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리는 연합
Notes
Transcript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Intro
Intro
목사님이 최근에 선물을 받았어요.
(이은이 뉴발란스 신발)
진짜 귀엽죠?
그런데 이은이 신발을 보면서
와… 찍찍이 신발 정말 오랜만이다.
싶었어요.
혹시 찍찍이 신발 신고 있는 사람?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찍찍이 신발을 잘 보면
한쪽은 갈고리처럼 되어 있고,
한족은 솜털로 되어 있어요.
얘네는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야만
찰싹 붙습니다.
하지만 이 사이에
먼지나 모래가 조금만 껴도
둘은 금방 떨어져버립니다.
세상에서의 친구관계,
세상에서의 연합은
이 찍찍이와 같아요.
조건이 맞을 때만 잘 붙어 있죠.
조금만 수틀리면
찌이이이익 소리를 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뜯어져버리는게
세상에서의 연합과 똑 닮아있어요.
우리는 이 뜯어지는 상처가
너무 아프고 피곤해서,
차라리 ‘그냥 혼자 있는게 편하다’며
마음의 문을 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순히 조건이 맞아야만 연합하는
찍찍이같은 연합이 아니라,
진짜 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1. 연합은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What&Why) // 6분 소요
1. 연합은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What&Why) // 6분 소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절에 나오는 "연합", 히브리어로 '야하드(yachad)' 라고 해요.
이 야하드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 함께 서 있는 공동체’를 뜻해요.
세상의 연합은 공통점이 있어야만 만들어져요.
같은 게임, 같은 취향, 마음 잘 맞는 사람끼리만 모여요.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연합은 달라요.
서로 정말 안 맞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한 공동체로 모이는 거예요.
우리의 의지로 으쌰으쌰 모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묶어주신 공동체라는 거에요.
마치 이런거에요.
서로 전혀 다른 두 쇳덩이를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하나로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서로 빈자리를 찾아서 퍼즐처럼
예쁘게 끼워 맞추나요? 아닙니다.
아무리 끼워 맞춰도 충격을 주면 부서집니다.
유일한 방법은 그 두 쇳덩이를
수천 도의 펄펄 끓는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뿐입니다.
불순물이 다 타버리고,
쇳덩이의 원래 모양이 형체도 없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성질의 금속이 섞여서
원래보다 수십 배 더 단단한 '합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연합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내 단점을 네가 채워주는 '효율적인 퍼즐 맞추기'가
아니에요.
연합이란 나랑 너무 안 맞는 저 사람과 내가
하나님이라는 펄펄 끓는 용광로 안에 함께 던져져서,
내 이기적인 자존심과 고집이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공동체로 묶어주실 때
이왕이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성향이 맞는 사람끼리
묶어주시면 뭐든 훨씬 잘 할 것 같은데…
그러니 여러분, 솔직히 이런 생각 들지 않아요?
"아... 그렇게 내가 다 녹아내리고 깎여야 하는 거라면,
그냥 혼자가 편하겠는데요….?
저는 그냥 합금 안하고.. 편안하게 홀로 살겠습니다.”
목사님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나랑 안 맞는 사람과 부대끼며
감정을 소모하고 다시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그냥 혼자 지내봤어요.
눈치 볼 일도 없고 진짜 편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혼자 지내보니까,
내 삶이 충전되고 회복되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점점 무기력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혼자가 '편한' 것과,
혼자여도 '괜찮은’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구나.
우리 산성교회에 와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함께 하면서 알았어요.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나님의 앞에 서서
하나님께로 던져질 때,
비로소 내 영혼이 썩지 않고
진짜로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요.
우리가 혼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연합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내 자아가 부서지는 고통이 두려워
도망치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합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된 존재들이거든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전부 "보기에 좋았다"고 하셨는데,
딱 하나 "좋지 않다" 고 하신 게 있어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 이었어요. (창 2:18)
우리는 불편해도 함께 연합을 할때
세상의 연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과 삶의 의미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합은 숙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삶의 방식이에요.
2. 은혜는 위에서 먼저 흘러내린다. (How) // 6분 소요
2. 은혜는 위에서 먼저 흘러내린다. (How) // 6분 소요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겨요.
"그래서 건강한 연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옛날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을 세울 때,
하나님이 직접 주신 레시피로 만든
특별하고 거룩한 기름을
머리에 넉넉하게 부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이 지금
사람이 연합하여 지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말씀에 바로 이어서 나오니까
조금 뜬금없죠.
그런데,
다윗이 주목한 것은 딱 하나입니다.
기름이 흘러내리는 방향이에요..
기름은 머리에서 수염으로,
수염에서 옷깃으로.
계속 위에서 아래로만 흘러내립니다.
수염이 무슨 대단한 노력을 했나요?
옷깃이 자격을 갖췄나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위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기름에 흠뻑 젖어버린 거예요.
심지어 아론이 뭘 대단하게
잘한 것도 아니에요.
아론도 결국 사람인지라
사람을 질투하고 미워했고,
실수 투성이었던 사람이었어요.
목사님도 마찬가지에요.
목사님도 되게 부족한 사람인지라
사역을 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때로는 사람이 참 미울 때가 있어요.
저 사람은 어떻게 똑같은 말을 해도
저런 식으로 말할까?
저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던걸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왜 저렇게 행동하지?
나는 저런 사람들하고는
도저히 연합할 수 없겠다.
아니, 연합하기 싫다.
이런 생각이 솔직하게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날은
너무너무 힘들어서
예배를 드릴 몸의 힘도,
마음의 힘도 없었던 날이 있었어요.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아무생각없이 자고싶다…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예배의 자리는 지켜야겠다는 의무감에
예배당에 들어가 앉았어요.
찬양이 시작되는데 그냥 눈물만 나는거에요.
나를 위로하는 가사가 담긴
그런 찬양이 아니었는데
그냥 눈물만 계속 났어요.
감동을 받아서 운 게 아닙니다.
제 밑천이 다 드러나서 울었어요.
"하나님, 저는 목사인데도
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1도 없는 가짜입니다.
저는 그 사람 도저히 용서 못 하겠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를 완전히 꺾고
두 손을 들어 항복했을 때,
비로소 제 텅 빈 영혼 위로
무언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걸 느꼈어요.
몸과 마음의 힘이 없어서
안 나오던 기도가 그제서야
조금씩 흘러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저 사람하고는
평생 연합할 수 없겠다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제 마음이 열렸어요.
제가 용서하려고 애쓴 게 아니에요.
연합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었어요.
내 힘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십자가 밑에 엎드려 있었더니,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무겁고 끈적한 은혜의 기름이
저의 굳게 닫힌 마음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와 저를 덮어버린 겁니다.
그제야 제가 미워했던 그 사람과
다시 마주 설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이 변화된 것이 아니었어요.
십자가 앞에 엎드렸더니
목사님이 가장 먼저 변화가 되는 걸 경험했어요.
이게 부족한 아론도,
부족한 저도 연합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진정한 연합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반드시 말해줄 것
(선포의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아내와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이런 삶의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Outro
Outro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진짜로 하나 되게 묶어주는
그 끈적한 기름은 과연 어디서 올까요?
목사님을 덮쳤던 그 은혜는,
3천 년 전 아론의 머리에서 흘렀던
그 식물성 기름이 아닙니다.
아론은 예고편일 뿐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진짜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구약의 아론은 화려한 옷을 입고
번쩍이는 황금관을 쓴 채 기름을 맞았지만,
우리의 진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마를 찢는
무서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머리에서 쏟아져 내린 것은
향기로운 기름이 아니었어요.
부족하고 바보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끝까지 참아내며 흘리신,
가장 붉고 끈적한 '보혈과 땀'이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자리는
그 십자가를 통과한 예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자리에요.
오늘 이곳에 있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
누군가가 너무 미워 죽겠을 때,
억지로 그 친구를 용서하려고 이를 악물지 마세요.
도저히 연합할 수 없어서
그냥 도망치고 싶을 때,
다 포기해도 좋으니 딱 하나만 하십시오.
그 찢어지고 상한 마음 그대로 안고,
이 예배의 자리, 십자가 아래로 들어와
그냥 버티고 앉아 계십시오.
여러분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던
그 친구와 여러분 사이를,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두 팔로
한꺼번에 꽉 끌어안아 주실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끈적한 연합이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덮어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