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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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과 성령

오늘은 성령강림절 이면서, 웨슬리회심 기념주일입니다.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 충만하여서 여러 언어로 말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성령 강림절이고, 또한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이 올더스게이트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며 큰 회심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인데요.
이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이 올 때마다 저도 제가 회심하여서 처음으로 신앙을 갖게 된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원래 저는 아버지가 목사님이긴 했어도 고등학생 때 까지는 별로 신앙이 없었는데요, 특히 교회다니는 사람들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위선자들이야 위선자들”하면서 속으로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오후예배때, 제가 살면서 저지른 크고 작은 잘못들이 눈앞에 환상처럼 쫙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깨달은게 “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위선자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위선자였구나, 내가 죄인이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서 마음속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때서야 저는 처음으로 저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는데요, 저도 이 때 성령님께서 일하신다는게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실 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구나 하는 걸 말이죠.
오늘 본문말씀도 제자들이 처음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제대로 경험하게 된 사건, 성령강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모인 자리에서 임하시는 성령(1-3)

본문말씀 1절 말씀을 보시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오순절이라고 하는 절기는 무엇이냐 하면 유월절로부터 50일 째 되는 날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유월절 이후에 칠주를 센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부르고, 혹은 보리에 낫을 처음 대는 시기라고 해서 맥추의 초실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오순절 혹은 칠칠절도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 이렇게 세 가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세계 여러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붐비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오순절 날에 제자들이 무엇을 했나 보니까 다 같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모여있었을 까요? 그냥 절기가 되었으니까 모였던 것일까요? 본문말씀 앞에 등장하는 1장 14절을 보시면,
Acts 1:14 NKRV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제자들이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직후에는 모여서 그냥 좌절하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이후에는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오순절 날에 무슨일이 일어나죠? 2절 말씀부터 보시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서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잇던 그 집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임재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쓰였는데요, 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바람을 뜻하는 단어가 각각 “루아흐”라고 하는 단어와 “프뉴마”라고 하는 단어가 쓰이는데요 한 가지 특징이 이 두 단어가 모두 “바람” “숨” 그리고 “영”이라고 하는 뜻과 혼용해서 쓰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바람이 등장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영, 성령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죠.
그리고 3절 말씀에 보시면 본격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게 마치 불의 혀처럼 발라지는 것들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불이라고 하는 것은 좀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특히 출애굽기 말씀을 보시면,
Exodus 19:18 NKRV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내실 때 불 가운데서 강림하신다고 나타나기도 하구요, 특히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나오는 규정으로
Exodus 27:20 NKRV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등불을 항상 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신다”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럼 오늘 본문말씀 1-3절의 이미지가 명확합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자리에 임재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그래서 이 날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중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나요? 그냥 먹고 자고 하는 와중에 갑자기 성령님이 강림하신 건가요? 그게 아닙니다. 함께 모여있는 와중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중에 성령님이 임하시는 겁니다.
저도 원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신앙이 없었는데요,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하라고 하면 대충 눈감고 시간 지나면 뜨고, 대충 타이밍 맞게 “아멘” 한번 외쳐주고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기숙사 학원에 들어가서 하루 세번씩 예배를 드리는데, 거기에 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아주아주 뜨겁게 기도하는 곳에 들어가니까요, 딱 삼일 정도 지나니까 저도 함께 그 학생들과 열정적으로 기도하게 되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다 같이 기도 안하는 분위기면 기도가 잘 안되는데, 다같이 기도하는 분위기에서는 저도 같이 기도를 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일하시려면 먼저는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나 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Matthew 18:19–20 NKRV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곳은 아무곳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구하고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Acts 2:1 NKRV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할렐루야! 먼저는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구하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다(4-11)

본문말씀 4절부터 보시면요, 이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 성령이 충만하니까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오순절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절기다 보니까 각지에 있는 유대인들, 특히 다른 곳에서 너무 오랜 세대가 살았다보니까 언어조차 다른 유대인들이 많았는데요, 이 서로 다른 언어들로 제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7절 말씀에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이 보니까 “아니 이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인데..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의 말을 어떻게 알고 하는 거지?”라고 신기해하기 시작했습니다. 9절부터 나오는 지역을 보면 정말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이스라엘이 있었던 지역 주변 사람들도 있고 아시아 사람들도 있고, 유럽에 그리스쪽 사람도 있고, 이집트, 리비야 같은 아프리카 사람도 있고, 아랍쪽 사람들도 있고 아주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언어를 쓰는 유대인들이 모여있는데, 각 언어로 “갈릴리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하니까 다들 놀라는 겁니다.
저도 미국에서 살 때, 생전 한국에 와본 적도 없게 생긴 사람들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그렇게 놀랄 때가 없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한국의 드라마나 노래가 외국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하니까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한국어를 배워서 말하더라구요. 참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인데도, 외국에서 한국말을 들으면 그렇게 반가우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외국 나가서 모국어를 듣는 것도 신기한데, 갑자기 한 지역, 갈릴리 지방의 사람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를 하니까 사람들에게 참 신기한 현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의 이 장면에서는요 이런 “신기한 현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외국어로 “무슨 말”을 하는 지가 더 중요한 겁니다.
11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요,
Acts 2:11 NKRV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제자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말한건 아무 말이나 지껄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제가 게임을 통해서 이런 저런 언어 인삿말을 배운 적이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제가 게임을 하다보면 스페인, 프랑스 같은 유럽쪽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저기 아랍 에미리트나 이집트 같은 아프리카, 중동 사람들도 만날 때도 있고, 브라질 같은 남미 사람들도 게임 속에서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하는 욕이란 욕은 다 알아듣더라구요. 무슨 씨 뭐라던가 병 뭐라던가 한국인이 아니면 쓸 것 같지도 않은 욕들을 게임할 때 만나는 외국인들이 다 알고 있어요.
왜 그런지 알고 보니까 만나는 한국 사람들한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욕이라는 거에요. 드라마에서도 욕이 나오고, 영화에서도 욕이 나오는 것 처럼 한국 사람들이랑 게임하면서도 욕을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알아듣는건 신기한데, 그게 욕이라는 건 부끄럽더라구요.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말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말이나 막하는 것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본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서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욕하기 보다, 누군가를 비방하기 보다, 사랑하고 복음의 말을 할 수 있어야, 그것이 저희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일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본문말씀 11절 하반절, “우리가 다~” 이 부분부터 함께 읽겠습니다.
Acts 2:11 NKRV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할렐루야! 성령 충만함으로 세상 가운데서 아무 말이나 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며 선포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놀람과 조롱(12-13)

12절부터 보시면요, 이 현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다 놀라면서 당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이야기하기를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요?”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13절에 보면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죠? 조롱하면서 말하는 사람들 “야야, 저놈들이 그냥 대낮부터 술 한잔 거나하게 자셨구만?”하고 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분명히 이 사도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도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마 사도들은 배워본적도 없는 언어들일거예요. 그래서 자기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성령의 힘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그걸로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대단하다~ 신기하다~” 정도의 반응이 올법도 한데, 그냥 사람들은 놀라기만 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저도 어렸을 때 부터 참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가 목사님이다보니까 초등학교를 가든 중학교를 가든 고등학교를 가든 아이들이 이미 저희 아버지가 목사님인 걸 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딜 가든지 아이들이 목사님 아들인 걸 가지고 놀려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야야 저기 할렐루야 지나간다”라고 한다던가 제가 걸어가고 있으면 길을 막고 “오~~ 주여~~”한다던가 그렇게 놀리는 거예요.
그렇다보니 교회 밖에서 교회다닌다고 하거나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하는걸 숨기게 되더라구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던 겁니다. 하물며 오늘 본문말씀의 제자들은 성령님의 힘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조롱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부끄러워했을까요?
오히려 제자들은 조롱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본문말씀 이후에 14절부터 36절까지의 긴 내용이 바로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한 설교 부분이구요, 41절에 보시면 이 당당하게 전한 말씀을 듣고서 세례를 받은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것,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반드시 세상의 조롱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좋은 뜻으로 한다고 해도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고, 잘하고 있어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반응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멈춰버리면 하나님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들도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던 것처럼 저희 또한 조롱에 굴하지 않고 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품고 있던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본문말씀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Acts 2:14 NKRV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할렐루야. 그리스도인으로서 비록 세상의 조롱과 멸시가 있을 지라도, 오히려 소리를 높여서 복음 전하는데 힘써 나아갈 수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은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갑자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게 아닙니다. 함께 모여서 함께 기도로 준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여주시고 또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서 외국말을 막 말하기 시작했을 때, 아무말이나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들,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 것입니다. 저희가 아는 것처럼 교회에서 “렐렐렐레~”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의 조롱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일한다고 해서 조롱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한 조롱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저희는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전할 수 있어야만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함께 기도로 준비함으로 성령님을 기다리고,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전하며, 조롱에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며 나아갈 수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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