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주기도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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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주기도문_11_우리의 죄를 사하소서2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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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I. 용서란 무엇인가?

앞 장에 이어서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간구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이 간구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그러면 용서란 무엇입니까? 용서란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여 손해를 입혔을 때, 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용서는 그 이상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계속 사랑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용서 이후에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수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진정으로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을 최초로 배우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신자는 누구입니까?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용서의 문을 통과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히 끔찍한 죄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놓임을 받은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바로 신자들인 것입니다. 앤드루 머리에 따르면이 세상은 죄인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이고 어떤 사람은 이미 용서받은 죄인들 뿐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악한 악을 행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의 중요성에 관하여 그의 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기도학교에서 기도와 연결시켜 당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입증합니다.
(00:56) 이것이 믿음 있는 기도의 필요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혹은 의로운 자녀라고 불러준다고 해서 우줄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하게 자신이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좋은 것들 중 단 하나도 우리의 의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 없으며 오직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갑없이 주신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II. 죄 사함과 용서

우리는 용서에 대해서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를 구분하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이 두 용서는 같은 기초를 가지고 있으나 그 완전성과 효과에 있어서는 서로 구분됩니다.
(01:57) 하나님의 용서는 절대적인 용서이지만 사람의 용서는 상대적인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이 세상에 이루시려고 했던 인간 공동체를 보 생각해 보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없이 인간들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를 생각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들이 이웃들과 관계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안에 있는 사랑의 교통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시고 또 그러한 사랑의 교통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02:4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파괴된 사랑의 교통이 용서를 통해 제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용서의 경륜을 살펴보기에 앞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A. 절대적 용서 : 하나님

첫째로 절대적 용서입니다.이 용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베푸시는 용서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신적 용서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용서는 죄사함이라고 번역하고 사람인 우리의 용서는 그대로 용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감화를 받으셔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사랑의 속성으로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03:45)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용서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용서입니다. 사랑이란 형상학 적으로 정의하면 끊임없이 타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의 경향입니다. 처음부터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과는 관계를 맺고자 하고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에 대하여는 그 관계를 더욱 심화하고자 하는 성향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니시지만 하나의 위격으로서가 아니라 새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새 위격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사랑을 어 본받는 삶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현대 사상에 물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파고들기 쉽지 않습니다.
(04:38) 요즘 자주 쓰는 말들만 유심히 살펴봐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집중해 있을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둡니다. 따라서 상처에 대한 집착은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상처라는 말은 사랑의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부름을 받은 교회에서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아야 할 가장 세속적인 용어 중 하나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지나치기 집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관심사는 상처나 아픔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관계입니다.
(05:31)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번 반역하고 창조 세계를 더럽힌 인간들을 위해 독생자들을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주께 하시면서까지 용서하신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킨 일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무한하신무한 분위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심으로써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오래 전 제가 한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렸습니다. 그곳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 히대의 살인극을 버린 지존파한 사람이 갇혀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형이 집 집행되기 전에 그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06:27) 그리고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말할 수 없는 기쁨 기쁨 속에서 최우를 맞이했습니다. 그를 돌보던 간수에 의하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가장 즐겨 부르던 찬양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 놀라워이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흔한 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대 사람이기를 포기한 죄인들에게조차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관계를 맺으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이 사랑의 나타남입니다.이 >>

B. 상대적 용서: 인간

둘째로 상대적 용서입니다.
(07:15)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기차하여 인간이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용서입니다.이 용서는 먼저 자기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의지하는 용서라는 점에서 상대적인 용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단번에 용서해 주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지만 인간은 한번 용서한 후에도 사랑이 식으면 다시 미워하고 복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용서입니다. 상상대적 의소는 소극적인 면과 더욱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라는 소극적인 면인데이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지은제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용서란 피해를이는 사람은 그것을 배상받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8:04) 그가 나에게 폭행을 가했다면 정당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서 그의 신체의 자유로 구속하거나 경제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에 오사는 일이 쉽지 않다면 개인적으로 수도 있고 그것도 불가능하면 마음속으로는 죽는 날까지 치열하게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는이 모든 행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의 적극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적극적인 면인데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에서 입증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비차 용사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08:53)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 13절에서 14절. 다시 말해서 용서의 사랑을 더함으로써 관계가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이 본문의 앞뒤에서 그러한 사랑을 더하는 용서 그러한 사랑을 더하는 용서를 실상하며 살 수 있는 근거와 그 용서를 통한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가르쳐 줍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못믿고 골로새서 3장 12절 용서의 닮은 아무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09:38) 그래서 신자가 한 번 베푼 용서를 지속하여 관계로 계속하게 만드는 정신과 영혼의 힘은 바로 마음 안에서 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의 사랑의 인격으로 흘러나오는 것이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용서가 살아가는 관계의 계속이라는 적극적인 측면까지를 포함하는 진정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그가 사랑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국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등 성령의 성품을 가진 성품을 자기 인격 속에서 열매로 맺으며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0:20) 사소마는 이러한 용서를 끊임없이 실천하면서 분노와 복수, 상처 입은 감정이 시돌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서 3장 15절.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평강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평화와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는 우리를 새로운 사랑의 관계로 불러 주시는 용서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과 새로운 영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셨고 그 안에서이 세상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우리를 메어 주셨습니다.
(11:02) 이것이 바로 용서의 적극적인 국면입니다. 성경은 말하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례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점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38절에서 39절. 용서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도록 간구하라고 가르친 것은 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요구입니다. 각각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멀리는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11:46) 그러므로 우리는이 간구를 올리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관계가 우리의 이기심과 죄악으로 인해 단절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C 용서의 요건과 오류

용서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는 용서의 요건과 오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한 인간이 이웃에 대하여 어떤 악을 행하였을 때 그가 손해를 입힌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잘못에 대하여 직접 심판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누구이든지 악을 행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비록 그가 불신자라 할지라도 이렇게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죽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연인의 마음에도 율법이 새겨져 있고 있어 양심이 어떤 행위에 대하여 증하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12:46) 또한 그 사람이 행한 악을 통하여 손해를 입은 당사자 역시 일정 부분 용서할 수 있는 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제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주 주시옵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해당사자의 고유한 권리라기보다는 당신과의 평화가 이웃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그 권리를 피해자에게 위임하심으로써 획득된 것입니다. 일종의 인정된 권리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할 수 있는 권난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13:42)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상호간의 두려움과 사랑 속에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물으실뿐 아니라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피해자로서 자신이 입은 피에 대하여 적절한 배상을 받거나 용서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성경 속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심지어 욥이 자신을 참소하여 끊임없이 괴롭히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14:37) 욥기 42장 8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할 뻔 뻔 했던 실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를 위하여 기도해 준다면 그를 살려 줄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0장 7절.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이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묻고 맺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고 맺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이 용서를 강조하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고난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때로 교회 안에서 타인에게 용서를 종용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15:32) 정작 자신은 자신의 죄를 지은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지은 사람들은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상을 기초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라도 사회의 법정법정에 호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뚫려싸고 일어나는 교인들에 간의 법정 소송은 성경적으로 그만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2절.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권한을 넘어서 국가의 질서에 관련된 부분이거나 불신자와의 법적 다툼인 경우에는 세상 법정에 호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송을 하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닙니다. 사회 법정에 호소하였든지 교회 법에 호소하였던지간에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16:32) 그 법적 호수의 동기가 소송에 관련된 사람을 미워하여 그들을 벌받게 하는 것이었으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밀량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는 누구에게 악을 행하고 밀실에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태도를 비화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이웃에게 손해와 악을 끼쳤다면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질뿐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웃에 대해 책임을 해피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는 돈독한 신앙의 표지인 것처럼 행세했는 행세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17:27) 복음적인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할뿐 아니라 자기 죄 때문에 손해를 입은 이웃에게도 동일한 책임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행한 어떤 악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오만한 태도는 진정으로 회개한 태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회개한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할뿐 아니라 한때 미워했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III. 용서에 대한 경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도록 가르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날마다 우리가 용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존재들임을 상기하도록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라는 말까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 앞에 굳이 붙여서 가르쳐
(18:32)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며 나아가 우리가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을 힘겹게 느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를 통해 하나님과 만물을 사랑으로 묶으시려는 하나님의 용서의 우주적인 경을 생각하게 됩니다.

A 하나님 사랑의 회귀.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의 모든 피존물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그 모든 피존물의 면류관으로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으로서 교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9:23) 하나님의 기쁨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기를 마치 삼위 하나님께서 각 위가 서로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의 커다란 능력은 바로 인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입니다.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자신이 완성되는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사랑의 방향은 하나님과 이웃에게서 자기 자신의로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 인간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기를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더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20:25)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정하신 창조의 목적과 행복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먼저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갑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용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이 용서를 시작으로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이 땅에 참된 사랑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16절. >> 인간이 창조되고 나서 비로서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영혼 전부터 하나님은 스스로 사랑하 사랑이십니다.
(21:18) 이 세상에 사랑의 대상이 없을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새 위격 안에서 서로 완전하심과 아름다운심으로 말미암아 서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 그리고 그 사랑은 끊임없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적 성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기 안에 있는 완전한 사랑으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자기 사랑에 사로잡힌 인간은 결국 자신의 삶에서 잘못된 사랑으로 인한 비참한 결과를 끊임없이 거두어 드립니다. 그들의 사랑은 육체를 위해 성 어 신기였기 때문에 육체로부터 썩어진 열매를 거두고 갈라디아서 6장 8절 죄를 위해서 심었기 때문에 그 죄에서 끊임없이 사망을 거두게 됩니다.
(22:16) 로마서 6장 23절 햇피스 등지고 걸어가는 사람이 자신 앞에 드리운 커다한 그림자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 사랑을 따라 살아갈 결과는 두려움과 불과 그리고 소외입니다. 자신을 부당하게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용은 지금도 더 큰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자율은 그를 행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참하게 속박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은 결국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사랑을 따라 마음대로 살아온 비참한 결과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그리고 고통 속에서 자기 어 자기 말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결코 영원한 행복을 가져 주지 않음을 깨닫고 참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3:17) 이 사랑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되어 그 사람 자신의 어 사랑인 것처럼 그의 의지를 움직이는 사랑이 생겨납니다. 전자는 아가페라고 한다면 후자는 까리따스입니다. 우리는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에게 들어와 형제들과 이웃을 우주적으로 휘둘러 휘돌아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용서는 용서의 경 용서의 놀라운 경륜을 생각할 때 우리는이 용서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인식하게 됩니다.
(24:19) 용서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흐르는 신의물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그 사랑을 더욱 많이 흘러보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신 것은 수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밝은 진리의 빛과 사랑의 불을 주시는 것입니다.

B. 용서의 실천.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인 회기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도 사라집니다.
(25:22) 여기에는 용서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며칠 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기도하고 은혜 생활을 잘하였다고 할지라도 지금 다른 사람을 향해 악하고 미운 감정을 품고 복수를 꿈꾸기 시작하였다면 오늘은 기도할 수 없고 예배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 사랑의 현재적 경험은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용서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용서가 어렵지 않다면 자기에게 죄 지은 자를 향하여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복수를 꿈꾸짖지는 않을 것입니다.
(26:06) 심지어 자기에게 악을 행한 사람은 사람을 향한 미움의 복수가 좌절될 때 이런 세상에서는 살기 싫다면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호위적이고 선하게 대할 때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악한 자들도 합니다. 누가복음 6장 33절. 진정한 사랑은 자신 안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 때문에 흘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성품을 사용하여 의지 안에서 사랑으로 역사하십니다. 종종 그리스도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한번 상처를 받고 손해를 입으면 자기의 고통에 집착하면서 결코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26:56) 그러나 그러한 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입니다. 미움은 양쪽으로 날이 선 칼왔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IV. 용서와 영혼의 자유.

용서는 우리의 영혼의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제일 먼저 그 용서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행한 우리 자신입니다. 왜냐면 용서하는 우리의 마음 안에 안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죄를 지었을 때 아직 현실적으로 그 사람과 화해하지 못했다.
(27:57) 할지라도 먼저 마음으로 그를 용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가 그친 마음에 다시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고 말씀이 사라진 마음에 다시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기도의 실천에 열심을 내면 기도가 열렬해질 것이고 이성적으로 총명하며 말씀을 더 잘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험을 많이 쌓고 지혜로워지면 하나님의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안에서 우리의 총명은 빛나고 그 마음은 은혜로 가득차고 의지는 선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28:53) 그러므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강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기도의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이 강구를 뒤집으면 이런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도 사하지 마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누구도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더욱 용서한 그 사람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가 아니라 사랑이 목표이시기 때문입니다.
(29:45)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 무한히 크고 넓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참된 도리는 자신이 받은이 용서의 위대함을 알고 그 마음으로 일생 동안 하나님 앞에 사랑의 빚진 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V. 결론

기독교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람들 사이의 용서를 아는 깊이에 비례합니다. 자신과 같은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비밀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신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에게 제지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희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희생이 없이는 용서도 없습니다.
(30:32)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들을 용서하고 가족들을 용서하고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이 힘들 때마다 우리를 용서하기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복종함으로써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선하가 의로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같이 쓸모없고 불결한 인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거져받은 구원의 사랑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자기 아들을 화목잠물로 바치신 희생의 결과였습니다.
(31:14)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 당하신 순간까지도 당신의 고통은 아랑 못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죽인 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형벌의 고통을 염려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려울 때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자기에게 제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과 영혼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은 자기 사랑의 추함을 알고 사랑을 아는 자들만이 영원을 압니다.
(31:56)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통치를이 세상 나라 사람들에게 확장해 가시는 시간이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를 복되게 빚어가시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실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용서의 나라입니다. >> 아멘. >> 아멘. >>
우리의 죄를 사하소서. 2 한 눈에 보는 11장
I. 용서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계속되는 사랑을 포함한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 죄인일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II. 죄사함과 용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로 구분할 수 있다.이 둘은 동일한 기초를 가지지만 그 완전성과 효과는 다르다.
A. 절대적 용서: 하나님.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베푸시는 용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속성으로서 우리를 용서하신다.
B. 상대적 용서: 인간.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자신에게 제재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용서이다.이 용서는 먼저 자기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의지한다는 점과 인간은 한번 용서한 후에도 사랑이 식으면 다시 미워하고 복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상대적 용서의 소극적인 면은 다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며 적극적인 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사랑이다. 용서를 하고 관계를 계속하게 만드는 영혼과 정신의 힘은 마음에서 현재적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용서는 사랑의 인격에서 흘러나온다. 적극적인 용서를 행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움류, 오래참음 등 성령의 성품을 자기 인격 속에서 열매로 맺으며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
용서의 완성은 사랑이다. 용서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이다.
C. 용서와 요건과 오류.
한 사람이 이웃 이웃에게 악한 일을 행했을 때 그가 손해를 입힌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권리가 있다. 이때 손해를 입힌 사람 역시 용서의 근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고유한 근이기라보다 인정된 근리이다.
복음적인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할뿐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 손해를 입힌 입은 이웃에게도 동일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다.
III. 용서에 대한 경륜.
우리는 인류를 통해 만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묶으시려는 용서의 우주적 경륜을 생각하게 된다.
A. 하나님의 사랑의 회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그 면류관으로 지으셨다.
하나님의 기쁨은 삼이 하나님의 각 위가 서로 사랑하듯이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 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사랑의 방향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기 자신으로 곡되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도 행복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들을 용서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를 시작으로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이 땅에 참된 사랑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랑의 대상이 없을 때조차 하나님께서는 새 위격 안에서 서로 완전하심과 아름다우심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사랑하심으로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끊임없이 다른 존재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적 성향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또 다른 사람을 만들어 사랑을 만들어낸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부음바되어 그 사람 자신의 사랑인 것처럼 그의 의지를 움직이는 사랑이 생겨난다. 전자가 아가페라고 아가페라면 후자는 까리따스이다. 우리는 까리따스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때 비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들어와 형제들과 이웃을 우주적으로 휘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용서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웃에게 흘러갈 수 없다.
B.용서의 실천
하나님의 사랑의 현재적 경험은 경험은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용서의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질 때 우리는 용서의 어려움을 깨닫는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의 성품을 사용하셔서 의지 안에서 사랑으로 역사하신다. 결국 상대방을 어결 용서하지 않으려는 태도의 가장 큰 영혼의 피해자는 자신이다.
IV. 용서와 영혼의 자유.
용서는 영혼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용서하는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안에서 총명은 빛나고 마음은 은혜로 가득차며 의지는 선한 것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의 참된 도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용서의 위대함을 알고 그 마음을 그 마음으로 일생 동안 하나님 앞에 사랑에 빚진 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V 결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힘들 때마다 쓸모없는 불결한 우리에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 아멘.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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