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구원받았나?

2026 새롭게하는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신.311페이지
Ephesians 2:1–7 NKRV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서론】

여러분은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나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믿게 되셨습니까?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까? 내가 먼저 결단했기 때문입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은혜로 구원받았다" 고백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서 나의 노력으로 슬그머니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만큼 믿었으니", "내가 이만큼 충성했으니"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신앙은 감격에서 의무로, 은혜에서 종교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 밤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모두 원점으로 은혜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데려갑니다.

【대지 1】우리는 죽었었다

본문: 에베소서 2:1-3
Ephesians 2:1–3 NKRV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바울은 우리의 과거 상태를 딱 한 단어로 진단합니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입니다. 영적으로 약하다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의사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살리 실 수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의 환상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뼈들이 스스로 살 수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주 여호와의 말씀"이 임할 때만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마른 뼈들이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이 죽음의 상태를 세 겹으로 묘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허물과 죄 안에서 죽어 있었고(1절),
우주적으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지배받았으며(2절),
존재론적으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3절).
여기서 "본질상"이 중요합니다. 헬라어 φύσει(퓌세이), 태어날 때부터, 본성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본질이 본성이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죄인됨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시작부터 답이 없는 것이지요
마른뼈들과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 죽음의 자리에서 그저 죽어 있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Ephesians 2:3 NKRV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전에는 우리도 다"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래 믿은 사람도, 처음 믿은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죽었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우라가 받은 구원의 때에 우리는 그저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한다면, 황당한 이야기이지요. 죽은자가 무엇을 합니까?
죄인에게서 어떤 선한것이 나옵니다.
마른뼈가 나는 스스로 살아났다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자, 그렇다면 살리심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에베소서 2:4-5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대지 2】그러나 하나님이

본문: 에베소서 2:4-5
Ephesians 2:4–5 NKRV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 개역개정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원어인 헬라어 본문은 호이 데 데오(ὁ δὲ θεὸ) 로 4절을 시작합니다.
헬라어로 δέ(데), 우리말로 그러나라는 뜻 입니다.
주석가 앤드루 링컨은 이 δέ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두 마디" 중 하나라고 불렀습니다.
"But God 그러나 하나님이." 1절부터 3절까지 그려진 절망적인 실상, 죽음·지배·진노의 자녀라는 삼중의 어둠 위로, 이 한 마디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 50:20).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무덤에 앚히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행 2:24).
늘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야기가 절망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그러나"가 시작됩니다.
197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 남자가 차 안에서 통곡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찰스 콜슨(Charles Colson),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 특별보좌관이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를 "대통령의 실세"라고 불렀고, 정가에서는 "사악한 천재", "더러운 속임수의 달인"이라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닉슨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할머니도 밟고 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시간에 그는 동료 직원들의 기도와 C.S. 루이스의 책 한 권이 그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1974년 그는 워터게이트 관련 혐의로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한 일이 놀랍습니다.
다시 권력을 잡으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이 갇혔던 바로 그 감옥으로.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는 2012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 100여 개국 교도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성장했습니다.
"사악한 천재"가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까?
그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결단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잃고 차 안에서 통곡하던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그러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반전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분명히 말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구원의 출발점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여기 "함께"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6절). 이 세 동사는 각각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좌정에 우리가 연합되어 있음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우리가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5절 중간에서 갑자기 문장 구조를 깨뜨립니다. 참지 못하고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감격이 넘쳐서 문장 구조를 뚫고 나온 것입니다.
"답례나 공적에 근거하지 않는 순수한 증여(pure gift)"입니다. . 조건이 없습니다. 죽어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일방적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길 위에 쓰러진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의식이 없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자신의 피를 수혈해 주었고 그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나중에 살아난 사람이 "내가 수혈받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입니까?
의식이 없는 사람이 무슨 결단을 합니까?
우리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신 분이 계십니까? 그것은 어쩌면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의 노력으로 슬그머니 옮겨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이 말씀이 우리를 다시 원점으로 데려갑니다. 은혜입니다. 처음도 은혜, 지금도 은혜, 끝도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이 두 마디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ὁ δὲ θεὸ)
우리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그 시간, 가장 절망스러웠던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그러나"를 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그러나"의 증거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대지 3】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혀졌다

본문: 에베소서 2:6-7
Ephesians 2:6–7 NKRV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6절을 보십시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 입니까? 솔직히 우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그 대속하심을 통해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십니다.
이것은 미래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과거 시제로 말합니다.
"앉히으니."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이미 완성된 일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야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지위는 하늘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걱정이 있고, 세상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선언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몸이 어디 있든, 여러분의 지위는 이미 하늘에 있다.
왕자는 왕궁 밖에 나가 있을 때도 여전히 왕자입니다. 시장에 나가 있어도, 아프고 힘든 날에도, 그의 신분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몸이 아프고 돈도 없고, 자녀 걱정에 밤잠 못 이루어도, 우리의 신분은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혀진 자. 세상이 바꿀 수 있는 그러한 지위가 아닙니다.
그리고 7절입니다. 에베소서2:7
Ephesians 2:7 NKRV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높이신 것은, 오는 세대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영원히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주님의 것 주님의 자녀 입니다. 우리의 구원받은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한다는 뜻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이 말씀 앞에서 질문드립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이 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혀진 자"입니다. 이 정체성은 그 어떤 세상의 풍파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신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우리의 남은 날들을 통해서 여전히 은혜를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신바 되었으니,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빛과 소금으로 그 맛을 잃지 않고 빛을 잃지 않는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바울이 우리에게 선포한 복음을 세 문장으로 기억하십시오.
나는 죽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
오늘 밤 눈을 감고 이 고백을 한 번만 마음에 새기십시오.
나는 죽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허물과 죄로 철저히 죽어 아무런 소망이 없던 우리를 먼저 찾아와 살려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른 뼈와 같던 우리의 절망 위에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음을 오늘 이 밤 가슴 깊이 새깁니다.
주님, 우리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며 때로는 거친 삶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릴지라도, 우리의 자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마련되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어설픈 공로나 노력이 아닌,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그 벅찬 감격이 메마른 우리의 일상을 다시 흠뻑 적시게 하옵소서.
이제는 세상의 헛된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살리신 그 크신 사랑을 이웃의 삶 속으로 묵묵히 흘려보내게 하옵소서.
우리가 걷는 걸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 넘치는 향기가 배어나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맑은 빛과 짠맛을 잃지 않는 진실한 성도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