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9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7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시고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지만, 저희는 가장 먼저 주님을 찾게 하시고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분주한 생각과 염려로 가득했던 마음을 잠잠하게 하시고, 이 시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다시 힘을 얻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삶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람들 앞에서는 세상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만 거룩한 척하는 삶이 아니라, 골방에서도 정직하고 세상 속에서도 신뢰받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또한,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고, 마음이 지치고 낙심한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기도의 제목마다 주님 친히 응답하여 주시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 앞에 드리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믿음으로 드리는 손길 위에 하늘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드려진 예물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시고, 드리는 가정마다 필요한 것을 채우시며 감사가 끊이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어제 함께 나눈 것 처럼,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이 고린도교회에서 일년 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바울을 향한 고린도 교회의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에 ㄱ금이 가자, 바울이 추진하던 선한 사역에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이 진행하던 사역은 큰 돈이 오가는 일이었습니다. 돈이 관련된 문제였기에 바울의 순수한 동기를 의심하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많은 헌금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헌금을 둘러싸고 생겨난 의심과 오해를 걷어내고, 교회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이방인 교회가 정성껏 모은 이 구제 헌금의 규모는 컸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은행 계좌로 안전하게 송금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그 많은 금화와 은화가 담긴 주머니를 직접 들고 예루살렘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짧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고, 험한 산길을 지나 수 개월동안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도를 만날 위험도 있었고, 배가 파선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성도들에게는 이런 물리적인 위험보다 더 두려운 위험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람들의 오해와 불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의 탐심이 틈타기 쉽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누군가가 “바울이 그 많은 헌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바울의 사역은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이 구제 헌금은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아름다운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불신이 시작되면, 그 아름다운 구제 헌금의 사역이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말 한 것처럼 고린도교회안에는 이미 바울을 향한 의심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2:16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바울은 지금 자신이 어떤 의심을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사역마저 순수하게 보지 않았고, 심지어 바울이 속임수로 사람들을 이용한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제 헌금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0-21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1절에 조심하려 함이라의 원어의 의미는 단순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 아니라, 미리 생각하다,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태도로 구제 헌금 사역을 대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구제 헌금을 혼자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 마음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여러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검증한 사람들, 곧 디도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명의 신실한 형제들과 함께 사역을 진행하였습니다.
사실 바울 혼자 처리하거나 바울이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였으면 더 빠르고 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역의 정직함만큼이나, 사람들이 그 사역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제가 터진 뒤에 변명하며 수습하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오해를 살 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사람들 앞에서 조심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렸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4: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에 자신의 삶과 사명을 맡겨 놓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든, 반대로 칭찬하고 박수를 보내든, 바울은 세상의 반응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판단을 작은 일로 여겼던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 앞에서도 철저히 조심한다고 말합니다.
모순같은 이야기 이지만, 이 두가지는 우리 신앙 안에서 함께 가야 하는 진리 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격이나 사역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의심을 사거나 흠집을 내지 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자신이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부주의함이나 투명하지 못한 재정 관리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이 조롱거리가 되고 교회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은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골방의 일이면서 동시에 광장의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무릎 꿇을 때 결정이 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 신앙의 깊이가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신앙은 골방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빚어진 그 정직함은 세상이라는 광장으로 나와 사람들 앞에서도 투명하게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지키려 하였습니다.
주님 앞에서의 거룩함과 사람 앞에서의 투명함 모두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주님 앞에서도 흠이 없었고, 사람 앞에서도 흠이 없기를 원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그러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다니엘 입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다니엘을 시기하던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요하게 다니엘의 약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고발할 이유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결과를 다니엘 6:4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자리에서 막대한 재정과 권한을 다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니엘을 무너뜨리려 했던 원수들조차 다니엘의 삶에서 아무 흠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단 한번의 부정도, 작은 거짓도, 사소한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신앙은 골방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골방의 영성을 가지고 세상이라는 광장 한복판에 나가 사람들의 감시와 견제속에서도 한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의 다니엘과 세상 속에서의 다니엘이 서로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삶을 먼저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하지만, 세상 속에서는 우리가 물질을 사용하는 태도나 약속을 지키는 모습, 직장에서의 정직함이 다르다면 복음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우리가 세상에서도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하루하루를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안에서처럼 세상에서도 정직한가, 교회 안에서처럼 세상에서도 친절한가, 교회 안에서처럼 세상에서도 선한가, 혹시라도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다면 바울처럼 미리 생각하고 조심하며 지혜롭게 행도하고 있는가 우리의 하루를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문제가 생긴 뒤에 해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의심받을 만한 틈을 만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한가지더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년동안 멈춰 있던 고린도교회의 헌금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압박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만한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 여러 교회가 함께 인정한 사람들, 오랜 시간 삶으로 검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뢰는 말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뢰는 결국 사람을 통해 회복 되는 것입니다.
혹여나 우리안에 무너지고 흔들린 관계가 있다면 오늘 말씀을 마음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가정안에서, 직장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뢰가 약해진 잘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뢰를 다시 세우는 방법은 하루아침의 말이 아닐, 시간을 두고 쌓여가는 신실한 삶이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새벽에 주님께서 “너는 골방에서만 거룩한 사람이냐, 아니면 세상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사람 앞에서의 정직함이 함께 가는 삶, 바로 그 삶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골방에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광장 속에서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는지는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믿음은 삶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이 사람들 앞에서의 투명한 삶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통로가 됩니다.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바르고, 사람들 앞에서도 신뢰받는 삶. 골방의 믿음과 광장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 신앙이 골방을 넘어 세상의 광장에서도 증명되어야 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거룩을 말하고, 사람 앞에서는 정직과 투명을 잃은 채 복음의 평판을 가리며 살지는 않았는지 저희의 삶을 돌아봅니다. 바울처럼, 다니엘처럼 영혼의 평가는 하나님께 맡기되, 복음의 영광을 위해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과, 맺는 모든 물질의 관계 속에서 투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가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