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려주고 있습니다.
6절부터는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간 과정은 생략한 채, 바로 요셉과 만나게 된 모습으로 전환이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는데, 이는 겉으로 보기엔 형들이 곡식을 사기 위하여 취한 행동이라 볼 수 있지만,
결국 요셉이 꾸었던 꿈이 형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과 그들이 계획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현실이 되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이러한 형들을 보고 자신의 형들인 줄 알아보았으나 모른 척 하고 오히려 엄한 소리로 어디서 왔는지를 묻습니다.
요셉과 달리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마 외적으로 요셉이 애굽식의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과 또한 23절에 나와 있듯이 통역자를 통해 말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또한 본인들이 저질렀던 범행으로 말미암아 요셉이 죽었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고,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방인에 불과한 자가 애굽의 총리로 서 있다라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어 요셉은 형들의 모습을 보고 꿈을 기억하게 되는데, 지금 일어난 일이 단순히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형들임을 알고 있음에도 형들에게 정탐꾼이라고 몰아가며 압박을 주기 시작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이 형들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복수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의미에서 므낫세라 지었고, 또한 이 꿈의 성취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그런 의도라고 보기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이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그랬는지 본문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요셉이 형들에게 정탐꾼들이라고 한 것은, 형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의 추궁에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을 요셉의 종이라 낮추고, 또한 한 사람의 확실한 아들들이며, 단순히 곡물을 사러온 자들이라고 즉각적으로 정탐꾼임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형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형들에 대해 단정짓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의 형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사용한 확실하다 라는 단어는 원어로 정직하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의 형들은 지금 자신들을 정직한 자들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비록 지금 정탐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사실이기에 정직하다라고 여길 수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 요셉의 형들이 했던 행태들을 본다면 정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요셉이 형들을 오히려 추궁하는 모습은, 형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13절에서 자신들의 무죄와 결백을 입증하고자 자신들의 신분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들은 분명 정직한 자들이라고 주장했지만, 형제들에 대해 설명할 때 “하나는 없어졌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형들이 정탐꾼들이라고 한 말이 이것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열두 형제라고 하면서도 현재 열명만 있고 한명은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 정황과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며 너희의 신분을 어떻게 믿느냐 라는 차원에서 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이렇게 말한 궁극적인 이유는, 이 형들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요셉을 팔아넘긴 당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 정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마 형들 입장에서는 현재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에 자신들이 동생에게 저지른 만행을 솔직히 말하면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봐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형들은 궁극적으로는 요셉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기에, 요셉은 형들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막내 아우를 데려와야 한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형들이 스스로 정탐꾼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말하며 형들 모두 삼일 동안 가둠으로써 오늘 본문이 마무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여러 삶의 정황과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가 숨기고 외면하고 있었던 죄 문제들을 드러내시고, 직면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를 통해 심판하시거나 죄책감을 갖도록 정죄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시어, 죄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본성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합리화하고 숨긴 채 살아가려 하며, 또한 죄인지 의식하지 못한 채 영적 무지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이유로, 현재의 삶에는 그러한 죄들이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곤 합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요셉의 형들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러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요셉 앞에서 자신들은 정직한 자라고 당당히 말하는 죄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정직한 자들이라고 하면서도, 저질렀던 죄에 대해 숨기고 왜곡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요셉의 형들은 단순히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인도하신 결과였으며,
요셉이 비록 겉으로는 형들의 말이 진실인지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들, 그 일련의 과정은 결국 자신들이 숨기고 왜곡하고 있던 죄에 대해 직면하도록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로로 사용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숨기고 왜곡하였지만, 결국 이를 통해 요셉의 형들은 죄의 대해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실태를 점점 바라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삶 가운데 여러 상황들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간과하고 잊고 있었던 죄들을 생각나게 하심으로써,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우리가 얼마나 죄에 대해 무감각한 채로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자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기에, 이것은 분명 우리에게 있어 큰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이를 깨닫게 하신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엎드려 더 은혜를 갈망하고 긴구하게 됩니다.
더 이상 죄를 숨기고 살아가려기보다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며,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간구하기는, 하나님께서 삶의 여러 상황들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죄와 실체를 드러내실 때, 그 상황에서 수치와 위기를 모면하고자 이를 계속 숨기고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 말로 영적 무지와 무감각속에 놓여있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는 가장 귀한 은혜의 통로임을 기억하시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우리가 숨기고 잊고 있었던 죄들을 생각나게 하시어 우리 안의 죄성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부교역자들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영육간의 강건함과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팜피학교를 비롯하여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역들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세우고, 또한 아버지의 나라를 확장하고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리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