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4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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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문제가 아닙니다.
1 Corinthians 7:25–40 NKRV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5월 초에 룻기에 대해 설교를 하였다.
들어가며 — 결정 앞에 선 청년에게
청년의 때는 결정의 때입니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누구와 평생을 함께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마다 불안이 따라붙습니다. 또래는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나만 늦은 것 같고, 결혼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복잡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바로 이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고린도의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는 정답을 정해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결정보다 더 깊은 곳을 짚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고린도라는 도시 — 욕망이 넘치던 항구
본문을 바로 이해하려면 고린도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는 두 개의 바다를 잇는 길목에 자리한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배가 드나들고 상인과 나그네가 끊임없이 오가며 돈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곳에는 욕망도 함께 모입니다. 고린도는 당시 온 지중해 세계에서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이름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사람처럼 산다"는 말이 곧 "방탕하게 산다"는 뜻으로 통할 정도였습니다.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고, 그 신을 섬기는 일은 성적인 행위와 얽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교회 밖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회 안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5장 1절을 보면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이방인 사회에서도 손가락질받을 일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장에서도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6:18)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던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두 극단 — 방종과 금욕
이 도시의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 두 가지 잘못된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몸은 열등하고 영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헬라식 이원론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 생각이 정반대 두 방향으로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방종입니다. "몸은 어차피 영혼과 상관없으니 육체로 무엇을 하든 그만이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구호가 6장 12절에 나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앞서 본 음행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한쪽은 금욕입니다. "몸은 악하니 억눌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결혼과 부부관계조차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7장 1절의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니라"는 말이 바로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결론이 아니라 금욕주의자들의 구호를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6장에서 방종을 바로잡고, 7장에서 금욕을 바로잡습니다. 그가 던지는 답은 분명합니다. 몸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몸은 ... 성령의 전"(6:19)이고 장차 부활할 몸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더럽혀서도 안 되고, 무가치하다며 억눌러야 할 것도 아닙니다. 결혼도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입니다.
환난의 때라는 상황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 권면을 한 시대 상황입니다. 7장 26절에서 그는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환난'으로 옮긴 말은 원어로 사람을 짓누르는 곤경, 피할 수 없이 닥쳐오는 압박을 뜻합니다. 그 무렵 그리스 지역을 덮친 기근과 어려움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앞둔 마지막 때의 긴박함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점을 꼭 붙드셔야 합니다. 바울이 결혼하지 말라고 권한 것은 결혼이 나빠서가 아니라, 지금이 평온하게 가정을 꾸리기 좋은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환난의 때에는 결혼을 하면 책임질 식구가 늘고 짊어질 짐도 늘어납니다. 바울은 청년들이 그 고생을 덜기를 바랐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권면입니다 (25-28절)
이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25절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시작합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되어 내 의견을 말하노니." 결혼하라 마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사도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래서 이 단락에는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28절입니다.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은 죄가 아닙니다. 다만 환난의 때에 결혼하면 그만큼 고생이 따르니, 그 고생을 덜어 주려는 목자의 마음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강요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27절에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미 아내가 있으면 벗어나려 하지 말고, 아내가 없으면 굳이 구하려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처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라는 권면입니다.
그 때를 기억하라 —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갑니다 (29-31절)
바울은 이어서 이 모든 권면의 바탕에 있는 생각을 드러냅니다. 29절부터 3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뻐하는 자들은 기뻐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여기 두 단어의 원래 뜻을 알면 본문이 더 깊이 들어옵니다. 먼저 29절의 "그 때가 단축하여진"입니다. '단축되었다'는 말은 원어로 돛을 둘둘 말아 거두어들이듯 시간이 바짝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펼쳐져 있던 돛이 접히듯,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또 '때'라는 말도 그냥 흘러가는 시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결정적인 때를 가리킵니다. 다음은 31절의 "외형"입니다. 이 말은 원어로 무대 위에 잠시 세워졌다가 막이 내리면 사라지는 장면을 뜻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오늘이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끝이 있습니다. 정해진 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때는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는 모두의 종말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온 세상의 무대가 한꺼번에 거두어지고, 모든 것이 그분 앞에 드러나는 날입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종말입니다. 곧 죽음입니다. 나 한 사람에게 막이 내리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평생 붙들고 애쓰던 모든 것이 내 손을 떠납니다. 쌓아 둔 것도, 지키려던 것도, 자랑하던 것도 다 두고 가야 합니다.
이 두 종말은 같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종말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두려움에 떨며 날짜를 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이 있음을 늘 마음에 두고, 지금 이 순간을 그 마지막에 비추어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 마음으로 살면 분별이 생깁니다. 무엇을 꽉 붙들고 무엇을 가볍게 쥐어야 할지가 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세상 가운데 살되 세상에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가 없는 척 연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누리되 그것에 묶이지 말고, 슬픔을 겪되 거기에 삼켜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아는 사람만이 지나가는 것을 가볍게 쥘 수 있습니다.
마음이 나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32-35절)
이제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이 왜 결혼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는지, 그 진짜 이유가 여기 나옵니다. 32절부터 34절입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34절의 "마음이 갈라지며"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이 말은 원어로 하나가 둘로 쪼개진다, 나뉜다는 뜻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주님을 향한 마음과 배우자를 향한 마음 사이에서 마음이 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결혼한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배우자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책임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그만큼 마음이 여러 곳을 향하게 된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삶을 권합니다. 그 뜻이 35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끌리어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도 알아 둘 원어가 있습니다. 먼저 "올무"입니다. 이 말은 짐승을 옭아매는 올가미를 뜻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올가미를 던져 묶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신을 또 하나의 규칙으로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분요함이 없이"입니다. 이 말은 원어로 한쪽저쪽으로 끌려다니지 않는,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같은 어근의 단어가 누가복음 10장 40절에 나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대접하느라 "마음이 분주하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그 모습입니다. 바울이 바란 것은 마르다처럼 여러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마리아처럼 주님 한 분께 마음을 모으는 삶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이 결혼하지 말라고 권한 진짜 이유는 결혼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더욱 마음을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환난의 때에 결혼은 그 집중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었기에, 그냥 지내는 편이 유익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이냐 독신이냐가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데 있었습니다.
각자의 처지대로, 주 안에서 (36-40절)
이어지는 36절부터 38절은 한 남자와 그의 약혼녀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고 결혼하지 않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38절입니다. "그러므로 처녀와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어느 쪽도 죄가 아니며, 각자 자신의 처지와 부르심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39절과 40절은 남편을 잃은 과부의 경우입니다.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다시 결혼해도 좋되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주 안에서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 마지막 때를 살아가며 내려놓으라
이제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정리하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그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때가 단축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있고, 나 한 사람에게는 막이 내리는 죽음의 날이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사실을 잊고 삽니다.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내가 쥔 것이 영원히 내 것일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종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다르게 삽니다. 마지막을 늘 마음에 둔 사람은, 지나가는 것에 인생을 걸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은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핵심은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닙니다. 핵심은 지금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떼어 놓는 것, 내 마음을 갈라놓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손을 펴 내려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 시대에는 환난과 결혼이라는 무게가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다른 것들이 마음을 잘게 쪼갭니다. 손안의 작은 화면이, 끝없는 불안이, 남과의 비교가, 더 가지려는 욕심이 마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눕니다. 주님을 향해야 할 마음의 한가운데가 자꾸만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갑니다. 마르다처럼 여러 일에 끌려다니느라 정작 주님 앞에 앉지 못합니다.
바울이 바란 것은 그 흩어진 마음이 다시 하나로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할 수 있는 것조차 내려놓는 자유를 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이 주어집니다. 지금 내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붙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내 마음을 주님에게서 떼어 놓는다면 잠시 손을 펴 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은 그렇게 가볍게 쥐고, 주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결혼에 관한 본문을 읽었지만, 바울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결혼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둘입니다. 그 때를 기억하라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 때를 살아가며 마음을 나누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마음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갑니다. 우리가 쌓는 것도, 지키려는 것도, 손에 쥔 것도 잠시 세워진 무대 장치입니다. 그러나 그 무대 위에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지나가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함께 걷는 사람은 막이 내리는 날에도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내 마음을 갈라놓고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답게 손을 펴 내려놓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걸음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38절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성 때문에 목회적인 이유로 독신생활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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