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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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9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10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11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13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14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15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16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17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18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19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20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21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22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
23 단의 아들 후심이요
24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25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얻었지만, 동시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앞에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낯선 땅이었고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두려움의 자리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야곱아” 하고 부르시며,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야곱을 위로하시고, 그와 함께 내려가시며, 다시 올라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의 시작이 작고 연약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 연약한 시작을 통해 크고 광대한 언약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 전형상화: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야곱을 위로하시고, 70명을 통해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야곱은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 기억이 담긴 장소입니다. 아브라함도 브엘세바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이삭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린 것은 단순한 여행 중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길을 묻는 신앙적 멈춤이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잠언의 말씀처럼,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섭니다(창 46:1; 창 21:33; 창 26:23–25; 잠 3:6).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아 야곱아” 하고 두 번 부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친밀한 부르심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모세를 부르실 때도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멀리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의 이름을 아시는 분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야곱을 인격적으로 부르시며 그의 두려움을 만져 주십니다(창 46:2; 창 22:11; 출3:4; 사 43:1).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야곱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요셉을 만나러 가고 있었지만, 동시에 언약의 땅을 떠난다는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한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언약적 선언입니다(창 46:3; 창 12:10–20; 사41:10).
하나님은 이어서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 하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재확인 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말씀하셨고, 하늘의 별처럼 자손을 많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의 가족은 고작 70명입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미미한 무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 70명 안에 큰 민족의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시작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약속의 눈으로 보십니다(창 46:3; 창 12:2; 창15:5; 신 10:22).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약속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부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내려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올라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야곱 개인에게도 해당되지만, 더 넓게는 훗날 출애굽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기근 속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내려 보내시지만, 때가 되면 모세를 통해 다시 이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라는 출애굽기의 말씀은 창세기 46장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장면입니다(창 46:4; 출 3:8; 출 12:41).
본문 5절부터 27절까지는 야곱의 가족 명단이 길게 기록됩니다. 레아의 자손, 실바의 자손, 라헬의 자손, 빌하의 자손이 차례로 언급됩니다. 이 족보는 지루한 이름 목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야곱의 가족을 어떻게 언약공동체로 보존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증언입니다. 성경은 “애굽에 이른 야곱의 집 사람의 수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고 말합니다. 훗날 이 70명은 큰 민족이 됩니다. 출애굽기 1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작게 시작되지만 결코 작게 끝나지 않습니다(창 46:27; 출 1:7; 행 7:14–17).
2. 형상화: 우리의 시작은 작고 두렵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서 큰 뜻을 이루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의 애굽행은 우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들과 닮아 있습니다. 새로운 길로 가야 하지만 두렵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 같지만 현실은 불확실하고, 기도하며 나아가지만 마음 한편에는 염려가 남아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앞에서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믿음이 없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느냐는 것입니다(창 46:1–3; 시 56:3; 막 9:24).
우리도 인생의 브엘세바에 설 때가 있습니다. 직장을 옮겨야 할 때, 가정을 책임져야 할 때, 자녀의 미래 앞에 설 때, 건강의 문제를 만날 때, 익숙한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계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렸듯이, 우리도 먼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시편의 고백처럼, 성도의 길은 세상의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져야 합니다(창 46:1; 시 119:105; 약1:5).
특히 이 본문은 가정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줍니다. 야곱의 가족은 완전한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형제 갈등이 있었고, 속임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가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존하셔서 언약 백성의 기초로 삼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들을 모아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을 붙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창 46:5–27; 고후 4:7; 고전 1:27–29).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두려움이 올 때 어디로 가는가? 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가? 내 시작이 작다고 하나님의 약속까지 작게 보는 것은 아닌가? 내 가정과 공동체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내려가신다는 약속을 정말 믿고 있는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믿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창 46:4; 사 41:10; 마 28:20).
3. 재형상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작고 연약한 시작을 넘어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바라본다
기쁨 속에서도 믿음과 언약을 돌아본 야곱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적 적용점을 줍니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지만, 그 기쁨에만 끌려 곧장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멈추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이제 감정이나 상황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언약을 먼저 확인하는 사람으로 성숙해졌음을 보여 줍니다.
1. 큰 기쁨의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1. 큰 기쁨의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을 초대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당장 달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멈추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창세기 46:1 이 장면은 야곱이 기쁨에 취해 무작정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 기쁨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멈추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흔히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야”라고 빨리 결론 내립니다.
문이 열리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이 좋아지면 곧바로 축복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멈출 줄 아는 것입니다.
승진의 기회가 생겼을 때,
좋은 직장이 열렸을 때,
이사나 유학이나 사업의 기회가 생겼을 때,
자녀에게 좋은 조건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합니다.
“주님, 이것이 정말 주님의 뜻입니까?” “이 길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합니까?” “이 기쁨이 언약의 길과 함께 가고 있습니까?”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6
성숙한 신앙은 고난 속에서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열린 문이 항상 하나님의 뜻은 아닐 수 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2. 열린 문이 항상 하나님의 뜻은 아닐 수 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야곱에게 애굽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기근 속에서 먹을 양식이 있고, 요셉이 총리로 있고, 바로의 초청도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완벽한 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애굽은 단순히 좋은 조건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내려갔다가 위험을 겪었던 땅이었고, 이삭에게는 하나님께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던 땅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창세기 26:2
그래서 야곱은 좋은 조건만 보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문이 열렸느냐”보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느냐”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열린 문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모든 좋은 조건이 믿음의 길은 아닙니다.
모든 유리한 환경이 영적으로 복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길은 조건은 좋아 보이지만 예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은 경제적으로 유익하지만 영혼을 메마르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는 당장은 즐겁지만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회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지만 내 안의 교만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단순히 “이 길이 좋은가”만 묻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 길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인가?” “이 선택이 믿음과 순종을 깊게 하는가?” “이 기회가 언약의 백성답게 사는 길인가?”
요한일서 4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분별은 위험한 일 앞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 앞에서도 필요합니다.
3. 신앙의 성숙은 감정보다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3. 신앙의 성숙은 감정보다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야곱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많이 흔들렸습니다. 장자권과 축복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했고, 라반의 집에서도 계산과 자기방어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6장의 야곱은 다릅니다.
그는 요셉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는 감정의 확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세기 46:3
야곱은 이 말씀을 듣고 내려갑니다. 즉, 야곱을 최종적으로 움직인 것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려면 감정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너무 좋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내가 너무 싫다고 해서 무조건 피해야 할 길도 아닙니다.
내 마음이 끌린다고 모두 믿음의 길은 아닙니다.
내 마음이 불안하다고 모두 잘못된 길도 아닙니다.
성숙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말씀은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의 감정보다 더 깊고 정확하게 길을 비춥니다.
4.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으로 움직입니다
4.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으로 움직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요셉이 총리였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내려가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창세기 46:4
이 말씀이 야곱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이 안전해서 내려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내려간 것입니다.
요셉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려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내려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안전은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안전은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안전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하나님과 멀어지면 위험한 자리입니다.
아무리 낯선 자리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순종의 자리입니다.
모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애굽기 33:15
성숙한 신앙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길이 편한 길인가?”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인가?”를 묻습니다.
그것이 성숙한 성도의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