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비웃는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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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비웃는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25절
[도입]
우리가 믿는 복음, 우리가 따르는 십자가가 세상의 눈에는 정말 어리석어 보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아직도 그런걸 믿어?, 예수 안믿어도 잘 만 살더라, 한 심한 눈 빛으로 보는 시선을 경험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때, 이미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 십자가의 역설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본문 해석]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는 어떤 도시였습니까? 1세기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상업 도시였습니다. 헬라 문화가 흘러넘쳤고, 사람들은 "누가 더 지혜로운가", "누가 더 말 잘하는가"로 서로의 가치를 매겼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자"로 불리는 것은 최고의 명예였습니다.
거기에 또 한 부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아에게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그런 강력한 능력의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였습니다. 헬라인에게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신이 죽다니, 그것도 가장 비참한 십자가 처형으로 죽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저주받은 자로 죽었다? 이것은 23절의 표현대로"거리끼는 것", 곧 신앙의 길을 막아서는 결정적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선언합니까? 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고 24절에서 못을 박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헬라어가 있습니다. 18절 "미련한 것"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모리아'입니다. 영어 단어 'moron', 즉 '바보, 멍청이'의 어원이 된 단어입니다. 단순히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정말 바보 같은 것"이라는 강한 표현입니다. 세상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25절에서 결정타를 날립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칼빈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어리석거나 약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눈에 어리석고 약해 보이는 그 방식으로 일하실 때, 그것이 세상의 모든 지혜와 능력보다 위대하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세상이 "실패"라고 부르는 곳에서 하나님은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세상이 "약함"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하나님은 가장 강한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한 문장으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비웃는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이 한 문장을 오늘 가슴에 품고 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비웃는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비효율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붙든 그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이 진리를 오늘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를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성공과 효율을 절대 가치로 삼는 시대에, 십자가의 '비효율'을 선택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SNS를 열면 무엇이 보입니까? "30대에 자산 10억 달성", "연봉 점프하는 이직 전략". 온통 성공과 효율의 코드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일수록 십자가의 길은 더욱 "어리석어" 보입니다. 직장에서 동료의 공을 가로채면 빠르게 승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직을 택하는 그리스도인.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어도, 누군가의 주거 불안을 만드는 일에는 손대지 않기로 결단하는 성도. 자녀를 명문대만 보내려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도, 자녀를 한 인격으로 존중하며 양육하는 부모. 세상의 셈법으로는 "바보 같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세상이 어리석다고 비웃는 그 선택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비효율적인' 정직 하나가, 우리의 '바보 같은' 양보 하나가, 십자가의 능력을 이 땅에 흐르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 새벽, 세상의 지혜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비웃음에 위축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어리석다 해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이 약하다 해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십자가를 붙들고 오늘 하루도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