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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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늘 본문은 단 지파를 시작으로,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 지파에 대해 야곱이 축복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야곱은 앞서 다른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섯 아들들에게도 후일에 당할 일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장차 미래에 그들이 이 땅에서 정말 복을 받고 누리며 살게 될것이라는, 어떠한 소망적이면서도 기대가 되는 긍정적인 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좋은 형편과 상황, 풍요로운 상태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마지막 28절에서는 이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며, 야곱은 그들에게 각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각 사람의 분량대로” 라는 말은, 마치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믿음의 수준, 또는 신실함의 정도에 따라 복을 차등 지급했다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야곱이 각 아들들에게 축복을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백성은 각각 주어진 현실과 상황이 다 다르다.
28절을 보면 야곱과 열두 아들들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열두 지파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 안에서의 세워질 언약 공동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한 공동체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미래에 겪게 될 상황과 형편은 각각 다르게 주어질 것임을 보여줍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단 지파부터 살펴보면, 16절에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한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이는 단 지파가 다른 지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지파로 인정받는다 라는 뜻을 지닙니다.
단 지파는 후에 민수기에서 지파별로 인구 조사를 할 때 두 번째로 수가 많은 큰 지파였지만, 사사시대에 이르러 자신의 기업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겨우 라이스라는 북쪽 주변의 땅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단의 모습을 17절에 뱀의 이미지를 사용해 비유적으로 표현하는데, 뱀은 정면에서 힘을 가지고 승부하기보단, 눈에 띄지 않는 상태에서 기회를 포착해 생존하는 방식을 가집니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한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단의 지파가 처해질 현실은 안정적으로 기업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기업을 확보해야 하는 매우 불안정하면서도 쉽지 않은 삶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19절에 갓 지파에 대한 설명을 보면,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한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갓 지파에게 처해질 상황이 단 지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이 지속적으로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다음으로 20절의 아셀은, 앞의 단과 갓 지파와는 달리 기름진 음식을 먹을 정도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는데, 그 풍요로움은 왕의 식탁에 올라갈 정도로 풍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음 21절의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비유되고, 이는 어떠한 자유롭고 아름다운 생명의 이미지를 상징하며, 납달리 지파는 그러한 삶이 허락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다음 22절부터는 요셉에 대해 다루는데, 무성한 가지처럼 번성할 것이나 동시에 활쏘는 자들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어려움도 함께 주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붙드심과 도우심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결국 넘치는 복이 허락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27절에서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로 표현되는데, 아침에는 먹이를 먹고 저녁에는 취한 것을 나눈다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힘과 전투력이 강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같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지파는 힘과 능력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지파는 삶의 형편과 처지가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떤 지파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고난과 어려움을 함께 겪을 수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모두 같은 형편을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로 하여금 알려주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백성은 언약 안에서 복이 허락된 자들이라는 것.
28절에 야곱이 열두 지파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각 지파가 장차 맞이하게 될 현실과 삶의 자리가 야곱이 그렇게 복을 빌어준 결과의 의미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라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믿음의 수준 또는 신실함에 따라 복을 보상의 차원에서 차등으로 빌어주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앞에서 지파별로 나타나게 된 불안정한 삶과 고난과 공격받음, 전쟁과 같은 상황과 현실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해서 또는 신실하지 않아서 등 자격에 따라 주어진 결과처럼 보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량”은 능력의 분량이나 믿음의 수준이나 신실함의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에게 주어지는 또는 허락되어지는 삶의 자리와 상황, 처지를 뜻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다는 기본적으로 복을 빌어주다 또는 복이 임하도록 간구한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복을 내리시고 허락하실 수 있기에, 축복하다는 결국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것은, 각 지파의 처해진 삶의 자리와 상황 속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간구하고 기도하였다 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각 지파를 축복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 열 두 지파를 언약 안에서 세우셨고, 언약 백성으로 부르신 자들에게 복을 허락하시기로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25절에서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할 때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복을 주실 것이다 라는 내용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단 지파에게 축복할 때,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 지파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기업을 확보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과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이스라엘의 한 지파로 여겨져 언약 안에서 복이 허락되어져 있기에,
야곱이 주님의 구원을 기다린다라고 표현한 것은, 단 지파가 그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 원수들에게 삼켜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존되어지는 복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야곱이 열두 지파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는 것은, 모든 지파가 이 땅에서 풍요로움을 누리며 잘 살기를 빈 것이 아니라,
비록 서로 다른 삶의 상황과 처지 속에 놓이게 된다 할지라도, 언약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복이 그들 삶 가운데 임하여 그들이 그 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3.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드는 것이 참된 복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복을 허락하셨다면, 그 복의 내용은 무엇이며 복을 어떻게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남게 됩니다.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이러한 맥락에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복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죄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에게 자신을 스스로 계시해주시지 않은 이상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 절망적인 저주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기 백성들을 언약 안에 부르시고,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는 점에서 복을 허락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복을 받고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야곱이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축복했다는 것은, 앞으로 그들의 삶의 형편과 처지가 각각 어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을 놓치지 말고 온전히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다시말해, 고난과 힘들고 불안정한 상황 속에 살아간다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도우심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며,
납달리와 아셀과 같이 풍성함과 평안함을 누리는 자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자격이 더 있어서 누리게 된 것이 아님을 늘 깨달아야 하며, 그 풍족함과 평안함을 누리면서도 결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처럼 자신의 능력과 힘이 매우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것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함을 알려준다 할 수 있씁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같은 주님을 믿고 같은 신앙 생활을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와 형편, 처지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 안에서 각각 다르게 허락되어진다라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는 더 은혜를 베푸시고 덜 베푸신 결과가 아니며, 만일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가게 된 것을 어떤 믿음의 자격이나 은혜의 결과로 여긴다 한다면,
결국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여기는 것이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이 땅에서 삶을 좀 더 누리며 윤택하게 살아보기 위해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잠깐 있다 지나갈 썩어져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곳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내 삶의 자리와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남들과 결코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언약 공동체로 부르신 복이 우리에게 허락되어져 있다라는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자 참된 복임을 알기에, 허락하신 그 삶의 자리에서 다른 곳에 시선과 마음을 두지 않고 이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는 복이 저와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각자에게 허락하신 삶의 현실이 다르더라도 그 형편을 비교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언약 공동체로 부르신 은혜와 복을 기억하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을 온전히 누리는 은혜를 허락해달라고,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부교역자들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영육간의 강건함과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팜피학교를 비롯하여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역들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세우고, 또한 아버지의 나라를 확장하고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리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