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
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363장 / 내가 깊은 곳에서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서론
서론
본론
본론
1-7절
1-7절
먼저 1-2절을 살펴보자.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 시를 시작하고 있다.
시인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
시인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내가 주야로, 낮에도 밤에도, 당신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나의 기도가 당신 앞에 이르게 하옵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당신의 귀를 기울여 주옵소서
시인은 간절히 기도한다.
시인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인생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고,
곧 죽을 것 같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3-5절이다.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지금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분노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6-7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8-9절
8-9절
8절에서 시인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한다.
9절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12절
10-12절
이어서 시인은
죽은 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어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 죽음 같은 상황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10-12절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18절
13-18절
이어서 시인은 한번 더 하나님 앞에 자신이 기도하고 간구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13절이다.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상황이 바뀌지 않아 보인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하는 것처럼,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느낀다.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물 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흑암 속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낀다.
14-18절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이 시는 이렇게 끝이 나고 만다.
뭔가 반전이 일어나야 할 것 같고,
아니면 이러한 현실이지만
나는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결단으로 끝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암담한 현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시는 끝이 난다.
결론
결론
시인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15절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참 오랜 세월을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는 이러한 고난의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인 자신의 죄 때문일 수도 있고,
욥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진 고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그 원인이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인은 그럼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고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하나님을 향해 계속해서 부르짖고 있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여전히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경험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믿음도 경험을 통해 더욱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나의 인생에 지금까지 살아오는 날들 속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이라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아니 어쩌면 내 인생의 끝날까지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해 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셔서 고난받으셨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괴로웠는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다.
그 고통의 순간에 예수님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시고 떠나신 것 같은
처절한 고독과 비참을 경험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무엇이라 기도하시는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신 것이다.
그 믿음을 끝까지 간직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는 못하셨다.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자기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혹여나 엘리야 선지자가 내려와 예수님을 구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놀랍거나,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다른 죄수들처럼 평범하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다. 죽으셨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도, 하나님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예수님의 인생은 끝나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끝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 곁을 떠난 적이 한 순간도 없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도
여전히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 곁에 계셨고 예수님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무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죽으면 끝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시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진정 여호와 하나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내 기대와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은 내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이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한다.
사도 바울에게 바로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어찌 보면 사도 바울의 인생도
오늘 본문의 시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그러함에도 사도 바울은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끝까지 간직하며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지금 눈에 보이는 내 형편과 상황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고
비참하고 괴롭고
죽음을 맛보고 죽음의 문턱 가운데를 걷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전히 선명하게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에
고난받고 처절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구원이 새겨져 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오늘 하루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