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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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금 있으면
제목: 조금 있으면
본문: 요한복음 16장 16-24절
본문: 요한복음 16장 16-24절
찬송: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찬송: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매우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혼란을 안겨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그분과 함께하는 물리적인 임재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선언은 그들에게 마치 태양이 사라진 영원한 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공포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서로 수군거리며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떠나시는 이유와 다시 보게 된다는 약속의 실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이 가졌던 두려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삶의 위기 앞에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영적인 고독을 느낍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고난이 길어질 때 우리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방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짧은 이별의 시간이 결코 상실의 시간이 아니라, 더 크고 영원한 기쁨을 준비하는 '잉태의 시간'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이 오후, 우리 삶에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① 근심의 시간은 기쁨을 잉태하는 해산의 과정입니다.
① 근심의 시간은 기쁨을 잉태하는 해산의 과정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진리는, 성도에게 찾아오는 근심과 고통의 시간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반드시 기쁨으로 연결되는 생명 탄생의 과정입니다.
본문 1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조금'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시간은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세상의 조롱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20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겠지만, 도리어 세상은 승리한 듯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로 보았지만, 주님은 그것을 승리의 전제로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앞에 닥친 상실감에 압도되어 주님이 말씀하신 '다시 보리라'는 약속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영적 시야는 당장의 고통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여자의 해산'을 비유로 드셨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머니는 진통의 시간이 다가오면 죽음과 같은 두려움과 근심에 휩싸입니다. 그 고통은 피하고 싶을 만큼 처절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생명을 낳기 위한 유일한 통로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는 그 전까지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오직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기쁨에 잠깁니다.
주님은 우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도리어'라는 표현은 근심이 제거되고 다른 기쁨이 찾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근심 그 자체가 기쁨의 원인이 되고, 고통의 성격이 기쁨으로 변화된다는 신비로운 약속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없었다면 부활의 생명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무덤에 계셨던 그 사흘의 시간은 제자들에게는 '보지 못하는' 어둠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가장 치열한 역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해산의 진통이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며, 때로는 평생 일구어온 삶의 터전에서 위기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시간이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님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눈물과 한숨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기쁨의 씨앗으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웠음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보이지 않는 시간, 그 '조금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가장 위대한 부활의 아침을 예비하시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기쁨으로 우리를 채워 주십니다.
②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직접 구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②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직접 구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주어질 놀라운 특권인 '기도의 권세'에 대해 선포하셨습니다.
23절과 24절을 보면 주님은 이제 우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가졌던 오해를 주목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옆에 계실 때 늘 질문하기에 바빴습니다. 본문 원어에서 23절 상반절에 나오는 '묻지 아니하리라'의 '묻다'는 '에로타오(erōtaō)'입니다. 이것은 정보를 얻기 위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행위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해하며 질문만 던졌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의 마음과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후 성령이 임하시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3절 하반절부터 사용된 '구하다'라는 단어는, 자녀가 부모에게 당당하게 청구하고 요청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보증 수표를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곁에 계셨기에 그저 주님께 의존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직접 나아가 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가 직접 나아가 우리의 사정을 아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구할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오랜 세월 기도의 자리를 지켜오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왜 저에게 이런 일을 주십니까?'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구하는 자리'로 옮겨가야 합니다. "주님, 저의 아픔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 고난을 이길 힘을 주옵소서"라고 담대히 청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나열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보고를 여는 열쇠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우리 안의 근심은 사라지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 우리 심령 속에 충만하게 넘쳐나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이라는 소망의 마침표를 찍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나는 어둠의 터널이 아무리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그 시간은 단지 '조금'일 뿐입니다. 해가 뜨기 전의 차가운 새벽 공기는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그 시간을 인내한 자만이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의 첫 빛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보이지 않던 그 사흘 동안 깊은 절망과 실패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의 모든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들의 슬픔은 폭발적인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그 기쁨은 죽음조차 빼앗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에게도 이 동일한 기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더 깊은 만남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밤을 지날 때, 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해산의 진통을 겪는 여인 곁을 지키는 가족처럼, 아니 그보다 더 가까이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질문만 던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이름을 붙잡고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우리의 근심은 찬송으로 바뀌고 우리의 눈물은 기쁨의 열매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답답할지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며, 우리를 다시 만나 주십니다. 그날에 주실 영광스러운 기쁨을 바라보며, 오늘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긴 밤을 지나는 것 같은 우리들에게 "조금 있으면 보리라"는 소망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낙심하고 방황하던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겪는 이 고난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낳기 위한 거룩한 진통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 같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얻었듯이,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도 부활의 주님을 깊이 만나 그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권세를 주셨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는 고난 앞에서 질문만 던지는 자가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구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의 자리를 지킬 때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육신의 연약함과 마음의 상처로 신음하는 성도님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그들의 근심이 도리어 찬송이 되는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지역을 밝히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