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 2026 0525 엡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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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
Ephesians 4:1–16 NKRV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하나됨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들어가며

여러분, 오늘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 교회를, 우리 한빛 공동체를,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을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이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누리면 되는 것"이라고 느끼십니까?
제가 청년들이나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많은 분들이 신앙을 이렇게 느끼고 있더라고요.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해서…" 신앙이 마치 끝없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교회 생활도 그래요. 봉사해야 하고, 모임 나와야 하고, 관계도 잘 맺어야 하고. 다 내가 만들어내야 할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됨을 만들려고 하지 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지켜라." 무슨 말일까요?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 입니다.
Ephesians 4:1 NKRV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러분, 이 첫 단어를 주목해 주십시오. "그러므로." 성경을 읽다 보면 "그러므로"라는 말, 그냥 지나가기 쉽죠? 그런데 이 단어가 에베소서 전체의 열쇠입니다.
에베소서는 6장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4장부터 6장까지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 두 부분을 잇는 경첩이 바로 4장 1절의 "그러므로"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실 거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너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됨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받았기에, 그러므로 지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셨습니다.

엡4:3 을 보겠습니다.
Ephesians 4:3 NKRV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러분, 여기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성령의 하나됨을 만들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여기 "지키라"는 말은요, 원래 헬라어로 보면 보초가 망을 보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수비한다는 뜻입니다. 군인이 성을 지키듯이,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미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됨은 언제,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다음 구절, 4절부터 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하나"라는 단어를 무려 일곱 번 반복합니다. 한번 같이 세어 봅시다. 엡4:4-6
Ephesians 4:4–6 NKRV
4 몸이 하나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세례도 하나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몸이 하나, 성령도 하나, 소망도 하나. 주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그리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일곱 개의 "하나"입니다.
여러분, 이 일곱 개의 "하나"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회의해서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노력해서 합의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 한 분 주님이, 한 분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든 게 아니라요.
자,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여러분, 결혼한 부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에게 우리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제부터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관계를 잘 만들어가세요"라고 합니까? 아니죠. 이미 결혼식에서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모든 노력은 하나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한 아버지를 모신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 하나됨을 만들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이미 받은 그 하나됨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대목에서 마음이 좀 아픕니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요, 교단이 수백 개입니다. 교회는 수만 개로 나뉘어 있어요. 우리는 입으로는 늘 "하나 되어야 한다, 연합해야 한다"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라지고 나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됨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기준에 맞아야 하나가 될 수 있다, 내 방식대로 되어야 연합할 수 있다 —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꾸 깨지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아니다. 이미 하나다. 그러니 지켜라."
여러분,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나와 잘 안 맞는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성도, 솔직히 좀 불편한 사람. 그 사람과 어떻게든 사이좋게 "만들어보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이걸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한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이 사실이 먼저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됨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하나됨을 지키는 방법은 앞의 일곱가지의 하나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는 우리가 예수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야기 외에는 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느 주제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거기에 갈등을 붙여보겠습니다. 정치 - 갈등, 세대 - 갈등, 이념 - 갈등, 남녀 - 갈등… 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주제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교회는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 갈등? 성령 - 갈등?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이야기만 우리가 하면 우리는 하나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둘째, 그러므로 이제 힘써 지키십시오. 겸손으로, 그리고 은사로.

바울이 여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겸손이고, 하나는 은사입니다.
먼저, 겸손으로 하나됨을 지킵니다.
엡4:2 을 보십시오.
Ephesians 4:2 NKRV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바울이 하나됨을 지키라고 말하기 바로 직전에 꺼낸 도구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겸손"이라는 단어는요, 바울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사실 칭찬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욕에 가까웠습니다. 노예가 굽실거리는 비굴함, 패배자의 자존심 없는 모습 — 그런 부정적인 뜻이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지, 자기를 낮추는 걸 미덕으로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독교가 이 단어를 가져다가, 가장 아름다운 덕목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왜요? 우리 주님이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곳, 마구간으로, 십자가로 내려오신 그분이 겸손의 모범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겸손이 하나됨을 지키는 도구일까요? 여러분, 한번 솔직하게 생각해 봅시다. 관계가 깨지는 이유가 뭡니까? 공동체에 금이 가는 이유가 뭐예요? 거의 대부분, 자기 중심성 때문입니다. 내가 옳다, 내 말이 맞다, 나를 알아줘야 한다 — 이 교만이 하나됨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겸손이 필요한 겁니다. 겸손은 하나됨을 깨뜨리는 그 교만을 무력화시키거든요.
그리고, 은사로 세웁니다.
그런데 바울은 겸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엡4:7 에서 방향을 살짝 틉니다. 이렇게 말해요.
Ephesians 4:7 NKRV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여기 "각 사람에게"라는 말, 꼭 붙잡으십시오. 각 사람.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은사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겁니다.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말 참 많이 듣습니다.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 "저는 은사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신앙도 약하고, 뭘 봉사할 능력도 없어요." 그런데 7절은 그렇게 말하는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아니다. 너에게도 주셨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각 사람에게 주셨다.
그러면 그 은사를 왜 주셨을까요? 11절과 12절을 보면, 바울은 교회 안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Ephesians 4:11–12 NKRV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요,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맞춘다, 또는 찢어진 그물을 깁는다는 뜻이에요. 어부가 찢어진 그물을 손질해서 다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입니까? 교회의 지도자, 목사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목사가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목사의 진짜 역할은요,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사역할 수 있도록 갖추어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역자로 세워드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건강한 교회는 목사 혼자 뛰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기 은사로 함께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교회는 관객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무대 위에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케스트라가 자꾸 떠오릅니다. 여러분, 오케스트라의 하나됨이 뭘까요? 모든 악기가 똑같은 소리를 내는 걸까요? 아니죠. 그러면 그건 음악이 아닙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첼로는 첼로 소리를 내고, 트럼펫은 트럼펫 소리를 냅니다. 다 다른 소리예요. 그런데 그 다른 소리들이 한 지휘자를 바라보면서 함께 연주할 때, 그때 비로소 아름다운 하나의 음악이 됩니다.
교회의 하나됨이 바로 그렇습니다. 내 악기 소리를 죽이는 게 하나됨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게 주신 그 악기 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내면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함께 연주하는 것 — 그것이 하나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제 역할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5절과 16절을 보세요.
Ephesians 4:15–16 NKRV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각 지체가 자기 몫의 사랑과 진실을 나눌 때, 몸 전체가 자랍니다. 그것도 어디까지요? 13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즉, 우리가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향한 자람"은요, 나 혼자 골방에서 도달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교단의 신앙 전통이 늘 강조해 온 그 거룩함,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는 그 삶은, 혼자 이루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은사를 나누고 서로를 세워줄 때, 함께 그곳에 이르는 겁니다. 내 거룩함과 너의 거룩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향해 자라가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첫째, 지금 나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이 공동체의 하나됨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내 고집, 내 방식, 내 자존심으로 하나됨에 금을 내고 있지는 않는가?
둘째, 지금 나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 은사로 누구를 세우고 있는가?

마치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지킵니다.
둘째, 우리가 그 하나됨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받았기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하나됨은 여러분이 지금부터 무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미 여러분 안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 심어 놓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미 답을 줬습니다. 1절, "그러므로." 1장부터 3장까지의 그 은혜 위에서만 이게 가능합니다.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신 분, 그리고 다시 하늘 높이 오르시면서 우리에게 선물을 가득 나눠주신 분 —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가 먼저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됨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십시오.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킵니다. 그리고 은사로 서로를 세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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