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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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은 여러분과 세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 세례를 받으셨을텐데요….
물론 아직 안 받으신 분도 계시죠….
세례 받으신 분들에게는 이 시간이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원하고요...
아직 세례 받지 못하신 분은 앞으로 받게 될 세례를 사모하고 기대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서 세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 등장하면서 부텁니다.
요한….세례 요한의 등장부텁니다.
이 사람의 이름 앞에 아예 세례라는 말이 붙어서 나옵니다.
1. 역전의 신비
본문을 통해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세례의 의미는 바로 기존의 것을 뒤집어 버리는, 모든 것을 과거와는 다르게 만들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세상의 기본적인 상식과 논리를 뒤집어 버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 문맥 (3:1-12)을 살펴보면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앞에 나아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7절)이라고까지 부르며 그들의 죄를 질타합니다.
분명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그 대상을 죄인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갈릴리로부터 요단까지 가셨습니다(13절).
지나가는 길에 방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례 요한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을 찾아 가셨습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기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또 자신이 요한보다 더 낮은 자인 것처럼 찾아 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보기에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은 세례 요한이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오히려 자기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시냐며 말렸습니다(14절).
요한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볼 때에도 당연합니다.
만약 두 사람 사이에서 세례라는 것이 필요했다면, 요한이 갈릴리로 예수님을 찾아가서 세례를 받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옳았습니다.
그러나 이 상식적 관계가 역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그 상식과 논리를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심에도 흉악범과 같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인류역사상 유일한 의인이셨으나 죄인처럼 자신을 낮추사 죄인처럼 되셨습니다.
또한 마치 자신이 요한의 은혜를 입는 것처럼 요한보다 더 작은 자같이 행동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는 잘못된 일이며, 또 불의한 일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며, 은혜를 베풀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은혜를 받으려 하는 것이며, 죄가 없는 이가 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통해 “모든 의를 이룬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15절).
의인이 죄인의 자리에 서는 불합리한 일이 모든 의를 이룬다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행동과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의 신비입니다.
의인이신 예수님이 세례를 통해 죄인과 동류로 취급을 받으셨기에, 죄인인 우리도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동류로 취급받는, 즉 의인으로 여겨지는 신비가 가능해졌습니다.
우리의 본질이 의인일 수는 없으나,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통해 죄인으로 여김을 받으셨던 것처럼,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죄인들은 이와 같이 세례를 통해 의인으로 선포됩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의인의 자리에 올라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의인으로서 죄인인 우리의 자리로 내려오심으로써 예수님과 우리가 ‘동류’로 여김 받는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신학자들은 이를 ‘신비적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사 의인으로서 죄인처럼 되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자들은 죄인에서 의인이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2. 성령의 전이 되는 신비
또한 예수님은 세례의 모습을 통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존재가 될지에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주님 위해 임하였습니다.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자체가 성전에서 이스라엘이 예배를 드릴 때에 일어나기를 간구했던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성령께서 그 자리에 임하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함께 하시기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신 예수님께 일어났습니다.
즉 예수님이 새로운 성전으로 세워지시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육체가 곧 참된 성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성전은 하늘 문이 열리는 곳이요, 성령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더 이상 금과 은과 백향목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육체로 새롭게 세운 성전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받으신 세례에서 선포됩니다.
이는 단지 예수님 한 분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공생애를 통해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고, 또한 이 세상에서 또 한 명의 예수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를 형성하고 있기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이 땅의 진정한 성전이 되셨듯이, 우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이 세상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 각자는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시는 성전이 되었고, 또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참되고 살아 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세례를 염두에 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성령께서 임하시는 전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삶을 살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신비적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 신비를 통해 이 땅의 거룩한 전으로 서라는 사명 또한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3.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신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중요한 두 건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성전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는 왕궁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제사장과 왕, 종교적인 영향력과 정치적인 영향력이 따로 존재하여 서로를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제사장이 섬기던 종교 권력, 진정한 성전으로 세움을 입으셨을 뿐 아니라 통치자, 곧 왕으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셨을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는 시편 2:7과 이사야 42:1을 반영하는 말씀으로서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는 것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시편 2편은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질 때 대관식을 위해 불리는 노래이고, 이사야 42장은 하나님의 손으로 선택하신 여호와의 종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는 선포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통해 의인이지만 죄인처럼 여겨졌으며, 그렇기에 거룩한 성전의 역할을 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시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그 땅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고, 악한 왕 헤롯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례라는 대관식을 통해 온 땅의 통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까지 전수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진리로 이 땅을 다스리라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그분의 제자들과 그 몸된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믿기에, 세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례라는 예식이 가진 놀라운 신비에 대해서 다시 주목해야겠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행해주셔야만 가능한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에 일어나는 신비적인 사건입니다.
우리가 세례와 성례를 행할 때에 세상의 상식과 논리가 뒤집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기에 죄인들이 의인으로 여겨지게 되고, 죄인의 몸과 마음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며,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왕 노릇 하는 통치자로 세움을 입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신비를 우리에게 전해 주시기 위해서 굳이 세례 요한을 찾아 세례를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이 세례의 신비를 우리들의 손에 맡겨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례의 신비가 우리의 손에 의해서 이곳에 드러나기를 구해야겠습니다.
비록 세례는 목사가 집례하여 베풀게 마련이지만, 이는 결코 목사 혼자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물을 가지고 세례를 베풀 때, 모든 회중이 그 때에 일어나는 신비를 목격하고 증인이 됩니다.
믿음으로 거행되고 믿음으로 받는 세례에 의해 죄인이 의인으로 여겨집니다.
세상의 논리와 상식을 뒤집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세워지며, 부정한 자가 성전이 되고 죄의 종 되었던 자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기적의 현장, 그 신비의 역사에 동참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역전의 신비 (의인이 죄인의 자리로)
대지 요약: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심으로, 죄인인 우리가 의인의 자리로 옮겨지는 신비적 연합.
💡 추천 예화: '신분 세탁'이 아닌 '신분 교환' (루터의 위대한 교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말한 '위대한 교환(The Great Exchange)'을 시각적인 비유로 설명하면 좋습니다.
내용: 아주 더럽고 냄새나는 걸인(죄인)이 있습니다. 반면 흠 하나 없고 눈부시게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왕자(예수님)가 있습니다. 상식적인 세상이라면 왕자가 걸인에게 왕궁의 예법을 배우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오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신비는 왕자가 스스로 걸인의 더러운 옷을 빼앗아 자기가 입고, 자신이 입던 왕자의 옷을 걸인에게 무조건 입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죄인들의 줄 뒤에 서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이제부터 너희의 추한 죄의 옷은 내가 입고, 나의 의로운 옷은 너희에게 주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 적용점: "나는 더 이상 내 과거의 죄에 매여 살지 않습니다"
정체성의 변화: 성도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넘어지고 죄를 짓기 때문에 마귀의 정죄감("네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에 시달립니다. 이때 세례의 신비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의로워진 것은 내 행실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인의 자리를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행동 촉구: 하루를 시작할 때나 죄책감이 몰려올 때, 영적인 선포를 하십시오. "나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연합한 자다. 예수님이 내 죄의 옷을 입으셨으니, 나는 이제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떳떳하게 살아간다!"
2. 성령의 전이 되는 신비 (건물에서 존재로)
대지 요약: 예수님이 움직이는 성전이 되셨듯, 세례받은 우리 역시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는 신비.
💡 추천 예화: 영국의 윈저 성(Windsor Castle)과 왕의 깃발
내용: 영국의 윈저 성이나 버킹엄 궁전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습니다. 궁전 꼭대기에 Royal Standard(국왕령 기)라는 깃발이 펄럭이면, 그것은 지금 건물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왕이 이 건물 안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왕이 자리를 비우면 깃발을 내리거나 다른 깃발로 바꿉니다.
연결: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신 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곧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깃발이 꽂힌 곳)임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 우리 인생 위에 성령의 깃발이 꽂혔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우리는 낡은 흙집 같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성령이 내재하시는 순간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성전'이 됩니다.
🎯 적용점: "내 몸과 마음의 공간을 청소하십시오"
성전 수호의 삶: 성전은 아무 물건이나 들여놓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 입으로 내뱉는 말, 마음으로 품는 미움과 탐욕은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행동 촉구: 일주일 동안 거룩한 '성전 관리인'으로 살아보십시오. 나쁜 습관이나 부정적인 생각, 음란한 문화가 내 삶에 들어오려 할 때 *"내 몸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다. 이곳에 더러운 것이 들어올 수 없다"*라며 영적 거부권을 행사하십시오.
3.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신비 (권세와 사명)
대지 요약: 세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왕(통치자)으로 즉위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 땅을 믿음으로 다스리는 영적 통치자의 사명을 받았다는 신비.
💡 추천 예화: 암행어사의 마패와 권세
내용: 조선 시대 암행어사는 겉보기에는 다 쓰러져가는 갓을 쓰고 낡은 도포를 입은 초라한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지방의 부패한 사또들이 보기에는 비웃음이 나올 만한 행색입니다. 그러나 그가 품속에서 '마패'를 꺼내 드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됩니다. 그 마패에는 왕의 권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고을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즉시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연결: 세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마패’와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예수 믿는다고 별수 있냐"며 초라하게 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세상 환경에 휘둘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환경을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 적용점: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왕의 권세로 세상을 축복하십시오"
다스림의 삶: 세상의 논리(돈, 권력, 성공)에 지배당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속상해하는 '피해자 의식'을 끊어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심는 통치자로 부름받았습니다.
행동 촉구: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일터)의 영적 분위기를 바꾸십시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곳에 먼저 찾아가 격려의 말을 건네고, 갈등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는 것입니다. 기도로 그 공간을 통치하십시오. 출근할 때나 교실에 들어설 때 마음으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이곳의 통치자로 보내셨다. 나의 기도와 사랑으로 이 땅을 다스리겠다."
☕ 설교를 마무리하는 결론부 권면 (Tip)
목사님이 집례하시는 세례식의 현장성을 강조하며 설교를 마무리하시면 좋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만간 우리 교회에 또 세례식이 열릴 것입니다. 그때 단순히 '한 사람이 물 세례를 받는구나'라고 구경하지 마십시오. 눈을 크게 뜨고 영적인 신비를 보십시오.
저 요단강에서 일어났던 대역전의 신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성전의 신비, 하나님 나라의 왕들이 태어나는 대관식의 신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은 우리 역시, 그 신비의 권능을 부여받은 자들임을 기억하며 세상 속으로 담대히 걸어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