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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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03_여자의 덕목, 복종하라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eoEnD0K7Q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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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제가 읽겠습니다.

3장 아내의 덕목 복종하라.

가정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수십명은 들어갈 법한 큰 원을 그린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예일곱 명의 친구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길게 늘어섭니다. 가운데 있는 친구는 서서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돕니다. 다음 친구는 작은 원을 그리며 조금 더 크게 돕니다. 그리고 가장 밖에 있는 친구는 손에 나무 막대를 들고 크게 돌면서 원을 그립니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맡겨진 인물을 잘 감당할 때 커다란 원이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동등한 사람이었습니다.
(00:5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질서를 따라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어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사랑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질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이루어지는 위기적인 질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정을 통해서 이루실 창조의 목적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부여하신 기능적인 질서입니다. 에베소서 5장 23절. 남녀 사이에 높고 낮의 위계적인 질서는 인간이 창조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01:44) 하나님께서 최초의 남녀에게 주신 기능적인 질서는 창조의 목적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타락한 인간의 악한 본성이 그것을 왜곡시켜 지배와 착취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올바른 기능적인 질서가 세워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5절 12절.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 하나님께서 질서의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가족이 어떤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말만큼 무지한 것은 없습니다.
(02:34) 가족간에는 사랑과 함께 그 사랑이 작용할 질서가 필요합니다. 골로새서 3장 하반부에는 가족 가정 구성원이 어떠한 질서 아래 있어야 하는지를 나열합니다.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보여야 할 덕목은 복종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골로새서 3장 18절이 복종은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인 복종으로 주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복종과는 다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장 25절 골로새서 3장 19절이 사랑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 때문에 대가로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남편이 존경스럽기 때문에 베푸는 사랑도 아닙니다.
(03:23)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참사랑입니다. 또한 부모에 대한 자녀의 덕목은 공경인데이는 부모의 사회적인 지위나 재산이나 심지어는 인격의 높고 낮음에 의해서 좌우되는 공경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부모이기에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 골로새서 3장 20절. 그리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동목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 골로서 3장 21절. 부모가 자녀를 노협게 하면 그들이 낙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뿐만 아니라 남편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아내, 아내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남편, 부모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자녀, 자녀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부모가 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04:18) >>

아내의 덕목, 복종.

먼저 아내들에게 명령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정하라.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로서 3장 18절.이 일에 있어서는 아내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성경 남편에게 아내의 통목을 복종이라고 보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지시합니다. 요즘같이 남녀 평등 시대에 다소 과장하고 말하면 여성 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시대 복정하라니 마치 개몽시대 이전의 이야기인듯 조선 시대 이야기인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인데 감히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정하라고 명령할 수 있느냐며 겁을 갖기 쉽습니다. 마치 성경의 시대의 정신이 한참 지쳐진 것처럼 보입니다.
(05:15) 그러나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아내에게 아내의 동목으로 복정을 꽂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베드로전서 3장 1절 이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초로 가정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였을 때 의도하셨던 가정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내들을 향하여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들을 향하여서 아내를 사랑하며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골로장 19절. 그러나 남편에게 복장하라는 계명이 아내를 사랑하는 계명보다 앞서 있습니다.이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이 가정 안에 올바른 가족 관계의 형성이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06:08) 유기체는 각 부분이 일정한 목적의 아래 질서 있게 조직되어 각 부분과 전체가 필론적인 관계를 갖는 조직을 의미하고 있는데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하나의 유기처로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조직을 부여하신 질서는 남편이 가정을 통설하고 지도하는 가장으로서의 권을 행사하고 아내는 복장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 집안에 가정을 끼는 가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 것입니다. 그렇게 온 가족 온 식구가 각자 속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가족 공 구성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면 얼마를 배울 수 있으며 그 가정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사사기 21장 25절.
(07:12) 아내는 자녀를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남편이 그 집안의 가정을 생활 속에 복종으로 낮침판처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정하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엄마가 매일 아빠와 싸우며 대듭니다. 남편을 부르이 인간아 하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남편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 인간 주제라고 야자와 표현합니다. 그것을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남편이이 집안에 가장이란 사실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같은 시대에 복종하라니.

인류의 역사에서 남성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여성들을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가혹하게 대해 왔습니다.
(08:07) 마치 여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을 짓밟고 무시하였기에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여성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민주주의가 탁월하게 발전하였다는 미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은 각 주변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전진적으로 실현되다가 1920년 개정된 헌법에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거할 수 있는 권리가 부정되거나 제한될 수 없음을 명시함으로써 비로소 연방법으로 승인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성들은 남성들과 비교해서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되어받는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08:57)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여성들의 유상이 매우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60대, 70대, 80대 세 남성이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모두 타박성을 입거나 심하게 다쳤습니다. 아내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있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60대 남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아내에게 맞았나요? 그랬던 60대 남성이 말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아무리 기다려도 아침 식사를 차려 주지 않아 여보 밥 좀 줘라고 했더니 때리더군요. 70대 남성이 대답했습니다. 맞을짓을 했면 어떻게 아내에게 밥을 달라고 할 수가 있는가?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는 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09:44) 그럼 당신은 왜 맞았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아내가 예쁘게 화장을 하더군. 그래서 오늘 어디가 하고 물어봤을 뿐인데 때렸어. 그랬던 옆에 있던 80대 남성이 말했습니다. 맞을 짓을 했구먼. 어떻게 감히 화장하는 아내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볼 수 있어. 간도 그구먼. 그러고는 자신이 맞은 이유를 말했습니다. 난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네. 그냥 아침에 눈을 떴을 뿐인데 맞았어. 오늘도 살아 있다고 말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러한 씁쓸한 우습게 소리는 여성들의 힘이 막강해진 우리 사회에 대한 촌평입니다. 몇 년 전에 남편 세일즈 시리즈가 SNS를 통해서 50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습니다.
(10:35) 남편을 팝니다. 구입한지 30년쯤 되었는데 아직 쓸 만합니다. 연봉은 6천만 원이고 그중 2천만 원은 알콜 갑으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수리비는 크게 들지 않고 있습니다. 구입한 분에게는 사품으로 시어머니를 드립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야기를 여성들이 서로 돌려보면서 재미있다고 깔깔되고 웃는 시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 안에서 남편의 유상이 얼마나 축소되었는지 아내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해졌는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시류를 거슬러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봅니다.
(11:27)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쉬운 일이었다면 굳이 성경에서 이렇게 권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로 여성에게는 남성을 자신의 질서 아래 복종시키고 심파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남성을 자신이 원하는 칠사에 두고 싶어하였던 것입니다. 에스더 1장 17-18절. 이러한 부패한 성향이 여성에게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을 내버려둘 때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점에 잊지 못하고 표류할 것을 아셨기에 이러한 본성에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가정에 주신 말씀.

(12:28) 문제는 가정의 중심에 남편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인생관도 없고 방종하며 즉흥적입니다. 어 혹은 낭비벽이 심의 사취를 일삼는다든가 일삼는다거나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럴 때도 아내는 남편에게 온전히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 남편에게 아내가 순종한다면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내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저항하며 자녀를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남편에게 복중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세상에 있는 불신자가 아니라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불신자 가정에 주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믿음의 가정에 주신 말씀입니다.
(13:18) 골로새서 1장 2절. 그러므로이 말씀을 받았던 아내들 역시 주님을 믿을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깨어지며 좋은 신자가 되길 노력하는 되길 노력하는 교회 안에 자매들이었고 남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자로 빚어지기를 원하는 형제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가정의 기본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부입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다면 속히 전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편이 불신자라면 아내는 남편의 회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4:04) 물론 구원은 여러분의 힘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남편이나 아내를 향한 절박한 노력은 먼저 믿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 혹은 어 믿지 않은 아내 교회는 나오지만 변화받지 못한 배우자의 영혼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 영혼의 운명을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3절.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에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우라도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서 그리스도인의 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14:56) 베드로는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이는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갑진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장 1-4절.

복종의 의미.

그러면 아내가 남편에게 실천함으로써 가정의 질서를 이루게 하는 복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복종이라는 개념과 지금 성경 본문이 말하는 복종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음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15:58) 유교의 가르침을 따랐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규율하는 윤리적 원리로서 부부 유별을 강조하였습니다. 부부 유별은 맹자의 너는 다음 내용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옷을 입고서 편안히 거쳐하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검수에 가까워진다.이 때문에 성인이이를 근심하여 설리라는 인물을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16:56) 부부 사이에 갖추야 할 등록은 구별을 내세운 것은 남편으로서의 본분과 아내로서의 분분이 따로 있으니이를 잘 헤아려서 서로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상호 존중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학자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지만 대체로 다음에 두 가지 의미로 전해집니다. 첫째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의 성정의 역할의 역할과 차이를 내세우며 그처하는 꽃과 해야 하는 일의 구별을 말하기도 하지만 부부로서의 친밀함을 나누되 서로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결코 읽지 말라는 조아로움을 이야기하는 것 것입니다. 둘째로 다른 부부와 관계에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56) 저 각각 부부가 각각의 짝을 자신의 배필로 알고 서로 남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일이 부부간의 사랑을 보존하고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 있는 기본적인 도임을 옛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 유학자들이 남녀 간의 생물학적 다름이나 근본과 음양, 강류와 남녀를 대조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주역의 이론을 남존 여비 사상의 근거로 잘못 해석하여 부부 유별의 의미를 왜곡시켰다는 점을 감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성경에 나오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 혹은 순종을 이렇게 잘못 정립한 유교적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18:54) 우리는 유교적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복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마음속에 그립니다. 남편은 마치 상전인 것처럼 큰 목소리로 이리저러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아내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 말을 따릅니다. 가끔 아내를 막대하는 남편들과 남편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아내들이 아무 데고도 없이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을 복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가정의 질서를 세우는 복종은 폭합적인 완력에 의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이 명령은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집밟히던 비극적인 경험을 대풀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19:57) 우리말 성경에는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라 번역되어 있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남편의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이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보다 더 강합적으로 다가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골로세서 3장 18절 20절 헬라 원어을 살펴보면 자녀에게 순종하라 할 때 이파쿠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핑계나 이유를 대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데살로니가후서 3장 14절 베드로전서 3장 6절 이와 대조적으로 아내에게 복종하라 할 때에는 이보타소라는 단어 동사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의미의 순종을 가르킵니다.
(21:00) 고린도전서 14장 33절 헬레어포타소는 아래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히포와 배치하다 정리하다 균형을 이루다의 뜻을 지닌 동사 타소가 결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아래로 자신을 복종시켜 그 질서에 맞게끔 배치하고 정리하여 온전한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정하실 때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으로 은밀한 의미에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정은 사실 남편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복종입니다. >>

남편을 머리로 하는 질서.

하나님께서 가정에 부여하신 질서는 남편을 머리로 하고 아내를 몸으로 하는 질서입니다.
(22:03) 에베소서 5장 23절. 교회가 삼위 하나님의 모상인 것처럼 가정 또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의 모형을 본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4절 25절.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남편을 그 가정의 머리로 삼았습니다.이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창조의 목적을이기 위해서 질서를 우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남편의 머리됨은 아내와 자녀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정을 향해 보여 주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가족을 돌보고 섬기는 머리입니다.
(23:03)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질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12절. 교회의 직분은 사람의 우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직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워가기 위해 섬기도록 주어진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자라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에지의 삶, 시내의 삶입니다.
(23:49) 에베소서 3장 18절, 베드로전서 3장 7절. 그러므로써 성도들은 보다 더 온전한 신자로 성숙해져 가고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완전성을 갖추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이로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는이 세상에 빛을 비춥니다. 빌립보서 2장 15절.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부르신 성도들을 아무런 질서 없이 모합 지졸처럼 모아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당신이 직접 그들을 다스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사람들을 각각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24:39)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질서 속에서 각자의 섬김을 통해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목회자의 지도력 아래에서 성도들이 서로 존중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속에서 온전한 교회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서를 가정에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남편의 위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가장을 세우셔서 그 가정을 질서 있게 섬겨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훌륭한 남편이 아닐지라도

신앙시 깊은 자녀들 중에서 결혼을 하는 신령한 환상을 갖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자매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매우 거룩한 남편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25:31) 그래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남편된 사람이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요. 단체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제가 존경할 수 있는 형제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자에게 두 가지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약 30년쯤 연상의 남자 중에서 남편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평생 기독교인 위인 중에 전기를 읽으며 혼자 사는 것입니다. 자기처럼 결혼을 앞둔 또래의 형제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연애할 때 존경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눈에 콩각질 씌어서 잠깐 동안 어떻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한일부를 덮고 한 수발을 먹으면서 부딪끼며 살다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거기에서 거기입니다.
(26:24)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종교할 만한 해야 복정하죠. 그가 종교할 만화 하면 제가 왜 복정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복정하라고 명령한 것은 남편이 아내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이 별벌 일 없는 사람일 때도 복종한 것은 복종한 것을 요구받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정하는 것은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 주거나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정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질서를 알고 그분께서 세우신 질서에서 순종하는 아내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27:17)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이 자기가 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면 비로서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에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편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하나님 뜻 안에서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의 사회적인 주인의 높고 낮음이나 소유 유무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를이 가정의 머리로 삼으셨기에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성도의 삶입니다.

아내에게 주신 신앙적인 명령,

자기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행복의 추구는 타인에 대한 포갑을 가져옵니다. 그가 가진 권력과 자원이 크고 많다면 그 포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며이는 더 큰 갈등을 불러올 것입니다.
(28:20) 혹시 억눌린 사람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면 그것은 큰 다툼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당신 나한테 그렇게 밖에 못 해. 성경에 뭐라고 되어 있어? 당신에게 복종하라잖아. 맨날 교회에서 울면서 기도하면 너예. 복종하지 않는데. 아내가 받아칩니다. 아이고 당신이 나를 사랑만 해 줘 봐. 내가 복종을 안 하는. 남편이 휴지통을 발로 차면서 말합니다. 복종부터 해 보라니까. 그러면 내가 사랑 안 하나.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남편들은 기가 살지도 모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골로새서 3장 18절. 그러나 복종하라는 명령은 남편의 길을 살려 주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29:12) 이 본문은 남편이 읽고 아내를 지배하라고 주신 말씀도 아니고 아내의 복종이 남편으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도 권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이 법문을 가지고 아내에게들이 밀면서 복종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이 이 성경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화되어야 할 아내에게 주시는 신앙적인 명령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참고.이 이 말씀을 통해서 아내는 일평생 신앙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내가 이렇게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남편을 가볍게 여기며 남편을 내 마음대로 주관하며 살려고 하는 것을 보니 살려 살려는 것을 보니 아직도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사람이구나.
(30:07) 그녀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하나님 앞에 해결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더욱 붙듭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아내는 더욱 성숙한 신자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섬기는 일들만 하나님의 일이고 집안 일은 세상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눈빛 아래 있고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서 감찰하시는 영역입니다. 모든 일을 죽게 하듯해야 합니다. 골로세서 3장 23절.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편에게 온전히 복종하는 것은 사실 남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30:55) 에베소서 5장 22절.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섬길수록 여러분은 남편의 남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복종과 정신적인 연합.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예명을 주신 것은 어떻게 보면 아내들을 위함입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정은 부부의 정신적인 연합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4절. 히브리어 성경은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여자 속으로 연합하여 한 살이 될지니라.
(31:44) 한 살이 되는 것은 두 개가 결합되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 핵심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써 결혼과 함께 성립하는 영적인 연합이 부부의 원리적 연합이라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연합은 부부의 실제적 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영적인 연합을 실질적으로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깊이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이 연합의 본질은 사랑이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하나됨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과의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는 조건과 남편이 아내와의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는 조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32:37)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정신적인 열을 느끼는 중요한 조건은 관계의 누림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즐거움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자기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남편이라는 확신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정신적인 연합을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누림이란 무엇일까요? 남자가 서로 너무 좋아합니다. 아, 남녀가 서로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결혼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때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얼마만큼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좋아. 여자가 묻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좋아? 여기서 남자는 지나치게 솔직해지고 맙니다.
(33:36) 너네 아빠가 돈이 많거든 많잖아. 이것은 누림이 아니라 사용입니다. 여자 집안에 돈을 얻기 위해서 그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누림이 아닙니다. 누림은 좋아하는 것 위에 또 다른 상위의 목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아내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것이 바로 아내를 누리는 것입니다. 보통의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생일을 잊어버려도 크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별로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참지 못합니다. 만약 남편이 자신의 생일을 잊어버렸다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밤새 눈물을 흘리며 내가이 남자와 계속 살아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습니다.
(34:26) 남편이 중요한 일로 바빴다고 아무리 변명해도 아내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처음 만난 날, 프로포즈 받은 날, 심지어는 처음 손을 잡은 날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남편들과의 추억이 담긴 날들을 국경일처럼 마음에 표시해 둡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런 부분들을 만족시켜 주면 남편과 자기 자신 사이에 정신적인 연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들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여성들은 이처럼 관계 지향적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깊이 감동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선물이나 많은 돈이 아닙니다. 아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편이 자신을 최종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5:19) 남편이 자기로 인하여 쉬을 얻고 남편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좋아하고 있다고 여길 때 정신적인 연합이 유지됩니다. 아내들도 남편 아내들은 남편도 그럴 그런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여러 기념이를 기억하고 잘 대해 주는데 남편은 별로 감동받지 않습니다. 그때 섭섭해 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아내와 여자와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정신적인 연합을 느끼는 중요한 조건은 의존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부부가 많이 다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아내가 조수석에 탔습니다.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남편은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가려고 합니다.
(36:13) 그러다 보니 차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가까운 길로 길을 두고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길을 잘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정확하게 찾아갈 것이지 그렇게 하지 않는 남편이 못 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차를 세우고 사람들한테 물어보자고 합니다. 남편은 자신이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고집합니다. 그러다가 싸웁니다. 어떤 형제가 아내에게서 소외감을 느꼈던 이야기입니다. 한우는 아내가 여보 냉장고 위치를 바꿔 보면 어떨까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퇴근하고 옮겨 줄게. 그런데 그날 밤 늦게 오느라 냉장고 위치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 전에 말했습니다.
(37:06) 미안해. 어제 늦게 오느라 못 했어. 오늘 퇴근하고 와서 해 줄게.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냉장고 위치가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아내가 답합니다. 내가 힘 좀 썼어. 이때 남편은 할 일이 없어져 좋았던게 아니라 이상하게도 소외감을 느낍니다. 아내가 자신을 의지하기를 바라는데 아내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해내는 것을 보면서 남편은 자신의 존재를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인가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는 윤리 교사가 아닙니다.
(38:01)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깊이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남편은 그 가정의 리더라는 사실이 존중될 때 자신이이 가정의 책임자라는 사실과 함께이 가정에 소속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아내가 비합리적인 이유로 복중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내에게서 어떻게 의존의 감정을 느끼겠으며 자신이 존중받음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사사건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반기를 들면서 거친 말을 내뿜는 아내에게서 어떻게이 여자에게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남편이 이런 아내와 좋은 정신적 연합을 이루며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38:59)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교육자였으므로 모범적인 가정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의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단은 친구에게 이끌려 술집으로 갔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을 다해 어해주는 최초의 여성을 그곳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 여성과 함께 있을 때면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그 술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여성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여성과 함께 있을 때 귀중하게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부부 간의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연합이 느슨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40:02)

주 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어야 하는이 명령은 주 안에서 주어졌습니다.이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아내가 남편의 요구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현재 어기거나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오지 않는 한 아내는 신앙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의 복종을 원하시지만 신앙을 거스리면서까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만약 남편들이 신앙에서 벗어난 것을 요구한다면 아내는 지혜롭게 그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양보하면서까지 남편에게 복종할 의무가 아내에게는 없습니다.
(40:53) 제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자매의 남편이 매주 금요일 밤이면 낚싯대를 챙겨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떠나면 주일 낮이나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옵니다. 그러면 아내와 아이들만 교회에 갑니다. 그 문제로 부부가 자주 다투었습니다. 아내가 따집니다. 당신은 한 집안의 가장인데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어? 왜 가정을 팽개치고 허구 허구한 날 낚시만 다니는 거야? 그러면 남편이 받아칩니다. 그러면 너도 따라오면 되잖아. 너는 예수가 좋고 교회로 가고 좋아서 교회로 가고 나는 낚시가 좋아서 강으로 가는데 왜 이야? 나한테 교회 오라고 하지 말고 너와 아이들이 낚시에 따라오면 되잖아.
(41:39) 아내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면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가정이 잘 되어야 신앙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세는 줄 모른다고 이제는 아내가 낚시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 살펴보면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 신앙의 절개를 꺾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남편은 이렇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42:23) 너 교회 나가지 마라. 계속 교회 나갈 거면 나랑 갈라서자. 그러나 대부분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편들이 원하는 것은 아내가 자신을 존중해 주고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한 마디 잔소리하면 아내는 두 마디로 되들고 남편이 조금 불평하면 아내가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남편이 무엇인가를 요구해도 남편을 무시하며 순종하지 않는 아내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남달은 거의 없습니다. >>

마땅하니라.

성 아내들에게 아내들이 복 남편에게 복정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마땅하니라는 헬라 성경 아네으로 되어 있는데 그 온형인 아네코는 적합하다 꼭 맞다 어울리다 일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 5장 4절.
(43:26) 어 이게 뭐죠? 아몬스 빌레 >> 빌레몬스 >> 아 빌레몬 죄송해요. 빌레몬 죄송해요. 빌레몬 아 1장 8절 아내가 복장하는 것이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에 적거하다는 말일까요? 아,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만드실 때 그 가정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셨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가정을 향해 바로 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필요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 여성 한 사람이 공고하게 사는 친구를 불러내어 같이 점심이 먹자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서 천수를 먹기 전에 오늘 주일이고 하니 우리 교회 한번 가보자고 설득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44:22) 그 친구는 그때 남편에게 너무 지쳐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 서류 도장을 찍으라고 계속 요구하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그 설교 제목이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였는데 그 친구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나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남편을 불렀습니다. 아마 남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이 마누아가 또 이혼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구나. 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갑자기 아내의 어깨가 떨리고 떨리기 시작하더니 남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보,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우리 집프라의 원인은 나였어. 당신은 너무 괴롭해서 미안해 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남편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남편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45:23)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라고 라고 말하면서 함께 끌어앉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용서하고 새 출발을 하였습니다. 논과 밭이 끝없이 이어진 광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멸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않았다가 어느날 폭 포구가 쏟아졌습니다. 만약 관계 시설에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면 그 복구는 홍수가 되어 어마어마한 토사를 실어나누며 논과 밭을 쓸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에 잘 갖추어져 있으면 많은 양의 비가 내려도 그 물이 바둑한 모양으로 된 어 수을 따라 흐르면서 땅을 두루 적심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사 안에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사랑을 부어 주실 때 그 질서의 물결에 따라 사랑이
(46:28) 흐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복종하라.

인간의 사랑. 인간의 힘으로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류나 흠이 없으시며 나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남편이라는 사람이 어떤 때는 논리에도 안 맞고 인격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좋은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 남편에게 어떻게 아내가 쉽게 복종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미움과 원망이 고개를 줍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아내들에게이 질서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47:20) 만약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어떤 탁월함 때문이라면 그것이 얼마나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피차 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존경하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존경하고 사랑하기에는 모자라지만 사랑하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 또 순종하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순종할 힘을 얻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럴 마음도 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48:12)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자기 속에 있는 교만을 회개하면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보입니다. 그 남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가정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남편은 실망시켜도 남편을 사랑하게 만드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십니다. 남편의 아름다움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계속됩니다. 시편 27편 4절.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재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
(49:00) 사랑의 온처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참다운 참으로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아름답습니다. 시편 27편 4절 65편 4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기뻐할 수 있고 그때 아내는 주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는이 질서의 확고히 선 아내가 필요합니다. 아내들은 그동안 상처도 많았고 실현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내로서의 외로움과 고독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정신도 여러분에게 남편에게 눌려서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편보다 자식보다 너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가르칩니다.이 세상에 나의 만족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소리칩니다.
(49:52) 젊은 날에 남편에게 억압당하고 살았으니 이제 복수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먼저 자신을 자신을 허물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분에게 그 사람이 되라고 여러분을 아내들라고 부릅니다.

맺는 말

오늘 밤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한번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오늘 저녁 남편이 집에 와서 괜히 짜증을 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만 잡니다. 하루 종일 기다린 가족에게 저렇게 받게 못하나 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면 남편은 오늘 오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적 때문에 매일 고통받으면서 퇴사의 압력을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50:52) 그날이 상사로부터 험한 말을 듣고 자존심이 무척 상한 날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들은 그 모든 것들 중에 집에 와서는 지극히 일부분밖에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서서히 죽음의 기운이 남편의 육체에 스멸들고 있습니다. 남편의 친구들도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남자가 느끼는 절망적인 고독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아빠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자꾸 아빠를 피합니다. 아내와의 관계도 서먹하기만 합니다. 남편은 자식이 자신이 일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다고 주장하지만 가족 가운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51:43) 그는 그렇게 살아온 인생의 날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묻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면서 가족을 한없이 사랑해야 하는데 그를 힘이 모자할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때때로 아내는 남편에게 담당하기 어려운 거친 상대입니다. 가정의 질서는 깨졌습니다. 그 속에서 남편은 사회적으로는 무능하고 가족과는 의사 소통이 안 됩니다. 일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가족은 자기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런 남편은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할지 모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남편을 긍휼히 여기면서 가족으로 품십시오.
(52:33) 우리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세상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내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여러분이 먼저 남편에게 다가가 보십시오. 남편에게 따뜻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섭섭하게 한 일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말해 보십시오. 당신이 우리 집 가장이어서 나의 남편이어서 고맙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어쩌면 여러분의 그 말 한마디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로 어 돌아가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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