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0장 1-5절

새벽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제목: 거절당한 은혜

본문: 사무엘하 10장 1-5절

찬송: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오늘은 사무엘하 10장 1-5절 말씀을 가지고 거절당한 은혜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한다.
사무엘하 8장에서 주변 대적들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우뚝 섰던 다윗은, 이제 안팎의 질서가 정돈된 평화의 때에 과거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이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오늘 본문은 은혜를 갚으려는 다윗의 신실한 시도와, 이를 음모와 의심으로 왜곡하여 거절해버린 암몬 왕 하눈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의심을 뛰어넘어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1-2절은 '과거의 신의를 잊지 않고 은혜를 유통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말한다.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은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자마자, 그의 아들 하눈에게 조문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다윗이 이방의 왕에게 은총(헤세드)을 베풀려 한 이유는, 과거 도망자 시절에 사울의 칼날을 피해 방황하던 자신에게 나하스가 보여주었던 실제적인 피난처와 호의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암몬 왕 나하스는 사울 왕과 철저한 적대 관계에 있었다. 사울이 왕위에 오르며 거둔 첫 번째 군사적 승리가 바로 나하스와의 전쟁이었기에, 사울에게 쫓기며 목숨을 위협받던 다윗에게 나하스는 자연스럽게 도움의 손길이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다윗은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억울했던 그 고난의 시절, 사울의 대적이었던 나하스에게서 입었던 실제적인 은혜와 배려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다윗이 보낸 조문단은 단순한 외교적 형식이나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광야 시절에 입은 은혜를 기억하고 신의를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바로 이 헤세드(언약적 인자)를 기억하고 흘려보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치열한 일상의 현장과 고단한 생업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과거 인생의 밑바닥에서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에 있다.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과 환경을 통해 베풀어주신 보이지 않는 은혜의 손길 덕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공로를 앞세우기보다 나를 도우셨던 주님의 은혜를 이웃에게 신실하게 유통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3-4절은 '호의를 음모로 왜곡하며 하나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세상의 영적 무지'를 말한다.
“3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4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다윗의 순수한 조문단은 암몬의 방백들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당한다. 그들은 다윗의 호의를 "성을 정탐하여 함락시키려는 간첩 행위"로 정죄한다. 그들은 다윗의 이방 원정(8장)을 보며 극심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결국 다윗을 왕위 찬탈자로 오해하여 사절단의 수염 절반을 깎고 예복의 엉덩이 부분을 잘라내는 극단적인 모욕을 안겨주어 돌려보낸다. 수염은 자유인의 명예였고, 공무수행복을 자른 것은 국가의 주권을 모독한 악행이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거절하는 세상의 완악한 눈멀어짐이다. 세상의 계산법은 늘 '의심'과 '이득'에 기초하기 때문에, 대가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생명과 구원의 은혜을 들고 오셨을 때, 헤롯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러 온 '왕위 위협자'로 오해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자기 식대로 하나님의 호의를 왜곡하며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다. 오늘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호의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하눈'의 완악함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의심의 안경을 벗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영접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5절은 '상처받고 수치당한 인생들을 여리고의 쉼터에서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말한다.
“5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예복이 찢기고 수염이 깎인 채 돌아오는 신하들은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부끄러움에 갇혀 있었다. 다윗은 이 보고를 받고 그들을 즉각 정죄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처받은 명예를 배려하여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며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이라는 왕궁(본향)에 들어가기 전, 세상에서 찢기고 조롱당한 신하들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교회'이자 '은혜의 대피소'였다.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는 치열한 삶의 자리와 일터에서,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다 세상의 비웃음을 당하고 정체성이 찢기는 아픔을 겪는다. "수염이 깎이고 옷이 잘려나간 것"과 같은 억울함과 수치심이 우리를 덮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끄러운 실상을 보고 우리를 다그치지 않으신다. 도리어 우리의 수치를 가리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서 옷 벗김을 당하셨고, 우리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여리고의 은혜로 품어 기다려주시는 분이다. 오늘 하루, 내 상처를 스스로 메우려 발버둥 치지 말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의 안전한 품 안에서 참된 평강과 안식을 누려야 한다.
다윗은 은혜를 갚으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수치당한 신하들을 품기 위해 여리고를 예비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호의를 오해하고 우리를 조롱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모든 수치를 덮어주시는 완전한 중보자가 계신다. 오늘 하루,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하자. 그 주님의 사랑에 매여, 오늘 마주할 치열한 삶의 자리를 당당하고 기쁘게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신의 몸으로 다 받아내시고, 십자가에서 완전한 피난처를 지어주신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려 애쓰다가 때로는 오해를 받고, 우리의 헌신이 조롱당할 때 낙심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눈처럼 하나님의 호의를 의심의 안경으로 바라보며 원망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오늘 마주하는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비웃음 소리에 위축되지 않게 하옵소서. 수염이 깎이고 옷이 잘려나간 것 같은 억울함과 수치가 우리를 덮쳐올지라도, 우리를 안아주시며 "여리고에 머물며 쉬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교회가 상처 입은 영혼들의 진정한 여리고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지친 이웃들의 상처를 말없이 덮어주는 따뜻한 예배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땀 흘려 일구는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의 일터와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거친 풍파와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과 말 못 할 경제적 시련으로 홀로 은밀한 방에서 눈물짓는 환우들과 성도들을 주님의 강한 오른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가 세상의 정죄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 안에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 세대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오며, 우리 인생의 영원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