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릴 신앙고백,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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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드릴 신앙고백, 안식 (찬198장)
우리가 드릴 신앙고백, 안식 (찬198장)
본문: 출애굽기 16:22-36
본문: 출애굽기 16:22-36
22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26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30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2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33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36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
청년들 사이에서는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공부하고, 자기계발하는 삶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리는 점점 더 지쳐갈까요? 왜 더 분주해질수록 영혼은 더 메말라갈까요?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본문 해석]
출애굽기 16장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굶주리고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만나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매일 하루치만 거두어야 했고, 욕심부려 남기면 벌레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2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섯째 날,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만나가 두 배로 내렸습니다. 백성들이 당황해서 지도자들에게 보고합니다. 그때 모세가 말합니다. 23절,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여러분, 이 장면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 시내산에 오르기 전, 하나님은 이미 안식일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매일의 양식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샤바톤 샤바트 코데쉬'는 "완전한 쉼, 거룩한 쉼"이라는 강조 표현입니다. 단순히 일을 안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룩하게 구별된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게는 쉼이 없습니다. 바로는 그들을 더 혹독하게 부렸습니다(출 5장). 애굽의 신들은 나일강의 범람 주기에 따라 움직였고, '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시자마자 가장 먼저 가르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이제 쉬어도 된다. 너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그리고 24절을 보십시오. 평일에 남긴 만나는 벌레가 생겼는데, 안식일 전날의 만나는 썩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만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 주권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핵심 메시지]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안식의 리듬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매주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안식은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 제가 안식일에 멈추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의 가치는 제가 생산해낸 것에 있지 않고, 당신의 자녀라는 신분에 있습니다."
[적용]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첫째, 성과주의 사회 속에서 안식을 회복합시다.
우리는 지금 '쉼 없음'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이 일해야, 더 많이 성취해야 가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그 끝에는 번아웃과 우울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일은 단지 교회 가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세상의 성과주의에 저항하는 거룩한 선언입니다.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 고백을 매주 한 번 회복하는 시간이 주일입니다. 성과 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진정한 안식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디지털 과잉 시대 속에서 영혼의 만나를 거둡시다.
광야의 만나는 매일 새벽에 거두어야 했습니다. 모아둘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매일 새벽, 매일 말씀 앞에 나아와 그날의 만나를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33절처럼,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보존했듯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영적 습관을 가집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알림을 끄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는 그 시간이 우리 영혼의 광주리를 채울 것입니다.
[결론 - 복음]
성도 여러분, "안식의 리듬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을 매주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만나는 그림자였습니다. 참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은 우리에게 더 큰 안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얻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의 모든 노예 됨은 끝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안식일 정신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식의 리듬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