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f the Seventh Week of Easter

Easter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오늘 복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베드로도 “예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답하고. 우리나라 말로 보면 다 똑같은 사랑인데, 신약성경이 쓰인 그리스어 원어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사랑을 뜻하는 두 가지 그리스어가 쓰였는데, 하나는 아가파오이고 다른 하나는 필레오입니다.
이게 한국말로 번역하면 똑같이 사랑인데 살짝 뉘앙스가 다릅니다. 아가파오는 무한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 그래서 부모님이 자녀에게 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아가파오라고 합니다. 필레오는 주로 친구끼리의 사랑을 말할 때 필레오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가파오는 부모님의 사랑, 필레오는 친구의 사랑 이렇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복음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때 쓰인 말은 아가파오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거죠. 베드로는 뭘로 대답할까요.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긴 하는데, 친구를 사랑하듯 사랑합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실 때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아가파오로 물으시고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세 번째로 물으실 때 이제 바뀝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실 때 이제 필레오를 사용하십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면 너는 나를 친구처럼 사랑하느냐?”라는 의미이죠. 그러니까 이제 베드로도 필레오로 답하지요. “예, 주님 저는 당신을 친구로서 사랑합니다.”
뭔가 의아하지요. 예수님은 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또 왜 처음에는 아가파오로 물으시다가 마지막에는 필레오로 바꾸실까. 저는 그런 묵상을 했습니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무엇이에요.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듯 하는 그런 무한한 사랑은 있어도,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긴 해도 그만큼 사랑하지는 못하지요. 물론 부모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자꾸 까먹지요. 부모님께 연락드려야지, 한 번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또 까먹고 내 생활하기 바쁘고. 반면에 부모님은 거의 대부분 자녀 걱정, 자녀 생각을 하면서 지내시지요.
하느님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에요. 하느님은 우리를 언제나 아가파오, 부모님의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꾸 까먹어요. 자꾸 그 사랑을 잊고 죄도 지어요. 게을러질 때도 있어요. 그런 것처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어여삐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하시면서 봉사 직무를 맡겨 주시지요. 그런 예수님의 마음에 감사드리며 이 미사 봉헌합시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