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찬양은 밤에 시작됩니다

새벽예배 -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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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Intro

우리는 참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달리고 성취해야만 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지치고 긿을 잃어버릴 때가 있죠.
특히 밤은 하루의 고단함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하루종일 예배준비와 사역을 하고
집에가서 아이 저녁먹이고 놀아주다가 씻기고 재우고,
설거지랑 집안일하고 소파에 앉으면 10시, 10시 30분쯤 됩니다.
이렇게나 지친 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통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거리를 찾거나,
내일의 걱정에 휩싸이거나, 정신없이 잠에 빠져버리곤 하죠.
하지만 오늘 시편 134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인 시편 134편은
인생의 순례길의 마지막 밤,
그들은 피곤해 쓰러지는 대신 '찬양'을 선택합니다.
이 밤의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고단함을 뛰어넘는 영적 승리의 선언입니다.

1. 보라! 하나님을 찬양하자! (1절)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Psalm 134:1 NKRV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 성전이 1성전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인지,
2성전이었던 스룹바벨 성전인지에 대한 건
학자들마다 의견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성전이든 매년 3번씩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으로 모여서 찬양을 하기 위해
굉장히 먼 길을 건너왔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동수단도 없이 걸어서 먼 길을,
그것도 밤에 도착했다면
내 마음의 상태가 찬양이고 뭐고
일단 물부터 주십쇼.
아유 일단 발닦고 자자! 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습니다.
성전을 지키고 있는 레위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초청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라’는 단순히
이것 봐봐라라고 주목을 시키는 것을 넘어
찬양으로의 강력한 초대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찬양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찬양은 나의 온 의지를 다 끌어모아서
내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날은
찬양을 할 힘도 없고,
이렇게 수동적인 자세로
의무감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제 자신이 너무 싫어서
예배를 안 드리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런 마음이 반복되니까
예배시간이 다가올때면
늘 도망칠생각만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오우근 목사님께서 금요성령집회때
찬양을 시작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아프던 말던,
우리가 상처입었든 안 입었든
찬양 받기 합당하신 분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거기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전도사였는데,
전도사라는 양반이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내 감정과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네 마네 하고 있었던
저의 부족한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컨디션이 조금 안좋고
쉬고싶다는 마음이 들때마다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영광받기 마땅하신 분이시지! 라는 생각에
다시 예배의 자리로 기쁨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순례자들 같은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지치고 고단하고 너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밤을
지나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자! 함께 하자! 라고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손을 들고, 온전한 항복과 갈망으로 (2절)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하나님을 찬양해야하는데,
어떻게 찬양해야할까요?
Psalm 134:2 NKRV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는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찬양받기 마땅하신 이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진짜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사실 기도도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찬양? 어림도 없을 때도 있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드는 것입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기도자세입니다.
철저한 항복,
은혜에 대한 간절한 갈망,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진짜 온전하게 올려드리며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내 안의 걱정 근심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지식, 경험, 능력을 내려놓고,
빈 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손을 들어야 합니다.
더욱이 2절 말씀에서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송축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고
그 크신 위엄을 드러낸다기보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철저하게 엎드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노래하며 자랑하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 철저하게 엎드리는 것이
우리의 찬양이요, 우리의 고백이 될 줄 믿습니다.

3.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언약의 축복 선포 (3절)

그렇게 하나님 앞에 철저히 엎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송축,
그리고 어떠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Psalm 134:3 NKRV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먼 길을 건너온 순례자들이
하나님을 송축하며 찬양하자
그들에게는 시온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순례자들의 그 찬양에
밤새 성전을 지키고 있던
제사장들이 축복으로 화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시온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이죠.
언약의 장소였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크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제한하셔서
임재하시고 만나주시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 은혜와 복이
너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복을 주신다! 라는
확신의 축복선언입니다.
시편 120편부터 시작된 순례의 여정이
133편의 형제의 연합을 지나서
도착한 종착역은 결국
예배와 찬양, 그리고 축복입니다.
고단한 인생길의 그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온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제한하셔서 시온에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듯,
성전을 떠나서 다시 돌아갈
척박한 일상의 자리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엄청난 축복의 선언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은
아주 확실한 확신의 선언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송축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을 찬양한 자들이 누리게 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시온의 복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Outro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고단한 순례길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죠.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캄캄한 절망의 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피로와 고단함을 넘어서
우리를 향한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합시다.
그럴때,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복을 내려주시고
우리를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로 오늘 하루의 모든 시간을
송축과 찬양으로 채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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