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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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01_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다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vaYm3QH0W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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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 예, 읽겠습니다.

저자 서문

가슴시리도록 그리운 이름 가족.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 대한 인간의 첫 경험은 엄마의 품입니다. 거기에서부터 가정에 대한 모든 그의 모든 기억이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엄마의 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따뜻함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품어주는 따뜻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은 가슴이 실린 곳이고 가족은 아프지만 그리운 이름입니다. 물론 마음이 따뜻해지는 추억으로 가득한 가정, 존재만으로도 힘과 위로가 되는 가족을 가진 행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01:00)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은 상처와 아픔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곳이고 가족은 차라리고 싶은 이름입니다.이 이 책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의 갈등 속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또한 너무나 소중한 가정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염두해 두었습니다. 한 사람이이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가족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때로는 쓰러지고 넘어져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01:48) 더욱 우리 주위에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나 이혼의 아픔을고 살아가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이 책을 썼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서 다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가슴점이는 사랑으로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5년 4월 그리스도의 김남준

들어가는 이야기

참 인간이 되는 기초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입니다.
새벽에 어디에선가 우는 소리가 들려와 잠겠 깨었었습니다. 깨었습니다. 그것도 흔느기는 소리가 아니라 통곡하는 소리였습니다.
(02:52)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자면서 낸 울음 소리였습니다. 눈에서 흐른 눈물로 백에는 흠뻑 젖어 있었고 얼마나 목아 울었던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배웠습니다. 흰색 반팔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으신 모습이 조금 여이여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허리를 굽힌 채 나무로 된 상자에 무엇인가를 계속 담고 계셨습니다. 죄가 뒤로 다가셔서 아버지하고 불러보았지만 아버지는 듣지 못하셨는지 하던 일만 계속하셨습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청력이 많이 떨어져 언젠가 보청기를 해 드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버지라고 아버지하고 불렀습니다.
(03:55)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저를 보시고는 활짝 우셨습니다. 반가움이 가득한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제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와 그 사랑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인색했는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던 것입니다. 잠을 깨고 난 후에도 한동안 울음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미워할 때는 미워하느라고 흘려보낸 시간이 사랑한 후에는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지나가 버린 시간이 너무도 안타까워 어둠 속에서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04:52) 아버지는 늘 주일배를 마치고 주일배를 마치고 나면 당시 교회 건물 3층에 있었던 사택으로 올라와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아마도 아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젊었을 때는 식구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본인의 뜻대로 안 되면 심하게 역정도 내곤 하셨지만 나이가 드시자 그런 강한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힘없이 어깨를 떨그고 계실 때가 많아지셨습니다. 제가 사택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파에 앉아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나이가 드실수록 더 작아지시는듯한 아버지의 어깨와 흰머이 가득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06:03) 20년 전 2월. 오늘 추운 날에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 없는 아버지 없는 첫 번째 오월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저는 아내에게 무음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어버이 날에 아버지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러 가면 좋겠어. 그러자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버님이 어디 계셔? 그때 저는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구나.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공격할 수 없었고 주님을 깊이 만나 아버지를 용서한 후에는 쑥스럽고 어색해서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07:01) 그러다가 부연듯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데려가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와 저 사이에는 건들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생겨서 꿈이 아니면 아버지로 배울 수 배울 배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며칠만이라도 아니 단 한 하루만이라도 아버지가 제게 오신다면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사랑을 한없이 표현할 텐데 이제 아버지에 대한 죄의 기억은 움직일 수 없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한 인간은 가족을 통해 최초로 사랑을 배우고 또 인간에 대한 어 실망과 미움도 가장 먼저 경험합니다. 인간은 그런 가족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받아들림으로써 자신의 정서적 인지적 어 영역을 넓혀가며 어른이 되어 갑니다.
(07:52) 그래서 참 인간이 되는 기초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무엇인가 나에게 유익한 것을 해 주었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고마운 존재가 바로 가족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년 시절 제게 아픔을 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기 어려울 때마다 제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수시로 꺾였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꺾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08:40) 이기주의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것 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을 향해서 이런저런 부분들을 고쳐야지만 어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십시오. 그가 나의 가족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한없이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될 입니다.
(10:16)

1부 가정을 주신 경륜을 생각하라

사회의 모든 제도는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필요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제도는 인간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직접 재정하신 제대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독립적으로 단절된 채 존재하시는 대신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인류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녀를 생산하며 또 그 자녀와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으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하나님의 거대한 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11:10) 그리고 그 가족 관계의 중심에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우르러는 하나님께서 계셨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타고난 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자연 만물을 향한 인간의 호위와 배려도 튀어났을 것이니 이러한 정신의 힘듦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 안에 도입되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파괴되었고 나아가서는 자연 세계와의 관계도 파괴되었 파괴하였습니다. 따라서 순전한 사랑으로 세워질 가정의 질서도 파괴되었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습니다(창 3:12, 4:8). 그러나 인류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이라는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세계에 대한 경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2:10)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율법으로서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를 희미하게 남아 따르게 하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 중 얼마를 구원하여 그들을 원절한 사람으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의 가정이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삶과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이 나란히 강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엡 5:22-33).

제 1장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다.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

오직 부부 행복의 비결을 가르치는 책을 보며 수기 형식의 길들이 많습니다. 그중 많은 책들은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13:02)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생각하여 생각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다투며 살 것인가? 그래 차라리 내가지고 말자. 이렇게 결심하고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죽어지 죽어 지냈더니 행복한 가정이 되었더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반대 경우도 나타납니다. 매일 남편과 싸워 이혼 직전까지 갔는데 어느날 아내가 마음을 돌려서 애들 때문이라도 헤어지지 못할 테 못할 텐데 차라리 내가 포기하자 두고 갈등하면서 서로 살 갈등하며 살면 서로에게 고통만 따릅니다. 이때 사람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가 상대방을 완전히복시켜서 갈등을 종식시키려는 것이지요.
(13:51) 그래서 때로는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여 그 위에 굴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느 한 편이 다른 한편을 굴복시켜 평안을 획득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람직한 방 방식이 아닙니다.
(17:39)

사람을 지으심.

하나님께서 두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는 천상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의 세계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천상의 세계는 천사들의 성경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해야 하십니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는 인간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삼아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 인간의 지인은 이처럼 넓고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천사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산도 있었고 천사를 숭배하는 사상도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8절. 그러나 천사의 지인은 인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신부는 그로 불과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부림받아 지상 세계를 다스리고 하나님과 교재할 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18:40) 창세기 1장 26절 베드로전서 1장 12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매우 특별하게 당신의 형상대로 창소 하신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 기대했던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기대했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사람이 영원 안에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험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에 의하면이 형상의 인간의 영혼 안에 발견한 것으로 창조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인간으로서의 온전함과 순절함입니다.이 이 형상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불리는데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성생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9:35) 갈라디아서 4장 19절 고린도후서 4장 4절 그래서 타락한 인간에게이 형상의 회복은 곧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의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3 24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는 자니라. 골로새서 3장 17절.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일차적으로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성인데 영혼과 육체가 결합한 인간의 전 존재를 관여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실체로서 육체 또는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체로서 마땅히 존중이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20:36)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떠나서 인간 자체의 전음성과 고기함을 인정하는 기독교 사상이 여기에서 나타나 나온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자연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온인과 결과를 파악하여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학문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이 형상이 있기에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비록 타락하였지만 성령이 계시어 은혜의 힘입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참 인간이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심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21:31) 그러나 인간은 다 다른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극에 풀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니라. 창세기 2장 7절.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흙으로 만드셨다고 기록합니다. 흑은 히브리어로 아파르인데 흙이라기보다는 티끌 혹은 어 먼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이 티끌로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영혼을 창조하셨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의 동작이며 이로써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어 생령 곧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파르는 존재의 미천함 아무것도 아닌 무의에 가까운 상태 무가치함을 의미합니다.
(22:23) 창세기 18장 27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뒤로 인간의 육체를 창조하신 것은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지하여 존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육체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은 육체에 있지 않고 영원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존재가 된 것은 그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올바른 지도를 받을 때 비로소 참다 참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을 의전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그 영혼이 참 영원 수 있습니다.
(23:12) 그래서 아구스티누스가 말한 같이 육체의 생명은 영혼이고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먼저 지으신 후 혼자서 잠깐 동안 살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피를 지으리라. 창세기 2장 18절.이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남자만 만들어 놓고 보니 남자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게 여겨서 원래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여자를 추가적으로 만드신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기 전부터 여자를 만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에부터 그의 갈비를 지어 여자를 지으시는 것까지 모두 인간 창조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24:00) 그런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먼저 창조하셔서 잠시 동안 혼자서 살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 스스로 무엇인가 모자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이후에 만나 하와를 진심으로 필요한 존재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로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약이었습니다. >>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 무수한 식물들과 동물들,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을 모두 창조하신 후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 2장 7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24:50) 성경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 본문의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나쁜 것이었다라기보다는 온전하지 않았다라는 해석이 더 어울립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온전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많은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함으로써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 위에 당신의 창조 계획이 잔란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19편 1절 이사야서 66편 18절에서 19절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였습니다.
(25:47) 또한이 또한이 온전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리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에서 바라볼 때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 참고.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 죄 있는 자들을 공유로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힘 있게 이끄시는 것은 진정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유산을 요구했습니다. 유산을 받자마자 그는 재물을 챙겨 집을 떠났고 외국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 생활하면서 그 만든 재물을 허랑방탕하게 모두 사용하였습니다.
(26:43) 둘째 아들이 그렇게 집은 잊어버리고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있을 때 동구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 하지만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집밖에서 눈물 흘리며 기다리는 모습은 우리의 정서상으로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불순종함으로 이방신을 쫓는 이스라엘 향해 돌아오라고 외치는 선지서에서 나타난 인내의 하나님도 자녀 사랑으로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호세아서 6장 1절, 11장 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을 죽이고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안타까워 하시는 상면도 어머니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
(27:3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성과 부성을 지내신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사랑과 어머니로서의 하나님 사랑이 있어서 우리를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동시에 사랑과 정의로 자비로 다스리십니다. 로마서 5장 5절 8장 39절 어 데살로니카 후서 1장 5절 7절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남성과 여성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이 엄마 아빠를 통해 하나님의 선품을 배울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담이 아무리 온전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아담 혼자서는 이후의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창조하셔서 남성의 아내가 되게 하셨습니다.
(28:26) 그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빠와 엄마를 통해서 어머니 같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셨습니다. 잠언 22장 6절 15절. 그러므로 아담 혼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내로서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 모두를 만드셨지만 만드심의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은 흙을 빚어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다음에 그의 갈빛들을 취하여 만드셨습니다.
(29:13) 창세기 2장 22절. 그리고 이것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 창세기 2장 18절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이 성경 구절을 내세웁니다. 남자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지만 여자는 그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남자의 육체를 만든 재료는 흙이었고 어 여자의 육체를 만든 재료는 사람의 갈비뼈였으니 여자가 그 더 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또한 먼저 제작된 것보다 나중에 제작된 것이 모든 면에서 더 완전성이 높은 제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30:06) 물론이 바른 무한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언제 사람을 창조하셨든지 그 시점과 상관없이 당신이 의도하신 대로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나중에 지원받았기에 남자보다 더 열등한 존재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을 보이고자 함입니다. 그런가요? >> 네. 또 어떤 사람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신 의도와 관련하여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하와를 가르쳐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라고 표현한 구조를 근거로 여성이 남성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오해하는 것이 바로 그 경우입니다.
(30:59)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히브리어 성경에 로에젤르 케네크도 어 케네그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케네그도는 그와 상응하다 그와 만먹는 그와 대응하는 그와 짝을 이루는의 의미를 가지를 가집니다. 그리고로는 그에게 혹은 그에 대하여라는 의미를 에제리는 도움 혹은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이 구절의 바른 번역은 그에게 그와 상하는 돕는 자 혹은 그에 대하여 그와 짝을 이루는 구원자입니다. 여기서 앞에 나와 있는 두 개의 전치사로 로와 켄네 그도는 남녀와 종속 관계를로 얽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왕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31:56) 에도 우리말로만 보면 도움을 주는 보조적 존재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용내는 담과 같은 성경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요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편 33편 20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시편 40편 17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편 10 124편 8절.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뒤를 따라 칼을 베리라. 에스겔 12장 14절.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스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다니엘 11장 34절 이처럼 에제르한 다른 도움 호위하는 자 등에서 번역되었습니다.
(32:52) 여기에 도움은 작은 도움을 가르킨 것이 아니라 구원자의 도움을 가르킵니다. 또한 이 단어는 구약 시대 성 구약 시대 전쟁에서 응원군을 가르치는 단어입니다. 에제르라는 명사의 동사형인 아자르가 돕다, 방어하다, 둘러싸다 등의 의미를 갖는 것을 보면 이러한 용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묵상해 보십시오. 한 전투를 치지만 이제 적에게 기세가 꺾여 폐색이 지켜졌습니다. 그때 저멀리 청둥 소리와 같은 말박급소리가 들려옵니다. 후연 연기를 일으키며 수많은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그들이 자신들을 돕는 응원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색의 짓은 군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용기가 솟아오르고 새힘이 넘쳐납니다.
(33:48) 거대한 함성이 전장에 울려 퍼지고 결국 응원군의 도움으로이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응원군의 모습을 바로 에제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렇게 그런 존재로서 돕는 자 혹은 구원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남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되는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남성은 여성에 도움 없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으신 창조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습니다(창 2:22). 경건한 주석가 매튜 헨리는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창세기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지음받았습니다. 남자 위에 군림하도록 머리뼈에서 취하지 않으시고, 남자에게 짓밟힘을 당하도록 발의 뼈에서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와 동등하게 그 옆구리에서, 남자의 보호를 받도록 팔 아래서, 남자의 사랑을 받도록 심장 가까운 데 있는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몸의 일부로 여자를 만드신 것은 남자와 여자 중에서 누가 더 우월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둘이 원래 한 몸이라는 사실과 한 몸으로 연합되어 살아가야 하는 결혼의 대의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마 19:5-6, 고전 6:16).
모든 인류는 결국 한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는 직접 만드셨지만 그 이후의 사람들은 남녀가 결합함으로써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뿌리를 추적하고 추적하면 맨 마지막에 아담이 나올 것입니다. 인류가 한 몸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창 5:1-2). 이렇게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한 사람의 몸에서 만드신 것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온전히 자신의 몸인 것처럼 아끼며 사랑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요 17:23, 요일 4:11).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사이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사랑의 고백을 모든 인류가 함께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창 2:23).
이 창조 계획은 인간의 타락으로 잠시 좌절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으로 성취되었고, 미래에 완전히 완성될 것입니다(고전 13:12, 계21:3-4). 하나님께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 부르신 것도 구원을 통해 온 인류가 그 한 몸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골 3:15).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종말론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앞당겨서 누리는 공동체입니다(마 12:28, 롬 14:17).
(36:20)

두 가지 명령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인류 대표 삼으시고 두 가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첫째로 선교에 관한 명령입니다.
(37:25) 이것은 하나님과 사랑 관계에 관한 명령입니다. 통상 각종 나무의 열매는 내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내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6, 17절.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피조물이 복정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 그렇게 마물을 왕처럼 다스리게 다스다 보면 자신들이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된 것을 같은 착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들 어들과 하나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38:15)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설때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자신을 하나님 손으로 지으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피조물을 피조물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둘째로 문화에 관한 명령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동을 것이기에 노동 명령이라고 합니다. 또 합니다.이 이 명령은 사람과 만물의 관계에 관한 명령입니다.
(39:05) 생명 갖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계명은 인류 육체적인 번식에 관한 명령이고 뒤에 나오는 땅의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의도하였던 목적을 이룬 일과 관련되는 것으로 남성과 여성을 고려한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은이 땅에서 이루어질 인류의 번성에 관한 명령입니다.
(39:57) 그런 점에서이 명령을 떠 얼마 후에 창조될 하와에게도 주시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하와 창세기 3장 20절라고 불렀습니다. 하와는 곧 생명이라는 뜻입니다.이는 아담의 생육과 권성이 하와 함께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남성들은 여성을 신비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이는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아주 놀라운 특성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몸 안에서 생명의 터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출산합니다. 이런 능력은 오직 여자에게만 있습니다. 물론 여자 혼자서는 그 일 할 수 없고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40:35)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물로부터 유가 창조되듯이 여자의 몸속에서 잊지 않았던 인간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알며 다른 인간들을 돌을 보고 섬길 수 있는 지성과 의지 감성을 지닌 또 다른 인간이 생산되고 그들이 자서 또다시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을 생산함으로써는이 땅에서 번성해 갑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성은 하나님께 부유하신 위대한 생명의 담지자입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께서는 최초 인류인 아담과 하와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정복이라는 것은 아직 자신의 지배권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을 확장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41:28) 이 일에는 모험과 개척 정신, 용기와 투지, 결단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다스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의 온형은 라다인데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68편 27절. 에스겔서 29장 15절. 또한 하나님께서 선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편 110편 2절. 훌륭한 임금은 어떤 사람일까요? 백성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임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전쟁에 참여한 강한 군인이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 왕국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자신의 생명은 물론 국근을 건 전쟁까지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42:25) 그런가 하면이 개척 땅을 개척하여 나라의 영토를 넓힐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 1장 4절.이를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과 요기, 분토하는 노력, 위험을 무릇쓰는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상 108장 17절 참고. 이것이 군주에게 요구되는 남성상입니다. 그러나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에게는 백성이 어떤 일로 고통을 받고 아파한지를 헤아리는 섬세함도 필요합니다. 사무엘하 23장 16절.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백성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따담이 필요합니다. 왕화 13장 14절 이것이 군주에게 요구 요구되는 여성성입니다.
(43:21) 이처럼 부성과 모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탁월한 지혜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뛰어나는 임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공통적인 인간의 본성을 주셨으면서도 또한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고유한 특성을 부유하심으로써 둘이 부부의 결합으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께서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가도록 하셨습니다. 대체로 남성들은 호기심과 모음심이 많습니다. 또한 진치적이고 성취 지향적이어서 새로운 비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밖으로 뻗어 나가려고 합니다. 이와대조적으로 여성들은 대체로 관계지향적이고 내면 지향적입니다.
(44:11) 그래서 여성들은 이미 정복하고 어 개척한 땅들을 잘 가꾸고 돌보며 아름답게 하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남편들은 어떻게 하면 큰 돈을 벌어서 큰 집 혹은 더 넓은 땅을 소유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지만 아내들은 앞들에서 작은 꽃을 심고 건너방에는 어 예쁜 커튼을 달아서 아이 방을 어떻게 꾸며 줄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대체로 관계 지향적이고 내내적인 일들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밖으로 뻗어나가는 일들은 남성들을 통해서 성취됩니다.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갈 때 가정은 온전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45:02) 이것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는 서로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 서로에게 놀라운 만족을 주었을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이 저 사람에게 있고 저 사람에게 없는 것이 자신에게 있었을 테니깐요. 어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남녀가 서로를 위하면서 사는 것이 부부 생활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음 했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은 계속됩니다.

맺는 말

이런 남자 아이와 어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놀이 과정을 지켜봅시다. 남자 아이들은 방패 칼 총으로 싸움 놀이를 하거나 활동성 있는 놀이에 관심이 많은 반면에 여자아이는 석놀이 인형 옷 갈아입히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46:05) 그리고 성장한 뒤에도 이러한 남녀간의 관심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지스 시스템은 목표를 탐색하고 주적 공격하여 파괴하는 것까지의 전 과정이 환아의 시스템에 포함된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2007년에 취역한 세종대학함이이지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지스싸움을 소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디지스레이더 시스템은 마하 이상의 빠른 속도로 나는 북한의 스쿼드 등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비행 물체를 동시에 탐지하고 추족할 수 있으며 장거리 미사일 1054km 밖에서 날아오는 것을 탐지에 유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남성들은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대자수에 남성들은 개발된 신무기의 구시적인 성능에 관심이 많습니다.
(46:56) 그러나 여성들은 이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런 기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지구 온나라 때문에 방잠을 설치지 않아도 앞들의 심은 채송화 봉숭화를 보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아내들이 상처받은 것은 어마어마한게 큰 일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은 일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남녀의 차이입니다. 남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한 여성에게 마음을 쏟으면 쏟아부으며 모든 것을 헌신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나면 이제 가정을 넘어서 가정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이 세상에서 번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에 비하여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분산되어 있다가도 결혼하면 남편과 가정에게 그 마음이 집중되어 가정을 보살피기 시작합니다.
(47:50) 죄의 영향이 아니라면 남녀의 이러한 차이는 차이는 한 차이는 하나는 구심력으로 다른 하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면서 질서 있는 가정을 이루게 하고 가정 밖에 세계와도 올바른 관계를 이루게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온 후 남성들은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자연적 습성 속에서 아내를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밖으로만 뻗어나가는 남편을 못해하며 가족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에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먼저 요구됩니다. 그뿐 아니라 다름을 넘어서 상대방에게 결점이 보이는이 보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결정을 보충하려고 나를 짝지어 주셨구나.
(48:41) 이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지식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로 배우자를 참고 용납한다면 그는 그 과정을 통해서 죄로 인해 파괴된 지식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점점 더 온전한 인간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타락한 이후에는 서로의 다름을 용납할 수 없는 편함과 이기심이 우리의 본성 속에 자리잡고 있기에 더더욱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섬기십시오.
(49:26) 그것을 통해서 자신도 온전해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더욱 온전해될 것입니다. 아멘.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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