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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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02_ 가정을 세우는 원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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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2장 가정을 세우는 원리.
2장 가정을 세우는 원리.
부부 가정의 기초.
부부 가정의 기초.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졌는데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습니까?이 이 문제에 대해 조선 시대의 윤리는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교정합니다. 어머니는 한 분뿐이지만 아내는 다시 결혼해서 새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교적인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가정의 기초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철륜이라는 말로 표현하였고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일륜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사상과는 정면으로 충단합니다.
(00:53) 성경이 가정의 기초를 남편과 아내의 연합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잘못된 사상을 무너뜨리고 올바른 사상을 세우지 않는다면 성경적인 가정의 기초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장 10절. 그렇다고 부모나 자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중요한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가정을 이루는 기초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기초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부부가 있으므로 자녀가 생겨나고 자녀가 생겨나기에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기초인 부부 관계를 올바로 세우려면 결혼부터 바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01:40)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 본문에 나옵니다. 이름으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4절.이 이 말씀은 결혼에 대한 원리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중심으로 가정을 세우는 원리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랑으로 세우는 가정.
사랑으로 세우는 가정.
가정을 세우는 첫 번째 원리는 사랑입니다. 본문에 이함으로이 이름으로라는 말 앞에는 아담의 사랑 고백이 나옵니다.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창세기 2장 23절.
(02:28) 아담의 사랑 고백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후에 둘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이 말씀을 통해서 결혼은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사랑 고백인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법에서 최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너는 비록 내 몸의 일부로 만들어졌으나 남아 있는 내 몸의 모든 부분보다 귀하다. 남아 있는 내 몸의 모든 요소보다 더욱 소중하다. 너 없이는 나의 생명도 없다. 아담이 하와에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와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03:18) 결혼은 사랑을 토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여기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부분은 오히려 서로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한 가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얼마 전 세간에 유 유행하던 다음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부부 관계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내 없이 혼자 사는 남성은 평균 수명보다 5년 더 빨리 죽는다. 그런데 정작 아내가 있는 남성 중에는 죽고 싶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여성도 남편이 남편 없이 혼자 살면 남편이 있는 여성보다 더 일찍 죽는다.
(04:08) 그런데 남편과 함께 사는 여성 중에는 마음에 걸리는 아내가 많다고 한다. 결혼을 할 때 사랑은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서로가 결혼할 만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성경적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정략적인 결혼 즉 상대방의 어떤 소유나 명예 그 사람과 결혼했을 때 누릴 이익에 대한 기대로 결혼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모욕입니다. 창세기 34장 8절부터 10절 참고
인격적인 사랑으로
인격적인 사랑으로
결혼의 전제가 되는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05:01) 아담이 한 순간에 이성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서 하와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화를 향한 그의 사랑은 충동적인 연애 감정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열렬한 감정보다 더 순수하고 깊이가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아가페의 사랑에 맞다와 있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지만 그녀를 사랑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하와를 향한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으니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랑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가 창조되었을 때의 온전함과 순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러했습니다.
(05:48) 우리는 성경에서 잘못된 사랑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산 사람들을 만납니다. 삼손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는 여인 들릴라를 사랑했습니다. 사사기 16장 4절. 삼손은 들릴라를 향해서 솟구치는 애정과 열정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들릴라는 율법으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결혼이 금해진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사사기 16장 4절. 또한 그녀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매수되어 삼손을 파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16장 5절 17절부터 18절. 그런데도 삼손의 사랑은 좀처럼 누어들지 않았습니다.
(06:34) 오히려 더더욱 취소 올랐습니다. 사사기 16장 16절. 들리라를 향한 삼손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그 고백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름 아래 사울은 욕망을 가진 남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사랑은 이것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기초가 된 사랑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고를 때 일생 동안 연애하면서 살아야 할 로맨스의 대상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신앙의 동지를 구하는 마음으로 미래의 아내와 남편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였고 같은 신앙을 추구하는 동지로서 평생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의 사랑을 갖꾸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07:25)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서로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여야 한다는 것이 결혼의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선교도들은 부모나 주변의 목회자, 어른들이 추천하는 배우작감과 선을 보고 결혼 여부를 결정하였지만 그 마지막 선택은 언제나 당사자들의 몫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먼저였고 결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진리가 있는 그곳에 진리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신앙의 동지가 있고 거기에 남편과 아내의 한구적인 사랑의 연합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선교도들은 배우자가 될 사람의 조건 중에서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08:15) 그리고 그다음으로 성품을 고려하였습니다. 일평생을 친구처럼 신뢰하며 인생길를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살폈습니다. 그들은 부부 간의 사랑이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함께 추구하며 이루어가야 할 원대한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 그들은 좋은 신앙의 동지를 구하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내들은 남편이 자기를 로맨스의 대상으로 봐주지 않는다고 상심하거나 남편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아내의 투정거린 불평을 들리면서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남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오히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의 그런 불평을 잔소리보다도 더 싫어합니다.
(09:08) 부부 관계를 사랑과 신뢰로 깊어지게 하는데 그런 불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은 하를 보면서 그녀가 자신의 몸으로부터 취하여졌고 그래서 둘이 한몸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깊은 애정을 느꼈습니다. 부부 사이의 연애 감정에 대한 기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연애 감정 이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니다. 연애 감정은 남녀를 묶어서 부부관계로 데리고 가는 수단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남자가 여자를 보면 여자로 느껴지고 여자가 남자를 보면 어 남자로 느껴져야 합니다. 남자를 만났는데 목회자처럼만 느껴지고 여자를 만났는데 기고 방황하는 어린 양처럼만 느껴진다면 어떻게 부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연애 감정이 필요합니다.
(10:04) 하지만 그런 사랑이 부부가 느껴야 하는 사랑의 전부는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연애 감정은 부부로 살면서 만나는 많은 시련과 힘든 일들,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기 위해 치르는 고통, 상대방의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함께 해치며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유행가는 남녀가 뜨겁게 사랑하면 어떻게 문제라도 해결할하면서 살 수 있을 것처럼 노래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연애 감정을 능가하는 깊은 인격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폴스토인은 자신의 책 행복에서 남녀 사이의 애정 표현의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10:48) 나이에 따라서 그 나름대로의 사랑의 표현이 있다는 것입니다. 10대는 연애하면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20대는 10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결혼하여 20대, 30대, 40대를 지나면서 부부 사이에 나누는 사랑의 표현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 표현이 연령대별로 다른 것처럼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도 30대, 40대는 10대, 20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는 결혼하여 함께 살아갈수록 부부는 좋은 친구처럼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인격적인 사랑은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11:33) 하나님 앞에서 성숙해주고 온전해 주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인지를 알고 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 은혜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을 용납합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불안전하고 나쁜 사람인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과정에서 무수한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자기 깨어짐의 세계가 있어야 부부 사이에 인격적인 사랑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12:21)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가정.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가정.
가정을 세우는 두 번째 원리는 독립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창세기 2장 24절 결혼의 소명을 받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할 때 결혼이 이루어지는데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부모를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여기서 떠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자브로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버리다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버림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이 말은 결혼하고 나면 부모에 대해 아는 채도 하지 말고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결혼과 함께 남녀가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독립해야함을 의미합니다.
(13:06) 결혼을 하면 자녀는 부모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의 주도권은 남자가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이 된 남편에게 가정의 원리를 바로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가 아무리 좋은 아내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가정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자에게 부모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사회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아이가 만나는 첫 번째 세상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어깨 넘어버지를 만납니다. 아이는 독자적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부모를 밀치고 직접 세상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13:47) 아이는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 최초의 사회를 경험하며 부모와의 만남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이처럼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에게 깊이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자기의 가정을 꾸려야 합니다. 즉 자녀는 결혼을 하면 그동안 심리적으로 부모에게 기대했던 삶으로부터 떠나 부모와 어느 정도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남편은 집안일을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어머니와 상의한다고 합니다. 아내의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의 말이라면 고분고 모두 따르는 마마보이 같은 남편도 있다고 합니다.
(14:37) 남편의 월급은 시어머니의 통장으로 들어가고 아내가 용돈처럼 돈을 타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아내는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친정으로가 버립니다. 이것은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이 유하기적인 부모전의 심리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결혼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어느 시어머니가 아들 집을 방문해서 며느리와 다투었습니다. 며느리가 손자를 사리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하는데 그것이 못마땅하였던 것입니다. 며느리는 자신의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했지만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을 왜 그렇게 낭비하느냐고 몰아 세웠습니다.
(15:24) 그러나 시어머니의 이런 태도는 성경의 정신과 어긋납니다. 이미 장가를 보내서 따로 살림을 차린 한 가정이기에 그런 식으로 자녀의 살림에 부모가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시어머니가 좀 더 지혜롭고 관대하게 행동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살린도 넉넉하지 않은데 우리 선자 교육에 그토록 열심을 내다니 대견스럽구나.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입학금에 보태거라. 가정을 이룬 자녀도 집안에 크고 중대한 일이 생기면 부모와 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정은 언제나 당사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부모의 충고는 항상 충고로 그쳐야 합니다.
(16:08) 설령 자녀가 자신의 충고대로 안 따른다고 해도 부모는 자녀를 향해 서운 감정을 품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뿐만뿐만 아니라 자녀는 결혼을 하게 되면 물질적으로도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어떠한 사정이 생겨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경우에도 경제나 가게에 모든 생활은 독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수는 있지만 부모가 자녀 집안에 지출과 수입을 모두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 후에 자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직 결혼할만큼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16:58) 부모의 물질적 도움은 결혼할 때까지 받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는 결혼하고 나서도 경계적으로 부모에게 기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합니다. 부모의 재산에 눈을 들리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기면 부모에게 가서 징징거리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어머니는 남편을 속에서라도 자녀에게 물질을 갖다 주려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모두 성경이 말하는 참다운 결혼의 원리를 따르는 모습이 아닙니다.
부모도 자녀를 떠나야
부모도 자녀를 떠나야
결혼 생활을 꽤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인격적인 연합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모는 대체로 자신의 자녀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합니다. 그러한 집착은 자녀의 부부 사이에 연합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17:45) 그러므로 결혼함으로써 자녀가 부모를 떠날뿐만 아니라 부모도 자녀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볼볼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구여받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깊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길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인이 될 때까지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충분히 사랑해 주고 교육시키며 돌봐주지만 그 아이들을 평생 품에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에게 과도하게 기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친 집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자녀를 통해 편안한 노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18:31)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자녀의 가정까지도 망치는 일입니다. 마땅히 부모는 자녀를 향해 너희들이 결혼할 때까지는 돌봐 줄 것이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형광문이 번호로 되어 있는 집이 많습니다. 부모는 결혼한 자녀의 집에 현관문 비밀 번호를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현관문에 비밀 번호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집을 방문할 때는 자녀가 집에 있는 시간에 미리 약속을 하고 나서 가야 합니다. 자녀의 집을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아무때나들이 닥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집이지만 이미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만큼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하여야 합니다.
(19:17) 물론 자녀에게는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그리고 아무리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잘못 살면 부모에게는 성경과 인간의 도리를 따라 책망하고 권고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가정 문제에 정도 이상으로 깊이 개입하여 직장을 어디로 옮겨라. 아이는 몇 명을 낳아라. 아이에게 과외를 시켜라. 중에 간섭은 부모의 분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의 집에 와서 부엌을 뒤지고 냉장고를 열어보면서 살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느 어머니는 아들의 집을 방문할 때면 자신은 아들과 방에서 함께 자고 며느리는 건너방에서 자게 한다고 하니 이러한 현상은 어머니와 자식이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20:10) 이런 태도는 자신과 자녀와의 관계를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며느리나 사위와의 관계도 힘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가 인격적으로 연합된 부부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방해합니다. 이처럼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결혼과 함께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부모로부터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면 결국 그들은 부부 간의 온전한 인격적 연합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내와 합하는 가정.
그의 아내와 합하는 가정.
가정을 세우는 세 번째 원리는 연합입니다.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4절. 여기서 한 몸은 히브리어 성경에 바사르 에하드로 표현되었는데 에하드는 하나라는 의미고 바사르는 몸 혹은 살을 의미 가리킵니다.
(21:04) 그런데이 몸은 단순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육체를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성을 가진 몸을 가리킵니다. 또한 합파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바크인데이는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두 몸이 붙어서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부의 연합입니다. 부부 사이에 이러한 연합은 세속적인 연합과는 다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많이 의지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이러한 연합의 감정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을 느끼면 느낄수록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21:47)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름다운 부부의 연합은 그 연합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선명하고 풍성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연합은 부부의 육체적인 연합.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그 사람에게 기대어 어떤 자양분을 받고자 하는 정신적인 연합.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맺어진 영적인 연합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연합을 가리킵니다.
육체적인 연합.
육체적인 연합.
육체적인 연합은 그분은 장소적으로 한 곳에서 살아야함을 말합니다. 부부는 한 집에서 함께 살뿐만 아니라 한 방에서 지내도록 구름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부부 사이에 기도하는 일 외에는 방을 따로 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22:30) 고린도전서 7장 5절. 요즘은 개인의 특수성이나 가정의 사정에 따라 이러한 방침이에 얼마든지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은 그분은 장소적으로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를 공부시킨다고 멀리 해외로 조기 위학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살고 아빠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다다리 돈을 보냅니다. 오랜 시간 떨어져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보면 가족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많은 돈을 붙이면서 혼자 살아야 하는 기럭이 아빠들의 외로움과 경제적감은 견디기 힘들 정도입니다.
(23:13)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부분은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남편은 미국으로 아내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각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방학 때만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이러한 가정 생활도 곤장할 만한 모범은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 육체적인 연합이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요구는 부부가 성을 통해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의 유익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로는 자녀를 낳기 위함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 둘째로는 정욕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
(23:56) 마지막 셋째로는 부부의 성례전적인 연합을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0절부터 11절. 육체적인 연합을 통해 부부는 서로가 한 몸으로 연합된 존재임을 확인하고 이러한 인식은 부부의 정신적인 연합에 도움을 줍니다.
정신적인 연합.
정신적인 연합.
여러분은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 생각납니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누가 가장 보고 싶습니까? 누군가에게 소해받고 있어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 누가 생각납니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아픔이 밀려올 때 누구와 함께 있고 싶습니까? 제안해요. 그 사람이 남편이고 아내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은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24:44) 이것이 성경적인 부부 관계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깊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인격적인 연합을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 다시는 그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마음이 통하는 관계는 남녀 간의 일시적으로 솟아오르는 에로스적인 사랑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정신적인 연합은 육체적인 연합보다 더 번질적입니다. 부부를 부부되게 하는 것은 육체적인 연합이 아니라 정신적인 연합입니다. 부부가 되었으면서도 서로가 집에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25:33) 부부는 같은 관심사를 공유할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소속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임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의 정신적인 연합은 서로가 서로에게 용납받을 수 있는 상대가 됨으로써 아주 특별하고 배터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친구 한 사람을 사귀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갑니까? 젊은이들은 연애를 하면 모든 에너지를 그 한 사람에게 쏟아붙습니다.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심지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희생하기까지 합니다.
(26:20)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 끝에 좋은 관계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랑의 끝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그 사랑을 계속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일생 동안 정신적인 연합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화해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 그러나이 일은 무한한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 잘 믿은 사람이 그 사랑을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이 더 많이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두 사람의 인격적인 연합은 형성되고 유지됩니다.
(27:08)
영적인 연합
영적인 연합
결혼 제도는 죄가 없던 시대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 그들은 파괴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올바르게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부간의 정신적인 연합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는 순간 고백하였습니다.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창세기 2장 23절. 우리의 몸에는 많은 뼈와 살이 있지만 그 중요성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어떤 뼈와 살은 없어져도 생명의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장 가까이에 있는 살이나 척추 혹은 머리의 뼈는 아주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게 되면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27:57) 아담의이 고백은 우리 몸에서 없어져도 생명의 지장이 없는 그런 뼈와 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와가 심장에 있는 살처럼 척추의 뼈처럼 아주 중요한 부분임을 말합니다.이는 인류의 첫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혼하기 전 남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결혼 전에 어떠한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줍니다.이 정신적인 연합은 사실 영적인 연합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창세기 3장이 잘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가를 따먹는 범죄를 찾으러 온 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28:40) 내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이 말씀은 책망하는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과 염려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서 숨어 있는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내게 알렸느냐? 내가 내게 먹지 말라며 한 그 나무 열매를 내가 먹었느냐? 창세기 3장 11절. 그때 아담의 입에 설러나온 때 옆에 있던 하와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장 12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는 말 속에는 그 여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하게 하셨으며 이제는 그 여자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9:31) 이제 아담에게 하와는 한몸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여자 나는 나였습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과 정신적인 연합이 깨진 것이니다. 중배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결혼은 자신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우자를 선택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부로 만나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 관계가 깨어지면 정 반대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자신이 선택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이 여자이 여자를 소개시켜 준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30:10) 어쩌다가 남의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는 고백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부부싸움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하와가 선악가를 따먹고 아담에게 출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둘 사이에 어떠한 갈등이나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함으로써 각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을 뿐입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부부 관계가 파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30:51) 영적인 연합이 없는 부부 생활이 두 사람의 영혼에 만족을 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인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초합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영적인 연합은 두 사람이 각자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적으로 붙어 있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회개케 하고 그리스도를 믿게함으로써 그 사람을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에 젖붙여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 비로서 망가졌던 그의 영혼은 고쳐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사랑을 힘입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인간다운 삶을 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이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통해 하늘 자원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31:40) 그 하늘 자원이 있으므로 아내나 남편은 자신의 배우자에게서 허물을 발견하더라도 참고 용납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결혼을 하려면 먼저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뿐만 아니라 온전한 신자가 되기를 노력하며 그 사랑에 붙들려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 가정을 이루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교회 안에는 부부 중에 혼자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외롭게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품고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참다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 모두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2:20) 고린도전서 7장 14절 참고 이런 이치를 무시하고 대담하게 불신자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결혼을 했는데도 아름답게 결말을 맺어 하나님을 안 믿던 배우자가 훌륭한 신자가 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신자와 결혼을 감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꿈꾸지 마십시오. 고린도서 6장 14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과 사랑의 교통을 나눌 수 있는 배우자를 구하십시오. 불신자와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를 이탈하는 것입니다.
(33:01) 결혼 정년기에 이은 자녀를 둔 성도들에게도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녀가 여러분 마음대로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자녀가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불신자와의 결혼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자녀와 함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는
맺는 말
맺는 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어떻게 일치를 이루어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우고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거든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십시오. 하나님 밖에서의 사랑은 너무나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뿌리박은 사랑만이 변함이 없습니다.
(33:47) 하나님 밖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또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모두 죄가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배우자에게서 어떤 결점이 발견되고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원래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나 받을 수 있는 무한한 자비와 용서의 사랑을서 기대하는 것은 불행한 삶을 사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남편 혹은 아내에게서 결점을 발견했다면 바로 그 결을 그 사람의 배우자로 삼으셨다고 생각하십시오.
(34:33) 배우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해 주고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배필이 되라고 여러분을 부족한 남편의 아내로 부족한 아내의 남편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 20절. 그러나 상대방에게서 결점을 발견할 때 자신에게 그 사람을 온전하게 해야 하는 소명이 있음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의 육적인 본성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육적인 본성은 사랑받음으로써 혜택을 누리기 원하지 사랑함으로써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혈점이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대신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을 가볍게 여기며 사랑을 수 있게 하는 힘은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35:18) 그 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보좌에서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참고 이로서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 그러므로 배우자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물리 많은 배우자를 사랑하며 불완전한이 세상에서 완전한 가정을 이룰 꿈을 꾸십시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가정의 이론이 되게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