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운데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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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엡 5:1-2
Ephesians 5:1–2 NKRV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Ephesians 5:1–2 ESV
Therefore b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 And walk in love,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제목: 이름 : 사랑받는 자녀 본문: 에베소서 5장 1절 ~ 2절
[도입] 사랑의 모방과 ‘이름’의 의미
환영: 새신자, 오랜만에 오신 분, 기존 성도 모두를 향한 환영
예화 (시선 집중): 퇴근한 아빠의 품에 안겨 사랑을 듬뿍 받은 첫째와 둘째가, 넘어간 막내를 아빠의 모습 그대로 다독이는 장면 (두려움이 아닌 받은 사랑의 흘러나옴)
주제 연결: 아이들의 모습이 곧 본문이 말하는 "사랑받는 자녀"의 모습
‘이름’의 은유: 태어나서 가장 먼저 거저 받는 것. 자격증이 아닌 '사랑의 흔적'
방향 제시: 이 이름의 근거가 된 십자가로 거슬러 올라감
[대지 1] 향기로 남은 사랑 — 십자가
성경적 근거 (2절 하반절):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내어주심"
십자가 사랑의 3가지 특징:
우리를 위해: 막연한 인류가 아닌, 이 자리에 앉은 '나 한 사람'을 위한 사랑
내어주셨다: 억지로 빼앗긴 것이 아닌, 스스로 건네신 사랑
향기가 되도록 (εἰς ὀσμὴν εὐωδίας): 단회적 사건이 아닌, 명절날 어머니 집의 음식 냄새처럼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닿아있는 흔적
[대지 2] 사랑받는 자녀 — 새 이름과 머무름
9성경적 근거 (1절):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십시오"
전제 (τέκνα ἀγαπητά): '본받으라'는 명령 이전에 '이미 사랑받는 자녀'라는 전제가 먼저 옴
청중별 적용:
새신자: 무언가를 행해서 자녀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님을 선포
기존 신자: 신앙 연수가 길어질수록 '행함(봉사, 흠 없음)'으로 자격을 증명하려는 함정에서 벗어날 것을 권면
예화: 고아로 자라며 "나는 누구의 자녀인가" 질문하던 아버지가 십자가 앞에서 '사랑받는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는 이름을 얻게 된 이야기
[대지 3]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 — 흘러나옴
성경적 근거 (2절 상반절):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ἐν ἀγάπῃ περιπατέω)"
사랑의 방식: '사랑하려고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머무는 것'
서두 예화의 재등장 (본받음, μιμηταί): 결심하고 흉내 내는 연기자가 아니라, 듬뿍 받은 사랑이 동생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갔던 서두의 아이들 모습
회복의 원리: 더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
[결론 및 초청] 다시 그 향기 앞에 머무르십시오
말씀 요약: 십자가의 향기로운 사랑이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라 부르며, 그 사랑이 흘러가게 함
적용 및 결단:
이번 한 주, 다시 그 십자가의 향기 앞에 머무를 것
가장 사랑하기 힘든 한 사람을 향해 사랑을 '짜내지 말고', 먼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
봉합 기도: 행함의 짐을 내려놓고 흘러나오는 사랑 안에서 걷게 해달라는 기도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새신자분. 오랜만에 다시 오신 분.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오신 분. 모두 환영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를 치열하게 보내고 오신 여러분께. 어느 가정의 짧은 저녁 풍경 하나를 나누며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밖에서 무거운 화물을 관리하고, 커다란 트럭을 운전하며 고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퇴근길 문을 여는 순간. 달려 나오는 세 아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명 한 명 번쩍 안아줍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거실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막내가 놀다가 넘어져 엉엉 울고 있을 때. 아빠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첫째와 둘째가 먼저 다가가 무릎을 굽힙니다. 그리고 평소 아빠가 했던 그 부드러운 말투와 손길을 똑같이 흉내 내며 동생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동생을 돌보지 않으면 혼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매일 아빠에게 넉넉하게 받는 그 사랑이 내면에 가득 차 있기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본받아, 동생에게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를 부르는 한 가지 "이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이름을 얻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숨도 아니고 젖도 아닙니다. 이름입니다.
여러분이 그 이름을 부탁한 적이 없어요. 여러분이 자격을 갖추기 전에.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정한 그 한 단어. 누군가가 먼저 여러분의 이름을 정해 두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게 그래요. 부르기 전에 사랑이 먼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름은 자격증이 아니라 사랑의 흔적입니다.
오늘 짧은 본문을 함께 펴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과 2절. 딱 두 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내어주신 것 같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본문이 오늘 우리를 부르는 이름. "사랑받는 자녀."
그리고 이 이름은 거저 떨어진 이름이 아닙니다. 한 분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셨고. 그 자기 내어주심이 향기처럼 하나님께 올랐어요. 구약의 모든 화목 제사가 가리키던 마지막 향기. 그것이 오늘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거꾸로 들어갑니다. 이 이름의 근거가 된 자리. 십자가에서 시작합니다.

<대지 1: 향기로 남은 사랑 — 십자가>

본문 2절 후반을 다시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내어주셨다."
여기서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말. 헬라어로 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εἰς ὀσμὴν εὐωδίας)라고 해요. 직역하면 "향기가 되도록"입니다.
구약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노아의 번제와 성막의 화목 제사 위에서 향이 올라갔습니다. 깨진 관계를 다시 잇는 표였어요.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주심은 그 모든 화목 제사의 마지막 향기였습니다.
향기가 되도록 자기를 내어주셨다. 이게 본문의 첫 번째 그림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세 겹입니다.
첫째. "우리를 위해"입니다. 인류 전체를 향한 막연한 사랑이 아니에요. 지금 이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새신자 한 분. 오래된 성도 한 분. 그 한 사람을 위한 사랑입니다.
둘째. "내어주셨다"입니다. 빼앗기신 게 아닙니다. 스스로 건네신 사랑입니다. 이것을 본문은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주심"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향기가 되도록"입니다. 한 번 일어난 그 사건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2,000년이 지난 오늘. 그 향이 이 예배당 안에까지 닿아 있습니다.
신자가 되었다고 십자가의 향기를 졸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그 향기를 다시 맡아야 합니다.
명절날 어머니의 집에 들어서 본 적 있으세요? 문을 여는 순간 풍기는 음식 냄새가 있어요. 밥을 먹기도 전에. 그 향만으로도 알아요.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여러분, 십자가도 이와 같습니다. 한 번 일어난 그 사건이 향기로 남았어요. 그래서 오늘도. 그 향이 우리 곁을 스치고 있습니다.
이게 본문이 말하는 "향기로 남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그 향기는 지금도 우리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대지 2: 사랑받는 자녀 — 새 이름과 머무름>

본문 1절을 보십시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십시오."
본문 어순을 잘 보세요. "본받는 자가 되라"는 명령보다. 먼저 한 단어가 나옵니다. "사랑받는 자녀로서."
이건 명령이 아니에요. 전제입니다. 헬라어로 테크나 아가페타(τέκνα ἀγαπητά). "이미 사랑받고 있는 자녀"라는 뜻이에요.
무언가를 해서 자녀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았기에 자녀입니다.
새신자분께 먼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신앙을 막 시작하면서 이런 두려움이 있으세요? "내가 정말 자녀 자격이 있을까." "신앙이 어설픈데 받아주실까." "아직 죄가 많은데 자녀라 불릴 수 있을까."
본문은 그 두려움 앞에 어순을 정반대로 놓습니다. 자격이 있어 자녀가 된 게 아니라. 이미 자녀로 부르셨기에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자녀의 이름이 행함 위에 서 있지 않아요. 자녀의 이름은 그분의 사랑 위에 서 있습니다.
오래된 신자분께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래된 신앙 안에서도 이 어순이 자주 뒤집힙니다. 봉사한 만큼 사랑받는다고. 흠 없는 모습일 때만 자녀답다고. 한 주 동안 잘 살았을 때만 떳떳하다고.
본문은 그 모든 어순을 다시 십자가 앞으로 되돌립니다. 받은 자녀이기에 사랑받는 자녀처럼 살 수 있는 것이지. 사랑받는 자녀처럼 살아내야 자녀가 되는 게 아닙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저희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나셨습니다. 일곱 살 무렵 부모님을 잃으셨어요. 그 후로는 친척집과 보육원을 오가며 자라셨습니다.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한 가지 질문이 있으셨다고 해요. "나는 누구의 자녀인가."
그분이 하나님을 만나신 어느 날.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주심 앞에서. 한 가지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사랑받는 자녀." 평생 그 이름 하나가. 흔들리지 않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 일상이 흔들릴 때. 돌아가야 할 자리는 나의 '행함'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그 이름'입니다. 새신자에게는 처음 받은 그 이름. 오래된 분께는 익숙해서 잊혀진 그 이름. 오늘 본문이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놓아둡니다.
그리고 본문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그 이름을 받은 사람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대지 3: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 — 흘러나옴>

본문 2절 전반을 보십시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헬라어로 엔 아가페 페리파테오(ἐν ἀγάπῃ περιπατέω). 직역하면 "사랑 안에서 걸어간다"입니다. "사랑하려고 애써라"가 아니에요.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라"입니다.
작은 단어 차이 같지만.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본문 흐름을 다시 보세요. 1절은 말합니다. 너희는 사랑받는 자녀. 2절 전반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 2절 후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먼저 사랑하신 것 같이.
명령이 마지막에 있는 게 아니에요. 받은 사랑이 먼저고. 흘러나오는 사랑이 그 다음입니다. 이건 짜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지친 분들은. 대개 사랑하려고 오래 애써오신 분들이에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봉사 자리에서. 다 했는데도 늘 부족하고. "왜 나는 더 사랑할 수 없을까." 자책하다 지친 적. 혹시 이번 한 주에도 있으셨습니까?
본문이 말하는 사랑은 짜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흘러나오는 사랑입니다. 받은 만큼 흐릅니다. 채워진 만큼 흐릅니다. 머문 만큼 흐릅니다.
본문이 쓴 또 하나의 단어를 보십시오. "본받는 자." 헬라어로 미메테스(μιμηταί)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그 가정의 저녁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아빠의 말투를 따라 하며 넘어진 동생을 안아주던 첫째와 둘째 아이들. 그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아빠를 흉내 내는 연기자가 아니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매일 '오늘부터 아빠를 닮아야지' 결심한 것도 아닙니다. 같이 살아가다 보니, 아빠 품에 안겨 그 사랑을 듬뿍 받다 보니. 어느 날 동생을 향해 아빠의 말투가 흘러나오고, 아빠의 표정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본받음은 결심이 아니라 닮아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회복 방향은 거꾸로입니다. 더 노력해서 더 쥐어짜 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먼저 받아서, 그 사랑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새신자에게도 기존 신자에게도. 사랑하려다 지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먼저 그분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받은 사랑만이 흘러나옵니다."
이게 본문이 그리는.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의 진짜 그림입니다.

<결론과 초청>

말씀을 맺습니다.
한 분이 우리에게 향기로 남은 사랑을 흘려보내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주심이 그 이름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생을 안아주던 그 아이들처럼, 사랑 안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이 말한 그 "우리" 안에. 새신자분도, 오래된 성도님도, 설교하는 저도 모두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한 주. 한 가지만 마음에 두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그 향기 앞에 머무르십시오.
새신자분께는 처음 맡은 향기가 더욱 짙어지는 한 주가. 오래된 분께는 익숙해져 무뎌진 십자가의 향기가 다시 살아나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떠올려보십시오. 이번 한 주 가운데 사랑하기 가장 힘들었던 한 사람. 가족, 직장, 교회 안의 어느 한 사람.
그 사람을 향해 억지로 사랑을 짜내려 하지 마십시오. 먼저 십자가의 향기를, 그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십시오. 내 안에 채워진 사랑이 흘러갈 자리. 우리의 일상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잠시 한 줄 기도로 말씀을 봉합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그 향기 앞에 우리가 다시 섰습니다. 새신자에게는 처음 받은 향이 더 깊어지게 하시고. 오래된 자녀에게는 무뎌진 향이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사랑받는 자녀'라는 이름이 무거운 행함의 짐이 아니라 참된 안식이 되게 하시고. 이번 한 주, 억지로 짜내는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께 듬뿍 받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랑 안에서 걷게 하소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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