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예배 받으실 주님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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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9번의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시리즈 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칭찬과 책망, 또 사랑의 권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칭찬만 받기도 했고, 어떤 교회는 책망만 받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모두 받기도 했습니다.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모두 살펴본 우리들은 모든 것을 종합하여, 칭찬했던 것들을 더욱 이루어 나가고, 책망하신 것들은 회개하고 돌이키고, 권면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여 순종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또 칭찬한 것과 책망하신 것, 권면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하는 수고를 하셔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제가 간략히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주님은 믿음을 끝까지 지킨 교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밖에 없었지만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크기나 세상적인 성공보다,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특별히 반복되는 칭찬은 “인내”였습니다. 믿음은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처한 상황이 그들에게 그리 호의적이거나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저주와 협박과 핍박과 조롱을 받는 상황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중에 인내하며 뚝심있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은 교회의 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고, 버가모와 두아디라는 세상과 타협했으며, 사데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미지근한 신앙에 빠져 교회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결국 하나입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들도 섬기고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는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어가고, 죄에 둔감해지고,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부와 지식과 능력을 의지할 때 조금씩 무너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주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으로, 말씀으로, 거룩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여 순종하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구별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편지의 마지막에는 동일한 약속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주님은 완벽한 사람을 이기는 자라고 부르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사람을 이기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곱 교회의 모습은 결국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성도들이나 오늘 날 우리들이나 모두 연약한 육신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들과 똑같이 부르심을 받았으나, 부르심을 받은대로 올바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식어버린 사랑과 타협과 미지근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회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교회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환난과 시험과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거룩하신 뜻에 순종하여 거룩함을 더욱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시리즈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그 동안 받은 권면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충성되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 한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끝내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을 너머 있는 참된 현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확장시켜 주셔서, 참된 현실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에서 우리는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4장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이전까지는 주님께서 우리 현실 속으로 내려오셨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요한을 하늘로 불러올리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시는 시선”이었다면, 4장부터는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도록 초대받는 장면”입니다.
땅에서는 교회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핍박도 있었고, 타협도 있었고, 배교의 위기도 있었습니다.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고, 성도들은 작고 연약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문이 열리자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혼란이 아니라 예배가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 장면은 단순히 미래의 천국 구경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에게 “누가 진짜 왕이신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만 바라보면 쉽게 무너집니다. 교회의 문제만 보이고, 세상의 악함만 보이고, 내 삶의 한계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한에게 하늘의 예배를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이길 힘은 더 높은 현실을 볼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배의 본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는 잠시 현실을 잊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현실을 보는 시간입니다.
흐려진 눈을 비비고, 안약을 넣어 생생하게 참된 현실을 보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라고 말하지만,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중심이십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이 승리자라고 말하지만, 하늘에서는 어린 양을 끝까지 붙든 자가 승리자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약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하늘에서는 성도들의 예배가 하나님 보좌 앞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예배를 본 사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도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입니다. 미래의 영광을 본 사람이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됩니다. 하늘의 예배를 본 사람이 세상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어진 현실을 참된 방식으로 살아낼 힘을 공급받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심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교회 가운데 거니심을 봅니다. 성령께서 여전히 교회를 붙드심을 봅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다시 눈물의 현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보좌를 본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현실 속으로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현실로 초대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두 만남 사이에서 교회는 변화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동시에 오늘도 우리를 하늘의 예배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닙니다. 하늘을 본 사람들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보좌를 본 사람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 믿음을 지키는 시간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그 초대 앞에 나아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주님을 찬양하며, 하늘의 예배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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