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생명은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자랍니다.

새벽예배 -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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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31
Matthew 13:31 NKRV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담임목사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성경읽기 주며들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13장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은 마태복음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장입니다.
앞선 12장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처절한 배척을 받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
진짜 메시아가 눈앞에 서 계신 데도,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한다"며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무리들을 향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거두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깨우기 위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비유'들을 던지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들을 통해
그토록 알려주고 싶으셨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흔히
천국 이라고 부르죠?
하늘 천에 나라 국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늘은
어떤 공간이었을까요?
하늘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볼 만큼 높습니다.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끝없이 넓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고개만 들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그 크고 넓으신 속성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단어로
'하늘'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나라’입니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 중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압도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주권(왕의 통치)'이었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두 어구가 있습니다.
바실레이아 투 데우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이 두 단어의 핵심인 바실레이아도
영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왕의 통치 행위, 주권을 의미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내 삶의 모든 방향을 그분께 맞추어 겸손히 엎드릴 때,
바로 그 순간, 우리가 딛고 선 이 평범한 일상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놀라운 진리를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Luke 17:20–21 NKRV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들일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고, 굳건하게 세워진 줄 믿습니다.

2. 그런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우리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유대인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통해 로마제국이 즉시 멸망하고,
가시적인 영광의 왕국이 세워지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31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허영심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Matthew 13:31 NKRV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아주 작고 미천하게,
티 안나게 아주 조용히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이라면,
온 우주를 다스리는 새 나라를 세우실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왕이면 하늘에서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고,
번개가 치는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ㅎ
하지만 죽은 벽돌을 쌓아 거대한 건물을 지을 때는
요란한 굉음과 흙먼지가 날리지만,
'살아있는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날 때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무엇이든 화려한 시작은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가 없는 법입니다.
화려한 기적,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공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직 자신의 이익과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가짜들만 잔뜩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그 옆에서 한 자리 차지해 보려는
헛된 욕심을 품은 자들만 북적였을 것입니다.
진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겸손한 자들의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작고 초라해 보이는
'겨자씨'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아무런 티도 나지 않게,
조용히 우리 삶의 밭에 심겨지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세상의 기준으로
그 작고 미천했던 십자가의 복음이,
겨자씨처럼 무서운 생명력으로 뻗어나가
결국 로마 제국을 뒤덮었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의 나무로 심겨지지 않았습니까?
Matthew 13:32 NKRV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역설입니다.

3.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굉음을 끄고, 왕의 음성에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늘 화려하고 요란한 소리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고, 건강해야 한다고,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굉음을 냅니다.
우리가 하루만 세상의 소리에 귀를 열어두면,
금세 두려움과 염려라는 가라지가
우리 마음의 밭을 덮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요란하고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내 안에 심겨진
이 작고 고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작고 고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를 구원하신 '진짜 왕의 음성'에
내 삶을 의도적으로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한 구절이어도 상관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슴에 새겨야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펼치시는 '공동체성경읽기'는,
교회가 여러분에게 내어주는 숙제가 아닙니다.
남들보다 성경을 몇 장 더 읽었다고 해서
우리가 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내 삶의 모습으로 곧바로 티가 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당장 내 삶이 변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어쨋든 신학생이고 전도사였으니
귀찮은 날이라도 의무적으로라도 성경을 읽었는데,
그럴때마다 내가 뭐 변하고 있나?
말씀읽고 뒤 돌아서면
여전히 성질부리고, 여전히 세상의 걱정과 염려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긴 한건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여기저기 찬양집회다니면서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기도했었죠.
그때마다
제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이런 시간도 굉장히 중요하죠?
뜨겁게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러나 그런 화려한 시간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게 티나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조금씩 젖어들었을때
내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어져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가장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매일 공급되는 양식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무섭게 자라납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어내려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져서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Outro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를 다스리시는 왕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의 굉음을 끄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을 때,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우리를 뒤덮으시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영광을
온전히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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