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생활_사랑의 뿌리,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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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해주신 소중한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사랑의 뿌리'가 되는 '겸손'**에 대하여 1시간 분량의 강의나 소그룹 공부를 위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구조 및 주제 분석: 사랑의 뿌리, 겸손 - 성도의 공동생활]

본문 성경: 빌립보서 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1. 서론: 공동체를 묶어주는 생명의 뿌리 (5분)

말로 전하는 복음이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성도의 공동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가 필요합니다.보이는 복음, 공동체적 사랑:사랑의 증거
사랑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생명이라면, 그 **생명의 뿌리는 바로 '겸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 교회 내부의 다툼을 경계하며 이 편지를 썼습니다.사랑의 뿌리, 겸손:

2. 대지 I. 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가치 (10분)

1) 예수의 정신이 공동체의 혼이 되어야 함
교회는 단순히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니라, 개인이 그리스도께 회심하여 접붙여지고 으로 삼을 때 진정한 공동체가 됩니다.예수의 정신을 공동체의 혼
예수의 마음은 곧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의 몸을 입고 낮아지신 입니다.겸손의 마음
2)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
인생의 가치는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낮아진 정신과 자신의 정신을 합치시켜야 합니다.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가

3. 대지 II. 인류 불행의 원인: 교만과 질서의 파괴 (15분)

1) 교만의 정의: 자기 평가의 최종성
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교만으로 인류를 파국에 몰아넣었고, 둘째 아담인 예수는 겸손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교만은 사물의 질서에 대한 자기 평가가 가장 최종적이라고 고집하는 것
2) 창조의 질서와 인간의 위치
하나님은 만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습니다(무생물 → 식물 → 동물 → 인간). 하위 질서는 상위 질서를 섬기며 가치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정점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행복하도록 창조되었으나, 으로 인해 이 질서를 파괴했습니다.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
3) 교만이 가져온 공동체의 파괴
본래 모든 피조물은 영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이라는 독이 이 관계를 파괴하여, 피조물 간의 갈등과 대립(아담과 하와의 갈등, 가인의 살인 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비방 역시 그 뿌리는 에 있습니다.교만

4. 대지 III. 하나님의 구원 방법: 그리스도의 겸손 (10분)

1) 성육신: 철저한 자기 비움
예수님은 신성을 비우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를 입으셨습니다.종의 형체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 사라질 육체를 입고 배고픔, 추위, 슬픔을 겪으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교만으로 들어온 죄를 치유하기 위한 이었습니다.겸손의 길
2) 가치 없는 자들을 향한 섬김
예수님은 사랑받을 만한 자들뿐만 아니라, 긍휼히 여기며 섬기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의 생애입니다.가치 없는 죄인들과 원수들까지도

5. 대지 IV. 교회, 회복된 공동체의 모델 (10분)

1) 창조 질서의 회복
그리스도는 아담의 죄로 깨어진 피조 세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 하십니다. 그 회복의 입니다.샘플 케이스가 바로 교회
2) 몸의 지체로서의 상호 치유
성도는 여전히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 공동체 내에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상처가 나면 백혈구가 집결하여 싸우듯(고름), 교회는 가 되어야 합니다. 부족한 지체를 기다려 주고 세워주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사랑으로 서로를 치유하는 면역 체계

6. 결론: 겸손의 삶을 실천하는 세 가지 원리 (10분)

1) 창조의 질서를 기억하라
우리는 하나님 아래 있는 피조물이며, 결국 한 줌의 가루로 돌아갈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을 알 때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인생의 무상함
2)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사람 자체를 보고 사랑하면 실망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한 정신(예수의 혼)을 가질 때 비로소 일치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 때문에
3)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라
우리는 본래 쓰레기 같은 죄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는 은혜가 남아 있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은혜가 필요하니 사랑해야 합니다
지체의 허물이 보일 때 비방하는 것은 은혜가 떨어졌다는 신호입니다. 7년 동안 비방이 없었던 메이플라워 호의 청교도들처럼, 오직 만이 온전한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하나님의 은혜
마지막 권면:"아프더라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지체를 곁에 두셨음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가득 찬 공동생활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제시해주신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소그룹 성경 공부를 위한 [사랑의 뿌리, 겸손] 활동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이 활동지는 공동체 안에서 겸손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에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사랑의 뿌리, 겸손

본문: 빌립보서 2:3-11

📋 마음 열기 (Ice Breaking)

최근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나, 반대로 공동체 안에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 말씀 속으로 (Observation & Reflection)

1. 사도 바울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뿌리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빌 2:3, 소스)
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겸손'이라는 뿌리가 필요할까요?생각해보기:
2. 강연에서 정의하는 '교만'이란 무엇이며, 이것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소스,)
교만은 사물의 질서에 대한 입니다.강연의 정의:자기의 평가가 가장 최종적이라고 고집하는 것
자기 판단을 최종 권위로 삼을 때 서로를 정죄하고, 비방하며, 결국 공동체의 아름다운 관계를 파괴합니다.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빌 2:6-8, 소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그 능력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만 골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며 섬기셨습니다.가치 없는 죄인과 원수들까지도
4.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체가 부족함을 보이거나 상처를 줄 때,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소스,)
우리 몸의 가 상처 부위로 집결해 싸우듯, 지체의 부족함으로 생긴 상처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백혈구사랑으로 치료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끝까지 처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지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세워주어야 합니다.믿고 기다려 주는 감독

💡 삶의 적용 (Application)

1. [질서 기억하기] 우리는 "두 시간의 불길이면 사라질 한 줌의 가루"와 같은 연약한 피조물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나의 유한함을 인정할 때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2. [예수의 마음 품기] 사람 자체를 보면 실망하기 쉽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내 힘으로 사랑하기 힘든 지체가 있다면, 주님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 제목을 나누어 봅시다.
3. [은혜 구하기] "사랑할 수 있을 때는 은혜가 남아 있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은혜가 필요하니 사랑해야 합니다". 최근 나의 언어 생활(비방, 험담 등)을 돌아볼 때,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 상태입니까?

🙏 함께 기도하기

우리 안에 있는 교만(나의 판단이 최종이라는 고집)을 회개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내 곁의 지체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주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치유하는 '백혈구'와 같은 공동체 되게 하소서.
"아프더라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를 보여주는 공동생활입니다."
03 성도의 공동생활사랑의 뿌리, 겸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TSrw_BRjtN4
Transcript:
(00:01) [음악]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빌립보서 제2장 3절입니다. 신약 성경 319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의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재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며 한 마음을 품어 다같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도로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아멘.
(01:12) 3절 다시 한번 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지푸라기와 같은 저희들을 한 주간 동안도 붙드셔서 이처럼 거룩한 주일의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희 모든 사람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알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교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 지체들, 자매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매들 (02:17) 하나님께서 굳게 붙들어 주셔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로 전하는 복음이 참으로 사람들에게 믿어지기 위해서는 보이는 증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성도의 공동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 사랑이 이 성도들의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생명이라면 이 생명의 뿌리는 바로 오늘 말씀드리려는 겸손입니다.
오늘 사도가 이 편지를 쓴 것은 옥 속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옥 밖에 많은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있었습니다.
(03:22) 그들 가운데 있는 다툼들을 생각하면서 특별히 교회 공동체의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빌립보서에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실려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나 그와 동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위에 뛰어난 이을 그에게 물릎을꿇고 주라 시인하게 하셨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빌립보서에 실려 있습니다.
(04:26) 그러나 이 아름다운 기독론은 신학 사상을 전수해 주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사는 성도의 공동생활을 가르치다가 예수의 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예수의 마음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예수님의 전생애를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독론이 빌립보서의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바는 교회 공동체가 사람이 모여서 한 지붕 아래 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 회심하여 접붙여진 사람들이 되고 그 사람들이 예수의 정신을 공동체의 혼으로 삼으며 살아갈 때에 그때에 (05:31) 진정으로 성도의 공동생활은 사랑으로 복음을 보여줄 수 있는 공동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신이 바로 겸손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의 마음이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 낮아지신 마음이니 그 겸손의 마음 안에서 성도의 사랑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그 사랑을 통해서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참으로 복음에 입각한 공동체임을 보여주게 된다는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도달하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사는가? (06:36) 이것에 의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참으로 이 공동체,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얼마나 여러분 자신이 낮아져서 이 공동체 안에 있는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가에 의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교회 공동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의 뿌리인 이 겸손의 정신을 지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깊이 부복하여 그분의 낮아진 정신을 자신의 정신으로 합치하여야지만 이 이 공동생활 속에서 여러분들이 온전한 (07:43) 사랑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겸손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인간 타락의 원인이 교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죄는 교만이라고 하는 뿌리로부터 자라나는 나무입니다. 사랑은 겸손이라는 뿌리로부터 자라는 나무이지요.
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질서에 대한 자기의 평가가 가장 최종적이라고 고집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완전한 사람을이 세상에 보내었는데 하나는 첫 사람 아담이었고 (08:47) 또 한 분은 둘째 사람 예수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교만으로 범죄하여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넣었고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함으로 자기를 바치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창조하셔서 모든 사물과 인간들이 뒤엉켜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을뿐만 아니라 지혜를 가지신 분이었기 때문에 만물들을 창조하실 때 질서롭게 창조하시고 그 질서 안에서 각각의 영광을 가지고 만물들이 (09:49) 쉼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덩그만히 창조하셔서 초위와 배고픔 그리고 더위에 피해를 받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의 큰 별들로부터 시작을 해서 지구 위에 있는 작은 풀 이파리 그리고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 없을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피조물들은 각각 나뉘어진 장소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함께 이 땅의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섞여 있는 존재들을 질서롭게 (10:57) 창조하셨습니다.
첫 번째 피조물은 존재하기만 할 뿐인 무생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피조물들은 바로 살아 있는 식물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피조물은 살아 존재할뿐 아니라 살아 있고 또 살아 있을뿐 아니라 지각할 수 있는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존재는 존재할뿐만 아니라 살아 있고 지각할뿐 아니라 또한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이 각각의 질서는 각각 자신의 질서 안에서 피조물들이 머물게 하셨고 하위의 질서에 있는 피조물들은 상위의 질서에 있는 피조물들에게 섬기고 이바지함으로써 (12:00)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게끔 만드셨습니다.
수 많은 무생물들은 식물이 자라는데 기여하고 식물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그리고 동물들은 여러 모양으로 인간을 섬기며 또한 음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창조되었을 때에 자기 아래 존재하는 많은 피조물들이 이렇게 질서롭게 자기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바로 그 모든 것들 위에 자신이 존재하며 자기 위에는 창조의 목적을 설정해 놓으시고 자신에게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보이는 피조물의 (13:04) 정점에는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은 오직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누리면서 한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도록 인간은 창조되었고 인간은 바로 그 위치에서 가장 행복하고 쉼을 얻을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죠.
이러한 질서를 인간의 이성이 항상 인식하고 따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인간은 자신이 그 지위에 있는 것이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으니 사실 하나님처럼 높아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대등해진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자신의 밑에 두기를 원하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나 자신이 하나님보다 훨씬 위에 있는 (14:09) 존재라는 생각이 그 교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하였고 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불순종 때문에 죄는 강물과 같이 이 세상에 밀려 들어와서 홍수와 같이 범람하게 되었던 그리고 온 땅에는 죄가 가득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모든 인류는 이 죄를 물려받게 되었고 이것을 우리들이 원죄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원죄는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죄에 대한 책임과 그 죄 때문에 생겨나게 된 많은 악한 본성들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본래에 가지고 있던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망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고 (15:15) 그것으로 인해서 인간은 끊임없는 파괴와 고통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죄의 뿌리는 끊임없는 실행 죄를 불러서 마음으로 범죄하고 행위로 범죄하고 보는 것으로 범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비참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고통이 그러한 교만한 죄의 대가로 돌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 어두워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분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고통하는 이 세상의 궁극적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러한 최초의 인간의 교만은 최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씨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16:19) 우리의 교만은 끊임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물들의 질서를 고집하게 하고 그래서 명백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어 불순종하며 살게 합니다. 이로써 인간의 고통은 가중되는 것이죠.
이러한 인간의 교만은 공동체적인 삶의 완전한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만들어 놓으셨을 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천체로부터 시작을 해서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들은 없는 데서 창조되었고 창조된 모든 것들은 함께 영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주의 신성의 충만한 영광이 가득(17:24) 차게 되었고 이로써 모든 피조물들은 찬란한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영광은 누군가 혼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영적인 연결 속에서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모든 연결의 마지막 부분에는 인간이 있었고 인간 바로 그 위에는 모든 창조물들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거기에 계셨습니다.
성자의 그 영광은 다시 위일체의 영광과 연결이 되어 있었고 삼위의 아름다운 영광이 성자를 통해 인간을 통해 그리고이 세상 모든 피조물 속에 연결되어 있어서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창조된 것은 피조물이었으나 드러난 것은 삼위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영광 속에서 각자 각자는 자신의 위치와 작용과 역할이 있었고 (18:29) 그 자신의 위치와 역할 그 작용 속에서 그 모든 개개의 피조물들은 가장 아름다울 수 있었으며 가장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범죄하게 되었고 범죄하게 되자 인간을 통해서 그 쓰고 더러운 죄의 물들이 영적인 연계를 타고 흘러두면서 그 관계를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갈등하고 물고 뜯고 죽이는 그 무서운 갈등과 대립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러한 영적인 연결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19:30) 식물들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남은 기체인 산소를 토해내고 쓸모 없어서 식물이 버린 산소가 동물에게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기체가 됩니다. 동물들이 그 산소를 먹고 토해 놓은 필요 없는 이산화탄소가 식물들의 광합성 작용에는 꼭 필요하게 되고 수많은 미생물들의 도움으로 식물들은 성장하며 그 성장한 식물들이 다시 그 미생물들의 좋은 삶의 터전이 됩니다.
그것들에게서 곤충이 서식하게 되고 그 곤충들은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들짐승의 배설물들은 다시 미생물의 거처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만물들이 아직까지도 희미한 상호 공생의 연결을 가지고 있지만 본래적인 창조의 영광을 드러낸 아름다운 연결은 거의 대부분 사라지게 (20:35)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연결의 파괴. 이것은 바로 한 인간의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교만 때문에 이 공동체의 아름다운 관계가 파괴된 것이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처음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 아담은이는 나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고백했지만 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 여자가 이 땅에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과 하와의 동심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또한 그 몸에서 태어난 자신의 형상을 닮은 동생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 자행되었으니 살인자가 가인이요 살해당한 자가 (21:40) 아벨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갈 그래서 가장 행복했을 가정 공동체가 그때 가정 공동체는 또한 교회 공동체이기도 했는데 그 가정 공동체이자 교회 공동체인 그 최초의 인류의 공동체가 이 교만의 죄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고 고통과 불행 속으로 휘몰려가는 관경을 우리는 창세기의 우울한 보도 속에서 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가 한 일이고 그 죄의 뿌리는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한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한 지체가 되었는데도 지체들이 물고 뜯고 서로 싸우고 말로 (22:47) 비방하고 서로의 명예를 깎아내리고 험담하고 그를 아주 더럽고 추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 불결하기 짝이 없는 분쟁들이 거룩한 교회 속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모두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오늘 말합니다.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다고 여기고 한 마음, 한 뜻을 품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만이 바로이 교회 속에서 정신으로서 스며들게 돼요. 그러면 교회를 비롯한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판단하는 자기의 판단이 가장 최종적이고 권위 있는 판단이 되는 겁니다.
(23:50) 그래서 각자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신의 인생관 그리고 하나님의 뜻기의 감정들이 개입이 되어서 서로를 정죄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가치없게 여기고 하는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어서 교회의 지체들간에 심한 분쟁과 미움 그리고 분냄과 서로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당짓는 일들이 일어나게 돼요. 그러면 강단에서는 복음이 열심히 선포되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도들의 연합이 보여주는 삶은 끊임없이 외쳐요.이 이 복음 다 쓸데 없는 소리다.
그리고 하나님 믿고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24:54) 삶이라는 것은 다 엉터리다. 그거를 삶으로 보여 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모여서 함께 예배는 드리고 기도하지만 그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열심히 전한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떨어질 때 사랑이 없는 악한 행실로서 그들 속에 있는 말씀의 씨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역할들을 한다 이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솔직히 말해서 세상을 볼 때의 마음이 아픕니까? 교회를 볼 때의 마음이 아픕니까? 이 세상의 사람들의 도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열한 삶들이 교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감히 하지 못하는 야비한 모략과 계략들이 교회 안에서 여전히 통용됩니다.
(25:57) 세상 사람들도 점잖은 사람들은 결코 하지 않을 그런 더럽고 추잡한 말과 상대방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야비한 언사들이 거침없이 토해져 나오고 아주 상스럽고 더럽기 짝이 없는 말들이 성도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토해져 나오니 입에서 나오는 설사요 똥들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신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구원받은 지체이고 교회에 소속된 지체라고 또 떠들고 다니니 부끄러움을 어찌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교만의 뿌리에서 솟아오는 모든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여러분 사이를 지나다녀도 다른 사람들을 과소 평가하고 헐뜯고 하찮게 여기고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27:00) 성도들을 서로 깔보는 그런 일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섬기는 것은 아주 티끌보다도 작은 섬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인간은 희망이 없어 하고 포기해 버리는 언사들. 이게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그런 언사입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인간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계시고 그래도 말씀으로 먹이고 은혜로 그를 고쳐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포기합니다.이 교만이 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8:04)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포기할 때에도 끝까지 희망을 갖는 것 그게 사랑이에요. 그래서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병적일 정도로 그 아들에 대해서 기대를 가져요. 세상 사람들이 다 포기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아요. 그게 사랑이야. 그게 사랑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교만으로 인해서 모두 파괴된 공동체를 인간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는데 그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바로 겸손이에요. 겸손.이 이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29:10) 몸을 입고이 세상에 내려오신 성육신의 사건을 통해 가장 잘 나타나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는 스스로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해서 신성을 모두 다 비워 버리셨고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인성만 취하셔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니셨고 단순한 사람으로 사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교리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셨다라고 하는 이 말은 신 하나님이신 자신을 퍼내셔 그래서 아무것도 없게끔 비우셨다는 뜻이 아니라 (30:15) 그분은 이 사람의 몸을 입고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이셨고 오신 후에도 하나님이셨는데 그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을 저 밑에 묻어두시고 그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위해 사용하시지 않고 묻어두신 것을 가리켜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졌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는데 이 사람의 몸은 불멸할 육체가 아니라 사라져 없어질 그런 육체였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은 영원하신 분인데 사라질 육체를 입으셨으니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 (31:21) 주리시면 배고프셨고 기온이 내려가면 추우셨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슬프셨고 목이 갈하면 목마르셨습니다. 그런 삶을 안 사실 수도 있었지만 교만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는 교만과 정 반대인 겸손의 길을 가셔야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는 낮아지시고 또 낮아지시고 또 낮아지신 그런 생애였습니다.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이 사람의 썩을 몸을 입고이 세상에 오셔서 결국은 당신 자신의 몸이 우리 모든 사람들이 죄를 위해 바쳐질 화목 (32:27)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감당하시고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으니 그야말로 종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노예처럼 우리를 섬기고 사시다가 마치 살인자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형벌을 당하셨으니 어찌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가 낮아짐의 생애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렇게 그분이 철저히 낮아지신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분은이 세상에 오셔서 33해 동안 온갖 결핍과 고난에 사시면서도 자기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수많은 (33:32)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신 자기를 해하려는 수많은 악한 사람들을 만났고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인간을 섬기셨습니다.
존중받을 만한 인간들만 골라서 존중해 주시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만 선택해서 사랑해 주신 것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죄인들, 심지어는 아직까지도 회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박해하는 사람들, 나아가서 당신을 그리스도인 줄 모르고 십자가에 못박는 그 원수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시면서 섬기셨으니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된 (34:36) 겸손의 생애였습니다.
참된 겸손은 남을 보면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리스도 앞에 자기를 낮춤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의 사람 안드리우 머레이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죄인 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종류의 죄인은 용서받은 죄인이고 또 한 종류의 죄인은 아직 용서를 받지 못한 죄인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우리가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고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체들을 섬기고 사랑할 때는 우리가 단지 용서받은 죄인들일(35:42) 뿐이라고 하는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하나님을 거스리고 원수처럼 살아가는 타락하고 더러운 죄인들 그리고 교회에서 부족하기 짝이 없어서 정말 가치 없어 보이는 지체들을 대할 때에도 자기가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저들과 똑같은 죄인인데 나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하셔서 또 저들과 달리 요즘 나에게 은혜를 주셔서 내가 스스로 죄인인 것을 알게 하셨을 뿐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자기를 비운 철저한 겸손의 희생을 통해서 (36:47) 하신 그 일은 아담의 죄를 통해 무너진 이 모든 피조 세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들로부터 이 땅에 존재한 모든 아름다운 피조 세계가 다 관계가 깨뜨려졌고 사람들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죄를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다시 한번 아름답게 연결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통해서 미래에 다시 한번 창조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연결을 모든 피조물 속에 이룩하시고 그것을 통해 창조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나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니 그 모든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일들의 (37:55) 샘플 케이스로 하나님이 교회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만물의 머리이신 그분이 먼저 교회의 머리가 되셨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한 몸이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던 모든 각 사람들과의 관계를 교회 안에서 일체를 이루게 하셨고 성도가 함께 모여사는 이와 같은 공동생활은 그 정신을 구현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이것을 통해서 인간을 넘어서서 모든 피조물들이 회복하게 될 창조의 지극한 아름다움이 (38:59) 완성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려고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바로 그런 계획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고 그리고 온 성도들이 그의 몸의 지체가 되어서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죠.
그런데 이제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예수의 몸에 접붙여 주셨지만 여전히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이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의 머리에 붙어 있는 영적인 몸인 이 교회는 완전히 떨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몸 안에는 (40:06) 또한 각각 어느 정도의 죄가 남아 있어서 그 죄에 감염된 몸의 일부분들이 덧나기도 하고 상처가 생기기도 해요. 그런 상처와 덧남들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은혜 떨어진 신자들을 통해 나타나는 죄와 성화되지 못한 성품, 행동, 올바르지 않은 타락한 행실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덧남과 상처예요.
그러나 그러한 덧남과 상처가 예수의 몸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면 누군가 부족한 지체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상처나고 덧날 때 그것을 사랑으로 치료하는 그 일이 바로 교회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이죠.
(41:11) 우리의 몸에 상처가 나면은 피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피를 타고 백혈구들이 집결합니다. 그 피는 상처난 그 장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피인데 상처가 나면 혈액 동원령이 내립니다. 그래서 결국은 상처한 그곳으로 집결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우리 온몸에 흩어져 있던 백혈구들이 파송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 몸 자체를 썩게 하고 망가뜨리게 하려고 하는 악한 병균들과 함께 피흘리기까지 싸우다가 죽어 갑니다. 이게 고름이에요. 그렇게함으로써 우리 온 몸은 면역력을 가지고 상처와 부분적인 덧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여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42:11) 이러한 치유의 작용들이 불가능해진 사람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면역성이 없기 때문에 상처가 덧나면 온 몸에 있는 피들이 백혈구를 보내서 그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그래서 감염되어서 몸 전체를 다 죽이면서 그가 사망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바로 그렇게 사랑으로 서로를 치유하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예요. 공동체예요. 공동체예요. 그런데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번 보십시오. 교회 안에 온전하지 못한 지체들이 있지요. 우리도 한 때는 은혜 떨어질 때 (43:17) 그랬습니다.
주님을 태어난 때부터 만난게 아니라 세상에서 한참 살다가 왔으니 그 세상에서 자빈들처럼 살던 사람이 왕의 궁전과 같은 교회에 들어와서 지존하신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에는 아직까지도 야비한 행실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한 때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치료해서 한 몸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공동생활이 가지고 있는 유익이고 또한 사명이에요. 그래서 성도의 일생은 교회의 공동생활을 통해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세우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에요.
최근에 (44:21) 야구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보니까 그 감독에 대한 용병술 내지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 감독의 특징이 뭐냐 그랬더니 기다려 주는 것이 그 감독의 특징이래요. 그 기다려 준다는게 무슨 뜻이냐? 그랬더니 그 감독의 이야기는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은 누구든지 슬럼프에 빠지는 적이 있는데 그때에 적절한 도움을 주어서 극복하면 그 슬럼프 때문에 훨씬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지만 그때에 잘 다루어 주지 못하면 그게 계기가 되어서 결국은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개인적인 일들이나 화합하지 못하는 팀에서 상처를 받고 야구 선수로서 (45:24) 막장까지 내려갔던 사람들의 명단을 대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독의 슬하에서 회복되어서 최상의 선수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믿고 참으면서 기다려 준다는 거죠. 근데 그다음 말이 재밌어요. 그렇게 믿고 기다려 줄 때 혜택을 받는 선수들은 정말 감동이지만 그 말도 되지 않는 상태의 선수들을 기다려 주는 감독은 마음은 썩어 들어갑니다. 근데 한 사람이 썩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살아나요.
시인 롱펠로우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어요. 모두 외울 순 없지만 기억을 더듬면서 읊플 테니 원문과 다르더라도 나중에 비를 걸지 마십시오.
(46:31)
오래 전에 하늘을 향해 화살 하나 쏘아 올렸네.
그리고는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발견했네.
어떤 큰 나무에 그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아주 오래오래 전에 나는 하늘을 향해 노래 한 곡조 불렀지.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나는 알았네.
그때 부른 내 노래가 내 친구의 마음속에 아직도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우리들이 흔히 나는 그래도 뒷끝은 없어. 그런 사람 있거든요. 옛날에 내가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그 말씀 잘하셨는데 그때마다 난 항상 앞것도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는 악의가 없으니까 잊어버리죠. 그러니까 뒤끝이 없다 그러죠.
(47:36) 그러나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인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은 뒤끝이 없는데 이 사람 속에는 잊혀지지가 않는 거야. 누군가 누군가를 향해서 기억도 안 나지만 독한 말을 화살처럼 날린 거예요. 그리고 자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보니까 친구의 가슴속에 나무에 박힌 화살처럼 아직까지도 지나가지 않고 깊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던 거죠. 발견했던 거예요.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어려움에 처한 친구, 과오를 행한 친구가 있었는데 사랑으로 따뜻하게 위로를 해서 노래처럼 불러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리고 잊어버렸어요.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났더니 아직까지도 그때의 따뜻한 사랑의 언어가 친구의 가슴 (48:40) 속에서 메아리 돌고 있었다. 그 얘기 그게 시의 뜻이에요. 예.
여러분들이 지체들에게 사랑 없이 행한 것을 여러분들은 잊고 있어요. 그러나 지체들은 모두 기억하고 하나님은 모두 생각하셔요.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게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서 선배들한테 많이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이 유전적으로 눈이 아주 나쁘게 태어났어요. 그런데 뭐 공부도 많이 못했지만 어쨌든 그러고 뭐 책 보고 이런다 그러면서 눈이 더 나빠졌습니다. 선배들이 가끔 부르는 거예요. 그 내가 굉장히 잘아는 선배인데 할 말이 있대요. 뭐 요즘 태도가 틀렸다는 거. 왜 그러냐? 그러니까 너 어떻게 선배를 보고 히 쳐다보고 인사를 안 할 수가 (49:45) 있냐? 예. 그때는 이미 벌써 내가 변명을 하기가 너무 늦은 때예요.
그 제가 어느 정도 눈이 나쁘냐면은 내 방에서 한참 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사람이 쑥 들어왔어요. 그 제가 물었어요. 어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그때 우리 집사람이 가정일로 찾아왔습니다.
성도들이 가끔 나한테 상처받았다는 이야기가 들어와요. 왜 그러냐 목사님은 인사하셔도 안 받는데요. 그래서 그 서 있을 때, 때로는 그게 사람인지 남은지도 구분이 안 되는데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50:49) 나를 너무 과대 평가하지 마요. 인사를 하려면 바짝 와서 인사를 해야 해요. 시야 안에 들어와서 응. 아버님이 돌아가시는데 문상을 오는데 누군가 낯선 분이 오셔요. 그래서 귓속말로 막 물어봤어요. 야 너 저 사람 아니야? 아무도 모른데. 우리 집사람이 와서 여보 저분이 누구셔?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는데 누구시나? 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 그러니 이제 이제 나갈 때 인사를 해야 되는데 뭐라고 인사를 되냐? 그래서 그냥 어정쩡하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요. 그 가는데 계속 뒤를 돌아봐요. 우리 집사람이 가서 저 죄송하지만 그 어디서 오셨나요? 알고 보니까 내가 아주 잘하는 교수님이에요. (51:49) 그래서 용서를 빌었어요.
이렇게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자기를 멸시당하는 것 같은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행한 일들을 기억을 해 보세요. 기회 있을 때마다 얼마나 많이 교회를 아프게 하고 지체들을 상처냈는지 생각해 보세요. 일주일만 여러분 곁에 가까이 있어도 아주 단호한 태도로 지체들을 하찮게 여기는 발언 쥐꼬리만 사랑하고 바위덩이만큼 판단한 그 무서운 판결. 아주 조금 사랑해 보고 그 인간은 희망이 없다라고 하는 단정. 이런 것들을 많이 봐요.
떡이 없고 물이 없어 배고프고 목마른 (52:54)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응.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러한 겸손의 삶, 사랑의 뿌리인 겸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첫째는 질서를 생각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 질서는 다름 아닌 우리는 하나님 아래이다. 응. 우리는 하나님과 같아질 수 없고 그분은 지존하고 거룩하신 나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나 특히 육신을 입고 있는 이 인간인 나는 그분의 손에 의해서 빚어진 사라지고 말 소멸할 존재들이라고 (54:00)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을 일 주일도 채 안 되는 불과 한 3일 동안에 여의였습니다. 목요일까지도 아버님이 곧 태어나실 거라고 굳게 믿었고 주일날 싸늘한 시신을 마주했습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사택에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거기에 있는 작은 의자에 털썩 앉았는데 그 자리는 아버님이 주일마다 예배 끝나면 올라오셔서 앉아 계시던 자리였습니다. 억제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아버님을 화장하고 국립묘지로 모시기 전에 한시간 40분 만에 다 태워져서 (55:09) 유골만 남았을 때 일 보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뼈에 가져가시겠습니까? 갈아서 가져가시겠습니까? 기계에 한 30초 갈아서 한 줌의 가루가 되어서 보자기에 쌓아지는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아 이게 인간이구나. 이게 인간이구나.
불길로 한 두 시간 열을 가해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찌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생에 참으로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아마 더 열을 가하면 그 뼈마저 모두 사라지고 기체가 되어서 흩어질 것이고 또 더 변화가 오면 그 기체마자 없어질 것이니 결국은 무에서 태어났기 (56:15) 때문에 무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 주는 것이죠. 이게 우리 인간입니다.
분초마다 다투며 서로 물고 뜯고 해도 두 시간에 불길이면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질 그것이 바로 인간 육체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버님의 영혼이 그 육체는 남겨두고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아마 그 슬픔은 더욱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만물의 질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두 시간의 열을 가하면 기체로 (57:20) 사라지고 말 육신을 입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물고 뜯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망상하며 하나님 앞에 대들고 반항하며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개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못 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사람을 무는 개가 있습니다. 이 이 개는 어떤 계기에 인간을 공격해서 한 번 인간을 물고 그렇게 인간을 깨물어서 인간이 울고 공포에 질려서 자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승리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사람을 물고 굴복시키려고 하게 됩니다. 결국은 그 개의 마지막은 타살입니다. (58:27) 결국은 그 개를 죽입니다. 현행법상으로도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개가 위협적으로 짓거나 할 때 그 개를 때려 죽여 버려도 전혀 여러분들에게 그 어 귀책 사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방임한 개는 소유권을 포기한 개예요. 합적으로 죽여도 돼요. 오히려 행을 위협한 것에 대해서 정신적인 보상을 해야 돼요. 이래 되거든요. 그까
우리도 한번 범죄하는 순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해서 하나님을 무는 거예요. 한번 죄를 지어서 자기가 생각하는 질서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습관적으로 죄를 지으면서 교만해지는 거죠. 언젠간 하나님이 치시고 본래의 질서로 돌아가게 하시는 거죠.
(59:31) 그래서 여러분들은 다만 죽을 몸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그 질서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무슨 권면이나 위로나 이런 것이 있다면 칭찬이나 있다면 한 마음 한 뜻을 품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된다고 말하는데이 예수의 마음은 하나님의 본체이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철저한 겸손의 정신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사랑하면 반드시 실망할 때가 있고요. 그리고 사람이 사람 때문에 사람을 (1:00:35) 존경하게 되면은 언젠가는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 때문에 사람을 존경하게 되면은 그것 때문에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서 실망할 이유가 없으니 사랑의 시작이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어떠한 때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사랑할 때 우리는 또한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죄악과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이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허락하시네.
깊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들이 예수의 정신 가진 삶을 살게 되고 우리 각자 각자가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공동체가 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한 혼 안에서 공동체는 예수께서 사셨던 삶을 일치단결하여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지체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아멘. 그래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요.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요.
(1:02:52) 마지막 세 번째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된 여러분들이 한 번쯤면 한 번쯤은 예수 십자가 앞에서 나는 정말 쓰레기 같은 죄인이고 너무 비참한 인간이다라는 것을 고백했던 사람이고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깊이 느꼈던 사람이지요. 그렇죠? 느꼈던 사람입니다. 그걸 철저하게 느꼈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분 앞에 나아와서 나는 아무 쓸데 없는 인간이고 주님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고백했던 사람이죠.
그 정신이 (1:03:55) 순종하는 삶을 살게 했던 정신이었어요. 그래서 내 예전에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이 사랑하시길 원하시는 것들을 내가 아파도 주님의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기로 한 것이 회심의 의미예요. 회심의 의미예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를 자꾸 잃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이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고 할지라도 모든 지체들을 늘 한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가슴에 새기십시오.
(1:05:00) 그래서 성도는 사랑할 수 있을 때에는 은혜가 남아 있으니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에는 은혜를 받아야 하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는 남아 있는 은혜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은혜를 받아야 하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애를 써야 하지만 그 선한 의지 안에서 하나님이 은혜로서 그를 사랑의 감화로 인도하실 것 아니에요. 은혜 그 자체는 사랑의 감화야.
그래서 여러분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다가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는 어느 지체가 지체를 비방하거나 혹은 비방하지 않아도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의 단점을 서슴없이 말하거나 그의 사실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1:06:05) 수치를 말해서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보거들랑 그가 은혜가 떨어진 성도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은혜를 받도록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씩씩하고 단호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도 그것은 껍질일 뿐이고 속에 은혜가 떨어졌기 때문에 사랑은 고갈되었고 그래서 남들이 미쳐보지 못하는 지체의 단점을 보는 것이니 그것은 뛰어난 지혜가 시켰다기보다는 사랑 없음이 발견하게 한 단점입니다. 단점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사실 회심하고 4년 동안 (1:07:10) 저희 아버님을 철저히 미워했고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아버지와 원수 맺고 있었습니다. 회심한 후 4년 동안 그런 일은 내 마음속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도 본 적이 없고 나도 아버지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신학교를 가기 위해서 결정을 해야 되는데 신학교를 가겠다고 그랬을 때 아버님이 심하게 말씀하시면서 호적을 파 가지고 가라 그랬습니다. 그때 전 일초도 망설리지 않고 그러겠습니다
(1:08:16) 내가 가야 할 길 때문에 아버지가 내 아버지 길을 거절하신다면은 내가 평소에 바라던 바입니다 하는 이 못된 심정이이 안에서 발동한 거죠. 걱정마십시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버지 제가 파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거는 사실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단호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후에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한없이 마음을 녹이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진짜로 제 마음에 들렸어요. “얘야, 너희 아버지가 너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너를 많이 사랑해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만약에 내가 너에게 비춰 준 것 같은 복음의 빛이 있었다면 안 (1:09:21) 그랬을 거야. 그리고 너도 만약에 이런 복음의 빛을 받지 않았다면 너희 아버지보다 더 나쁜 삶을 살았을 거야.”
아무도 없는 교회 당에서 낮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그렇구나. 결국은 아버지가 내게 준 상처 때문에 내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 안에 사랑 없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구나.” 저의 제2의 회심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내 안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사랑의 싸움은 22여년이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1:10:27) 그러나 결국은 이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일평생 가정과 부모에 대해서 설교할 때 눈물 없이는 설교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아픔이었지만 그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는 내 자신의 무릎을 꿇는 수많은 기도의 시간들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는 그 많은 탐구의 시간들이 준 것보다도 (1:11:35) 더 많은 성화의 길로 저를 인도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깊이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은혜 안에서 정말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628년에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의 청교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갔어요. 프린스라고 하는 그 당시의 목사님이 아주 어린 나이에부터 신대륙에서 살았는데 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1:12:39) 그 프린스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해 준 것을 그 목사님이 전했습니다.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이 할아버지는 후일 자기의 손자에게 이런 고백을 남겼어요. 내가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정착한지 정착해서 개척 생활을 하며 7년을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함께 생활하는 성도들 중에 누구도 형제를 비방하거나 뒤에서 그를 미워하는 말을 하거나 혹은 은근이라도 사람들에게 그를 깎아내리는 언사를 하는 것을 7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단 그에게 회고하였습니다.
결핍으로 가득 차고 시시 각각으로 (1:13:44) 사랑하는 아들이, 딸이 그리고 부모와 형제가 죽어가는 그 처절한 죽음과의 싸움 속에서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 힘은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는이 은혜를 받지 않고는 성도의 삶을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사랑 없음이 발견될 때마다 지체들의 결함과 그리고 부족함이 보여서 그를 미워함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얼마나 많은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보좌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나에게는 없는 이 은혜를 부어 주셔서 나는 갖지 못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도록 감화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1:14:50)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유언과 같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아프더라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용서하고 허물이 보이거들랑 덮어주고 그리고 사랑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남을 존귀하게 여기며 형제의 결함을 볼마다 그 결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결점이 많은 지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더 온전해져서 사랑으로 가득차서 예수를 보여주는 공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이 (1:15:53) 시간에 우리 같이 한번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의 교만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구원을 위해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비워 낮아지게 해 주시고 그래서 우리들이 다만 티끌인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해 주시고 사랑할 수 있을 때에는 남아 있는 은혜의 힘으로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에는 은혜가 필요하니 또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사랑이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들을 주님이 (1:16:58) 사랑해 주시고 오늘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자비하신 주님 오늘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사랑이 만드신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내려 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비천한 인생에게 우리의 사랑 없음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 내 마음에 있는 수많은 악감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사랑이 없는 시간을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은혜를 누려주 하나님의 많은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사랑하는 모든 지체들 위에 이제로부터 (1:18:07) 영원히 함께 있어지다. 아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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