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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돌보는 청지기 사명(문화 명령)

창세기 2:8–17 NKRV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부모님이 집 비우시면서 이런 말 해본 적 있는가? “집 좀 부탁한다”, "동생 좀 봐줘”, “강아지 밥 좀 챙겨”, “내가 맡긴 거 함부로 쓰지 마” 그런데 친구들을 불러서 신나게 놀다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쓰레기 안 치우고, 물건 망가뜨려 놓고, 심지어 맡긴 강아지 밥도 안 줬다면 어떨까? 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때 뭐라고 하시겠는가? “왜 네 마음대로 했어?”, “그건 네 것이 아니라 내가 맡긴 거잖아”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맡겨진 것”과 “내 것”은 태도가 다르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사용한다. 하지만 맡겨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심하고, 아끼고,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 오늘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마음대로 망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잘 돌보고 관리하라고 맡기셨다.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청지기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단순히 “환경 보호 잘하자”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에덴동산의 관리자로 두신다.
창세기 2:15 NKRV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땅을 다스리고 경작하는 자로 만드셨다. 인간의 일은 처음부터 노동이다. 2장 5절에서는 사람의 일을 설명한다.
창세기 2:5 NKRV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땅을 갈 사람도”에서 “갈”이 바로 “경작하며”와 같은 단어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사람에게 지정해 준 일은 노동이다. 일은 사람에게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나무들을 두셨다. 특히 그 동산에는 어떤 나무가 있었는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에덴의 아름다움은 다른 성경 본문에서도 나온다. 에덴은 하나님의 동산이며 사막과 광야와는 반대되는 곳이다. 그 곳에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가 있었다.
이사야 51:3 NKRV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 위치가 매우 궁금하다. 여러분이 오늘 읽었던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에덴을 한 동산을, 동쪽에 세우셨다는 뜻이다. 에덴동산의 위치와 관련하여 동편은 상당히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는다. 동쪽이라는 표현이 너무 모호하지만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이름이 그 위치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창세기 2:11 NKRV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학자들이 비손 강을 저마다 다르게 추측한다. 아마도 인더스 강 혹은 갠지스 강 그리고 아라비아의 강 혹은 메소포타미아의 한 강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학자들이 추측하는 강들이 너무 다양하다. 정확하게 어느 강인지 불분명하다. 이 강이 흐르는 하윌라 땅 역시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 땅에 금이 있다는 설명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고대의 금 공급지였던 아라비아 땅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창세기 2:13 NKRV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기혼은 구스 땅을 돌아서 흐르고 있다. 구스 땅은 아마도 에티오피아를 의미할 것이다. 보통 성경에서 등장하는 구스를 에티오피아로 해석한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나일강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창세기 2:14 NKRV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세 번째 강은 힛데겔이며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고 있다.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이다. 다음으로 네 번째 강은 제일 확실하다. 유프라테스이다. 이 강들이 흐르는 곳을 유추해서 에덴의 동산이 어디 있었는가를 추측해 보면 그 장소가 너무 넓고 모호하다.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 혹은 아르메니아의 한 곳 또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에덴동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에덴동산의 위치는 모호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이 살기에 아름답고 좋은 곳이다.
그러한 땅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창조 여섯째 날에 채소와 과일을 인간에게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에덴동산에서도 자유롭게 각종 나무의 열매들을 먹을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예외 규정이 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명령이다.
창세기 2:17 NKRV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이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다. 이 표현은 부정사의 절대적 용법으로 부정사가 동사 앞에 놓여져 강조한다. “반드시(확실히, 정말) 죽으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은 죽을 수 있다는 죽음의 개념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최초로 금지하신 명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인간의 생존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이 명령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영생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가 아니다. 물론 영생의 가능성은 있었다. 사람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영생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한 죽지 않는다. 즉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인간의 첫 상태는 시험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셨느냐고 질문한다.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사람이 죄를 짓게 하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요구한 것은 큰 것이 아니다. 단순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다. 하나님의 명령에 인간의 생명과 사냐, 죽냐의 문제가 걸려 있다. 순종은 생명을 가져온다. 그러나 불순종은 죽음을 가져온다. 순종과 불순종은 처음부터 중요한 성경의 주제이다.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계속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반항한 사건의 중심에는 선악과가 있다. 선악과는 인간의 탐욕의 대상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더 정확하게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이다. ‘선’의 개념은 이미 존재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기(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 개념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온다. 에덴의 동산 안에 ‘선과 악의 나무’의 열매는 있었지만 인간은 ‘악’을 ‘알지’ 못했다. 뱀은 선과 악을 아는데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다. 인간은 그 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 즉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악을 알게 되었다. 이는 악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악을 알게 된다. 악을 알게 된 후 인간 삶은 악으로 점점 빠르게 퍼져 나간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지식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어떤 학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학자는 도덕적인 분별 즉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지식과 관련해서 설명하는 분들도 있다. 성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아는 전지(omniscience)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는 그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선했다. 악이 없었다. 그러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은 것이 악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악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준이다.
창세기 2:17 NKRV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악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선을 넘어서는 것이 악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로 악을 경험한다. 히브리어에서 ‘알다’는 경험적인 지식이다.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 사람은 생명나무의 열매도 먹을 수 있었다. 이 나무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죄한 후에도 생명나무를 따먹으면 인간의 방법으로 영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타락하여 에덴동산에 들어와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그러나, 생명나무를 마치 게임 속 “영생 아이템”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성경은 생명나무를 단순히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는 마법의 열매처럼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무 자체보다, 그 나무를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나와 바르게 살아가면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표와 같은 것이었다. 마치 졸업장을 받는 것이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학교 과정을 잘 마쳤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생명나무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순종 안에서 누리는 생명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죄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더 이상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죄를 가진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은 단순히 “화나서 출입금지!”를 하신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영원히 갇혀 살아가는 것을 막으신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 다시 참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다. 결국 영원한 생명은 어떤 특별한 물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함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0문의 질문에 답해주시기 바란다.
Q10.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A10.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식과 의와 거룩함이 있게 하시고,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누구의 형상대로 지었는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은 지식을 얻는 능력에 있다. 물고기, 새, 짐승들은 본능대로 행동한다. 하나님은 동물들이 각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알게 하셨다. 비버는 댐 만드는 방법을 알아서 살 집을 만든다. 새들은 매년 더 따뜻한 곳으로 수백 킬로미터 날아간다. 그러나 짐승과 새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여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본능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지식을 알아간다. 사람은 기존에 가진 지식에 더 많은 지식을 계속 더해 가며 배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도록 배우고 아는 능력을 주셨다. 동물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로,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많은 지식을 가지려 한다. 부자가 되려고 지식을 얻는다. 나쁜 짓 하는 방법을 익히려고 학습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또 한 가지는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가진 것을 빼앗는 동물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옳고 그름을 알며 그 가운데 선택한다. 모든 사람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 그래서 나쁜 행동을 하고, 하나님의 방법 대신 자신의 방법을 선택한다.
하나님은 첫 인류를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다.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셔서 그 안에 악한 것이 없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능력을 주셨고, 아담과 하와는 잘못된 행동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그들 안에 죄가 들어왔다. 이 죄성을 이후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 전해주었다. 사람은 선과 악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생물보다 뛰어나다. 사람은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하나님은 동물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한 것이나 다른 동물을 해친 것에 대해서는 심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이다.
전도서 7:29 NKRV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두 가지 명령을 하셨다. 첫 번째는 번성해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명령은 무엇인지 창세기 1장 28절을 보자. 창 1:28
창세기 1:28 NKRV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이것을 인간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도록 주셨다.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이기적으로, 탐욕적으로, 낭비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오늘날 창조세계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걱정한다. 물과 공기 오염을 염려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것을 사용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다스릴 권한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창조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벌레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새끼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것을 염려하고 비난하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죽이는 낙태는 괜찮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우연히 만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이 세상을 맡기신 청지기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경작하며 지키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돌보고 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자신의 방법을 선택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세상은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을 자기 욕심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환경이 파괴되고, 생명이 가볍게 여겨지고,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기 욕망을 더 따라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맡긴 세상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공부도, 시간도, 돈도, 재능도, 자연도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죄로 인해 막혀 버린 생명의 길을 예수님께서 다시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인간은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첫 아담이 실패한 순종을 완전하게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청지기(Manager)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삶과 세상을 내 욕심대로 소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돌보고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공부하는 것도, 친구를 대하는 것도, 자연을 사용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꿈사땅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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