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이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시절에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어서 이집트에서 탈출하라고 하시니, 모세가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셔야, 제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누가 저를 보냈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내 이름은 “야훼”라고 하시며, 당신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라는 계명에 따라 야훼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훼 대신에 주님으로 하느님을 불렀지요. 그러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초월적인 대상으로-물론 당연히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것은 맞지만-너무 그 차원만 강조하면서 하느님을 두려운 대상으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몸소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눈먼 이들이 눈을 뜨게 하시고, 다리저는 이들이 다시 걷게 하시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에 비추어 “야훼”라는 이름을 다시 들여다 보면 그 뜻이 명확히 살아납니다. 야훼를 번역하자면, “함께 있는 자”라는 뜻도 되고 “함께 있고자 하는 자”라는 뜻도 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죄의 종살이하며 비참하게 살고 있는 그 꼴을 차마 못 보시고, 그런 우리와 함께 있고, 또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있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를 보냅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