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의아하지요. 예수님은 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또 왜 처음에는 아가파오로 물으시다가 마지막에는 필레오로 바꾸실까. 저는 그런 묵상을 했습니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무엇이에요.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듯 하는 그런 무한한 사랑은 있어도,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긴 해도 그만큼 사랑하지는 못하지요. 물론 부모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자꾸 까먹지요. 부모님께 연락드려야지, 한 번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또 까먹고 내 생활하기 바쁘고. 반면에 부모님은 거의 대부분 자녀 걱정, 자녀 생각을 하면서 지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