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드러내시고 은혜로 붙드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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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67:1–4 NKRV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Genesis 44:1–17 NKRV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이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명하여 형제들의 자루에 양식을 채우고, 각 사람의 돈을 다시 넣게 하며, 특별히 베냐민의 자루에는 자기 은잔을 넣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에 뒤쫓아가 은잔을 찾게 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요셉이 형제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깊이 보면, 이것은 단순한 보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형제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죄를 드러내시고, 동시에 그들이 과거와 달라졌는지를 드러내시는 과정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를 덮어 둔 채 평안한 척 살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건을 통해, 말씀을 통해, 관계를 통해 우리의 죄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 드러내심은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는 시편의 기도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시고 드러내시며 마침내 영원한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139:23–24).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1:12
1. 전형상화: 하나님은 형제들의 숨은 죄를 드러내시고 변화된 마음을 확인하게 하신다
창세기 44장 1–2절에서 요셉은 청지기에게 말합니다.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으라.” 여기서“그 청년”은 베냐민입니다. 요셉은 의도적으로 베냐민에게 위기가 닥치게 만듭니다. 이것은 형제들의 마음을 시험하는 장치입니다. 과거에 그들은 아버지 야곱이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아버지가 사랑하는 또 다른 아들 베냐민이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형제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본문의 핵심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자 시기했고, 결국 그를 구덩이에 던지고 은 이십에 팔았습니다(창 37:4, 24, 28). 그때 그들은 동생의 울부짖음을 외면했고, 아버지의 슬픔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들이 다시 비슷한 상황 앞에 서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죄와 닮은 사건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정말 변화되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3–6절에서 형제들은 아침에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요셉의 청지기가 뒤쫓아와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그들은 당황합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7–9절에서 형제들은 “당신의 종들이 어찌 이런 일을 하리이까”라고 말하며, 누구에게서든 은잔이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고 자신들도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결백을 확신했지만, 아직 하나님이 드러내실 일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10–12절에서 청지기는 자루를 뒤집니다. 나이 많은 형부터 시작하여 막내에게 이르기까지 조사합니다. 그리고 은잔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됩니다. 이 장면은 매우 긴장됩니다. 과거에 형제들은 요셉을 버리고 자기들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베냐민을 버리고 자기들만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맞이합니다. 베냐민만 종으로 남겨 두면 자신들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3절은 그들이 옷을 찢고 각자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증거입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깊은 슬픔과 애통의 표시입니다. 야곱도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옷을 찢었습니다(창 37:34). 이제 형제들이 옷을 찢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를 울게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동생의 위기 앞에서 함께 애통합니다. 과거에는 동생을 버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동생과 함께 돌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드러나는 변화입니다.
14–16절에서 유다는 요셉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유다는 은잔 절도 사건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은잔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더 깊은 죄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전 요셉에게 행했던 죄, 아버지를 속였던 죄, 형제의 생명을 가볍게 여겼던 죄가 이제 하나님의 손길 앞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민수기 32장 23절은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덮어 두었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잊은 것처럼 살아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를 찾아내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회개하게 하시고, 낮추시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드러내심은 사랑의 징계입니다.
17절에서 요셉은 “그 잔이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형제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베냐민만 남기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책임질 것인가.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만, 다음 장에서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섭니다(창 44:33). 과거에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이 이제는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자리로 변화된 것입니다.
2. 형상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 변화된 마음을 찾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선택, 사람에게 상처를 준 말, 책임을 회피했던 순간, 내 유익을 위해 누군가를 외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아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잠언은 말씀합니다(잠 16:2).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현재 상황 속에서 과거의 죄와 비슷한 장면을 다시 만나게 하십니다. 예전에 내가 피했던 책임을 다시 마주하게 하십니다. 예전에 내가 외면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십니다. 예전에 내가 이기적으로 선택했던 자리와 비슷한 선택의 순간을 다시 허락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들추셔서 나를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정말 새로워졌는지를 보게 하시는구나.”
형제들에게 베냐민은 단순한 막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과거 요셉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선택해야 했습니다. “나만 살 것인가, 함께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과거에는 내 유익을 위해 침묵했다면, 지금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과거에는 누군가를 버려두고 나만 빠져나왔다면, 지금은 함께 짐을 질 수 있는가. 과거에는 죄를 숨겼다면, 지금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엎드릴 수 있는가.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의 근심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그 근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보게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양심이 아프고, 마음이 찔리고, 과거의 잘못이 떠오를 때 그것을 무조건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픔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으로 부르시는 통로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말로만 증명되지 않습니다. 형제들이 “우리는 달라졌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베냐민의 위기 앞에서 함께 돌아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회개는 상황이 다시 왔을 때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미워했지만 이제는 품습니다. 예전에는 도망쳤지만 이제는 책임집니다. 예전에는 숨겼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거의 잘못 앞에서 정말 변화되었는가. 나는 예전과 비슷한 시험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죄가 드러날 때 변명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다루신다고 믿고 엎드리는가. 나는 베냐민을 버리고 혼자 돌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함께 성으로 돌아가는 사람인가.
시편 51편 17절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척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가 드러날 때 상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본문 속 형제들의 변화는 바로 그 상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3. 재형상화: 복음 안에 있는 자는 무조건적 은혜와 확실한 구원 안에서 새롭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복음의 빛을 비추어 줍니까?
첫째,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동생을 팔았고, 아버지를 속였으며, 오랜 세월 죄를 덮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근과 애굽의 여정과 요셉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을 다시 다루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은 중간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형제들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보존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가정을 보존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7–8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많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였다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조건부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입니다.
셋째, 복음 안에 있는 자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감정이나 성취나 변화의 속도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말은 죄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은혜가 무조건적이라는 것은 죄를 방치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거룩하게 빚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넷째, 우리는 드러난 죄 앞에서 십자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찾아내신 하나님은 그 죄를 해결할 길도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드러나는 자리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는 입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이 과거 죄의 무게 앞에 엎드렸듯이, 우리는 십자가 앞에 엎드립니다. 거기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 죄를 드러내시지만 나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섯째, 복음 안에서 변화된 사람은 더 이상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은 베냐민을 버리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함께 돌아갔습니다. 다음 본문에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그림자입니다. 참된 변화는 자기보존에서 자기희생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은 관계의 확장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적용은 분명합니다. 과거의 죄가 드러날 때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정죄하여 버리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고치시고 회복시키려 하신다고 믿으십시오. 예전과 비슷한 시험이 올 때,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하십시오. 버리고 도망가는 선택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사랑하는 선택을 하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근거를 내 의지에서 찾지 말고,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찾으십시오.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가 없는 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가 드러나도 십자가 아래에서 용서와 새로움을 받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39절은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 있는 자의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들의 죄를 드러내셨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셨지만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셔서 결국 요셉과 화해하게 하시고, 야곱의 가족을 보존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의 변화를 확인하게 하시며, 끝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십시오. 현재의 변화가 더딜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신 확실한 구원과 무조건적 은혜 안에서 오늘도 새롭게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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