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주기도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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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주기도문_14_ 하나님께 영광을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dNscJO5w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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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주기도문의 송영이라 불리는 한 구절이 성경 본문 괄호 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엄밀하게 말하면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아니므로 주기도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성령으로 주기도문과 함께 낭독되어 왔습니다.

I. 들어가는 말

주기도문의 송영 부분을 새로 번역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래전 한국 교회에서 이전에 사용했던 찬송화를 제정할 때였습니다. 각 교단의 대표들이 학자들과 함께 모여 찬송과 개편 작업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찬송과 앞면에 주기도운이 실려 있었는데 마지막은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나른 강구로 끝이 납니다.
(01:02) 그때 몇몇 위원들이 이번에는 주기도 문에 대개를 뺍시다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분들의 주장은 분명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어야지 대충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주기도문에 실린 대개라는 단어는 한자어로 대개라가 아니라 대개였습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이 단어에 대해서 큰 원칙을 말하는 건데 혹은 일의 원칙으로 미루어 보건데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주기도문의 성령은 다만 구하시옵소서.이 원천으로 비로 보건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대개라는 단어는 헬라오 호티를 번역한 것인데이 단어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왜냐하면이는 정도의 뜻입니다. 네.
(02:02)

II. 주기도문의 송영

전통적으로 주기도문은 항상 성령과 함께 낭독되어 왔습니다.이 성령은 주기도문 자체에 포함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의도를 훌륭하게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의 모든 교회에서 주기도문에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록 후대의 첨가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안에서 영적 유익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A 사본상의 증거

지금 우리가 주기도문을 사용할 때 두고 있는 성령 부분은 누가복음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기도문이 실린 사본들의 증거를 보더라도 초기 사본에는 속 부분이 생략되어 있고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배자 사본 등 근이 있는 헬라의 성경의 사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03:02) 따라서 주기도문의 성룡 부분이 영감된 하나님의 성경으로서의 근의를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이 부분은 어 예전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초대교회 때부터 사용되어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B. 후대의 첨가임

송영 부분이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고 후대의 첨가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성경 번역번들이이 부분을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영광송이 기재되어 있는 사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훅이 알렉산드리아, 가이사리아, 서방 지역, 비잔티너 사범들 가운데서 두루 찾아볼 수 있습니다.
(03:58) 이 성형 부분은 후대 교회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기도문의 형태로 구성하려는 목적에서 본문에 참가한 것인데 일부 사번들에는 본문과는 다른 형태의 삼위일체적 표현으로 된 성령이 실려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라가 영원히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옵나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성령은 가장 널리 알려진 천가문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도널드 해그는 성가문의 송의 송영이 역대상 29장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여호와여 유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험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선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 소이다.
(04:56) 여호와께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제가 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장 11절부터 13절까지 역사적으로도 교회의 학자들에 따라서 주기도문의 성령을 생량할지 첨가할지를 놓고 의견이 달라집니다. 주기도문에 성령을 포함시키고자 한쪽은 소수였고 다수는 반대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아구스티누스는 성령을 주기 도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고 에라스무스와 칼빈은 포함시키는 것이 적합하다고 가르쳤습니다.
(05:57) 그러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성령을 포함하여 주기도문을 사용했습니다. 12사도의 교훈들을 모아 놓았다는 외경 디닷는 주후 2세기의 저자 미상의 작품으로서 초대교회에 널리 읽혔던 문서인데 여기에는 지금 주기도문의 송형에서 약간 변형된 송영이 등장합니다. >>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이미 주후 2세기 이전부터 송영이 포함된 주기도문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 이 송영 부분은 유대주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는데 기독교 이전의 유대주의 문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라는 소명의 어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유대주의 문헌에 나오는 그 소명들은 역대상 29장을 모태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06:55) 유대주의 모든 기도문들이 성령으로 끝나는 예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많은 경우에 송영은 누군가가 앞에 기도문을 선창하면 뒤에 그 기도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모든 회중들이 함께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성령이 없는 기도문을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소명이 없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제자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주기도문의 영광송을 고쳐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우세한 견해입니다. 유대교회 전통에 익숙한 이스라엘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주기도문의 송을 첨가하여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디다케 같은 자료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07:56) 이러한 견해에 따라 저는 주기도문의 불록과 같은 송용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지된 생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첫째로는 바로 안에 들어 있는 성형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에 주기도문 자체와 동일한 권위를 갖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러나 주기도문을 예배와 신앙생활 속에서 활용할 때에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리는 탄원자로서 우리가 마지막에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성령으로 받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이 송영 부분을 주기도문에 포함하여 예전적으로 낭송하는 오늘날의 관습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합니다.
(08:52)

III.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

이 송영의 핵심은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찬송입니다.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곧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였고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인류에게 전심으로 누리게 하고 싶으셨던 최고의 행복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숙구하여야 합니다.

A 그 나라를 구함.

첫째로 그 나라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본문을 해석하기 전에 주기도문의 구절을 살피고 성령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09:4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구하고 그 나라의 도래 그리고 그 뜻의 성취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이어서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또 나아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되 악기서 건져 달라는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선재가 수직적인 기도라면 후자는 수평적인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 형식은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나라는 이미 왔고 또 어떤 의미에서 그 나라는 아직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10:34) 그래서 주기도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임한 그 나라에 속한 백성 동시에 아직 완전히 하나의 통치가 임하지 않은 세상 나라와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성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로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구하여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까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그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면 이런 강구들이 성취되었을 것이니 이미 성취된 것이라면 강구의 제목들이 들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주기도문 전체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그 통치 아래 살아가고 있으나 아직은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 나라의 긴장 관계 속에서 통치하며 투쟁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전투적인 삶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11:35) 우리 역시 치열한 전쟁이 주는 긴장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전쟁은 어쩌면 우리가 이기고 질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 전쟁은 이미 주어진 승리를 성취해 가는 전쟁입니다. 마지막 성령은 오늘날 이러한 사실을 운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나 국부적으로나 세상 나라와의 싸움에서지는 것 같고 신앙의 세계가 불신앙의 세계에 의하여 도전받는 것 같습니다.뿐만 뿐만 아니라 인간의 불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가 회망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미 왔고 아버지께서 영원히 있기 때문에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반드시 도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432쪽입니다.
(12:24) 432쪽. 그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이며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과 슬라 세워지는 나라인입니다. 이미 그런 일들이 개인에게 일어났고 교회 안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이 세상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통치와 신적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최전선에 세상 나라를 정복하여 하나님의 왕구로 바꿀 소명을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터인데이 나라는 이미 하나님의 의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원히 있는 그 나라가 이미 세상에 침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침틀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증입니다.
(13:12) 하나님께선 이 최종적 승리의 보증으로 교회와 우리 각 사람들 안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성취해 가는 과정의 싸움이라고 힘겹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이 세상 나라의 마귀와 권세잡은 자들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일시적인 악으로 대적하며 우리를 꺾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이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며 맞이하는 일상의 전투적인 삶을 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확한 믿음을 가지고이 성령을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 우리는이 모든 싸움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이기었습니다.이 세상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권세로 임하게 하신 하나님의 왕국이 이미 교래하였습니다.
(14:02) 그리고 그 나란 영원히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심적 낙관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잠시 실패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 나라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이 세상 나라의 무질서들과 더불어 투쟁 투쟁하면서 우리의 힘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그 나라가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으로 성취될 것임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예.

B. 그 권세를 구함.

둘째로 그 권세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헬라오 원문 디나미스라고 나오는이 권세는 능력 혹은 힘을 가르킵니다. 영어 단어 다이노마이트가 여기에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도 폭발적인 힘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14:55) 그 권세는 아버지께서 도입하신 그 나라를 성취할 능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그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욕망을 버리고 사랑으로서 주님께 돌아오는 까리따스의 나라를 도입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영적 권능이요 영적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심으로서이 세상의 잘못된 질서들과 창조와 구원의 목적에 어긋나는 질서들에 한거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인오는 이슬 이슬람 세력에 대해 많은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경계를 놓추지 않는 것이 반음직합니다.
(15:51) 그러나 많은 선교 전문가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에 이슬람의 권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란 선교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한 분으로부터 직접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현재 이란에서는 누가 예수님을 믿거나 세례를 받았다라는 소식이 들리면 즉시 처형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다고 합니다. 체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코를 자르기도 하고 길을 떼어내기도 하고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 교회는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비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이란에는 약 3천여개의 지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16:53) 그런데 왜 사회주의자들이나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이 모든 종교들 중에서 유독 기독교를 경계하고 박해하는 것일까요? 공산주의 국가에 불교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 체제를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힌두교 국가에 도교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 체제를 뒤덮을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면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인도의 기독교 복음이 들어갔을 때 미신을 타파하고 전통적으로 이어지던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운동들이 일어났고 사회주의 국가에 복음이 들어갔을 때 유물론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이데올로기에 억압당하던 인간 존재의 고기함에 대한 개몽이 일어났습니다.
(17:45) 또한 이슬람 국가에 복음이 들어갔을 때 여성을 차별하고 확대하는 등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모든 사회적인 폭합들에 대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후폭풍이 두려운 것입니다.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녹이는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영적인 권세에서 나옵니다.뿐만 뿐만 아니라 강력한 편견에 사로잡혀 굳게 잠긴 마음의 빗장들을 부수 복음의 물줄기가 사람들의 심령 속에 흩어지게 하는 놀라운 일들도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실들을 일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곳곳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18:38) 그들이 복음의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두 성령의 능력과 놀라운 권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조건은 명목의 권세가 아니며 그분은이 군주국의 왕과 같은 명목의 임금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능력으로서 어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며 당신의 뜻의 계획들을 하십니다. 그것은 사물의 일반적 질서들을 움직이심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의 역사하심으로서 이루어집니다. 죄인들을 돌이키시고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악한 본성을 변화시켜 예전의 삶으로부터 결별하게도 하십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던 추루한 죄인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19:39) 이 이 모든 일들을 당신의 권세로서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도 이러한 능력과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교회 위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위대한 영적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잠시는 선이 패한 것 같고 악이 승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이며 궁극적으로는 권세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그 권세 아래 악이 다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능력이 아버지께만 영원히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삶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고 주기도문의 삶을 살아갑니다. 죄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잠시 꺾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능력으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20:35) 박충성 목사님 읽어주세요. >> 네.

C 그 영광을 구함.

첫째로 그 영광한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장하는 단어 단어 영광은 헬라오로 독사인데이는 찬양, 훌륭함, 위험, 경배 등의 의미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존재이심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에서 구하는 영광은이 세상의 모든 인류들과 천사들이 하나님의 위험과 자비를 알고 인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이 영광은 하나님 자신을 가르치는 본질적 영광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어 인간이 인간이나 천사와 같은 지성적 피조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효과적 영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핵심입니다.
(21:32) 하나님의 많은 속성들에 관한 지식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에 결탁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곧 거룩하고 완전한 경배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만물이 만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며 모든 만물이 회개하여 돌아가게 될 목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세계의 존재 존재론적 원인 동시에 목적론적 원인입니다. 지극히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피조 세계 속에 펼쳐 보이시기 위하여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우셨습니다.이 이 무한한 우주 지금도 폭발하며 편차하고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끝없는 우주 공간과 그것들 사이에 작용하는 취밀한 법칙과 질서들을 바라보면서
(22:37)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창조주에 충만한 영광이 보이는이 세계가 창조된 원인임을 어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서뿐만 아니라 거기서 진리를 깨닫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만 드러나는 세계와 우주 안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아 제가 아 예예 아 예 예 예 예 예네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세계 도초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사건을 통하여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방의 땅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의 정수입니다.
(23:36)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시대 말에 나타날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도래에 비하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찬란한 영광이 온 누리를 뒤덮을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온 땅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이는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하바국 2장 14절.이 이 세상 땅 끝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자라 불리하게 사는 자들이 없을 것이고 그 사랑이 모자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이 땅에 임하게 하려고 희생하셨던 그 나라는 하나님의 구속의 마지막 열매로서의 영광의 나라입니다.
(24:33) 그 나라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이미 도래하기 작정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이 땅에 임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IV. 결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기도문을 버리고 주기도문과 상관없는 삶을 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나라는 올 것이고 그 권설은 임할 것이며 그 영광은 충만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헌신을 의존함으로써 겨우 오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삶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가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둠 속에 걸을 수밖에 없으며 갈등과 두려움과 어두움에 가득찬 삶을 살 것이고 환난과 시련을 만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아버 이바지함이 없는 방종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5:31) 예.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세상 나라의 기쁨에도 온전히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신앙이 없어버림받고 세상 나라에서는 이미 세상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또한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마치 맛을 잃은 소금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 이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의도와 증면으로 배치되는 삶입니다. 그 위대한 나라, 그 끝없는 권세, 그 한없는 영광이 바로 하나님께 영원히 있을 것이며 그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 우리의 주 기도문을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26:28)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와 그 권세와 영광을 생각하면서는 스스로 티끌 같은 피조물이라는 생각 때문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위험 앞에 무릎을 꿇고 두려워 떠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신앙 고백을 통해서는 그 위대한 사랑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소명을 가지고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 나라가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져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므로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한없이 행복한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은이 거룩한 목적을 위한 부르심을 느끼십니까? 우리 혈관의 피가 식어지고 우리
(27:31) 입술의 혀가 굳어지기까지 우리는 주기도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알지 못하는 창조의 목적을 떠난 모든 인간들에게 주기도원에 담긴 위대한 경륜들을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말로 우리의 복음의 전파로 우리의 윤리적인 삶으로 빛처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존재들이 되게 하시려고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씻어 세상의 빛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비록이 책은 14장으로 끝을 맺었지만 주기도물을 따르는 여러분의 삶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마지막 주님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 모두 주기도문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28:21) 그 영광스러운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면서 >> 아멘. >>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한눈에 보는 14장
I. 들어가는 말
주기도문의 송영이라 불리는 한 구절이 성경 본문의 괄호 안에 제시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아니므로 주기도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II. 주기도문의 송영
그렇지만 이 송연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의도를 훌륭히 담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영적 유익을 인정받아 왔다.
A. 사본상의 증거
송영은 누가복음에는 등장하지 않고 많은 초기 사본들에도 생략되어 있다.
B. 후대의 첨가임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이 후대의 첨가라는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III.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
송영의 핵심은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찬송이다.
A. 그 나라를 구함
그 나라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
주기도문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그 통치 아래 살아가고 있으나, 아직은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 나라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투쟁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전투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침투는 영원한 그 나라의 보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최종적 승리의 보증으로서 교회와 우리 각 사람들 안에 성령을 주셨다.
그러나 이미 이긴 싸움을 성취하는 과정이라고 힘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나라의 마귀와 권세 잡은 자들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일시적인 악으로 대적하며 우리를 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전투적인 삶을 살면서 마음 깊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이 송영을 하나님께 올려야 한다.
B. 그 권세를 구함
그 권세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
헬라어 원문에 ‘뒤나미스’라고 나오는 이 ‘권세’는 능력 혹은 힘을 가리킨다. 그 권세는 아버지께서 도입하신 그 나라를 성취할 능력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각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욕망을 버리고, 사랑으로써 주님께 돌아오는 ‘까리따스’의 나라를 도입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이것은 영적 권능이요, 영적 힘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잘못된 질서들과 창조와 구원의 목적에 어긋나는 질서들에 항거하며 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능력으로서 세계를 통치하시며 당신의 뜻의 계획들을 성취하신다. 사물의 일반적 질서들을 움직일 움직이실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에 역사하신다.이 모든 일들을 당신의 권세로서 이루어 가신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능력과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모든 신자의 마음과 교회 위에 부어주신다. 그리하여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신다.
C. 영광을 구함.
그 영광은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
여기서 영광은 헬라어로 독사인데이는 찬양, 훌륭함, 위험, 경배 등의 의미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존재이심을 보여준다. 주기도문에서 구하는 영광은이 세상의 모든 인류와 천사들이 하나님의 위험과 자비를 알고 인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광은 하나님 자신을 가르치는 본질적 영광을 의미하는 기보다는 인간이나 천사와 같은 지성적 피물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효과적 영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핵심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곧 거룩하고 완전한 경배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며 모든 만물이 회개하여 돌아가게 될 목적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세계 도처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의 예수로 말미암는 인류 구속의 사건을 통하여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고 계신다.
시대 말에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도래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리 바다를 덮음과 같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이 땅에 임하게 하려고 희생하셨던 그 나라는 하나님의 구속의 마지막 열매로서의 영광의 나라이이다.
그 나라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 이미 도래하기로 작정된 나라이다. 그 무엇도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이 땅에 임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
IV. 결론
반드시 그 나라는 올 것이고 그 권세는 임할 것이며 그 영광은 충만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헌신을 의존해서 겨우 오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가지고이 세상에 태어났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 나라가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져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므로 그 안에서 아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한없이 행복한 존재들이 될 것이다.
주님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 모두 주기도문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 아멘. 좋 >> 좋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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