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는 짐, 함께 가는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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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8:13-27 설교 연구와 설교문
— 새벽기도회 설교 / 복있는 사람 큐티 본문 —
본문: 출 18:13-27 (개역개정)
◆ 본문 (출애굽기18:13-27, 개역개정)
◆ 본문 (출애굽기18:13-27, 개역개정)
[ 우두머리를 세워 재판하게 하다 (신 1:9-18) ]
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
15 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16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17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18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19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20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21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2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23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26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27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
Ⅰ. 본문 연구
Ⅰ. 본문 연구
1. 시대적·역사적 배경
1. 시대적·역사적 배경
출애굽기 18장은 출애굽기 전체 구조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17장까지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14장),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16장), 반석에서 물을 마시며(17:1-7), 아말렉과 싸워 이긴(17:8-16) 광야의 초기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19장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게 됩니다. 즉 18장은 '구원받은 백성'이 '언약 백성'으로 세워지기 직전, 그 문턱에 놓인 본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결정적 자리에 등장하는 인물이 이스라엘 사람도, 레위인도, 제사장 아론도 아닌,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으로(출2:18, 3:1), 광야 40년 동안 모세를 받아주었고, 호렙산 부르심의 자리까지 모세를 양치는 자로 길러낸 사람입니다. 18:1-12에서 이드로는 여호와의 구원 행하심을 듣고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도다'(18:11) 고백하며, 번제와 희생을 드리고, 아론과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습니다(18:12). 이것은 사실상 이방인이 여호와 신앙에 합류하는 첫 번째 사건이며, 출애굽 사건이 단지 이스라엘만의 사건이 아니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일임을 미리 보여 줍니다.
13-27절은 그 다음날 일어난 일입니다. WBC와 NAC 주석은 공통적으로 이 본문이 시내산 율법 수여(19-24장) 직전에 사법 구조의 기초를 놓는 본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 그 율법을 백성에게 적용하고 가르칠 '구조'가 먼저 세워지는 것입니다. 신명기1:9-18은 이 같은 사건을 모세 자신의 회고로 다시 기록하는데, 거기서는 모세가 직접 이 일을 발의한 것처럼 서술됩니다. 두 본문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두 측면입니다. 출애굽기는 이드로의 권면이 결정적 계기였음을, 신명기는 모세가 그 권면을 받아 책임 있게 시행했음을 강조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왕은 곧 재판장이었고, 백성의 모든 송사를 한 사람의 통치자가 처리하는 것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드로의 제안은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 위한 구조의 정비'라는 점에서 그 시대의 일반적 통치 관념과 결이 다릅니다.
2.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2.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1) 모든 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섭리)
(1) 모든 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섭리)
본문에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드로에게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15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16절)라고 대답합니다. 즉 모세는 자신을'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통로'로 인식하고 있고, 모든 재판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 본문 주석에서, 모세가 통로일 뿐이며 진정한 재판장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이드로의 권면(19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과 결론(23절: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도 모든 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전제로 합니다.
(2) 이방인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보편적 주권)
(2) 이방인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보편적 주권)
결정적인 통찰을 가져온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일반 은총'으로 부르는 영역, 즉 신자가 아닌 자에게도 주어진 지혜와 통찰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NAC 주석은 이 본문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세우시기 위해 그분이 정하신 다양한 통로를 사용하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3) 백성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목양적 사랑)
(3) 백성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목양적 사랑)
18절에서 이드로는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쇠하다'(히. נָבֹל 나볼)는 '시들다, 마르다'는 뜻으로, 잎사귀나 꽃이 시드는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이드로의 시선은 모세 한 사람에게만 가 있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줄 서서 기다리며 시들어 가는 백성에게도 가 있습니다. 23절은 그 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하나님의 마음은 한 사람의 지도자를 살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평범한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리로 '평안히'(히. 샬롬, שָׁלוֹם) 돌아가게 하는 데까지 미칩니다.
(4) 질서의 하나님 (창조와 통치의 질서)
(4) 질서의 하나님 (창조와 통치의 질서)
하나님은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창1:1-2). 본문에서 광야의 무질서한 재판이 천부장-백부장-오십부장-십부장이라는 질서 정연한 구조로 정리되는 것은, 단순한 행정 효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공동체 안에 반영되는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4:33에서 바울이'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3. 주요 구절·단어·문법 연구
3. 주요 구절·단어·문법 연구
(1) 17절 '옳지 못하도다' — 히브리어 לֹא־טוֹב (로 토브)
(1) 17절 '옳지 못하도다' — 히브리어 לֹא־טוֹב (로 토브)
'옳지 못하도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로 토브(לֹא־טוֹב)'입니다. 직역하면 '좋지 않다'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이 처음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לֹא־טוֹב)…' 인간이 혼자 모든 것을 떠안고 사는 것은 창조 때부터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WBC 주석은 이 어휘 선택의 신학적 무게를 지적합니다. 이드로는 단지 '비효율적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2) 18절 '기력이 쇠하리니' — נָבֹל תִּבֹּל (나볼 티볼)
(2) 18절 '기력이 쇠하리니' — נָבֹל תִּבֹּל (나볼 티볼)
'시들다, 말라 떨어지다'는 의미의 동사가 강조형으로 반복 사용됩니다(부정사 절대형 + 미완료). '반드시 시들고 말 것이다'라는 강한 어조입니다. 이사야40:7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에 사용된 동일한 어휘입니다. 이드로의 진단은 단호합니다. 이대로 가면 모세도, 백성도 시들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3) 21절 '능력 있는 사람들' — אַנְשֵׁי־חַיִל (안쉐이 하일)
(3) 21절 '능력 있는 사람들' — אַנְשֵׁי־חַיִל (안쉐이 하일)
'안쉐이 하일'은 '용맹한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단순히 신체적 힘이 아니라 '재능, 자원, 인격적 역량, 도덕적 용기'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잠언 31:10의 '현숙한 여인(에쉐트 하일, אֵשֶׁת חַיִל)'에도 같은 어근이 쓰입니다. 이드로는 21절에서 이 자격을 다시 세 가지로 풀어 설명합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יִרְאֵי אֱלֹהִים, 이르에이 엘로힘)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자격의 첫째이자 토대입니다.
• 진실한 사람 (אַנְשֵׁי אֱמֶת, 안쉐이 에메트) — '에메트'는'신실함, 진리, 믿을 만함'을 뜻합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 (שֹׂנְאֵי בָצַע, 소느에이 바차) — '바차'는 '폭리, 부정한 이득'을 뜻합니다. 뇌물에 흔들리지 않는 자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 본문을 교회 직분자(장로·집사) 자격 요건의 구약적 원형으로 자주 인용해 왔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디도서 1장의 직분자 자격이 이 본문의 정신을 신약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핵심은 '능력'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4) 23절 '평안히' — שָׁלוֹם (샬롬)
(4) 23절 '평안히' — שָׁלוֹם (샬롬)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샬롬) 가리라.' 샬롬은 단순히 '문제 없음'이 아니라 '온전함, 충만함, 회복된 관계'를 뜻합니다. 이드로의 권면이 지향하는 목적지는 모세의 휴식이 아니라 백성의 샬롬입니다. 좋은 구조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을 샬롬으로 데려갑니다.
(5) 24절 '모세가… 그 장인의 말을 듣고' — 모세의 겸손
(5) 24절 '모세가… 그 장인의 말을 듣고' — 모세의 겸손
이 구절은 짧지만 무겁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려받은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디안 제사장의 권면을 즉시 듣고 '그 모든 말대로' 시행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 주석에서 '모세의 위대함은 기적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에 있다'고 평합니다. 민수기 12:3이 모세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평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4. 본문의 구조
4. 본문의 구조
13-27절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구성됩니다.
1) 현실 진단 (13-16절): 모세는 홀로 앉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다.
2) 문제 지적 (17-18절): '옳지 못하다. 너도 백성도 시든다.'
3) 대안 제시 (19-23절):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가르치는 일을, 자격 있는 사람들은 일상의 재판을.
4) 순종과 시행 (24-26절): 모세가 듣고 그대로 시행한다.
5) 마무리 (27절): 이드로는 자기 땅으로 돌아간다 — 그의 사명이 끝난 자리에서 떠난다.
Ⅱ. 저자가 당시 독자에게 주려는 메시지
Ⅱ. 저자가 당시 독자에게 주려는 메시지
출애굽기의 일차 독자는 시내산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 공동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세가 신명기 1장에서 이 사건을 다시 회고하는 것을 보면, 이 사건은 광야 세대뿐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갈 후세대에게도 반복해서 가르쳐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저자(모세)가 이 본문을 통해 당시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살아남고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모세 한 사람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천부장·백부장·오십부장·십부장이 함께 짐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둘째, '직분과 권위는 효율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백성을 샬롬으로 인도하기 위한 섬김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천부장과 십부장은 위계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이드로의 결론(23절)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만이 아니라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워지는 사람은 능력보다 경건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21절의 자격에서 첫째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무엇 위에 놓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이것은 후에 사사 시대의 타락(삿 8:1-3, 9장)과 왕정의 변질(삼상 8장)을 미리 막기 위한 신학적 안전장치이기도 했습니다.
Ⅲ. 오늘 나와 교회에게 주시는 한 문장 메시지
Ⅲ. 오늘 나와 교회에게 주시는 한 문장 메시지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평안으로 이끄신다.」
Ⅳ. 두 가지 구체적 적용
Ⅳ. 두 가지 구체적 적용
적용 1. 가정과 일터에서 — '혼자 다 해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짐을 나눠 지는 사람이 되자
적용 1. 가정과 일터에서 — '혼자 다 해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짐을 나눠 지는 사람이 되자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번아웃(burnout)'입니다. 통계청과 여러 직장인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합니다. 특히 1인 가구가 늘고 자영업자가 많아지면서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직장에서는 팀장, 가정에서는 가장, 교회에서는 구역장과 주일학교 교사를 동시에 감당하다가 결국 만성 위염과 공황 증상으로 새벽기도조차 나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한 말이 그 집사님에게도 똑같이 들립니다.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그분이 시들면 가정도 시들고, 회사 팀도 시들고, 구역 식구들도 시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가정에서 —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을 맡기고 있습니까? 회사에서 — 후배가 자라도록 일을 나눠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는 게 빠르다'며 다 끌어안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 한 사람에게 모든 봉사를 몰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혼자 잘함'이 미덕이 아니라 '함께 잘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새벽, 내가 붙잡고 있는 짐 중 하나를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지, 그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봅시다.
적용 2. 교회 공동체 안에서 — '능력보다 경건이 먼저'인 직분과 봉사의 기준을 회복하자
적용 2. 교회 공동체 안에서 — '능력보다 경건이 먼저'인 직분과 봉사의 기준을 회복하자
우리 시대는 '능력주의(meritocracy)' 시대입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결혼 시장에서도 '스펙'이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되었습니다. 슬프게도 이런 분위기는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직분자를 세울 때 '교회에 헌금을 얼마 했는가, 사회적 지위가 무엇인가, 학력이 어떠한가'를 먼저 봅니다. 한 교회에서 안수집사를 세우는 자리에서 '이분은 대기업 임원이시니 우리 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추천 이유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러면 이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하시는지는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었을 때, 회의는 잠시 멈추었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18:21이 우리에게 회복시키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첫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둘째가 '진실한 사람', 셋째가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능력은 그다음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직분 선거에서, 다음 부서 봉사자를 세울 때, 다음 소그룹 리더를 세울 때, 이 세 가지 질문을 먼저 던집시다.
✓ 이 사람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가?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 변함이 있는가?)
✓ 이 사람의 말과 삶은 일치하는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이 이 사람을 '믿을 만하다'고 말하는가?)
✓ 이 사람은 돈과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가? (작은 거래에서 정직한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세우려 할 때, 나는 이 세 가지 기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Ⅴ. 7분 분량 설교문 (구어체)
Ⅴ. 7분 분량 설교문 (구어체)
제목: 「함께 지는 짐, 함께 가는 평안」
본문: 출애굽기18:13-27
【 도입 】
【 도입 】
'번아웃'이라는 말은 과거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너무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직장에서 일에 치여, 자녀 키우다, 교회 봉사하다… 오늘 본문은 번아웃 직전의 모세를 하나님이 어떻게 살리시는지, 그리고 그 모세를 통해 온 백성이 어떻게 평안에 이르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 본문 해석 】
【 본문 해석 】
13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모세는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 있습니다. 이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부 싸움부터 재산 분쟁까지, 모든 일을 가지고 모세 한 사람에게 줄을 섭니다. 모세는 의무감으로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15절). 사명감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입니다.
이드로가 17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히브리어로 '로 토브'입니다. '좋지 않다.' 이 말은 창세기 2장 18절에서 하나님이 처음 쓰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다시 말해 이드로는 지금 단순히 '비효율적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 사람이 혼자 다 짊어지는 건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18절에 충격적인 단어가 나옵니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기력이 쇠하다'는 히브리어로 '나볼'입니다. 잎사귀가 시들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드로의 진단은 분명합니다. 모세 한 사람만 시드는 게 아닙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백성도 함께 시들어 갑니다. 우리 가정도, 우리 직장도,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다 짊어지면, 그 한 사람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시들어 갑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21절에서 대안을 줍니다.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드로가 말한 자격의 순서입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입니다. 둘째가'진실함'이고, 셋째가 '불의한 이익을 미워함'입니다. 능력은 그다음입니다. 이 순서가 거꾸로 되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23절, 이 모든 권면이 향하는 마지막 단어가 무엇입니까? '평안'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모세 한 사람의 휴식이 목적이 아닙니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샬롬, 그 온전한 평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24절,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한 줄입니다. 그러나 이 한 줄이 모세가 왜 위대한 지도자인지를 보여 줍니다. 출애굽의 영웅이, 미디안의 제사장 한 사람의 권면을 듣고, 그대로 다 시행합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기적을 행한 데 있지 않습니다. 들을 줄 아는 데 있습니다.
【 핵심 메시지 】
【 핵심 메시지 】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평안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슈퍼맨 한 명을 세우시지 않습니다.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그 공동체가 백성을 샬롬으로 데려갑니다.
【 구체적 적용 】
【 구체적 적용 】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다면, 가정과 일터에서, '혼자 다 해내려는 마음' 내려놓읍시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다면, 가정과 일터에서, '혼자 다 해내려는 마음' 내려놓읍시다.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가정에서 —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을 내가 다 떠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직장에서 — 후배가 자라도록 일을 나눠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는 게 빠르다'며 다 끌어안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 한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혼자 잘함'은 미덕이 아닙니다. '함께 잘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두번째 적용은, 교회 안에서, '능력보다 경건이 먼저'라는 기준을 회복합시다.
두번째 적용은, 교회 안에서, '능력보다 경건이 먼저'라는 기준을 회복합시다.
우리 시대는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학력, 직장, 연봉, 직급. 슬프게도 이런 기준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저분은 대기업 임원이니까 우리 교회에 도움이 될 거야.' '저분은 의사니까 좋은 직분자가 될 거야.' 그러나 출애굽기 18장 21절은 우리에게 다른 순서를 보여 줍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둘째, 진실한 사람. 셋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 능력은 그다음입니다. 교회는 능력보다 먼저 경건이 선행되는 기준입니다.
【 결론 】
【 결론 】
모세는 백성의 짐 앞에서 시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 백부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그분이 뭐라고 부르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시들어 가며 감당하지 못한 그 짐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좋은 소식을 받습니다. 하나는, 내가 짐을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짐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지셨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세우신 그 공동체, 곧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짐을 나눠 진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이 말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하나님 짐을 지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길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