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Notes
Transcript
제목: 모순
본문: 창 43:1-15
주제: 하나님은 기근을 통해 우리 삶의 죄와 기근을 드러내신다. 붙잡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게 하신다.
[서론]
소설가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명의 쌍둥이 여인이 등장합니다.
얼굴은 똑같이 생겼지만 운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쌍둥이 동생은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넉넉한 돈, 다정한 남편, 잘 자란 자식.
삶에 먼지 한톨 묻지 않은 것처럼 안정되고 풍요롭습니다.
반면 쌍둥이 언니는 모든 것이 없습니다.
가난에 시달리고, 남편은 술버릇이 나쁘고 집을 자주 나갑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장 바닥에서 양말을 팔아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감옥에 갑니다.
오랜 세월 가출했던 남편은 치매에 걸린 채 돌아옵니다.
삶 전체가 마치 진흙탕 속에 처박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말은 충격적입니다.
결말을 스포하는 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게 평온했던 동생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풍요롭고 평온한 삶이 오히려 그녀의 영혼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반면, 비극 속에 살던 언니는 독하게 살아남습니다.
치매걸린 남편을 살리려고 의학책을 뒤집니다.
감옥간 아들을 구하려고 법을 공부합니다.
결핍이 사람을 무너뜨릴 것 같지만, 때로는 오히려 사람을 깨어나게 합니다.
풍요가 영혼을 잠들게 하고, 기근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지독한 역설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삶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영혼이 서서히 잠들어 갑니다.
하지만 삶의 기근이 찾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때 비로서 영혼이 깨어나고 살아납니다.
오늘 야곱의 집안에도 지독한 기근이 찾아옵니다.
과연 이 기근이 야곱의 집안에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본론1]
첫째, 삶의 기근은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요셉은 어느새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니,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은 스무개에 팔아넘긴 동생입니다.
그가 거대한 이집트 제국의 총리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20년 동안 그 일을 침묵해 왔습니다.
아버지를 속였고, 요셉을 잊으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기근은 그들의 평온한 삶을 흔들어 버립니다.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가지만 형제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버립니다.
다시 가려면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베냐민을 데려와야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형들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42장 21절입니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 것입니다.
평안한 때는 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먹고 살만하면 양심도 잠이 듭니다.
하지만 삶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기근은 단순한 식량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편안한 삶을 뒤엎으시는 것입니다.
자고있는 영혼의 이불을 집어 치우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근은 단순한 자연재해나 식량부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흔드시는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기근은 믿음을 시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삭에게 기근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룻기에서 기근은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는 배경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기근을 통해 일하십니다.
살다보면 물질의 기근이 찾아옵니다.
건강의 기근이 찾아옵니다.
관계의 기근이 찾아옵니다.
마음의 기근이 찾아옵니다.
기도가 마르는 영적 기근이 찾아옵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쩍쩍 갈라집니다.
풍성했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물 아래 숨겨졌던 오물들이 모두 튀어나옵니다.
버려진 캔들, 썩은 타이어, 엉켜있는 그물더미들.
물이 가득할때는 감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물이 마르면 감출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혼 깊숙이 숨겨왔던 추한 민낯을 드러냅니다.
나의 교만과 욕심들, 상처들, 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근은 절망의 신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회복의 신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바닥을 드러내시고 대청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환문장]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죄만 드러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하고, 더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십니다.
[본론2]
둘째, 기근은 우리가 붙잡고 있는 우상을 내려놓게 합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집니다.
곡간은 텅 빈지 오래 되었습니다.
굶어죽기 일보 직전입니다.
다급해진 야곱은 아들들에게 다시 이집트로 가서 양식을 구해오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이집트로 가려면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야곱은 굶어죽는다는데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왜 일까요?
야곱에게 베냐민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야곱에게 베냐민은 마지막 희망이고, 생명줄입니다.
맏형 르우벤이 나섭니다.
자신의 두 아들의 생명을 걸고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꿈쩍도 않습니다.
이때 유다가 나섭니다.
유다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아버지에게 촉구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야곱이 정신을 차립니다.
14절입니다.
너희들이 그 사람 앞에 설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감동시키셔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게 해주시기를 빌 뿐이다. 그가 거기에 남아 있는 아이와 베냐민도 너희와 함께 돌려보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자식들을 잃게 되면 잃는 것이지,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
지금까지 베냐민만 붙들고 있던 야곱의 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는 것이지”라고 말합니다.
이게 그냥 자포자기한 것일까요?
야곱의 인생을 들여다 보십시오.
그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형의 발 뒷꿈치를 붙들고 나왔습니다.
형이 장자권을 붙들었습니다.
아내 라헬을 붙들었습니다.
라반에게는 재물을 붙들었습니다.
요셉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요셉을 잃자 이제는 베냐민만 붙들고 삽니다.
베냐민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안전장치이자 우상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한마디로 ‘붙드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다루십니다.
야곱이 다 내려놓을때까지 끈질기게 흔드십니다.
눈썰미 좋은 분들은 오늘 말씀에서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분명 42장까지만 해도 이름이 야곱이었는데 43장에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왜 일까요?
성경에서 야곱은 두려움과 집착 속에 살아가는 옛 사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브니엘에서도 그랬습니다.
형 에서를 두려워하던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하나님을 붙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이 붙드는 우상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기근 앞에서 그는 마침내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깁니다.
붙들고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께 붙들리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평생에 걸쳐 우리를 다루십니다.
삶의 기근을 통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우상을 드러내십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붙듭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붙듭니다.
어떤 사람은 인정과 성공을 붙듭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붙듭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너질까봐 늘 두려워 합니다.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고민을 자주 듣습니다.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합니다.
환경만 바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사를 옮겨도 같은 문제를 겪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우상은 그래도 가지고 옮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부환경보다 내 마음 깊은 곳의 우상을 다루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삶의 기근을 허락하십니다.
내가 무엇으로 살아왔는지, 내가 무엇을 의지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우상을 붙들던 손을 열어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근 앞에 서있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돈을 붙듭니다.
사람을 붙듭니다.
건강을 붙듭니다.
자녀를 붙듭니다.
안정된 미래를 붙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내가 무너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기근을 허락하십니다.
우리 삶을 뒤흔드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망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거짓 생명줄을 내려놓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소설 모순처럼 풍요가 오히려 영혼을 잠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결핍과 기근이 사람을 깨어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기근이 오기 전까지 그는 베냐민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기근 앞에서 마침내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성경은 그를 다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환경만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름을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바꾸시는 분입니다.
붙들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지 이 악물고 내것을 붙드는 마법같은 힘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내 힘을 빼고, 내 손을 펴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기근을 지나고 계십니까?
물질의 기근이 있습니까?
관계의 기근이 있습니까?
건강의 기근이 있습니까?
마음의 기근이 있습니까?
기도가 메마른 영적 기근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버리신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시는 시간일수 있습니다.
저수지의 물이 마르면 바닥이 드러나듯 삶의 기근은 우리 영혼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숨겨진 죄를 드러내고, 우상을 드러냅니다.
내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는지 보여줍니다.
그때 무너지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억지로 더 붙들려고 하지 맙시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청소하시고, 야곱같은 인생을 이스라엘의 인생으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의 기근이 나를 죽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빚어 가시는 시간이었음을 말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