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8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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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54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시고 이 새벽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세상의 염려와 걱정은 내려놓게 하시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주옵소서.
주님, 저희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삶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새벽 다시 한번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삶으로 흘려보내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주옵소서.
저희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살아게 하시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순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예물 드립니다. 오늘 드려지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손길 위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은혜로 채워 주시고, 드려진 헌금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8:6–15 NKRV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헌금’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헌금을 모으는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헌금 이야기가 중심이 아닙니다. 얼마를 모았는지, 목표액이 얼마인지, 얼마나 부족한지와 같은 숫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단어를 이야기 하는데 바로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흉년과 계속되는 핍박으로 인해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복음이 처음 시작된 어머니 교회와 같은 교회의 성도들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이방 지역 교회들을 다니며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구제 헌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 일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만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빵을 사주고 생활비를 지원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 있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한 몸이라는 사실을 실제 삶으로 증명해 내는 아주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회는 누구보다 먼저 이 일에 반응했던 교회였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는 이미 일 년 전부터 마음을 정하고 헌금을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돕겠다고 나섰고,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교회는 갈라지고 바울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겠다는 처음의 뜨거움은 점점 식어갔고, 시작했던 일은 끝맺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일 년이 지나도록 헌신은 멈춰 있었고, 처음의 결단은 더 이상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은 자신들도 극심한 환난과 가난 중에 있으면서도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나눔에 동참했습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고린도 교회에 전하면서, 디도를 다시 보내어 그들이 1년 전에 시작했던 그 선한 일을 끝까지 마치게 하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7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8:6–7 NKRV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바울은 이런 나눔과 헌신의 행위를 단순히 ‘헌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것을 반복해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카리스’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에게 조건 없이 거저 베푸시는 은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보통 헌금이나 나눔을 의무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 “신앙생활의 한 부분” 정도로 여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봅니다.
바울은 헌금을 세금처럼 강요하지 않습니다. 율법적인 의무로 몰아붙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7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바울은 나눔과 헌신 역시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도의 나눔과 헌신은 신앙과 따로 떨어진 특별한 활동이 아닙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자라면 삶도 함께 움직이게 되고, 은혜를 깊이 경험할수록 내 것을 붙잡기보다 흘려보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진짜 은혜는 마음속 감동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삶의 방향을 바꾸고, 사람을 향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삶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8:11 NKRV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여기에 쓰인 “성취하다”, “완성하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에피텔레오’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돈을 다 모아서 전달하는 행정적인 마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작된 은혜의 일을 끝까지 이루어 내라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시작은 했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식어버렸고, 결단은 있었지만 삶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도 처음 은혜받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눈물 흘리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감격은 희미해지고, 결단은 멈춰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처음 은혜받던 순간의 감동만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가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고, 끝까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 입니까?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8:9 NKRV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헌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나눔과 헌신의 기준은 내 형편이나 계산이 아니라 예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참된 부요함 그 자체이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장 낮고 가난한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왕궁이 아니라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물과 피와 생명까지 남김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죄와 사망 가운데 죽어가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을 비우시고 가난해지셨기에, 오늘 우리가 참된 부요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바로 그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헌신은 억지로 짜내는 의무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 이름을 드러내는 행동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진짜로 경험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살아내게 되는 삶의 반응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안에 머물러만 있을 수 없기에 삶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붙잡기보다 흘려보내게 되고, 받은 사랑이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새벽, 이러한 바울의 권면 앞에서 “나는 받은 은혜를 삶 속에서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은혜가 내 안에서 멈춰버린 채 머물러 있는가?”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은혜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찬양하고, 구원의 감격을 이야기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처음에는 뜨겁게 헌신을 결단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배 가운데 눈물 흘리며 다짐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순종하며 살아야지.”
그런데 예배당 문을 나서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 은혜가 멈춰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받은 사랑은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받은 용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로 흘러가지 못하며, 은혜의 감격은 시간이 지나며 다시 내 욕심과 내 기준 속에 묻혀버릴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한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만 달라트를 빚 지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만 달란트는 평생을 갚아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을 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갚기 불가능한 금액을 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 빚을 불쌍히 여겨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궁궐을 나가자마자 한 일은, 자기에게 아주 작은 돈인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의 멱살을 붙잡고, 끝내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고,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삶에서는 나에게 조금 잘못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마음에 품고 미워하고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는 받았지만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은 받았지만 사랑하지 못하며, 섬김은 받았지만 여전히 섬김받기만 원할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십자가의 은혜를 말하지만, 정작 돈을 사용하는 방식과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은혜보다 ‘나 중심’으로 굳어져 있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바울은 오늘 바로 그 굳어버린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받은 그 은혜를 삶으로 완성하라. 입술로만 은혜를 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삶으로 그 은혜를 살아내라.”
은혜는 마음속 감동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은혜는 삶을 움직이게 합니다.
멈춰 있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붙잡고만 있던 것을 흘려보내게 하며, 나 중심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받은 은혜를 삶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할 때, 공동체 안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울은 13절과 14절에서 나눔의 목적이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균등하게 하려 함의 원어의 뜻은 공평함, 균형, 서로 채워줌, 부족함이 없도록 맞춰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한 균등함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게서 공동체 안에 주신 은혜와 필요가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균등하게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만 배불리게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나의 넉넉함이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고, 또 언젠가 나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의 넉넉함으로 채워지는 서로의 돌봄과 채움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15절에서 출애굽기 16장의 만나 사건을 인용합니다.
2 Corinthians 8:15 NKRV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둘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욕심을 내어 많이 거둔 사람도 결국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몸이 약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적게 거둔 사람도 먹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어떤 사람은 넘쳐나고 어떤 사람은 굶주리는 공동체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바울은 지금 바로 그 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혼자 움켜쥐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흘려보내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역시 “내 것”만 붙들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의 넉넉함이 부족한 사람에게 흘러갔고, 그 안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었고,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단순히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하심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만 머물러 있는 은혜가 아니라, 내 삶을 통해 이웃에게 흘러가는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내 삶 속에서 그 은혜를 어떻게 살아낼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받은 은혜가 삶 속에서 열매 맺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받은 부요함이 누군가를 살리는 통로가 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사랑과 용서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내 것만 붙잡고 살아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입술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삶에서는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계산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받은 말씀처럼 은혜가 우리 안에서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받은 사랑이 사랑으로 흘러가게 하시고, 받은 용서가 용서로 이어지게 하시며, 받은 은혜가 삶의 순종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삶의 사용처가 조금씩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내 것을 붙잡기보다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섬김과 순종을 통해 누군가가 위로를 얻고 살아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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