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한 거룩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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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84:1–4 NKRV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찬송가 524장 :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Genesis 49:29–50:14 NKRV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야곱의 죽음과 장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 에서와 갈등했고,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랜 세월 고생했으며, 사랑하는 라헬을 잃었고, 요셉을 죽은 줄 알고 긴 세월을 슬픔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단지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붙드셨고, 애굽 땅에서 요셉을 다시 만나게 하셨으며, 그의 마지막 길까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죽기 전 아들들에게 분명히 명합니다. “나는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조상들과 함께 장사하라.” 야곱이 말한 막벨라 굴은 실제로 최종적인 영원한 본향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는 믿음의 표지였습니다. 야곱의 장례 행렬은 한 노인의 시신을 운반하는 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귀환의 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소망을 줍니다. 성도의 삶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그네로 살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라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갑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은 믿음의 사람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야곱의 귀환을 통해, 우리도 성도의 최종 영적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1. 전형상화: 야곱은 죽음 앞에서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창세기 49장 29절에서 야곱은 아들들에게“나는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야곱은 죽음을 단순한 소멸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조상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길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끝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 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자신을 이해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명합니다. 그 굴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땅이었습니다. 사라,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가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도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가족 묘지에 대한 애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죽음 이후에도 그 언약의 땅에 속하기를 원했습니다(창 12:7; 창 23:17–20; 창 49:29–32).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애굽은 그에게 생명을 보존해 준 땅이었습니다. 요셉이 있었고, 양식이 있었고, 바로의 보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을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굽의 안정 속에서도 가나안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의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 은 믿음의 조상들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49장 33절은 야곱이 아들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어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죽음은 외롭게 흩어지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죽음이 단지 상실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귀환임을 보여 줍니다. 시편 116편 15절은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50장 1절 에서 요셉은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춥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지만, 그 순간에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었습니다. 믿음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도도 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그러나 성도의 슬픔은 소망 없는 슬픔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은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을 향료로 처리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곡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공적으로 존중하고, 예를 다해 장례를 준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리더십을 봅니다. 그는 큰 슬픔 속에서도 감정에만 휩쓸리지 않고, 질서 있게 일을 진행합니다. 전도서 3장 1절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슬퍼할 때 슬퍼했지만, 동시에 해야 할 일을 지혜롭게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궁에 말하여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애굽의 권력과 질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이 옳다고 해서 무례하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그는 공적 절차를 존중하면서도 아버지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킵니다. 이것이 요셉에게서 배울 첫 번째 리더십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서도 세상 속에서 지혜롭고 질서 있게 행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6).
바로는 요셉에게 올라가 아버지를 장사하라고 허락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바로의 신하들과 애굽의 장로들과 요셉의 온 집과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을 이끌고 올라갑니다. 병거와 기병까지 함께하니 큰 행렬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한때 도망자였고 나그네였지만, 그의 마지막 길은 왕의 행렬처럼 장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생애를 부끄러움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약속의 땅을 향한 영광스러운 귀환으로 이끄셨습니다. 이사야 46장 4절 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크게 울고 애통하며 칠 일 동안 애곡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이를 보고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부릅니다. 야곱의 죽음은 가족만의 사건이 아니라 주변 민족에게도 보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삶과 죽음은 세상 앞에서도 증언이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침내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명령한 대로 그를 가나안 땅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합니다. 그리고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장례에 함께한 모든 사람이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두 번째 리더십을 봅니다. 그는 시작만 잘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을 완수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장례 절차를 마치고, 다시 맡겨진 자리로 돌아갑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 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슬픔 속에서도 충성된 리더였습니다.
2. 형상화: 우리는 어디를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의 장례 행렬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를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야곱은 애굽에서 안정과 풍요를 누렸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며 집을 사고, 직장을 다니고, 가족을 돌보고, 미래를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최종 본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주 애굽을 본향처럼 착각합니다. 안정된 직장, 더 나은 경제 조건, 건강한 삶, 자녀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이 우리의 마음을 붙듭니다. 물론 이것들은 삶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의 최종 소망이 되면, 우리는 나그네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시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19–20).
야곱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사람이 아니라 언약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붙들 것인지 지금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성도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본향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이미 본향을 향해 걷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 은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요셉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세상 속 리더십을 배웁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깊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 가운데서도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바로의 허락을 구하고, 장례 절차를 정돈하고, 가족과 애굽 사람들 사이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도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감정적으로만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침착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에게서 배울 두 번째 리더십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충성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요셉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리더는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큰 책임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10).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첫째, 나는 이 땅의 성공과 안정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나라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나는 요셉처럼 슬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침착하게 책임을 감당하고, 맡겨진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인가? 성도는 하늘 본향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동시에 땅에서는 지혜롭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재형상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본향을 향해 돌아간다
첫째, 우리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본향을 향한 귀환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장례길은 막벨라 굴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곳이 최종적인 천국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는 믿음의 표지였습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무의미한 종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우리는 현재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사는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그네는 목적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살았지만 애굽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책임 있게 살아야 하지만, 이 땅을 영원한 집처럼 붙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은 성도를 “거류민과 나그네”라고 부르며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면합니다.
셋째, 우리는 약속된 최종 승리와 영광을 소망해야 합니다. 야곱의 시신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간 것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지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성도들이 마지막 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로마서 8장 30절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마지막은 패배가 아니라 영화입니다.
넷째, 이 모든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됩니다. 야곱은 막벨라 굴을 바라보았지만, 우리는 빈 무덤을 바라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도의 본향 소망은 확실해졌습니다. 베드로전서1장 3–4절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본향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부활로 보증된 실제 소망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본향을 소망하는 사람답게 오늘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셉은 하늘만 바라본다는 이유로 땅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성실히 준비했고, 바로의 질서를 존중했고, 가족을 이끌었으며, 약속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균형입니다. 하늘 본향을 바라보기에 땅의 책임도 더 진실하게 감당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섯째, 우리는 침착하고 지혜로운 리더십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슬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고, 권력을 가졌지만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서도 세상 질서를 존중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리더, 교회의 리더, 일터의 리더는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잠언 16장 32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킴으로 아버지의 믿음과 하나님의 언약을 존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과 약속도 하나님 앞에서 무게가 있습니다. 시편 15편 4절은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편할 때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의 길은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길은 약속의 땅을 향한 거룩한 귀환이었습니다. 우리 삶도 때로는 흔들리고, 울고, 돌아가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마지막은 정처 없는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본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 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땅을 영원한 집처럼 붙들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요셉처럼 세상 가운데 침착하고 지혜롭게 행하며, 맡겨진 약속과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패배가 아니라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본향을 향한 거룩한 귀환의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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