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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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자랑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본문이 쓰인 배경
본문이 쓰인 배경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약 18개월 동안 머물며 직접 세운 교회였습니다. 편지를 쓴 시점은 주후 53년에서 55년 사이, 그가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한마디로 잘나가는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무역항이었고, 로마가 식민지로 새롭게 재건한 도시였습니다. 돈이 흘렀고, 사람이 모였고, 다양한 종교와 철학이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수사학, 곧 말 잘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문화가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유명한 변사가 시장 광장에서 강연을 하면 사람들이 몰려가 박수를 쳤습니다. 마치 오늘날 인기 강연자나 인플루언서를 따라다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역자들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1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누구를 따르느냐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강연자를 좋아하느냐, 어떤 책을 읽느냐로 자기 영성을 자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비교의식이 영적 자랑으로, 자랑이 교만으로, 교만이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많고, 지식도 깊고, 활기도 넘쳤지만, 그 모든 것이 자랑의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1장부터 3장까지, 그는 차근차근 그들의 문제를 짚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4장에서,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오늘 본문이 그 핵심입니다.
첫째, 사역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2절)
첫째, 사역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2절)
먼저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바울은 자신을 두 단어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일꾼이라는 단어는 휘페레테스인데, 원래는 큰 군선의 가장 아래층에서 노를 젓던 종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선실에서 묵묵히 노만 젓는 가장 낮은 신분의 종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라는 큰 배의 가장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종이다."
둘째 단어는 "맡은 자", 곧 청지기입니다.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모스라고 하는데, 종이지만 주인의 살림과 재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종입니다. 종이라는 점에서는 낮지만, 동시에 주인을 대신해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바울이 두 단어를 나란히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역자는 종이라는 점에서 결코 떠받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청지기라는 점에서 주인의 일을 위임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청중의 박수로 평가받을 자가 아니라 주인 앞에서 결산할 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종이라고 부른 이유는, 사역자가 가볍게 여겨져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낮추어 표현한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사역자들을 우상처럼 떠받들며 누구를 따르느냐로 파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된 자리에서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는 사역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분명히 말합니다.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가장 귀히 여기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넘치도록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사역자는 별것 아니다"가 아닙니다.
"사역자를 우상처럼 떠받들거나 줄 세워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존귀히 여기되, 사역자를 우상시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한 가지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으려면 한 본문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상황을 다루지만, 성경 전체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보여줍니다.
한 본문에서 사역자를 종으로 부른다고 해서 사역자가 가볍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본문에서 사역자를 귀히 여기라고 해서 사역자를 우상시해도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두 본문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균형 잡힌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야를 한 본문에 가두지 않고, 성경 전체로 넓히는 일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시다. 2절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말성경은 이 구절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입니다"라고 옮겼습니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단 한 가지는 충성, 곧 신실함입니다.
화려함도 아니고, 영향력도 아니고, 인기도 아니고, 결과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사역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청지기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시간, 재능, 관계, 신앙, 직장, 가정 어느 것 하나 우리 것이 아닙니다.
다 주인의 것을 잠시 맡은 것입니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 하나, 충성입니다.
청년의 시기는 특별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장 강한 시기입니다. 유튜브를 켜면 20대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SNS에는 멋진 일상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나도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도 뭔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 한 가지라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신실함, 일터에서의 정직함, 작은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큰 일입니다.
둘째, 누구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 것인가 (3–5절)
둘째, 누구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 것인가 (3–5절)
이어서 3절부터 5절을 읽어 봅시다.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서 바울은 놀라운 자유를 보여줍니다.
사실 고린도 교인들 중 어떤 이들은 바울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한마디로 "글은 강한데 사람은 별로다, 말솜씨는 신통치 않다"는 평가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그런 평가를 받았다면 어떨까요?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별것 아닌 댓글 하나,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여러분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고 풀어냅니다. 사람의 평가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사람의 평가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평가조차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조차 결정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 양심이 우리 자신의 모든 죄를 다 볼 수 있을 만큼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판단이 결정적입니까?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5절이 결정적입니다.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사람은 외면만 봅니다. 행동의 일부만 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어둠에 감추인 것들과 마음의 뜻까지 모두 드러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누군가를 최종적으로 평가할 권한도 없고, 누군가의 평가를 절대화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5절 끝이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쉬운성경은 이렇게 옮겼습니다. "그 때에 각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마땅히 받을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자유입니다. 사람의 평가가 아닌 단 한 분의 "잘하였도다"라는 음성을 향해 사는 인생. 그 음성 하나면 충분한 인생.
오늘 누군가의 댓글 한 줄,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고 있지 않습니까? 또는 반대로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며칠 동안 들떠 있지 않습니까?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사람의 판단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평가만 보고 살아라. 그리고 그날에 내가 너에게 줄 칭찬을 향해 묵묵히 걸어라."
셋째, 모든 자랑을 무너뜨리는 한 질문 (6–7절)
셋째, 모든 자랑을 무너뜨리는 한 질문 (6–7절)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 6절부터 7절을 읽어 봅시다.
바울은 왜 자신과 아볼로를 예로 들었을까요?
바울과 아볼로조차 서로를 비교하거나 “누가 더 뛰어나다” 하며 경쟁하지 않는데,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람을 나누고 편을 갈라 싸우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
여기서 “교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시오오인데, 뜻은 “부풀어 오르다”입니다.
풍선처럼 겉은 커 보이는데 안은 비어 있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바로 이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대단한 척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만을 깨뜨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누가 너를 특별하게 만들었느냐?”
네가 지금 가진 우월함과 특별함이 정말 네 힘만으로 된 것이냐는 것입니다.
둘째,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은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진 것들은 대부분 받은 것입니다.
외모, 재능, 성격, 건강, 가정, 환경, 기회까지 내가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해 주었고, 누군가 기도해 주었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훈련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노력조차 결국 하나님이 주신 조건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건강과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재능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노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다 받은 것인데 왜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찌릅니다.
우리는 자꾸 받은 은혜를 내 실력처럼 착각합니다.
SNS에 무언가를 올리며 은근히 인정받고 싶을 때,
누군가보다 내가 더 낫다고 느끼고 싶을 때,
그때 이 질문을 떠올려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 말고 무엇이 있지?”
이 질문은 교만을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열등감도 함께 무너뜨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면,
내게 없는 것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받았고,
나는 다른 것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비교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결국 비교에서 나오는데,
“나는 받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비교가 힘을 잃습니다.
결국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교만해질 수도 없고,
스스로를 함부로 초라하게 여길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또 다른 문제를 지적합니다.
바로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일부러 풍자하며 말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고, 이미 풍성하고, 이미 왕이 되었구나.”
이 말은 진짜 칭찬이 아닙니다.
“너희는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도 많고, 지식도 있었고, 신앙적인 체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런 마음에 빠졌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나는 꽤 성숙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신앙이 낫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착각을 깨뜨립니다.
“그래, 너희가 정말 왕이 되었다면 우리도 좀 같이 왕 노릇하면 좋겠다.”
이건 비꼬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바울과 사도들의 삶은 왕 같은 삶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9절부터 보면 바울은 사도들의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굶주리고, 핍박받고, 맞고, 떠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초라한 삶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합니다.
“진짜 영광은 아직 완전히 온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영광을 누리게 되지만,
지금은 아직 십자가의 길을 걷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미 다 도착한 사람처럼 살지 말라.”
청년들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조금 알게 되고,
봉사도 하고,
기도 생활도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신앙인 아닌가?”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낫지.”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람이 멈추기 시작합니다.
더 배우려 하지 않고, 더 낮아지려 하지 않고, 더 자라려 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이미 다 안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나는 아직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 안에서 계속 자랍니다. 🌱
바울은 지금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너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영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은 왕좌에 앉을 때가 아니라 십자가를 붙들고 걸어갈 때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은
“나는 다 안다”가 아니라,
“나는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삶입니다.
자, 이제 이 말씀을 우리 청년들의 실제 삶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한마디로 ‘우리는 모든 것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며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비교와 경쟁을 멈추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내가 가진 것을 보며 우월감에 빠질 필요도 없고, 내게 없는 것을 보며 열등감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27절에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오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다 몰려가는 것을 보고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역할도, 인기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SNS를 켜고 다른 사람의 화려한 일상을 보며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십시오. "내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둘째,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평가를 받습니다. SNS의 좋아요 수, 사람들의 표정, 말투,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점수와 후기. 그 모든 것이 우리 마음을 쉴 새 없이 흔듭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도 법정 소송과 사람들의 평판이 아주 중요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선언합니다. 사람의 평가나 심지어 나 자신의 평가조차 내 인생을 결정짓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오직 주님의 평가만이 진짜입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오늘 누군가가 여러분을 어떻게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께서 "참 잘하였다"라고 안아주시는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셋째, 내게 주어진 작은 일상에 충성하십시오.청년의 시기에는 무언가 대단하고 크고 화려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 즉 주인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오이코노모스)에게 요구되는 것은 딱 하나, 바로 '충성(믿음직함)'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떠올려 보십시오. 주인이 종들을 칭찬할 때, "네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왔느냐"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긴 자나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것, 작은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것, 일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충성하십시오.
넷째,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늘 기억하십시오.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는 이제 성경도 좀 알고, 영적으로 꽤 성숙했어'라는 교만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그 착각에 빠져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영광은 우리가 이 땅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영광의 왕관을 쓸 때가 아니라, 매일 나를 부인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입니다.
맺는 말
청년 여러분,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전서 4:7)
이 짧은 세 가지 질문 앞에서, 내가 남보다 낫다는 교만도 멈추고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도 끝이 납니다. 비로소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과 비교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평가와 끊임없는 비교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사람의 시선이 아닌 오직 주님의 "잘하였도다"라는 칭찬을 기대하며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