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인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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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제1부 교리편:완전한 복음
1장 길을 찾아서 2장 성경에 대하여 3장 하나님에 대하여 4장 인간에 대하여 5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6장 구원의 여정에 대하여 7장 교회에 대하여 8장 종말에 대하여
4장 인간에 대하여
4장 인간에 대하여
1.인간의 수고
1.인간의 수고
인류 역사 이래 많은 사람들은 인간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물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로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질병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병이 들었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깨어진 인간 관계를, 혹은 무지함을 원인으로 보았지만, 그것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삶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22–23
2.죄 아래 놓인 인간
2.죄 아래 놓인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이 세계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이 아담에게 복종하였고, 아담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요구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피조물이 복종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물을 왕처럼 다스리다 보면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들과 하나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설 때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하나님과 사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말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하나님 아래, 피조물의 자리에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온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에도 자신의 존재를 의존하지 않는 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같이’ 되고 싶었던 욕망의 실체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1-5
3.죄의 결과
3.죄의 결과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두 가지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먼저 관계에 있어서의 파괴입니다.
(1) 관계의 파괴
(1) 관계의 파괴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찮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가족 관계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로부터 도피하려는 영적인 죽음이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적개심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10
둘째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파괴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조차도 진정한 화목을 찾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과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관계의 깨어짐에서 오는 고통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인간 사회는 사랑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독립적으로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온 인류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녀를 생산하며 또 그 자녀들과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 관계의 중심에는 모든 가족들이 사랑하고 우러르는 하나님이 계셨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탁월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자연 만물을 향한 인간의 호의와 배려도 뛰어났을 것이니, 이러한 정신의 힘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12
셋째로, 자연 피조물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자연으로 인한 피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산사태나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가뭄으로 인간과 식물들이 고통 당하는 일 같은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완전한 조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의 인간은, 자연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을 위해서 얼마든지 파괴하고 짓밟아도 좋은 정복자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환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아름다운 공생과 조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고통과 갈등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세기 3:17–18
넷째로, 자신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인간 안에 있는 심각한 자기 분열적 증상드은 이러한 자아와의 관계 파괴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행동도 이러한 자아와의 관계 파괴를 반영합니다. 정신병적인 자기 학대나 열등감도 이러한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자아와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2) 죄책과 오염
(2) 죄책과 오염
이처럼 한 사람의 범죄는 모든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관계의 파괴 못지않게 더 엄청난 결과를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짊어져야 했습니다. 범죄의 당사자인 아담은 물론, 그 이후에 태어날 모든 인간은 자신 안에 죄의 심각한 결과를 물려받게 되었으니 ‘죄책’과 ‘오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둘을 합쳐 ‘원죄’, 혹은 ‘물려받은 죄’라고 부릅니다.
죄책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져야 하는 책임을 말합니다.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사법적인 책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시므로 그분께 지은 죄에 대한 책임도 무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염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선천적이고 도덕적인 부패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나는 모든 인간 안에는 도덕적인 부패성, 곧 죄된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패한 본성 때문에 인간은 실제로 자신이 실행죄를 짓게 됨으로써 인간 안의 오염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세기 6:12
한 걸음 더 교리 4: 대표사상
“죄는 아담이 지었는데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향은 우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항의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그 선악과 맛이라도 봤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아담이 먹은 선악과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아야 합니까?” 아담의 범죄가 왜 우리에게까지 유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합니다. 아담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태어날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대표사상’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떠했을까요? 아담은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순종했다면, 우리는 선악과를 먹지 않기 위해 참은 적도 없고, 유혹을 이기려고 애를 쓴 적도 없는데도 한 사람 아담의 순종으로 영생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대표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태어날 온 인류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두 번째 아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율법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사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무찌르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영원한 생명,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하늘자원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는데, 하늘자원의 핵심은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은 문자적 의미로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여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가 육신의 껍질을 벗은 후에는 보다 완전한 영혼의 생명을 누리는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하늘자원이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회복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풍성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적용과 실천을 위한 나눔
4장 인간에 대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이었으며, 왜 아담과 하와는 이 명령을 어겼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자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죄로 말미암는 결과 중 관계에 있어서의 파괴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또한 사람은 죄로 인한 결과를 자신 안에 짊어져야 했습니다. 죄책과 오염이 그것입니다. 죄책과 오염이 무엇인지 설명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