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영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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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를 영화롭게

본문: 요한복음 17장 1-5절

찬송: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사랑하는 제자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이른바 '대제사장적 기도'의 서두입니다. 주님은 이제 이 땅에서의 모든 공생애 사역을 마무리하고, 인류 구원의 정점인 십자가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 서 계십니다. 이때 주님의 입술에서 가장 먼저 나온 간구는 바로 '영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광은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화려한 성공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바라보셨던 영광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 영광이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자신이 겪어야 할 고난과 죽음이라는 터널을 영광의 통로로 이해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이 어떻게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은혜를 입은 우리의 영광이 오늘 이 자리에서 자녀의 신분을 살아내는 것에 있음을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고단한 일상과 여러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정한 자녀의 권세와 영광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 순종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 일은 단순히 병든 자를 고치고 기적을 베푼 사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육신의 목적이었던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을 향한 단호한 순종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실패이며 수치스러운 저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만나는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래 모든 영화와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누리셨던 그 본질적인 영광은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영광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들을 섬기고,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철저히 아버지를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부활에 이르심으로써, 주님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온 천하에 공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주님은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고,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으로 순종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깊은 순종의 영광을 이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초의 영광"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화려한 인테리어와 멋진 외관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그 집이 모진 바람과 풍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게 서 있으려면, 땅밑 깊은 어둠 속에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묻혀 있는 기초가 단단해야 합니다. 만약 이 기초가 왜 나만 이렇게 흙 속에 묻혀서 고생해야 하느냐고 불평하며 지상으로 드러나려 한다면, 그 집은 얼마 못 가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거대한 집을 떠받치는 가장 깊고 어두운 땅속의 '기초'가 되신 사건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지붕과 기둥만을 영광이라 불렀지만,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라는 거칠고 고통스러운 기초가 되는 순종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순종의 기초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구원의 집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같은 기초의 영광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이른 새벽부터 논과 밭으로 나가 땀 흘려 일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정성껏 키운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해 낙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남몰래 눈물 흘리며 기도의 제단을 쌓지만 그 수고를 칭찬해 주는 이가 없어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땅속에 묻힌 우리 성도님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순종을 영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인내하는 삶 자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통로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터널을 지나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 성도님들의 묵묵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사랑이 온 가정과 이웃에게 증명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자녀의 정체성을 살아냄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2절과 3절에서 영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합니다. 많은 성도가 영생을 단순히 먼 미래에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선포하신 영생은 장소의 이동을 넘어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의 다스림 속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구원은 죽어서 비로소 시작되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누리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얻은 가장 놀라운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어떤 큰 죄을 지은 사람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비로운 판사가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모든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판결이 끝난 후 판사는 이제 처벌은 면했으니 법정 밖으로 나가서 당신 마음대로 알아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사면을 받아 감옥에 가지 않는 자유는 얻었지만, 이 사람은 여전히 갈 곳이 없고 돌봐줄 이가 없는 영적 고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단지 법정의 사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탕자가 돌아왔을 때 맨발로 뛰어나와 안아주셨던 아버지처럼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즉, 우리는 단순히 무죄 방면을 받은 죄인이 아니라, '법정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아 그분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에게는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의 모든 돌보심과 보호를 누릴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진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비록 넉넉지 않고 일상의 염려가 우리를 짓누를 때에도, 우리는 영적 고아처럼 세상의 방식대로 불안해하거나 계산하며 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오늘 하루의 쓸 것을 공급해 주실 줄 믿고 당당하게 걸어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물질적인 풍요와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어야만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화려한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세상이 미워할 때 먼저 사랑하고, 세상이 절망할 때 소망을 품으며, 자녀답게 거룩한 삶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 자체가 아버지를 가장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자녀다운 성품과 삶으로 오늘을 살아낼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세상 속에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우리의 자리에서 자녀의 신분을 살아내야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라는 거칠고 아픈 순종의 길을 걸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고, 그 은혜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영광의 길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오늘이라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신분을 당당하고 신실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보이지 않는 기초와 같은 자리일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순종의 자리임을 기억하며 감사의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고아처럼 두려우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자녀다운 평안과 소망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늘 하루를 인내하고, 자녀답게 이웃을 사랑하며, 자녀답게 믿음의 가정을 세워나갈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님이 이번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쁨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참된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영광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라는 고통의 기초가 되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순종함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화려한 영광을 좇으며 영적 고아처럼 늘 불안해하고 염려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법정의 사면을 넘어 아버지의 따뜻한 집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하사, 날마다 자녀다운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일터와 가정에서 땀 흘려 수고하는 모든 일상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산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삶에 찾아오는 갈등과 아픔 속에서도 자녀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선포하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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